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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한민국]]의 없어진 은행 및 예금취급기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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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렬은 지로코드순. 전신 법인: 법인은 현존하나 계열이 변경된 경우. 우체국예금은 농협금융에 흡수된 후 재설립되었음. | |||
대한민국의 은행 | 대한민국의 비은행예금취급기관 | 각 기관의 코드 보기 |
<colbgcolor=#ed1c24><colcolor=#fff> 상업은행 商業銀行 | The Commercial Bank of Korea | |
법인명 | 주식회사 한국상업은행 |
株式會社 韓國商業銀行 | |
The Commercial Bank of Korea, Ltd. | |
국가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설립일 | 1899년 1월 30일(대한천일은행, [age(1899-01-30)]주년)[1] |
상호 변경일 | 1911년 2월 11일(조선상업은행) 1950년 4월 24일(한국상업은행) 1999년 1월 4일(한빛은행) 2002년 5월 20일(우리은행) |
후신 | 한빛은행 |
업종명 | 국내은행 |
상장 여부 | 상장회사 |
상장 시장 | 유가증권시장 (1956년 3월 3일 ~ 2000년 12월 16일) |
종목 코드 | 000030 |
본점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2가 111-1[2] |
은행 코드 | 022 |
SWIFT 코드 | CBKOKRSE |
웹 사이트 | (웹 아카이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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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커가는 꿈 밝은 내일 상업은행
1899년~1999년까지 존재한 시중은행. PC통신 명령어는 'go cbk'였으며, 노조는 한국노총 금융노련 소속이었다.
1978년에 찍힌 옛 한국상업은행 본점.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55 (소공동)로, 현재는 한국은행 소공별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2. 역사
1899년 고종 황제의 어명으로 민병석 등이 주축이 되어 일본 은행들에 맞서고자 대한천일은행(大韓天一銀行)을 발족했다. 지방에 지점을 확대하며 사세 확장을 했고 황실 특혜를 받으며 일본 다이이치은행[3]이 지원했다. 1905년, 경제위기 및 화폐개혁으로 휴업하였고 1906년, 명목상 황실 추천이지만 사실상 일본인 재정 고문이 추천한 상인들 중심으로 재출범하여 민족 경제 형성에 장애가 되었다. 1911년에 조선상업은행(朝鮮商業銀行)으로 행명을 변경하였고 1912년, 한성공동창고와 합병하였다. 1924년에는 조선실업은행, 1925년에는 대동은행[4], 1928년에는 삼남은행 등을 흡수합병하였다.해방 이후 남북 분단으로 이북의 지점들을 잃어버린 채 1950년, 한국상업은행이 되어 1956년 3월 3일, 한국흥업은행을 비롯한 4개의 시중은행중 하나로서 증권거래소 제1호로 주식 상장하여 발자취를 남겼다. 1972년 국내 시중은행 최초로 민영화되었고 1974년 일본 도쿄에 처음 해외지점을 세웠으며 1982년, 은행신용카드연합회 창립멤버로 참여했다. 1984년 서울투자금융을 인수한 뒤 1989년 상은리스와 상은시스템, 1991년 상은신용관리를 설립하였다. 1992년 서통투자자문을 인수한 후 1994년 상업증권 및 상업상호신용금고를 제일은행에 매각하였으며 1996년, 상은파이낸스를 세웠다.
상업은행 세검정점의 모습.
1997년 외환위기로 망하기 직전까지 가는 바람에 예금보험공사가 공적자금을 투입하였고[5] 1998년 한일은행과 대등합병하면서 창립 100주년을 맞던 1999년 통합 행명인 한빛은행을 출범하였으며 한국상업은행을 존속법인으로 했다.[6] 상은리스, 상은신용관리, 상은시스템 등 한일은행 자회사들과 업종이 겹치는 자회사들도 합병되었다.
