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พรรคเพื่อไทย | |
발음명 | Phak Phuea Thai |
한글명칭 | 프아타이당 |
상징색 | 남색 하얀색 빨간색 |
창당일 | 2008년 9월 20일 ([age(2008-09-20)]주년) |
이념 | 대중주의 친 탁신[1] 타협적 반군부 |
정치적 스펙트럼 | 중도[2], 빅 텐트[3] |
주소 | 1770 오아이 빌딩 뉴펫부리 도로 방카피, 후웨이 쾅 방콕 |
총재 | 패통탄 친나왓 |
총리 | |
당원 수 | 39,865명 (2020년 기준) |
청년 조직 | 태국 청소년 연구소 |
하원 의석 수 | 141석 / 500석 |
웹사이트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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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ขอคิดใหม่ ทำใหม่ เพื่อไทยทุกคน... อีกครั้ง''
모든 태국인을 위해 다시 생각하고 다시 실행합시다... 다시
-당의 슬로건-
태국의 정당.모든 태국인을 위해 다시 생각하고 다시 실행합시다... 다시
-당의 슬로건-
남매 사이인 탁신 친나왓 전 총리와 잉락 친나왓 전 총리의 지지자들이 결집한 정당으로, 흔히 '탁신계', '친 탁신', '탁신 가문'의 정당으로 알려져 있다. 당명의 태국어 원어 발음은 '팍프아타이(พรรคเพื่อไทย)'로, '팍(พรรค)'은 '당', '프아(เพื่อ)'는 '~를 위한/위하여', '타이(ไทย)'는 '태국'을 의미한다. 즉 당명을 한국어로 직역하면 태국을 위한 당(Party for the THAI)이 되나, 국내 언론에서는 태국어 발음을 그대로 옮겨 적은 '프어타이당', '프아타이당', '푸어타이당' 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2. 역사
탁신 친나왓은 유력한 기업인 출신으로 본디 정치와는 별 연관이 없었으나, 1990년대 단숨에 정계의 스타로 부상하게 되었다. 이러한 인기에 힘업어 타이애국당(이하 애국당)을 창당하고 총리에 올랐으나, 각종 논란에 시달리다가 2006년 군사 쿠데타로 실각했다. 이후 2007년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정당 판결을 받아 해산되었고, 추가로 소속 국회의원 111명 또한 5년 간 피선거권을 박탈하게 되었다. 이에 일부 인사들이 비슷한 성향의 자매 정당인 인민권력당에 입당해 활동을 재개했으나, 당연히 이를 모를 리가 없던(...)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 크리를 맞게 되었다.태국인당은 2008년 9월 20일에 창당되었다. 본디 인민권력당의 자매 정당으로 출발했으나, 12월 2일 인민권력당의 해산 후 살아남은 탁신계 인사들이 이 당에 입당하면서 탁신계 단일 정당으로 재개편되었다. 이마저도 헌법재판소의 해산 크리를 맞을 위기에 놓여 있었으나, 어째서인지(?) 이 당은 무사히 살아남았다.
창당 초기 인민권력당 탈당파 일부가 아피싯 웨차치와 총리가 이끄는 민주당 정부에 합류하는 등 혼란을 겪었으나, 군부와 결탁 의혹이 있는 민주당 정부는 탁신계인 태국인당 정부와 맞지 않았고, 결국 민주당에 맞서는 야당으로 남기로 했다.
탁신이 축출된 후인 2007년 총선이 치러졌을 때, 인민권력당은 민주당을 누르고 정권을 장악했으나,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 판결을 받는 등 혼란을 겪다가, 제1야당인 민주당이 군소 정당들과의 연정으로 정권을 잡게 되었다. 이로서 창당 초기 잠시나마 실질적인 여당이었던 태국인당은 도로 야당으로 추락하게 되었다.
이렇게 탁신 본인도 없었고, 어지간한 인물들은 죄다 날아간 탓에(...) 차기 정권 탈환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으나, 탁신의 여동생인 잉락 친나왓이 정계에 복귀하고 태국인당의 대표로 선출되면서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태국인당은 즉각 잉럭을 총리 후보로 입후보시키고, 2011년 총선에 도전해 500석 중 265석을 차지해 정권을 잡게 되었다.
