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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18-12-08 23:24:14

한국독립당(상해)

1. 개요

1930년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에 만들어진 정당.

2. 창당

자료에 따라 김구 중심으로 서술한 자료에서는 1930년에 김구가 한국독립당 창당을 주도했다고 적고, 그렇지 않은 다른 자료에서는 조소앙 중심으로 한국독립당이 창당됐다고 적고 있어 두 정당이 별개의 정당이 아닌가 혼동할 수 있는데, 이들 모두가 임시정부의 여당 격으로 창당된 하나의 정당을 서술하는 자료들이다. 이동녕, 김구, 조소앙, 이시영 등이 한국독립당의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3. 활동

그러나 1932년 윤봉길 의사 의거 이후 안창호의 체포로 당의 지도력과 구심력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여 항주파(조소앙), 가흥파(김구), 상해파 등이 분열하게 되고, 이 때 이후로 한국독립당은 조소앙이 주도하게 된다. 또한 1935년 민족혁명당 합당에 반대하여 김구는 따로 한국국민당을 창당하여 갈라져 나간다. 이런 사실을 고려할 때, 1930년 임시정부에서 창당한 한국독립당의 주도 인물을 조소앙으로 이해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4. 이후

1930년대 민족유일당 운동의 영향으로 1935년 5당 합당에 참여하여 민족혁명당을 창당하나, 당내 당권 경쟁과 노선 갈등으로 2개월 만에 조소앙 등이 탈당하여 한국독립당을 재건한다. 이후 1937년 지청천조선혁명당도 다시 분당해 나옴에 따라 민족혁명당은 김원봉 주도의 조선민족혁명당으로 개편된다.

민족혁명당에서 갈라져 나와 한국독립당을 창당할 당시 당원이 10명에 불과하고 재정적으로도 궁핍하여, 김구의 한국국민당의 지원에 의존해야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뚜렷한 노선과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후 3당 합당에서 당당한 민족주의 진영의 한 축으로서 자리하게 된다.

1937년부터 1939년까지 다시금 좌우를 망라한 민족유일당을 건설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지만 무산된다. 이후 민족주의 우파 진영만이라도 통합하자는 취지로, 김구의 한국국민당 및 지청천조선혁명당과 합당하여 한국독립당을 창당한다. 이 때 신당 창당을 위한 '3당 해체 선언'을 하였으므로, 형식 상으로만 말하자면 이 해에 조소앙의 한국독립당은 해체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