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27 23:20:49

Paul Van Dyk

폴 반 다익에서 넘어옴
파일:DJ MAG TOP 100 DJs 로고.svg
DJ MAG TOP 100 투표 1위
<rowcolor=#000>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Tiësto Paul Van Dyk Armin Van Buuren
<colbgcolor=#151D20><colcolor=#fff> {{{#!wiki style="margin:-10px; margin-top:+5px; margin-bottom:+5px"<tablealign=center><tablebgcolor=#151D20><tablebordercolor=#151D20> 파일:pvd.png 파울 반 디크
Paul van Dyk
}}}
파일:Paul-van-Dyk-2017.jpg
본명 마티아스 파울
Matthias Paul
출생 1971년 12월 16일 ([age(1971-12-16)]세)
동독 아이젠휘텐슈타트[1]
국적
[[독일|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활동 1990년 ~ 현재
장르 트랜스 | 테크노
소속 Vandit Records[2]
Armada Music
A State Of Trance
Black Hole Recordings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공식 사이트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파일:X Corp 아이콘(화이트).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활동3. 앨범
3.1. 스튜디오 앨범3.2. 리믹스 앨범3.3. 비디오 앨범
4. 여담

[clearfix]

1. 개요

독일의 트랜스 디제이, 프로듀서로 국내에서는 폴 반 다이크, 더 줄여서 그냥 반 다이크로 알려져 있지만 독일어 발음대로 부르면 파울 판 디크이다. 네덜란드어권 성씨에 자주 들어가는 'van'과 성씨인 'van Dijk'가 실존하는 네덜란드인 성씨이기도 하고 네덜란드에서 우수한 트랜스 아티스트들을 많이 배출해낸지라 네덜란드인으로 착각하기 쉬운데, 독일인이다. 흔히 가장 많이 알려진 네덜란드 트랜스 보다 한 세대 앞선 선배로 당시로선 네덜란드에서 독보적인 1인자 DJ였다.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아민 반 뷰렌, 티에스토, 페리 코스턴보다 훨씬 밀릴 정도로 매우 낮은 편이지만 국제적으로는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정통 트랜스 음악의 최고참으로 대접받으며 실제로 이들과 동시대에 트랜스 프로듀서로 활동했고 티에스토 다음으로 DJ MAG이 주최하는 DJ MAG TOP 100에서 05년과 06년 연속으로 1등을 차지했다.

더욱이 위에서 언급한 트랜스 프로듀서들이 하우스, 빅 룸EDM 씬의 장르 변화를 꾀했던 시도 때문에 당시 트랜스 음악의 거물들이 트랜스를 지키기는 커녕 몰락에 박차를 가했다는 비판을 받았었으나 지금까지도 혼자서 장르 전향을 하지 않았으며, 트랜스 음악씬이 침체되고 변화되고 있는 2010년대도 꾸준히 정통파 더치 트랜스 곡을 릴리즈했고 지금까지도 트랜스 음악을 계속 만들고 있는 아티스트다. 때문에 과거 트랜스곡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던 프로듀서들 중에서는 진정 마지막으로 남은 고참 트랜스 프로듀서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다만 이처럼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 면모 때문에 EDM씬에 흔하게 볼 수 있는 대중적인 행보를 밟고 있지 않고 있어 해외에서도 트랜스 장르 팬을 제외한 대중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편에 속한다.

대표곡으로 For An Angel, Let go, The Ocean, Nothing But You 등이 있다.

2. 활동

동독 아이젠휘텐슈타트에서 태어나고 자란 마티아스 파울은 4살 때 아버지가 집을 떠나고서 어머니와 함께 살았으며 목수가 되기 위하여 방송 엔지니어로 일하였는데 서독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당시에 유행하는 음악들을 접하고 서독에서 밀수되어 들어오는 믹스테입을 학교에서 친구들과 돌려 듣거나 복사하며 음악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어 동독과 서독이 통일을 이룩한 이후 1991년 3월 Tresor에서 처음 DJ 활동을 하고 이후 Turbin Club에서 주최한 위르겐 크라머(Juergen Kramer)의 Dubmission 파티에서 공연 기회를 얻게 되어 훌륭한 공연을 보여주었고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 스테이지 네임을 파울 판 디크 (Paul Van Dyk)로 정하였다. 이후 1994년 첫 번째 앨범인 45 RPM, 1996년 두 번째 앨범인 Seven Ways가 독일에서 크게 성공하고 영국의 DJ Magazine에서 Seven Ways가 올해의 앨범으로 선정되었다. 1992년부터 활동한 레이블 MFS를 1998년 떠나며 Vandit Records를 차린 이후 2003년 4집 앨범인 Reflections이 그래미 상을 수상하게 되는데 당시 새로 생긴 Best Dance/Electronic 앨범 부문에서 최초로 그래미 상을 수여받은 DJ 타이틀을 쥐게 된다. 2007년 5집 앨범 In Between 또한 3년간 빌보드 일렉트로닉 앨범 TOP 200에서 1위를 차지했던 앨범이며 2005년, 2006년에는 DJ Mag Top 100 Poll에서 연속 1위를 차지하는 등 여러모로 전설적인 인물이다.

분단국가에서 살았던 경험으로 인해 음악에 사회적 메시지 특히 반전 내용을 담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We Are One 같은 경우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 기념 이벤트의 주제가였다.


한국에 자주 내한오는 몇 안되는 DJ 중 한 명이기도 하다. 1999년 10월 첫 내한 공연[3] 이후 UMF Korea 2014까지 여러번 한국을 방문 하였다.

3. 앨범

3.1. 스튜디오 앨범

3.2. 리믹스 앨범

3.3. 비디오 앨범

4. 여담



[1]브란덴부르크 주 아이젠휘텐슈타트[2] 본인이 세운 레이블.[3] 영상 2:44~4:50분 경에 첫 내한 공연 실황이 등장하며, 3:19, 3:27 경에 그의 모습이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