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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26 10:18:04

한국장기신용은행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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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없어진 은행 및 예금취급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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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한국장기신용은행 CI(1990-1999).svg
한국장기신용은행 로고[1]
<colbgcolor=#c7c7c7,#353535><colcolor=#000,#fff> 한문 명칭 韓國長期信用銀行
영문 명칭 Korea Long-Term Credit Bank
은행 코드 009
SWIFT 코드 KLDBKRSE
상장 시장 유가증권시장
종목 코드 005020

1. 개요2. 역사3. 기업 정신
3.1. 경영 이념3.2. 장은인의 다짐
4. 역대 임원
4.1. 한국개발금융(주)4.2. 한국장기신용은행
5. 자회사6. 기타7. 관련 문헌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에 있었던 장기신용은행. 정식 명칭은 한국장기신용은행으로 기업 설립·시설 확장 등에 소요되는 자금을 민간 기업에 지원하며 장단기 자금을 기업에 공급하는 업무도 수행했다. 업무 내용에서 한국산업은행과 유사한 점이 있었으나 순수한 민간 은행이라는 차이가 있었다.

존속 당시 홈페이지 도메인은 'www.klbank.co.kr'이었다.

2. 역사

파일:한국개발금융 로고(1967~1980).png
창립 초기의 로고.

1967년 4월 한국경제인연합회가 외국 금융기관 등과 합작해서 국내 최초의 민간 금융개발기구인 한국개발금융(주)을 세웠다. 1971년 한국투자금융과 1975년 한국개발리스를 각각 세웠으며, 1979년 12월 장기신용은행법이 제정되면서 1980년 6월 장기신용은행으로 전환했다.

파일:한국장기신용은행 CI(1980~1990).png
1980년부터 1990년까지 사용된 로고.

1982년 영국령 홍콩에 해외사무소를 처음 설치하고 1987년 4월 장은경제연구소를 세웠고, 이후 기업자금 지원뿐만 아니라 소비자금융 취급에도 관심을 기울여 11월 장은신용카드를 각각 설립하면서 비자카드 취급을 시작하였다. 1991년 한국투자금융이 '하나은행' 출범으로 분리되면서 당사가 지닌 한국투자증권 및 범한투자자문 주식도 인수했다. 1992년 홍콩현지법인 한국장은유한공사, 1994년 장은렌탈, 1995년 장은할부금융, 1997년 장은선물 등을 각각 세우며 사세확장했다.

주로 기업금융 위주로 운영했으나 대기업 여신이 많지 않은 데다가[2] 특수은행에 가깝다 보니 1997년 외환 위기의 여파 속에서 1998년 자회사 장은증권 퇴출, 장은선물 청산 등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해 그럭저럭 버텼지만, 1999년 1월 국민은행으로 흡수합병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장기신용은행법 자체는 2007년 말에야 폐지되었다.

국민은행으로 은행이 넘어간 이후 장기신용은행 출신 행원은 비교적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기도 했다. 장기신용은행의 성격상 시중은행보다는 접근성이 떨어지는 은행이었고 국민은행으로 뭉쳐진 다른 피합병 은행[3]보다 인지도나 전반적인 은행 규모에서도 밀렸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 국민은행 경영을 총괄하고 있는 허인 국민은행장이 이 은행 출신으로는 최초로 국민은행장 타이틀을 달았다.[4]

3. 기업 정신

3.1. 경영 이념

3.2. 장은인의 다짐

4. 역대 임원

4.1. 한국개발금융(주)

4.2. 한국장기신용은행

5. 자회사

6. 기타

7. 관련 문헌



[1] 1990~1999년 까지 쓰였다.[2] 그러나 1995년 주거래업체 덕산그룹이 부도나 봉종현 은행장이 구속돼 홍역을 치렀다.[3] 한국주택은행, 동남은행, 대동은행 등 3개 은행[4] 현직 은행장 중에서는 흔치 않은 노조위원장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