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대표곡 중 하나인 Top Secret Man.
1. 개요
일본의 펑크 록, 뉴웨이브 밴드. 1970년대 일본 가요의 혁신을 이끌던 뮤지션 중 하나로 거론된다.2. 상세
1976년에 패션계에서 활동하던 일러스트레이터 나카니시 토시오(남자보컬, 기타),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던 타치바나 하지메(기타), 패션 스타일리스트였던 사토 치카(여자보컬)[1]를 중심으로 결성한 밴드다. 초창기만 해도 도쿄 내의 예술계열 종사자들과 그 지인들[2]이 모여 반쯤 취미로 하던 아마추어 밴드로 펑크 록, 글램 록 등 전형적인 밴드 구성을 띄었으나,[3] 점차 전자 악기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굳어지고 토킹 헤즈, The B-52's 훗날에 뉴웨이브 음악의 거두가 되는 뮤지션들과 일찍이 친교를 쌓아오던 넓은 발을 자랑하여 뮤지션계에선 나름 주목받는 신인으로 등극하곤 했다. 그리고 1978년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인 요닌바야시를 탈퇴하고 밴드의 잠재력을 눈여겨보며 프로듀스할 기회를 노리던 사쿠마 마사히데[4]와 사쿠마 마사히데의 친구였던 시마 타케시[5]라는 베테랑이 프로듀서 및 전자 악기 담당으로서 합류하며 라인업이 굳어지게 되었다.1976년 결성되어 본격적으로 1979년에 정식 데뷔싱글을 내고[6] 1981년 활동을 중단하기까지 짧고 굵게 일본 대중음악계를 풍미했던 밴드로, 이들이 보여준 키치스럽고 혁신적인 비주얼 및 퍼포먼스와 음악적인 감각은 당시 일본 가요에서 독보적인 경지를 보여주었다. 미국에는 토킹 헤즈가 있었다면 일본에는 플라스틱스가 있었다. 토킹 헤즈, The B-52's 등으로 대표되는 뉴웨이브 장르가 한창 미국에서 선풍을 일으키던 시기동안 히카슈, P-MODEL과 함께 [7] 발빠르게 뉴웨이브를 일본에 이식하는 선구자 역할을 자처하며 특유의 음색과 퍼포먼스로 시부야계의 초석을 닦아놓기도 했다. 직접적으로는 POLYSICS의 조상격 되는 밴드. 첫 앨범 Welcome Plastics는 일본 대중음악 걸작으로 꼽힌다.
1980년 3번째 앨범을 내고 라몬즈와 미국 투어를 마친 후 1981년 밴드는 돌연 해산을 선언하고[8] 흩어진 멤버들은 각자의 길로 전진하면서 플라스틱스는 동면의 상태에 돌입하게 되었다. 멤버들은 디자이너 및 프로듀서 본업으로 돌아갔고, 이들은 각자의 활동에서도 큰 족적을 남기기도 했다. 부부 관계가 된 나카니시와 사토 치카는 MELON이란 프로젝트 밴드로도 활동하는 등 활동 명의는 자주 바뀌어왔고 멤버들끼리 간간이 다시 모여 플라스틱스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몇차례 진행하기도 했다. 이후 사토 치카는 나카니시와의 이혼 문제, 종교적 원인으로 사실상 탈퇴하고 여성 보컬 자리는 객원 멤버들이 때우며 라이브를 진행해오기도 했다.
사쿠마 마사히데로선 첫 프로듀싱을 성공적으로 꿰찬 셈이었고, 전업 프로듀서로서도 전설을 써내려가기도 했다. 이후 2014년자로 먼저 타계했다.
남자보컬 나카니시는 음악계뿐만 아니라 디자이너로서도 명망 높았고 Tycoon To$h'라는 예명을 달고 프로듀서로도 활동했었다. 2016년자로 식도암으로 투병 사실을 밝혔고, 이듬해 별세함으로서 40주년 기념 공연은 그의 사별 공연으로 남게 되었다.#
밴드의 홍일점인 사토 치카는 작사를 주로 도맡았고 중성적인 외모로 모델 또한 이어가면서 패션 아이콘으로도 이름을 알리곤 했다. 음악에서 퇴역한 이후론 'SATO CHICA'라는 브랜드를 런칭하며 패션 디자이너에 전념하고 있다.#
시마 타케미 또한 2019년자로 별세함으로 밴드엔 타치바나만이 남게 되었다.
[1] 본명은 사토 치카코(佐藤千賀子)[2]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의 오리지널 멤버들의 면면을 보면 코러스는 패션 디자이너나 바의 오너였고 드러머는 만화 편집자였다(...). 각자 본업들이 따로 있었으니 밴드 구성이 유동적일 수밖에 없었다.[3] 드럼과 베이스 또한 멤버들이 존재했지만 모종의 사정으로 자주 바뀌어오다 밴드의 정체성이 테크노 팝으로 굳어진 이후론 공석으로 남게 되었다. 드럼과 베이스의 부재가 도리어 테크노적인 사운드를 구축시킨 셈이 되었다.[4] 원래는 실력있는 베이시스트로 유명했던 인물이지만 베이스음 자체가 시마가 다루던 리듬박스와 잘 맞지 않았고, 이미 프로 베이시스트로 자리잡은 본인과 완전 아마추어 수준이던 타 멤버들간에 연주력으로 격차가 너무 심하게 났기에 키보드로 참여했다. 플라스틱스 활동기간 내내 사쿠마 마사히데가 베이스로 참여하게 되는 시기는 거의 최후반기다.[5] 작사가 및 프로듀서로서 이름을 먼저 떨쳐오던 인물이었지만 원 포지션은 키보디스트로 사실 사쿠마를 제하면 밴드 인원들 모두 연주력이 아마추어 수준이었던지라 고심하던 사쿠마가 리듬박스의 사용을 제안하여 이 전자 악기로 드럼 포지션은 완전히 대체되었다.(후일 사쿠마가 개발에 참여했던 롤랜드의 드럼머신 TR-808을 도입했을 때엔 키보디스트로 참여했다.)[6] 특이하게도 영국에서 데뷔 싱글이 나왔다.[7] 일본에서는 이 셋을 묶어 테크노 고산케라 불린다.[8] 나카니시 토시오와 사쿠마 마사히데가 후일 인터뷰에서 너무 기형적인 구성의 밴드라 애초부터 기간 한정으로 활동하는 조건이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