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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3 14:27:13

플라잉 타이거즈

1. 개요2. 공포의 외인부대?3. 그들의 전투기와 전법4. 전과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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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잉 타이거즈의 휘장. 그림체의 도안은 월트 디즈니가 디자인해준 것이라고 한다. 다만 조종사들은 이 도안이 아기 고양이 같다며 불평했다고 한다.

1. 개요



중일전쟁 당시 일본 제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인 자원자들로 창설돼 대대 규모로 중화민국 편에서 싸운 항공부대. 중국어로는 비호대(飛虎隊)라고 부른다.

사실 미국인 조종사들이 이와 같이 자원해서 타국의 전쟁용병 내지 의용군 자격으로 뛰어든 선례는 여럿 있었는데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도 프랑스군에서 미국인 지원자들을 모아 라파예트 비행대를 결성했었다. 이들이 이후 미군으로 참전하면서 미 육군 항공대의 기초 인력이자 근간이 되기도 한다. 참고로 중일전쟁과 동시대인 영국 본토 항공전에도 8명의 미국인 조종사들이 자원해서 싸웠다.

중국의 국민정부는 나름 공군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었으나 그 성과는 미미하기 그지없었다. 서류상의 비행기 숫자와 실제 보유한 비행기 숫자가 완전히 다른 것은 기본인데다가 파일럿도 서류상에 이름만 걸고 실제로는 다른 일을 하는 부잣집 자제들이 상당수라서 실질적인 전투력이 바닥을 뚫을 정도로 낮았다.[1] 반면 일본 육군과 해군은 중국 전토를 제 집 안마당처럼 날아다니며 폭격을 가하고 큰 피해를 주고 있었다. 때문에 생각하다 못한 장제스는 다른 나라에서 파일럿과 전투기를 사올 생각을 했는데, 부인인 쑹메이링의 남동생이 마침 워싱턴 D.C.에서 로비스트로 일하고 있어 이야기가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당시 미국에서도 곧 전쟁이 벌어질 것이란 예감을 하고 있었기에, 일본을 견제할 방법으로 미국인 파일럿과 전투기를 파견하기로 합의한다. 쑹메이링의 초청을 받고 군사고문 자격으로 중국 땅을 밟은 클레어 셰놀트도 중화민국 공군의 개판 오분전 상황을 보고는 곧장 미국으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쑹메이링과 장제스의 간곡한 만류로 마음을 고쳐먹고 용병부대를 조직하여 중국 공군을 살리고 일본한테 빅엿을 먹일 구상을 하게 된다.

2. 공포의 외인부대?

당시 미국에서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반일감정이 높아지고 있었으며, 중국에 대한 동정적인 여론도 형성되고 있었기에 정부에서도 셰놀트의 구상에 찬성하고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비밀 인가로 'AVG', 즉 '미국인 지원단'이라는 이름 하에 조직이 편성되었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전쟁에 참가한 것이 아닌 만큼, 군인은 보낼 수 없었다. 생각 끝에 미군은 파일럿들에게 전역 신청을 받은 뒤, 민간인 신분으로 P-40 워호크 전투기의 제작사인 커티스사의 직원으로 '취업'시켜 중국에 '서비스'차 보낸다는 명목으로 보내게 된다. 나중에 미국인들이 눈가리고 아웅한다는 걸 알게 된 일본이 미국에 "치사하게 놀지 마라!"고 항의했다.

그런데 실제로 모인 대원들은 그야말로 '어디에서도 받아주지 않을 것 같은 망나니들'이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군도 전쟁에 대비하여 우수한 파일럿들은 놔두고 골칫덩어리들을 우선적으로 전역시켜 보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실은 애니메이션이 아니어서, 이들이 전부 '천재급 실력인데 군기만 개판인' 애니메이션 주인공급 인재들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는 전투기 조종사를 모으려고 한 거지만 실제로는 폭격기나 지상근무병, 심지어는 전투기 몰고 싶다고 끼어든 진짜 민간인까지 섞여 들어왔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서 전쟁을 조종사만 할 순 없으므로, 정비병, 행정병부터 군목까지 200명을 더 모집했으므로 전체 인원에서 진짜로 파일럿이 들어간 비율이 더 떨어진다.

