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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렝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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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렝케 선(先) 스페인
도시와 국립공원

Ciudad prehispánica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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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800px-Mexico-2648_-_Palenque_(2213894037).jpg
팔렝케의 모습
유네스코 세계유산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흰 배경).svg
이름 한국어 팔렝케 선(先) 스페인 도시와 국립공원
영어 Pre-Hispanic City and National Park of Palenque
스페인어 Ciudad Prehispánica y Parque Nacional de Palenque
프랑스어 Ville préhispanique et parc national de Palenque
국가·위치 멕시코 치아파스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1987년
등재기준 (i)[1], (ii)[2], (iii)[3], (iv)[4]
지정번호 411

1. 개요2. 역사3. 유적

[clearfix]

1. 개요

마야 문명의 도시이자 유적지. 유명한 파칼 왕의 무덤이 발견된 도시이다. 덕분에 티칼, 치첸 이트사 등과 함께 가장 유명한 마야 유적지로 잘 알려져 있는 편에 속한다.

2. 역사

팔렝케가 정확히 언제 세워졌는지에 대해선 알 길이 없지만 대략 고전기 초창기 즈음에 도시가 건립되었을 것이라 추정 중이다. 팔렝케의 기록에 남아있는 초대 아하우, 즉 국왕은 쿠크 발람으로 431년부터 약 5년 동안 팔렝케를 다스렸다. 이후 그의 핏줄을 이은 왕들이 대대로 등장하여 팔렝케를 다스렸다. 쿠크 발람이 승하하자 그의 아들 캐스퍼[5]가 즉위했고, 캐스퍼가 승하하자 부츠 아즈 삭 치크, 아칼 모 납 1세가 차례로 왕위를 계승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이들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었으나, 1994년에 석비가 발견되면서 조금이나마 당시 상황을 짐작해 볼 수 있게 되었다. 당시 부츠 아즈 삭 치크는 나름 성공적으로 팔렝케를 통치했고, 그의 아우인 아칼 모 납 1세는 어린 나이에 형을 이어 왕이 되었다. 아칼 모 납 1세가 정확히 무얼 했는지는 모르지만 무슨 업적을 남겼던지 그의 뒤를 이은 왕들은 모두 아칼 모 납 1세의 후계자를 자처하며 그를 숭배했다.

아칼 모 납 1세가 불명의 이유로 524년에 세상을 뜨자 팔렝케의 왕위는 약 4년 가까이 공석으로 남아 있었다. 529년에 새 왕인 칸 조이 치탐 1세가 인근 도시인 토크탄에서 대관식을 치르며 새로운 팔렝케의 지도자로 떠올랐고 약 36년 동안 팔렝케를 다스렸다. 그의 아들들인 아칼 모 납 2세칸 발람 1세는 재위하면서 처음으로 자신의 칭호에 '위대한 태양'이라는 뜻인 키니치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이게 전통이 되어 후대의 왕들도 모두 자신의 왕명에 '키니치'라는 단어를 추가하기 시작했다. 칸 발람 1세가 승하하자 그의 딸이었던 요흘 이크날이 팔렝케의 여왕으로 즉위했다. 그러나 그녀의 치세때 인근의 강대국이었던 칼라크물이 팔렝케를 침공해 약탈하면서 팔렝케는 크게 휘청이게 되었다.

요흘 이크날 여왕은 전투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아 팔렝케의 왕위를 유지했지만 이미 그녀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칼라크물에게 조공을 바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칼라크물의 공격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12년 후인 611년에 또다시 칼라크물군이 팔렝케를 침략했고, 당시 팔렝케를 다스리던 요흘 이크날 여왕의 아들 아즈 네 요흘 맛은 무력하게 칼라크물의 군대에게 패배했다. 이때는 심지어 칼라크물의 왕이 직접 팔렝케까지 와서 정말 철저하게 팔렝케를 끝장내버렸다. 당시 칼라크물은 티칼도 능가할 정도의 마야 세계에서 독보적인 초강대국이었고, 때문에 팔렝케 따위가 칼라크물에 맞설 수는 없었다. 결국 팔렝케는 칼라크물의 침공 이후 한시적인 무정부 상태로 남게 되었고, 아즈 네 요흘 맛 왕은 612년에 죽었다.

