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우리나라 땅모양이 토끼처럼 생겼다는 말에 흥분하여, 본래는 그렇게 자그맣고 나약한 토끼가 아니라 호랑이 모양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호랑이니 토끼니 하는 말은 실은 모두 근래에 등장한 말로, 예전에는 그런 말은 있지도 않았고 오히려 우리나라를 가자미땅이라는 뜻으로 접역(鰈域)이라고 불렀다.
이는 지형이 가자미처럼 생겼다는 뜻이 아니다. 고대 중국의 『이아(爾雅)』라는 책에는 남쪽 지방에 날개가 한쪽밖에 없어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날아다닌다는 비익조(比翼鳥)가 있는 것처럼, 동쪽 지방에는 눈이 한쪽으로 몰려 있어 두 마리가 함께 다닌다는 비목어(比目魚)가 있다고 했는데, 비목어를 가자미로 해석하여 접역이라고 부른 것이다.
토끼면 어떻고 가자미면 어떤가? 일본은 지형이 잠자리가 교미하는 모양이라고 해서 청령국(蜻蛉國)이라 불렀고, 이탈리아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외짝 장화 모양이지만, 그 때문에 일본이나 이탈리아를 업신여기는 사람은 없다.
정연식(2001), 『일상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 2』, 서울: 청년사, 74-75.
이는 지형이 가자미처럼 생겼다는 뜻이 아니다. 고대 중국의 『이아(爾雅)』라는 책에는 남쪽 지방에 날개가 한쪽밖에 없어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날아다닌다는 비익조(比翼鳥)가 있는 것처럼, 동쪽 지방에는 눈이 한쪽으로 몰려 있어 두 마리가 함께 다닌다는 비목어(比目魚)가 있다고 했는데, 비목어를 가자미로 해석하여 접역이라고 부른 것이다.
토끼면 어떻고 가자미면 어떤가? 일본은 지형이 잠자리가 교미하는 모양이라고 해서 청령국(蜻蛉國)이라 불렀고, 이탈리아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외짝 장화 모양이지만, 그 때문에 일본이나 이탈리아를 업신여기는 사람은 없다.
정연식(2001), 『일상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 2』, 서울: 청년사, 74-75.
1. 개요
한반도의 모양이 호랑이를 닮았는지 토끼를 닮았는지에 대한 논란이다. 얼핏 보기엔 의미없는 키배같기는 하지만, 한 세기 전부터 있었던 정치적 논란이다.2. 배경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우리 민족이 한반도를 토끼나 호랑이에 비유했다고 전해지는 기록은 없다. 애초에 한반도 전국을 한 장의 지도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측량 기법은 임진왜란 이후에나 발달했다. 한편 조선 후기에 쓰인 《택리지》에 따르면 대체로 옛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노인의 형상으로 비유했다.大抵古人, 謂我國, 爲老人形, 而坐亥向巳, 向西開面, 有拱揖中國之狀, 故自昔親呢於中國
대저 옛 사람들은 우리 나라를 노인의 형상이라고 일컬었다. 해좌사향하며[1], 서쪽으로 얼굴을 맞대고 중국에 읍하는 형상이므로 옛부터 중국과 친하게 지냈다고도 한다.
이중환, 《택리지》#
4군 6진으로 개척한 부분 등을 빼고 보면 긴 도포를 입고 손을 가슴 앞에 모은 사람처럼도 보인다. 비슷한 맥락으로 신라 말기에는 국토를 배의 형상으로 비유한 기록이 있다.대저 옛 사람들은 우리 나라를 노인의 형상이라고 일컬었다. 해좌사향하며[1], 서쪽으로 얼굴을 맞대고 중국에 읍하는 형상이므로 옛부터 중국과 친하게 지냈다고도 한다.
이중환, 《택리지》#
근대 일본의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郎, 1856~1935)는 1900년부터 1902년에 걸쳐 한반도를 답사하고 저술을 펴냈는데, 여기에서 한반도의 형상을 토끼 모양으로 비유했다.