이들은 기본급 600달러, 편대장 650달러, 대대장 750달러에 격추가 확인되면 대당 500달러 보너스라는 두둑한 수입에 이국의 휴양지에서 전투를 벌인다는 낭만적인 생활, 그리고 '악랄한 잽스에 고통받는 중국 사람들을 돕는 정의의 사도'라는 대의명분을 믿고 AVG로 들어왔다. 하지만 제대로 지급된 것은 봉급뿐이고 험악한 자연환경에 제대로 된 휴양시설이 없는 등 현실은 시궁창이라 그중 몇몇은 자기가 낚시에 걸렸다는 걸 알자 돈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바로 돌아갔다. 하지만 많은 대원들은 계속 남아서 싸워나갔는데 원체 기질들이 그렇다보니 정규군의 엄격한 군율 따위는 전혀 없었다. 밤마다 여자들을 데리고 놀거나, 도박판을 벌인다거나 하는 건 일상이었고, 랑군에서는 물소를 타고 시내 한복판을 돌아다니고, 샹들리에를 향해서 총을 쏜다던가 하는 서부개척시대의 카우보이 무법자들이나 할 기행도 자주 벌이곤 했다. 당연히 이런 기질은 다른 대원들도 예외는 아니라서, 정비병들도 기지에 쳐들어오는 일본군 비행기들한테 삿대질에 육두문자는 기본이요, 공구까지 마구 집어던졌다.

지휘관인 클레어 리 셰놀트 역시 괴짜 같은 인물에 상관들에게 대들고 바른 말 잘하기로 소문난 말그대로 문제아이자 이단아였다. 하지만 실은 주위 사람들이 그의 진가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것일 뿐, 셰놀트는 대단히 유능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매우 적절한 결정이었다. 왜냐하면 셰놀트가 밉상이 된 이유가 지금으로 보면 아주 당연하게도 "제공 전투기를 더 많이 찍어내야지 그런 식으로 폭격기나 찍으면서 대리만족이나 하고 있을 겁니까?"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그를 비웃던 사람들은 나중에 아주 제대로 코피를 흘리게 된다.

3. 그들의 전투기와 전법

이들이 운용하였던 전투기는 커티스의 P-40B로, 영국이 구매하려다 취소한 것을 다시 중국에 판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일본을 속이기 위한 것으로, 사실 영국이 구매를 취소하면 중국이 사가기로 미리 합의가 되어있었다. 이들이 구매해간 P-40B는 엄밀히 말하자면 P-40C와 B의 특징이 몇가지 섞여 있는 것이었으며 지상공격을 위한 폭탄 랙(Rack)은 빠져 있었다.[2]

셰놀트는 P-40과 일본군 전투기의 특성을 파악하는 한편, 자신들의 오합지졸 부하들의 실력도 고려하여 일본군 전투기에 대항하는 전술을 짰다. 즉 2인 1조로 한 목표물에 화력을 집중하는 전술로, 이는 2차 세계대전 직전에 유행하던 3인 1조로 폭격기를 요격하던 전술을 약간 개량한 것이다(3인 1조 전술은 영국이나 미군도 초창기에 이 전술을 사용하였다). 또한 셰놀트는 자신의 오합지졸 부하들이 복잡한 공중기동을 하기는 무리라고 판단하였고, 일본군 전투기의 뛰어난 선회능력에 대해 이미 들은 바 있었던 그였기에 셰놀트는 부하들에게 절대로 일본군 전투기와 선회전을 벌이지 말라고 강조하였다. 대신 셰놀트는 일본군기가 내습해오는 것을 미리 파악하고 일본군 항공기들보다 높은 고도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2인 1조로 기습공격을 가한 뒤 급강하하여 내빼는 전술을 택하였다. 이 전술은 보통 고속인 단엽기가 저속인 복엽기를 상대로 할 때 급강하로 속도를 높여 공격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저속으로 공격해 들어가면 선회력이 높은 복엽기는 바로 반전해서 공격을 피해 버리고 상대적으로 선회력이 부족한 단엽기는 "러프베리 원형진"에 말려들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군의 전투기는 거의 다 단엽전투기지만, 상대적으로 선회력이 높은데 비해 급강하에 제약이 붙고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이 전술이 먹혀들었다.

당시 일본군이 중국에 배치해 놓은 전투기들에 비하면[3] P-40은 운동성은 떨어졌어도 최대속도는 더 빨랐으며, 특히 급강하를 하면 일본군 전투기들이 P-40을 따라잡지 못했다. 사실 이 전술은 소련군이 일본군 전투기를 상대로 비슷한 전술을 택하여 나름대로 선전을 하던 것을 보고 셰놀트가 참고하여 만든 전술이다. [4]