당시 팔렝케의 일시적인 무정부 상태는 팔렝케 최대의 흑역사로서 수많은 비석과 신전들에 기록되어 있다. 이 시기에는 그 어떠한 제례 행사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국왕도 제대로 존재하지 않았던 판이라서 아예 팔렝케의 기본적인 사회 질서 자체가 무너졌던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아즈 네 요흘 맛 왕이 승하하고 나서 몇 년이 지나서야 하나브 파칼[6]이 마침내 귀족들의 동의를 얻어 새로운 권력자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기록에 의하면 파칼은 일시적인 과도기의 최고 권력자였을 뿐, 생전에 국왕을 뜻하는 '아하우'에 추대되지까진 못했다. 그가 612년에 죽자 파칼의 딸 삭 쿠크가 새로운 여왕이 되었다. 삭 쿠크는 그녀의 아들이 성년이 될 때까지 약 3년 정도만을 임시로 팔렝케를 다스렸다. 참고로 이렇게 그녀가 여성의 몸으로도 팔렝케의 권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버지 하나브 파칼이 나름 팔렝케의 혼란을 잘 수습했기 때문이었다.
파일:anxo-mijan-marono-panoramica-ma1.jpg
전성기의 팔렝케
하나브 파칼의 손자이자 삭 쿠크 여왕의 아들이 바로 그 유명한 키니치 하나브 파칼 왕이다. 12세의 어린 나이에 어머니 삭 쿠크로부터 왕권을 물려받아 팔렝케를 다스리기 시작했으며 대략 615년부터 683년까지 통치했다. 재위 25년까지는 어머니인 삭 쿠크가 내정을 도왔다고 한다. 어쨌든 팔렝케는 파칼 왕의 치세에 완전한 전성기를 맞았다. 파칼 왕이 상당히 능력있는 명군이었던지라 불과 몇 년전 칼라크물에 침략당해 망해가던 도시를 부활시키는 데에 성공했던 것이다. 그는 624년에 인근 도시 오크탄의 공주인 익스 트착부 아하우와 결혼해 3명의 자식을 두었다. 명군이었던 파칼 왕은 팔렝케에 수많은 건물들을 세웠다.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로 '팔렝케의 궁전' 유적이나 관측대 등등이 있다. 워낙에 많은 건축물들을 지어대고 과시했기에 황금기에는 저 티칼을 능가할 수준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을 정도였으니 얼마나 팔렝케가 당시 융성했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팔렝케는 파칼 왕 사후 서서히 쇠퇴해갔다. 중흥의 명군이었던 파칼 왕이 683년에 승하하자 그의 아들 키니치 칸 발람 2세가 새로운 왕으로 즉위했다. 그러나 발람 2세가 즉위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승하해버리자 키니치 칸 조이 치탐 2세가 새 왕이 되었다. 키니치 칸 조이 치탐 2세는 선대 파칼 왕 시절부터 시작된 건축 프로젝트들을 완성했으며 특히 파칼 왕의 왕릉을 완성하는 데 큰 관심을 기울였다. 외교적으로도 나름 적절한 처세술을 발휘한 덕분이었는지 팔렝케는 파칼 왕 시절만큼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 권위를 유지했으며 마야 세계 내부에서도 강대국으로 인정받았다. 그렇게 팔렝케는 파칼 왕 - 발람 2세 - 칸 조이 치탐 2세로 이어지는 3명의 왕들이 재위하는 기간 동안 꽤나 오랜 황금기를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팔렝케의 황금기는 711년에 토니나의 군대에게 팔렝케가 함락당하고 늙은 칸 조이 치탐 2세가 포로로 끌려가면서 종결되고야 말았다. 칸 조이 치탐 2세가 어찌 되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적국으로 끌려가 제물로 바쳐졌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칸 조이 치탐 2세가 끌려간 이후 10년 동안 팔렝케는 또다시 왕위 공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10년 후인 722년에 키니치 하나브 파칼 3세[7] 새로운 왕으로 즉위했다. 키니치 하나브 파칼 3세는 그 이름을 선왕에게 따왔을지는 몰라도 전대 왕 칸 조이 치탐 2세와는 혈연이 없는 찬탈자로써, 이후 정통성에 금이 가게 되었으며 팔렝케는 대귀족들 간의 치열한 세력 싸움에 휘말리게 되었다. 이후 파칼 3세의 아들과 손자들이 왕위를 물려받아 8세기까지 팔렝케를 다스렸다. 이 시기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지만 토니나와의 전쟁이 계속되었고, 팔렝케는 착실하게 깨져나가면서 무너져내렸다는 것 정도밖에 없다.