As is well known, the outline of Italy is compared to that of a boot. That of Korea may be taken to represent a rabbit in a standing position with Chyöl-la Do for the hind legs, Chhyung-chhyöng Do for the anterior extremities, Hoang-hăi Do and Phyöng-an Do for the head, and Ham-gyöng Do for the disproportionally large ear; Kang-uön Do and Kyöng-syang Do will then correspond to the shoulders and back.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이탈리아의 형상은 장화와 비교된다. 한국의 형상은 서 있는 토끼를 닮았다고 볼 수 있다. 전라도는 뒷다리, 충청도는 앞다리, 황해도와 평안도는 머리, 함경도는 지나치게 큰 귀에 해당한다. 강원도와 경상도는 어깨와 등에 해당할 것이다.
Goto Bunjiro, “An Orographic Sketch of Korea”, Journal of the College of Science, Imperial University, Tokyo Vol. ⅩⅨ(1903)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이탈리아의 형상은 장화와 비교된다. 한국의 형상은 서 있는 토끼를 닮았다고 볼 수 있다. 전라도는 뒷다리, 충청도는 앞다리, 황해도와 평안도는 머리, 함경도는 지나치게 큰 귀에 해당한다. 강원도와 경상도는 어깨와 등에 해당할 것이다.
Goto Bunjiro, “An Orographic Sketch of Korea”, Journal of the College of Science, Imperial University, Tokyo Vol. ⅩⅨ(1903)
《소년》 창간호 67p |
이에 맞서 민족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해 한반도를 호랑이로 형상화하려는 시도가 일어났다. 이러한 설을 처음 제기한 사람 역시 최남선이었다. 국토의 모양을 일정한 형상으로 인식하는 것은 국민 국가 관념이 성장하던 당시의 추세였다. 그는 일본 유학 시절에 와세다대학에서 지리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이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주장을 펼쳤다. 최남선 이후 한국인들이 국토의 표상으로 호랑이를 택한 것은 가장 용맹한 기질을 가진 동물 중 하나로 여겨지고, 두려움과 함께 산군, 산신령 등으로 경외 받았다는 점 등이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한반도 지도를 호랑이에 빗댄 '근역강산맹호기상도'(槿域江山猛虎氣象圖) |
'근역강산맹호기상도'는 무궁화 피는 땅의 호랑이 같은 기상을 나타낸 그림이란 뜻으로 한반도를 호랑이에 빗댄 그림 중 가장 유명한 그림이다. 이 그림에 혐일 성향 네티즌들이 일본이 생긴 이유라면서 호랑이가 일본 열도의 모양으로 똥을 싸는 그림으로 합성해놓은 것도 있으며 토끼똥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 그림은 교과서를 만들 때 전 서울교육대학교 교수인 안천이 저서 《일월오악도》에서 "국사 교과서 편찬위원으로 활동하던 시절, 민족 기상을 표현하기 위해 맹호기상도를 일부러 삽입하였다."고 얘기했다. 이후 한반도의 형상은 호랑이라는 주장이 보편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3. 논란
최근에는 반일감정이 좀 사그라들면서 고토 분지로의 주장에 동조하는 측에서 '호랑이를 닮았다고 하는 것은 억지에 가깝고 그냥 토끼를 닮았다'고 얘기하는 의견도 등장하는데, 이에 대해 무엇을 닮았네, 아니네로 소모적인 논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사실 위의 배경을 고려하면 이러한 논쟁이 일어나는 것 자체가 의아한 부분이긴 하다. 한반도의 국토가 실제로 무엇을 닮았냐, 닮지 않았냐 이전의 문제며 단순히 역사적 사실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에 굳이 이를 두고 논쟁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근역강산 맹호기상도(槿域江山 猛虎氣象圖)와 실제 호랑이와의 비교 |
2024년에 디스커버리채널 인스타그램 계정이 드론에 찍힌 한반도 호랑이 자세를 취한 호랑이이 참고할만 하다. 이 사진을 보면 맹호기상도보다 더욱 한반도 모양에 가깝다.
다만 몸이 매우 유연한 고양잇과 동물 특성상, 이 문서에 첨부된 위 이미지처럼 유연한 자세는 크게 힘든 건 아니다. 호랑이의 생태 다큐멘터리 등을 보면 격하게 사냥을 하거나, 나무를 타거나, 기지개를 키는 등 다양한 상황에서 이런 자세를 취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저 그림과 한반도 형상의 호랑이 그림과 비교했을 때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데 실제 호랑이는 두 발로 서 있고 한반도 형상의 호랑이는 한 발로 서 있다. 황해도를 표현하기 위해 호랑이의 오른쪽 뒷다리를 상당히 부자연스러운 각도로 올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끔 두 발로 서는 동물들은 많이 있으나 조류를 제외하면 동물이 한 발로만 서 있는 경우는 없다.