이러한 셰놀트의 전술에 대해서 영국 공군 관계자들이 "꽁무니를 빼는 것도 전술이라니 역시 양키들답구만"하고 조소를 보내자 셰놀트는 역으로 "그러니까 당신들은 P-40을 쓰고서도 일본놈들한테 박살난 거다. 나한테는 무모한 조종사보다 살아서 돌아오는 조종사가 더 중요하며, 전쟁에서 페어플레이 따위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이 내 신조다"라고 대꾸하면서 영국 공군의 무모한 전법을 조롱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전장에서는 이기는 것이 곧 페어플레이다.' '이긴다 해도 사람이 죽고 전투기가 떨어지면 아무 소용이 없다.'라는 논리와 통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당시 영국군이나 미군은 일본군 전투기의 선회성능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고, 전쟁 초반에 일본군 전투기들에게 '비행훈련 학교에서 배운 대로' 선회전으로 대응하다가 큰 피해를 봤다. 전쟁 중, 후반 무렵부터 미군이나 영국군이 일본군 전투기를 대할 때 주로 쓴 전술은 셰놀트의 전술처럼 속도와 급강하성능을 이용하여 치고 빠지는 전술이었다.[5]

중국군 항공력의 궤멸로 공중전다운 공중전 한번 못해보던 일본군은 갑작스러운 플라잉 타이거즈의 기습에 큰 피해를 입었으며, 그 이후로도 몇번이나 플라잉 타이거즈를 소탕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매번 실패했다. 나중에는 심지어 전투기 대 전투기 싸움에서도 밀리며 중국에서의 제공권도 부분 상실하기도 한다. 사실 P-40B도 당시 기준으로 보면 썩 고성능 전투기라 할 수는 없지만, 일본군이 이 지역에 배치해두었던 전투기는 P-40B보다도 훨씬 구식 전투기인 Ki-27랜딩 기어도 고정형이고 일본군의 2~3선급 전투기였기 때문에 P-40B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한 감도 있다. 또한 폭격기의 피해도 컸는데 이는 중일전쟁 초기 일본군의 공세로 중국군의 항공세력이 그냥 궤멸해버려[6] 폭격임무에 전투기 호위를 붙힐 필요성을 전혀 못느껴서 취약한 폭격기들 단독으로 출격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플라잉 타이거즈가 딴지를 계속 걸면서 일본군은 Ki-43 하야부사를 배치하지만, 이때 즈음이면 플라잉 타이거즈의 조종사들도 매우 숙련된 상황이라서 Ki-43을 상대로도 거의 대등한 전투를 펼쳤다. 재밌는 사실은 하야부사와 조우한 플라잉 타이거즈의 조종사들은 이 신형기의 외형과 특성을 보고 제로기와 교전했다고 보고했다는 것이다.

부대 내에서는 기체 표면에 왁스를 바르면 속도가 더 난다는 루머가 있어서 모든 P-40에 왁스를 치덕치덕 발라놨는데, 실제로 왁스를 바르면 5% 정도 속도가 올라갔다고 한다. 다만 P-40은 한계 속도를 넘으면 그냥 터져버리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기수 부분, 즉 노즈아트로는 상어 이빨과 눈을 그리고 있었는데, 이 상어이빨 문양은 본래 독일군의 Bf110 전투기에서 시작한 것을 영국군도 따라하기 시작해서 사막공군 112대대도 상어 입을 그려놓았고, 이것을 보고(인도에서 발간된 책에 실려 있었다고 한다) 다시 플라잉 타이거즈 부대가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라 한다. 부대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아이템은 비행자켓 뒤에 붙이고 다닌 '블러드 칫'이라는 서류다. 헝겊 위에 장제스가 '來華助戰洋人(美國) 軍民一體救護(중국에 와서 우리의 전쟁을 도와주는 서양(미국)인들이니 군민이 함께 도와주라)라고 친필로 적은 것인데, 중국어를 못하는 대원들이 만에 하나 불시착하더라도 이 글을 보고 도움을 받아 부대로 무사복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것도 플라잉 타이거즈 이후로 유행이 되었다.[7]

사실 항공기를 지속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항공기 전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는데, 일본군에게 자신들의 진짜 전력이 노출되지 않도록 온갖 잔머리를 굴려댔다. 대표적으로 귀환하자마자 기수의 고유번호와 마킹을 변칙적으로 바꿔버린다거나, 국적마크에 미 육군항공대 마킹과 중화민국 공군 마킹을 혼용하기도 하였고, 비행장에서는 목재를 사용하여 한땀 한땀 만든 P-40처럼 생긴 가짜 비행기들을 주기해 두기도 하였다. 이런 눈물나는 기만 작전은 대성공을 거두어 일본군은 플라잉 타이거즈가 최소 100대 이상의 항공전력을 가진 대군으로 오인하였다. 그리하여…"우리 대일본제국군은 비열한 전투 행동을 지속하는 100기의 플라잉 타이거즈를 남김없이 섬멸할 것을 선언한다"는 일본군의 선전 방송을 들은 대원들은 "쟤네들이 지금 무슨 소설을 쓰냐? 우리 전투기가 2개 중대도 간신히 넘긴다는 걸 알면 기절초풍하겠구만"이라면서 배를 잡고 웃었다는 일화가 있다.

