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2-03 17:44:25

프란츠 빈더

프란츠 빈더의 감독직 및 역임 직책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둘러보기 틀 모음
클럽 감독
파일:PSV 에인트호번 로고.svg

19대
}}} ||
오스트리아의 前 축구인
파일:Franz Binder.jpg
<colbgcolor=#f0f0f0> 이름 프란츠 빈더
Franz Binder
출생 1911년 12월 1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니더외스터라이히장크트푈텐
사망 1989년 4월 24일 (향년 77세)
오스트리아
국적
[[오스트리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90cm
직업 축구 선수 (공격수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f0f0f0> 축구 선수 SK 라피트 빈 (1930-1949)
감독 SSV 얀 레겐스부르크 (1952~1954)
1. FC 뉘른베르크 (1954~1960)
PSV 에인트호번 (1960~1962)
SSV 얀 레겐스부르크 (1966~1968)
슈바르츠바이스 브레겐츠 (1969)
TSV 1860 뮌헨 (1969~1970)
FC 미슈텔바흐 (1974~1975)
국가대표 19경기 16골 (오스트리아 / 1933~1947)
9경기 10골 (독일 / 1939~1941)

1. 개요2. 생애
2.1. 어린 시절2.2. 선수 생활2.3. 감독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4. 뒷이야기5. 수상
5.1. 선수
5.1.1. 클럽5.1.2. 개인
5.2. 감독

[clearfix]

1. 개요

오스트리아의 전 축구 감독

2. 생애[1]

2.1. 어린 시절

장크트푈텐의 가난한 노동자 계층 가정에서 태어난 빈더는 9명의 형제 자매와 세 개의 방에서 생활했다.

2.2. 선수 생활

2.2.1. 클럽

고향에서 축구를 배우던 빈더는 스트룸 19 장크트푈턴(Sturm 19 St. Pölten)을 거쳐 어머니의 동의로 SK 라피트 빈에 갔다.[2] 빈더는 1936년까지 장크트푈턴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3등석 기차로 출퇴근하며 그곳에서 형제와 침대를 함께 사용했다.

빈더는 모든 선수 커리어를 라피트 빈에서 보냈고 가우리가 시절을 포함해 오스트리아 1부 리그 6회 우승, 득점왕 6회의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냈다.

2.2.2. 국가대표

1930년대에 오스트리아 1부 리그를 평정한 공격수답게 빈더는 대표팀에서 마티아스 신델라와 호흡을 맞추고 나중에는 신델라를 대체할 공격수로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빈더는 1933년 6월 11일 오스트리아가 벨기에에 4대1로 승리한 친선 경기에서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고 두 골을 기록했다.

이후에 빈더는 이탈리아, 체코슬로바키아,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라트비아 등을 상대로 득점을 했다. 특히 라트비아전은 1938년 월드컵 본선 진출을 가리는 경기였고 빈더의 골로 2대1 역전승을 거뒀기에 중요한 경기였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병합으로 빈더의 월드컵 데뷔는 이뤄지지 않았다.

오스트리아 병합으로 빈더는 독일 대표팀에서 뛰게 되었고 독일 대표팀 데뷔전 상대도 벨기에였다. 빈더는 이 경기에서도 골을 넣었다.

빈더는 보헤미아모라비아,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해트 트릭을 기록해 보헤미아모라비아와는 4대4 무승부, 이탈리아에겐 5대2 승리를 이끌었다.

오랜 공백 후 전쟁이 끝나자 빈더는 오스트리아 대표팀에 복귀했고 6경기에서 5골을 넣어 건재를 과시했다.

2.3. 감독

빈더는 SSV 얀 레겐스부르크, 1. FC 뉘른베르크, PSV 에인트호번, 슈바르츠바이스 브레겐츠, TSV 1860 뮌헨 등에서 감독 생활을 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빈더는 큰 덩치로 인해 속도가 느렸고 기술도 그저 그랬다. 하지만 빠른 방향 전환과 거리를 가리지 않는 슈팅 기술, 투지와 공중볼 경합 능력으로 40년대 유럽 축구계에서 상당한 득점 생산력을 자랑했다. 공식 경기로 한정해도 7백골을 넣었고 경기당 1.65골을 넣었다는 기록이 있다.

4. 뒷이야기

5. 수상

5.1. 선수

5.1.1. 클럽[3]

5.1.2. 개인

5.2. 감독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2] 이때 이적 대가로 장크트푈턴은 축구화 한 켤레를 받았다고 한다.[3] 빈더는 SK 라피트 빈원 클럽 플레이어이므로 팀 이름 기입은 생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