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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6 11:48:54

하인츠크리스티안 슈트라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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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하인츠크리스티안 슈트라헤
Heinz-Christian Strache
파일:Heinz-Christian Strache.jpg
출생 1969년 6월 12일 ([age(1969-06-12)]세)
오스트리아
국적
[[오스트리아|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오스트리아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직업 정치인, 치과기공사
소속 팀 하인츠 슈트라헤
서명
파일:Unterschrift_von_Heinz-Christian_Strache_(2017).png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3. 정치 활동

[clearfix]

1. 개요

오스트리아의 정치인.

극우 정당인 오스트리아 자유당 소속으로, 2005년부터 당대표를 지내며 유럽의 극우·포퓰리즘의 돌풍에 힘업어 한때 자유당을 지지율 1위까지 끌어올리는 등 활약했으며, 2017년 제바스티안 쿠르츠가 이끄는 인민당 정부와 연정으로 부총리에 올랐다.

2. 생애

에서 태어났으며, 고등학교 졸업 이후 4년 간 치과기공사로서 일했다. 1990년 8개월 간의 군복무를 마친 후 빈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아버지가 체코 라이헨베르크[1] 출신이지만, 실제 체코 혈통은 아니다. 라이헨베르크가 속했던 일명 주데텐란트에는 2차 대전 이전까지 독일계 지역이었다. 즉 실향민 2세.

3. 정치 활동

청년 시절부터 정치 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본격적인 정치 활동은 1991년에 시작되었다. 당시 자유당에 입당했는데, 일전부터 슈트라헤는 자유당 및 극우 단체가 주관하는 행사에 참여하는 등 일찍이 본질을 드러냈다.

1991년 단 21세라는 나이에 자유당 빈 시당위원장이 되었는데, 이는 시·도당위원장으로서도 최연소였다.

2017년 제바스티안 쿠르츠와의 연립 정부 구성으로 부총리직과 스포츠 장관에 올랐다. 하지만 2019년 5월 이비자 섬 스캔들 (Ibiza Affairs)으로 몰락하였다. 이비자 스캔들이란 슈트라헤 부총리가 스페인 이비사 섬에서 러시아 재벌가의 조카라고 자처하는 여성과 만나서 정부뉴스사업권에 대한 뒷거래를 논의하는 장면이 담긴 몰카 동영상이 공개된 것이다. BBC코리아 기사 이 사건은 엄청난 파문을 불러왔으며, 슈트라헤는 곧바로 부총리와 자유당 당수직에서 사임하였다. 후임 당수로는 노르베르트 호퍼 교통장관이 내정되었다. 그러나 자유당 출신 장관들이 죄다 사임하며 연립 정부는 깨지고 당 지지율도 추락하고 있다. 쿠르츠는 군인, 관료 등 각 분야 전문가 출신으로 공석이 된 장관직들을 매꾸었다. 그러다가 불신임안을 맞아 해산하면서 조기 총선에까지 이르기 한다.

2019년 자유당을 탈당하고 신당(팀 하인츠 슈트라헤, #)을 창당했다.


[1] 체코명 리베레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