잉락은 자신의 오빠가 추진하던 정책을 계승해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지만, 바꿔 말하자면 기득권과 군부의 반감을 사게 되었다. 또한 탁신이 처음 집권했을 때는 나름 청렴한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국민의 기대가 매우 압도적이었지만, 이번에는 이미 부패상이 다 드러난 뒤에 집권한 터라, 예전만큼의 압도적인 인기를 누리기는 힘들었다. 그럼에도 탁신이 경제는 챙기는 편이었는지 향수가 강할 수밖에 없었고, 무엇보다도 잉락은 태국 최초의 여성 총리였던지라, "여성"이라는 또다른 신선한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지지율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한계가 드러나게 되면서 인기를 잃기 시작했고, 이에 2015년에 예정되어 있었던 총선을 1년 앞당겨 치르는 승부수를 두게 된다. 허나 총선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서 민주당이 보이콧을 선언했고, 결국 파행으로 이어지면서 정치적인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결국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잉럭은 축출되었고, 쿠데타의 주도자인 쁘라윳 짠오차가 총리에 오르면서 도로 정권을 빼앗기게 되었다. 당연히 총선은 무효화되었고, 입법부의 권력이 전면 정지되었다. 이후 잉럭은 형을 선고받는 등 정계 복귀를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른다.
2019년 총선을 앞두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며 정권 재탈환을 노리고 있다.[4] 그간 친나왓 남매의 부패상과 실책을 감안하면 일명 국개론(...)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군사 정권에 대한 염증이 가속화되는 형국이고, 그렇다고 태국인당이 싫자니 민주당을 찍자니 민주당 또한 군부와 결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지라, 마땅한 대안이 없는 점을 노려 반사이익을 얻고 있는 것. 당연히 군부가 이 사실을 모를 리가 없고, 이를 노린 탓인지는 모르지만 이 당을 포함한 재야 세력에게 불리하게끔 선거법을 개정하는 바람에 실제로 권력을 잡을 지는 미지수.[5]
2023년 태국 총선거에서는 선거 막판까지 여론조사상 1위를 달리며 1당이 유력해보였으나, 급진적인 공약으로 젊은층의 마음을 사로잡은 행동전진당이 점점 치고 나오더니 선거 결과 기어코 1당을 차지하며 태국인당은 2당이 되었다. 다만 둘 다 태국에서 반군부 진영을 대표하는 정당이라 두 당은 협력을 표방하고 있다.
이후 행동전진당이 주도하는 피타 림짜른랏 후보의 총리 선출에 협조하였으나 그가 과반 득표 실패로 좌절되었다. 림짜른랏은 태국인당에게 주도권을 넘긴다고 밝혔다. 이에 이들은 친군부 정당들과 연정할 것으로 보인다.# 태국인당의 전방위적인 노력 속에 쁘라윳 짠오차 총리 주도의 신생 정당 루엄타이쌍찻당(UTN)이 연정에 참여하겠다고 밝힌 것. 이어 친군부 성향의 루엄타이쌍찻당(RTSC)도 연정 참여를 선언했다. 이렇게 되면 친군부 상원의원도 태국인당의 연정에 찬성 표를 던질 가능성이 커진다. 패통탄 친나왓이 탁신 전 총리의 귀국을 밝혔다. 귀국일은 하필 총리 선출일인데, 교도소로 수감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야권연대를 배신하고 군부 정당과 손을 잡은 여파로 다음 총선에서 몰락할 수 있다는 여론조사가 나왔다.#
탁신 친나왓 전 국무총리의 자신의 딸이 이끄는 연립정부와 프어타이당을 영향력 행사 방식으로 조종하는 논란으로 태국선거관리위원회가 공식적으로 조사에 착수했으며, 사실일 경우에는 헌법재판소에 의해서 위헌정당으로 강제해산되고 정치활동도 금지당할 위험이 높아진다.