물론, 한반도의 형상이 일반적인 호랑이의 모습의 이미지는 아니기에 쉽게 연상하기가 어렵긴 해도 백두대간으로 대표되는 한반도의 동고서저 지형을 호랑이의 등줄기에서 뻗어내려오는 줄무늬와 비슷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기에 어색하지는 않아보인다.
사실 애초에 이런 식으로 엄격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한반도의 실루엣처럼 울퉁불퉁하게 살찐 토끼도 없는 건 마찬가지니까 이런 디테일한 주장은 그냥 트집이나 잡는 것에 가깝다.
외에도 무용수에 빗댄 그림이 일제 강점기에도 있었으며, 태극기를 든 소녀나 장구 치는 여자 무용수 그림은 최근에 등장하기도 했다. # 심지어 코끼리나 해마에 비유한 것도 있는데 직접 보면 생각보다 그럴 듯하다.
4. 결론
현대에 들어서는 토끼를 닮았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7080 시절처럼 무턱대고 화낼 이유는 없다. 일제가 부정적인 의도로 다룬건 사실이지만, 현재로선 땅 모양을 어떤 동물로 비유하든 딱히 아무런 의미도, 문제도 없는 사소한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토끼 자체는 약한 동물이긴 하지만 동시에 나름대로 한국에서도 꾀많고 지혜로운 동물로도 여겨지는 만큼 마냥 나쁜 상징이 아니기도 하다. 문제는 일제강점기 침략 시 쓰인 선전전 아이템을 한국인 입장에서 굳이 선해할 필요 없다는 것이다. 상술하였듯 일본 극우들은 아직도 인터넷에서 토끼 관련으로 한국인들 어그로를 긁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소위 일뽕이라고 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자국비하 용도로 사용하는 사례도 자주 있다.5. 해외의 유사한 사례
참고로 이런 식으로 나라의 영토를 어떤 동물이나 사물, 혹은 인물에 빗대어 그리는 지도 의인화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래 전부터 내려오던 것이다.# 일본에서도 러일전쟁을 표현한 의인화 지도를 만든 적이 있다.# 중국과 이탈리아의 국토 형상을 각각 닭과 장화로 비유한 것도 유명하다.또 일본인들 역시 한국과 비슷하게 일본 열도의 형상을 용에 비유하곤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가 있고, 일본침몰 원작 소설의 마지막 챕터 제목은 "제7장: 용의 죽음"이다. 소설 본문에서도 본문에서도 "용은 허리가 끊긴 채 죽어가고 있었다"라고 언급된다. 그 외에도 구글에 일본열도 용(日本列島 龍)을 검색하면 국토 모양을 용 모양에 빗대는 사례가 꽤 존재한다. # 다만 일본열도는 4개의 큰 섬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몸이 4개로 토막난 용이 될 수밖에 없다 보니 이것도 억지 비유로 보는 시각도 있다.
출처
유럽을 기준으로 본다면 네덜란드 17주, 저지대 국가 지역을 호전적이고 용맹한 사자로 비유한 '레오 벨기쿠스(Leo Belgicus)'라는 지도들도 주로 17세기 즈음에 유행했었다. 완전히 같진 않지만 어찌보면 한반도를 호랑이에 빗대어 표현한 것과 가장 비슷해 보이는 사례다.
영국은 웨일스 지역이 마치 돼지 머리를 옆에서 본 것과 비슷하게 생겼기에, 그레이트브리튼섬이 돼지를 탄 사람의 형상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 #
또한 과거부터 세계 각지에서 달에 진 그림자를 보고 절구질을 하는 토끼, 여인, 게, 사자, 두꺼비, 물을 옮기는 여자 등 다양한 형상을 상상했는데 이 또한 각국의 인식에 따라 닮은 것으로 느껴지는 형상에 비유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현대의 오덕계에서도 지도 모에화라는 이름으로 계승되고 있다.#, 대한민국 지도 모에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