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뒤트만(Peter "Bonifazius" Düttmann : 1923.5.23~2001.1.9)
1. 사병 출신 조종사
1923년에 헤센주의 작은 마을 기센(Gießen)에서 태어난 그는 독일 공군에 사병으로 입대하여 최종 계급은 공군 소위로 종전을 맞았다. 2차 대전에서 주로 독소전에서 활약한 전투조종사로, 398회 출격하여 152기를 격추한 수퍼 에이스였다. 이 정도로 혁혁한 무공이라면 사실 동부전선의 서훈 기준으로 보아도 곡엽 기사철십자장이 합당했겠지만, 사병 출신이어서 훈장 수여가 뒤로 밀리다가 행정 심사가 늦어지며 기사철십자장에 그쳤다.2. 운수 좋은 파일럿
페터 뒤트만은 독일 공군에 입대한 후 프랑스 남부에서 비행 훈련을 받고 동부 예비전투비행단(Ergänzungs-Jagdgruppe Ost)에 편입되어 대기하다가 1943년 5월 7일에 JG 52에 배속된 늦깎이 파일럿이었다. Bf 109G-2를 몰게 된 그는 종전까지 JG 52에서 같은 또래의 하인츠 에발트(Heinz "Esau" Ewald : 1922~2002 / 84대 격추)와 하인츠 작센베르크 같은 뛰어난 파일럿들과 교류하며 자주 편대 비행을 했었다. 1943년 5월 21일에 첫 전과를 올린 그는 그 해가 저물 때까지 24기 격추를 기록했지만, 이 정도 격추수로는 별다른 주목을 받는 존재는 아니었다.반대로 피해를 입는 일도 여러 차례였는데, 우선 7월 11일에는 미국제 공격기 A-20 편대와 조우하여 싸우다가 방어 기관총에 피탄되어 불시착을 했었다. 한 달 후인 8월 9일에도 적기에게 피격되어 동체 착륙을 했는데, 이때는 17시간 동안 실종되었다가 걸어서 기지까지 복귀했다. 그리고 2주 후인 8월 23일에는 소련군의 대공포에 얻어맞고 만신창이가 된 전투기를 몰고 동체 착륙을 했지만 별다른 부상은 입지 않아 부대원들은 그를 가리켜 악마가 뒤를 봐주는 녀석이라며 수군거렸다.
그렇지만 이처럼 자신도 피해를 입는 와중에도 꾸준히 승리를 거둔 뒤트만은 1944년 2월 8일에는 부사관 계급장과 함께 공군 명예컵을 수상했고, 5월 7일에는 그날 하루에만 9대를 포식해서 격추수가 91대에 도달했다. 그 후, 거듭된 출격과 교전으로 인해 전투 피로가 한계에 다다르자 5월 말부터 9월까지 휴식을 취했다. 9월 중순깨 본대로 돌아온 그는 다시 적기 사냥에 나서게 되었고, 루마니아 공군의 IAR-80 전투기 2대를 한꺼번에 해치워 또다시 격추 행진에 불을 지폈다. 24일에 뒤트만은 드디어 루프트바페 에이스를 통틀어 92번째로 격추수 100대를 기록했다.
11월 13일에는 적 영공에서 벌떼처럼 달려드는 소련의 Il-2에 역습을 받아 300미터라는 낮은 고도에 탈출했지만, 낙하산이 제때에 잘 펴져서 멀쩡히 돌아왔다. 이런 생사의 고비를 수없이 넘기는 사이에 뒤트만은 어느새 소위가 되었고, 12월 23일에 JG 52 제5비행중대의 중대장이 되었다.
3. 불사신
종전 직전인 1945년 4월 26일에 페터 뒤트만은 최후의 격추를 기록했다. 그는 독특하게도 항공기 격추 152대 외에도 45년에 M4 셔먼 전차 2대를 격파한 전과도 추가되어 있다. 사병 출신인 것이 약점이 되어 격추 공인을 받지 못한 비공식 격추 기록도 42기나 되지만, 이런 격추수 놀음과는 달리 아마도 그만큼 억세게 운이 좋았던 격추왕도 달리 드물 것이다. 페터 뒤트만은 전쟁에 참가한 기간은 2년도 안되지만 그 사이에 자신도 무려 17회(일설에는 19회라고도 한다)나 불시착하거나 낙하산 탈출을 감행했다. 뒤트만은 그런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을 수십 차례나 마주하고도 중상은 단 한 번도 입지 않았던 것이다. 그에게는 곡엽 기사철십자장이 추천되어 있었으나 결국은 받지 못했다.4. 서훈
2급 철십자 훈장 (1943년 8월 6일)1급 철십자 훈장 (1943년 8월 25일)
공군 최전선 비행장
공군 최전선 황금 비행장 (1943년 8월 17일)
공군 명예컵 (1944년 2월 8일)
독일 금십자 훈장 (1944년 4월 15일)
기사철십자장 (1944년 6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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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 | 이름 | 국적 | 격추 수 | 주 기종 | 비고 | |
31위 | 하인리히 슈투름 | 독일 | 158대 | |||
32위 | 게르하르트 튀벤 | 독일 | 157대 | |||
33위 | 한스 바이스벵어 | 독일 | 152대 | |||
페터 뒤트만 | 독일 | |||||
35위 | 고르돈 골로프 | 독일 | 150대 | |||
36위 | 프리츠 텍트마이어 | 독일 | 146대 | |||
37위 | 알빈 볼프 | 독일 | 144대 | |||
38위 | 쿠르트 탄처 | 독일 | 143대 | |||
39위 | 프리드리히-카를 뮐러 | 독일 | 140대 | |||
40위 | 카를 그라츠 | 독일 | 138대 | |||
하인리히 제츠 | 독일 | |||||
루돌프 트렝켈 | 독일 | |||||
43위 | 프란츠 샬 | 독일 | 137대 | |||
발터 볼프룸 | 독일 | |||||
45위 | 호르스트-귄터 폰 파송 | 독일 | 136대 | |||
오토 푀네콜트 | 독일 | |||||
카를-하인츠 베버 | 독일 | |||||
48위 | 요아힘 뮌헤베르크 | 독일 | 135대 | |||
49위 | 한스 발트만 | 독일 | 134대 | |||
50위 | 알프레트 그리슬랍스키 | 독일 | 133대 | |||
요하네스 비제 | 독일 | |||||
▼ 52~66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