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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13 23:30:01

플리머스 형제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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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플리머스 형제운동 역사3. 한국의 형제운동4. 특징적인 성서 이해와 교리들

1. 개요

19세기 초에 영국에서 일어난 개신교의 종교운동이다.

2. 플리머스 형제운동 역사

플리머스 형제운동의 역사는 1820년대 후반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시작했으며, 그 출발점은 영국 성공회다. 이 플리머스 형제운동은 하나의 교단이라기보다 전도를 위한 연대 같은 지역, 또는 다른 지역이라도 심지어 다른 교단이라도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함께 떡과 잔을 띄는 성찬에 참여 할 수 있는 운동의 방향이 같아 함께 연대한 독립교회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이 모임을 교회라는 표현이 아닌 집회(assembly)라 말한다.

이런 독특한 단체의 성격을 지정하고 주창한 인물이 바로 형제 모임의 설립회원 가운데 한 사람인 존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 1800-1882)이다. 그는 신학자, 성서번역자, 변호사, 서품 받은 성공회 부사제였으며 세대주의(Dispensation)와 휴거(Free-Tribulation) 신학자였다. 그의 저서들은 성경 개요(Synopsis of the Books of the Bible), 존 넬슨 다비 저작집(The Collected Writings of J. N. Darby), 세대주의 강해 등이 있다.

존 넬슨 다비는 웨스트민트터 신학교와 트리니티 칼리지 대학원을 졸업하고 20세에 변호사가 되었다. 그러나 변호사직을 포기하고 영국 성공회 신학을 전공해 1825년 매기(Magee) 대주교로부터 부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러나 3년 후(1828년) "모든 교구민들과 교구 사제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영국 국왕에 대한 충성심을 서약(맹서)하라"는 매기 감독의 서신을 받고 충격에 빠졌다. 이 감독 칙령에 대해 존 넬슨 다비 부사제는 "어느 누구 어떤 것도 하나님 위에 있을 수 없다. 영국 헌법의 지배 아래 있는 국왕은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왕일 따름이다." 라고 성명을 발표하며 극단적인 개혁신앙으로 대주교에게 항명해 성공회 부사제직을 박탈당했다. 이 사건은 존 넬슨 다비가 신학자가 되려고 변호사직을 포기한 데 이어 하나님을 위한 두 번째 직업포기였다.

그는 성공회에서 파문당한 후 감리교회와 같은 다른 비국교 교회에 편입하지 않고 자신의 신학과 일반 학문적 경륜 위에 세워진 개혁신앙을 지키면서 1828년 11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안식 후 첫 날 우리가 떡을 떼려고 모였더니(사도행전 20:7)" 말씀에 따라 주일 아침에 존 벨렛트(변호사), 안토니 그루브(치과의사/신학자), 에드워드 크러닌(의사) 등과 핏츠 윌리엄 가에 있는 허친슨의 집에서 떡을 떼고 잔을 나누었는데 이것이 최초의 형제모임(Brethren Assembly) 창립모임이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출발한 영국 형제모임 최초의 공중집회가 1831년 11월 플리머스에서 개최되었다. 이때 존 넬슨 다비를 비롯해 조지 위그램(George Wigram), 벤저민 뉴튼(Benjamin Wills Newton) 등 더블린 멤버(Dublin Assembly)들이 함께 모였다. 이렇게 출발한 플리머스 형제모임(Plymouth Brethren Assembly)은 1845년에는 영국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매주 평균 1000명 이상의 형제자매들이 주일예배에 참석해 주님의 만찬과 건덕회, 그리고 친교를 나눌 정도로 성장했다. 이렇게 교권을 박탈 당한 한 사제 존 넬슨 다비를 중심으로 모인 근본적인 개혁신앙운동인 플리머스 형제 운동은 몰락하는 영국 성공회와는 대조적으로 철저하고 엄격한 문자주의 성서이해를 성문화하여 교리와 성경해석에는 어느 누구와 어떤 타협도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철두철미하게 근본적인 개혁교회 신앙노선을 고수했다. 그래서 그를 추종하는 형제들을 플리머스 형제 혹은 다비파(The Darbyist)라고 불렀다.

존 넬슨 다비가 플리머스 집회에서 복음전도를 하는 동안 인근 브리스톨 집회(Bristol Assembly)에는 고아의 아버지로 널리 알려진 조지 뮬러(George Muller)가 있었다. 그는 존 넬슨 다비와 '문자주의 성서이해 및 성만찬 참여 조건의 비타협성' 등의 교리문제로 논쟁을 하였는데, 결국 두 집회가 갈라서게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교리에 철저하고 고집스러울 정도로 융통성 없는 배타적인 교리 노선을 주장하는 다비파 형제 모임(Darbyist Brethren Assembly)을 배타적 형제모임(Exclusive Brethren Assembly)이라 부르고 성서 이해와 교리 면에서 그들보다 훨씬 더 융통성 있는 진보적인 입장을 취했던 존 뉴튼(John Newton)과 조지 뮬러(George Muller)를 따르는 형제모임을 개방적 형제모임(Open Brethren Assembly)이라 불렀다.

3. 한국의 형제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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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특징적인 성서 이해와 교리들

  1. 성서 유일(Bible only), 문자주의(lettrism) 성서이해
  2. 유아세례를 반대하고 성인세례만 인정한다.
  3. 구원 받았음을 믿는 고백이 회중 앞에서 입증된 사람만 교제 대상의 형제가 된다.
  4. 거듭난 형제들 앞에서 주님의 교회 사역에 대한 소명확인과 지도자 소양을 회중이 인정해야 장로로 선출 될 자격이 있다.
  5. 주일예배(집회)는 제 1부는 주님의 성만찬, 제 2부 건덕회에서 사람 숫자와 시간제한 없이 성서강해와 말씀증언이 진행된다.
  6. 연보(offering)는 무기명을 원칙으로 하며, 감사연보와 구제연보가 주종을 이루었고, 십일조 같은 봉헌은 용납되지 않는다.
  7. 집회에 어떤 종류의 성문화 된 규칙과 기준이 없다. 모든 것을 오직 주님의 뜻대로 되기만을 기대하기 때문에 인위적인 법칙을 정하지 않는다.
  8. 단체 명칭(교단 및 교파)은 없고 집회(assembly)란 명칭만 사용한다. 교인들 상호간의 호칭은 형제(brother)와 자매(sister)로 부른다. 이들 형제모임이 서로 호칭을 형제와 자매로 고수하는 성서적인 근거는 마태복음 23장 8절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이다. 그런데, 이들을 플리머스 형제(Plymouth Brethren)라 부르는 것은 그들에게 그리 영광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마치 안디옥에서 초대교인들에게 붙여진 비아냥거리는 호칭이었던 그리스도인(Christian)처럼 성서와 예전에 대한 그들의 유별나고 고집스런 성서해석과 교리 때문에 붙여진 별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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