진주만 공습으로 일본과 미국이 전면전에 돌입한 이후로는 정규군에 편입되며 사라졌으나, 아직도 전설적으로 회자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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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 공군에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기념하여 주력기인 F-16, 징궈호 일부에 플라잉 타이거즈의 상징인 '상어이빨' 표시를 넣은 모습을 공개했다.

4. 전과

플라잉 타이거스는 최종적으로 18명의 파일럿이 5기 이상을 격추한 에이스 파일럿이 되었다. 플라잉 타이거스는 일본군 항공기 296기를 격추하고 1000명 이상의 파일럿을 죽였다고 주장했으나, 일본의 손실기록엔 피격추 또는 지상파괴로 인해 항공기 115기를 잃고, 전사자는 300명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1941년 12월 20일~1942년 6월 12일간 플라잉 타이거스는 171기의 일본군 항공기를 격추 또는 파손했다고 보고 했으나, 일본의 기록에 의하면 89기 손실이다. 일본측 기록과 차이가 크지만, 공중전 전과 보고가 실제보다 3~4배 이상 부풀어 오르는 것은 다른나라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특히 차이가 컸던 사례로써 1942년 4월 28일 전투에서 플라잉 타이거스는 22기 격추를 보고 했으나, 실제론 Ki-43 2기 손실이었다. 1942년11월2일 전투에서도 22기 격추를 보고 했으나, 실제로 일본에 격추당한 기체는 없었다. 시기상 미국이 어려웠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전과 보고를 느슨하게 받아준 것으로 추정된다. 최종적으로 플라잉 타이거스는 90명의 파일럿 중 22명이 전사하고 3명이 포로가 되었으며, 129기의 P-40 중 80기를 손실했다.

5. 여담



[1] 해당 견해의 출처인 라이프 2차 세계대전사에서의 서술과 달리 중국 공군이 마냥 놀기만 무능아들이었던 것도, 전과가 없던 것도 아니었다.(개전 초 일본 해군에 퍼져 있던 폭격기 무용론을 깨뜨리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은 중일전쟁 : 용, 사무라이를 꺾다 저자의 연재글을 참조.[2] 단, 일부 자료에선 야전개조를 했는지 항공폭탄으로 일본군을 공격했다는 내용이 있다.[3] 주로 일본 육군 항공대가 공습을 해 왔으므로 제로센 같은 전투기는 배치되지 않았었다.[4] 셰놀트의 전술은 2인 1조라는 점에서는 독일군의 로테 전술과 비슷하지만 로테 전술은 2대의 전투기가 느슨하게 붙어서 날며 서로 상황에 따라 협공을 하거나 엄호를 하는, 좀더 복잡한 전법이었다. 반면 셰놀트가 택한 방법은 두 대가 바싹 붙어 비행하며 적기에게 화력을 집중하여 하나의 적기라도 확실히 잡는 전술에 가까웠다.[5] 다만 2인 1조로 바싹 붙어 비행하지는 않았으며 독일의 로테 전술처럼 상황에 따라 한 대가 고고도에 머물러 엄호하거나 혹은 같이 화력을 집중하거나 하는 식으로 대형과 전술의 변화가 더 유연했다.[6] 그나마 남아있는 거라해도 구식 복엽기나 D.500 같은 전간기 단엽기 정도였는데, 이 정도는 폭격기에 달려 있는 방어기총으로도 충분히 방어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군 폭격기보다 비행성능이 떨어져 쫓아 오지도 못했다.[7] 6.25 당시에도 UN군 조종사들이 한글로 비슷한 내용이 적힌 천조각을 옷에 붙이거나 들고 다녔다.[8] 스틸웰은 셰놀트의 이러한 조치에 미국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라고 매우 불만을 품었다.[9] 그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그레고리 '패피' 보잉턴 해병대 대령으로 26기 공인 격추를 기록하고 명예 훈장을 받았다. 하지만 전후에는 자서전 때문에 구설수에 올랐다. 그외에 명예 훈장을 수여한 존 하워드 소령이 유명하다. 해군 조종사 였으나 AVG에 지원하여 6기를 격추했다. 이후 육군에 소속되어 유럽전선에서 30분동안 독일기 6기를 격추했다. 1948년에는 미공군 예비역 준장으로 진급했다.[10] 미국이 전쟁에 뛰어들면서 총력전 상황속에서 인력난에 시달렸던 미국 정부가 실전경험이 있는 위 부류를 어떻게든 강제로 활용하려고 했을 것이다. 2차대전 당시 미국도 복무거부자들에 대해선 대응이 단호했다. 물론 당시에도 대체복무/근로의 길도 다양하게 존재했는데 이것조차 거부한 자들에겐 주저없이 감옥에 쳐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