800년이 지나자 도시의 엘리트층이 증발하고, 사회 구조가 무너지면서 팔렝케 국가 자체가 붕괴되었다. 이미 팔렝케의 쇠락은 800년 이전부터 시작되고 있었으나 당시 고전기 마야 문명의 붕괴가 일어나면서 몰락이 더욱 가속화된 것으로 본다. 800년을 기점으로 팔렝케에는 그 어떠한 대규모 건축물이 지어지지 않았으며 인구도 급감했다. 그렇게 팔렝케는 1520년대에 스페인콩키스타도르들이 도착할 때까지 조용히 정글 속에 묻혀가 사라졌으며, 스페인인들이 도착했을 때 즈음에 팔렝케에 거주하는 인원은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3. 유적

사진 설명
파일:Temple-of-Inscriptions-Palenque-Mexico-mountain-element.webp
비문의 신전 (Temple of the Inscriptions)
675년 경에 지어졌으며 마야 유적들 가운데 두 번째로 긴 길이의 마야 문자본이 새겨져 있다.[8] 기단부의 너비는 60m, 깊이는 42.5m, 높이는 27.2m이며 꼭대기의 신전은 너비 25.5m, 높이 11.4m이다. 1952년에 꼭대기의 신전 바닥 부분에서 구멍이 발견되어 조사한 결과 그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발견되었으며, 이 계단에 쌓인 자갈들을 치우고 내려가 본 결과 도굴되지 않은 키니치 하나브 파칼 왕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사실상 팔렝케가 유명해진 이유이기도 하다. 무덤의 덮개의 모습이 독특해 초고대문명설과 관련한 팔렝케 파칼왕 석관덮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파일:14386478533_b3db8792e3_b.jpg
십자가의 신전 (Temple of the Cross)
'십자가의 신전 건물군' 가운데 가장 거대한 규모의 계단형 피라미드 신전. 파칼 왕이 죽은 직후 왕위에 오른 칸 발람 2세를 기리기 위하여 지어졌으며 왕가의 신 '훈 예 윈킬'을 모셨다. 내부에 아름다운 부조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부조의 내용은 대략 칸 발람 2세가 선조들로부터 선물을 받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내부 부조 한가운데에 십자가처럼 생긴 문양이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지만 실제론 십자가가 아니라 마야 신화 속에 등장하는 세계수의 모습이었다.[9] 1993년에는 100여 개에 달하는 향로가 발견되기도 했다.
파일:thetempleofthefoliatedcross.jpg
나뭇잎 십자가의 신전 (Temple of the Foliated Cross)
'십자가의 신전 건물군'을 이루고 있는 신전들 중 하나. 팔렝케 유적지에서 2번째로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팔렝케의 수호신들 중 가장 어린 신이지 번개, 농업의 신인 우넨 카윌을 섬겼다. 내부로 들어가면 어린 모습으로 묘사된 칼 발람 2세의 석조 부조를 확인할 수 있다.
파일:view-of-the-palace-palenque-unesco-world-heritage-list-1987-chiapas-mexico-mayan-civilization-7th-8th-century-557378321-58b1a3233df78cdcd8d7034e.jpg
궁전 (Palace)
팔렝케를 상징하는 건물이자 궁전 건물이다. 여러 개의 작은 건물들과 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대략 400년에 걸쳐 지어졌으며 몇 백여 년에 걸쳐 팔렝케의 왕과 지도층들이 거주하는 왕궁이었다. 마야 문명권에선 보기 어려운 4층 높이의 천문대[10] 탑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내부에는 코벨 아치 형식[11]의 회랑이 아름다운 석조 조각들로 장식된 채로 줄줄이 늘어서있다. 심지어 깨끗한 물을 사용한 목욕탕이나 사우나도 발견되었다고.
파일:templeoftheskullpalenque.jpg
해골의 신전 (Temple of the Skull)