태국 정당법은 정당이 외부인의 통제나 영향을 받는 것을 금지하고 있어 위반하면 정당해산 사유가 자동으로 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3. 이념과 지지 기반
이 당의 스펙트럼은 기본적으로 중도라고는 하지만, 정확히는 여기서 왼쪽에 있는지, 아니면 오른쪽에 있는지에 대한 이견이 엇갈린다. 가령 영어판 위키백과에서는 중도 ~ 중도우파라고 하지만 프랑스어판에서는 중도좌파라고 한다. 태국어판 위키백과에서는 중도~중도우파라고 기재되어있다.[6]이 당의 얼굴마담격인 탁신이 우익 성향의 기득권과 군부에 반대되는 개혁을 내세우고, 분배에 기반한 포퓰리즘성 복지 정책을 시행한 걸 보면 중도좌파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급진적인 면모를 드러낸 건 아니다.[7] 탁신은 재벌 출신이고, 기득권과 결탁하면서 급부상한 정치인이기도 하다. 다만 21세기 들어 태국 민주당이 선명한 중도우파 노선을 표방하기 때문에 그보단 좌측에 있는 태국인당은 중도우파라고 보기도 애매하다. 한편으론 2010년대 창당된 신미래당이 선명한 중도좌파 노선을 표방하기에, 이보다는 온건한 태국인당을 중도좌파라고만 보기도 어려워, 주류 언론에서도 이 당의 스펙트럼은 반군부 외엔 딱히 명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만 복지 정책 등에서 이 당이 포퓰리즘 정당이라는 사실 자체에는 별 이견이 없다. 그런 점에선 이탈리아의 오성운동과도 비슷한 면모가 있다.[8]
일단 반군부 진영을 대표하는 정당이라 주류 외에도 여러 성향의 인물들이 있다는 점에선[9] 미얀마의 민주주의민족동맹과도 유사점이 있다.
지지 기반은 북부. 이 당이 처음으로 도전한 2011년 총선 지역별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탁신과 애국당은 전반적으로 북부의 지지를 강하게 받았으며, 이는 태국인당으로도 고스란히 계승되었다. 반면 남부에서는 지지가 약한 편이다. 이런 경향은 2023년 태국 총선거에서도 이어졌다.
[1] 탁신 친나왓 전 국무총리의 집권 이후로 그를 지지하는 세력이 결집하여 현재까지 당의 주요 세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후 탁신의 여동생인 잉락 친나왓 전 국무총리가 정권을 창출하면서 재집권하였으나 연이은 군부 쿠데타로 실각하였다. 2023년 태국 총선거에서 탁신의 막내딸인 패통탄 친나왓을 당 총재 겸 총리 후보로 내세운 점을 보면, 분명한 친 탁신 정당이다.[2] 중도좌파로 보는 쪽과 중도우파로 보는 쪽이 모두 존재한다. 이념과 지지 기반 문단 참고.[3] 2000년대 이후 2023년 이전까진 태국 범민주 진영을 대표하던 제1정당이었다는 점에서, 미얀마의 민주주의민족동맹과도 유사점이 있다.[4] 물론 랑싯 대학교 여론조사는 제외. 해당 여론조사는 쁘라윳의 공민역량당을 1위로 집계하고 있으나, 조작·편향 의혹을 짙게 받고 있어서 믿지는 말라고 한다.[5] 본디 태국은 영국식 헌법을 본떠서 내각책임제를 도입했으며, 따라서 원내 과반 이상의 의석을 차지한 정당(또는 연합)의 대표가 총리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군부의 신헌법은 각 당이 총리 후보를 최대 3명까지 낼 수 있도록 해서 좋아 보이기는 한데... 진짜 총리를 선출하는 것은 하원이 아닌 상원이다. 문제는 상원의원 전원을 지명하는 대상이 다름아닌 군부라는 점. 따라서 태국인당이 원내 1당이 되어도, 프라윳이 계속 총리로 남게 되어 정권 탈환에 실패할 수도 있다.[6] 한국 정당 스펙트럼을 평가할때도 국내외가 약간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있듯(그래서 아예 나무위키의 경우 국내 주요 정당들은 스펙트럼 표시를 하지 않고 있다), 태국 정당도 국내외에서 평가하는 성향이 약간씩 다를 순 있는데 비슷한 결로 보인다.[7] 탁신 역시 태국의 (입헌)군주제를 존중한다고 발언했다.[8] 오성운동은 직접민주주의, 녹색정치 등 좌파적인 면모가 있지만, 동시에 반이민 등 우파적인 면모도 있다.[9] 이들 중 일부는 탈당해 2021년 타이 상 타이 당을 창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