3. 행훈
창조혁신, 신의성실, 홍익금융
4. 행가
4.1. 초기
1959년 창립 60년을 맞아 제정했으며 작사는 박철주, 작곡은 김동진이 맡았다.(1절)오랜 역사에 빛나는 천일은 언제나 새 아침의 태양 민주조국의 부강을 위해 금융계의 일선을 간다 신용과 성실은 우리의 자랑 그 이름도 장할손 상업은행 (2절)굳건한 전통에 빛나는 천일은 언제나 이 나라의 주인 배달겨레의 번영을 위해 상공계의 동맥이 된다 화목과 근면은 우리의 자랑 그 이름도 빛날손 상업은행 |
4.2. 후기
1979년 1월 15일부터 창립 80년을 맞아 제정했으며 작사는 박두진, 작곡은 박재열이 맡았다.(1절)우리들의 맡은 사명 태산보다 더 중하다 그 보람 자랑차다 힘차게 이뤄간다 바르고 성실하게 새롭고 슬기롭게 나간다 우리들은 금융계의 선구자다 (2절)하늘보다 더 높은 꿈 가슴깊이 품고 그 보람 찬란하다 끝없이 펼쳐간다 내일의 부한 나라 부한 사회 위하여 나간다 우리들은 쉬지않고 전진한다 (후렴)단결 신뢰 한마음 한뜻으로 그 의지 그 슬기 장하고도 영원하다 영광 영광 한국상업은행 |
5. 역대 은행장
1921년부터 1952년까지는 '두취'란 명칭을 썼다.{{{#!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fffff><tablebgcolor=#ffffff> | 한국상업은행 역대 은행장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대한천일은행장 | |||||||
초대 민병석 | 제2대 영친왕 | 제3대 김기영 | 제4대 이봉래 | |||||
조선상업은행장 | ||||||||
제5대 조진태 | 제6대 와다 이치로 | 제7대 박영철 | 제8대 호리 타다시 | |||||
제9대 윤호병 | 제10대 이종태 | 제11대 윤호병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한국상업은행장 | ||||
제12대 윤호병 | 제13대 안명환 | 제14대 신판국 | 제15대 이필석 | 제16대 문종건 | ||||
제17대 전신용 | 제18대 서진수 | 제19대 임석춘 | 제20대 김봉은 | 제21대 배수곤 | ||||
제22대 공덕종 | 제23대 주인기 | 제24대 박종석 | 제25대 이현기 | 제26대 김추규 | ||||
제27대 정지태 | 제28대 배찬병 | |||||||
한일은행장 · 우리은행장 |
5.1. 대한천일은행
5.2. 조선상업은행
- 이봉래 (1911~1912)
- 조진태 (1912~1924)
- 와다 이치로 (1924~1931)
- 박영철 (1931~1939)
- 호리 타다시 (1939~1945)
- 윤호병 (1945~1946/1948~1950)
- 이종태 (1946~1948)
5.3. 한국상업은행
- 윤호병 (1950~1954)
- 안명환 (1954~1957)
- 신판국 (1957~1960)
- 이필석 (1960~1961)
- 문종건 (1961~1965)
- 전신용 (1965~1966)
- 서진수 (1966~1968)
- 임석춘 (1968~1971)
- 김봉은 (1971~1975)
- 배수곤 (1975~1979)
- 공덕종 (1979~1982)
- 주인기 (1982~1983)
- 김상찬 (1983~1986)
- 박종석 (1986~1988)
- 이현기 (1988~1992)
- 김추규 (1992)
- 정지태 (1992~1998)
- 배찬병 (1998~1999)
6. 자회사
- 상업증권: 1994년 제일은행에 매각됨.
- 상은리스: 1999년 한일리스금융에 합병됨.
- 상업상호신용금고: 1994년 제일은행에 매각됨.
- 상은투자신탁운용: 1999년 한빛은행 출범 후 한빛투자신탁운용-우리투자신탁운용-우리자산운용 등으로 바뀌다가 2014년 키움투자자산운용에 합병됨.
- 상은신용관리: 현 우리신용정보.
- 상은시스템: 1999년 한일은시스템과 합병됨.
- 상은파이낸스: 1999년 폐업.
7. 관계사
- 대창흥업: 행우회 출자 인력/관리업체. 1999년 한일흥업에 합병됨.
8. 스포츠단
- 상업은행 야구단 (1962~1993)
- 상업은행 축구단 (1969~1993)
- 상업은행 여자 농구단 (1958~1998, 現 아산 우리은행 우리WON)
9. 관련 문헌
[1] 법인은 현재 우리은행이 계승하고 있다.[2] 현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55 프리즈마111[3] 현 미즈호은행[4] 1989년 설립된 대구광역시에 본점을 둔 대동은행과는 다르다.[5] 당시 서울특별시청의 주거래 은행은 조선상업은행 시절부터 한국상업은행이 맡아오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서울특별시 시내버스 회사 대부분이 한국상업은행을 주거래 은행으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외환위기 때 광명운수, 남부운수, 동해운수, 범진여객, 삼원여객, 상마운수, 신장운수, 신진운수, 신촌운수, 유진운수, 진아교통 등 도산 직전에 몰리거나 도산해 버린 버스 회사에 대출을 거하게 제공하는 바람에 엄청난 대출 손실을 떠안아 망하기 직전까지 간 것이다.[6] 비씨카드는 한일은행의 회원사 자격을 이어받아서 비씨카드 사이트에서 보유카드 조회시 우리카드는 우리카드(한일)이라고 병기된다.[7] 당시 만 5세에 불과했다. 사실상 명예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