기둥의 기단 아래 장식에 새겨진 생생한 해골 모양의 장식 때문에 '해골의 신전'이라는 독특한 이름이 붙었다. 원래 이 해골 장식은 인물이 밟고 서있는 기단부에 해당하는 전체 부조의 일부였을 뿐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위의 장식들이 모조리 쓸려나가면서 이 해골 장식만 남아있다. 꼭대기의 신전은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 천장 반쪽이 아예 무너져 내렸고 내부에 안치되어 있었을 신상 역시 찾아볼 수 없다.
파일:800px-2013-12-31_Palenque_Temple_XIII_anagoria.jpg
13번 신전 (Temple XIII)
상술한 '비문의 신전' 바로 곁에 있는 신전이다. 원래대로라면 별로 유명하지 않을 신전이겠지만, 1994년에 이 곳에서 한 왕족 여성의 무덤이 도굴되지 않은 상태로 온전히 발굴되면서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다. 해당 유골은 온갖 으로 된 부장품들과 목걸이, 데스마스크 등으로 치장하고 있었으며 연대를 조사한 결과 대략 600년대 쯤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발견 당시 붉은빛 진사(辰砂)[12] 가루들로 덮여있어서 '붉은 여왕의 무덤'이라고도 불린다. 학계에서는 파칼 왕의 아내일 가능성을 높게 친다.
파일:VO7OD2XPQJF5LBWQ52GESKYTPQ.jpg
재규어의 신전 (Temple of the Jaguar)
거의 정글에 파묻혀있다시피 한 폐허에 가까운 신전이다. 팔렝케 주요 유적지에서 남쪽으로 약 200m 정도 아래로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내부에 왕이 재규어의 모습을 한 왕좌에 앉아있는 모습의 부조가 새겨져 있어서 '재규어의 신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아름다운 부조의 신전'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현재는 완전 정글 속에 있는지라 들어가기도 어렵고, 딱히 볼만한 것도 없어서 관광객들도 둘러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파일:palenque day 2 bb_8104.jpg
백작의 신전 (Temple of the Count)
우아한 팔렝케의 전통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깔끔한 신전이다. '백작의 신전'이라는 이름은 당시 이 곳에 거주하면서 팔렝케를 연구했던 마야학자 장 프레데릭 왈덱에서 따왔다. 왈덱이 스스로를 백작으로 자칭했기 때문이다. 대략 640년에서 650년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팔렝케 전체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기도 하다. 신전 아래에서는 3개의 무덤들이 온전한 채로 발견되었으며 여러 구의 시신과 함께 수많은 부장품들을 발굴해냈다.




[1]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2]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3]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4]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5] 학자들이 임의로 붙여놓은 가칭이다. 실제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6] 후술할 파칼 왕과는 다른 왕이다.[7] 우리가 흔히 아는 '파칼 왕'은 키니치 하나브 파칼 2세이다.[8] 가장 긴 비문은 코판 유적의 계단에 새겨졌다.[9] 이 세계수의 모습은 팔렝케 파칼왕 석관덮개에서도 나타나는 바로 그 십자 문양이다. 당연히 우주선 몸체가 아니다![10] 실제로 천문 관측을 했을지 여부는 불투명하다.[11] 마야인들의 전통적인 건축 방식인데, 건축물의 부피나 실제 면적에 비해서 훨씬 내부 용적이나 실제 사용한 부피가 협소하다.[12] 황화수은으로 이루어진 적색 광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