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0038a9> 페르난도 비야비센시오 Fernando Villavicencio | |||
<colbgcolor=#ffd700> 본명 | 페르난도 알시비아데스 비야비센시오 발렌시아 Fernando Alcibíades Villavicencio Valencia | ||
출생 | 1963년 10월 11일 | ||
에콰도르 침보라소주 알라우시 | |||
사망 | 2023년 8월 9일 (향년 59세) | ||
에콰도르 키토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ffd700><colcolor=#0038a9> 배우자 | 베로니카 사라우즈 | |
자녀 | 슬하 5명 | ||
소속 정당 | (1995년~2017년) (2018년~2021년) (2023년) | ||
경력 | 에콰도르 국회의원(2021년 5월 14일 ~ 2023년 5월 17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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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콰도르의 국회의원이자 2023년 에콰도르 대통령 선거 당시 대통령 후보였으나 선거 11일을 남기고 암살당했다.2. 생애
페르난도 비야비센시오는 1963년 10월 11일, 에콰도르 알라우시에서 태어났다.대학교는 콜롬비아에 있는 콜롬비아 협력 대학을 다녔으며 언론정보학을 전공하였다.
엘우니베르소 신문사에서 기자 생활을 했으며 구스타보 노보아 정권의 부패를 비판하는 기사를 작성하며 활동했었다. 또한, 주영국 에콰도르 대사관에 망명을 한 줄리언 어산지에 대한 기사도 작성한 이력이 존재한다. 그리고 신티아 비테리와 함께 에콰도르 정부가 이탈리아 회사를 통해 언론인과 정적들을 감시해왔다는 사실을 위키리크스에 제보했다.
2013년부터는 클레베르 히메네스의 보좌관으로 일을 했고 이 당시 2010년 에콰도르 위기 때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이 무력 사용을 지시했다는 혐의를 고발했다. 이후, 명예훼손으로 18개월형을 선고받게 된다. 비야비센시오는 워싱턴 D.C.로 떠나 인터아메리카인권위원회의 도움을 요청했으나 에콰도르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체포 영장이 발부된 상황이었고 공소시효가 끝날 때까지 아마존으로 도망을 간다.
2017년 에콰도르 국회의원 선거에 국회 의원으로 출마했으나 법적 혐의가 있었던 탓에 출마가 불허되었으나 고소가 취하되어 출마를 성공했다. 그러나 선거에서는 낙마하게 된다. 이후, 명예훼손 및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었고 페루로 망명을 하며 다시 고소가 취하될 때까지 페루에서 지내게 된다.
2018년 2월, 고소가 취하되었고 2021년 에콰도르 총선거에 출마해 국회의원이 된다. 2023년 5월 기예르모 라소 대통령이 의회 해산을 선언하면서 국회의원직을 내려놓게 된다.
2023년 에콰도르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였다. 부정부패, 갱단, 환경 등을 중심적으로 공약을 내세우며 최근에 많아진 갱단 활동으로 인해 에콰도르는 마약 국가가 되었다고 칭하게 된다. 6월에는 환경운동가인 안드레아 곤살레스 나데르를 런닝메이트로 지명하였다. 7월 9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10.23%의 지지율로 4위를 기록했고 7월 18일에는 13.2%의 지지율로 1위인 루이사 곤살레스 뒤를 이은 깜짝 2위를 달성하였다.
2023년 8월 9일, 키토 북부에서 정치 집회가 열렸고 그곳에서 연설을 마치고 흰 트럭에 타는 순간에 여러발에 총성 소리가 들렸으며 그중 머리에 세 발의 총알을 맞으며 암살당한다.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사망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