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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적 카탈루냐 Revolutionary Catalonia Catalunya revolucionària | |||
국기 | 국장 | ||
1936년 7월 21일 ~ 1939년 2월 10월 | |||
수도 | 바르셀로나 | ||
정치체제 | 생디칼리슴 | ||
언어 | 카탈루냐어, 스페인어 | ||
역사 | • 건국: 1936년 7월 21일 • 멸망: 1939년 2월 10일 |
지도 | |
1. 개요
스페인 내전 기간 동안 아나키스트, 공산주의자, 사회주의 노동조합, 민병대에 의해 통제된 공화국.카탈루냐 총독이 명목상으로는 권력을 쥐고 있었지만, 당시 대표적인 노동조합이었던 전국 노동 연맹이 포함한 대부분의 경제와 군사력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었다.
2. 모로코에서의 전쟁과 전국 노동 연맹의 결성
20세기 초, 극심한 산업화로 불만이 상승했으며 임금삭감, 모로코에서의 전쟁으로 스페인에서는 유독 사회주의와 아나키즘의 인기가 상승했다.그 후, 모로코에서의 전쟁은 절정에 달하면서 전국 노동 연맹(CNT)이 결성되어 총파업을 시도했으나 정부군이 진압했다.
전국 노동 연맹이 불법화되자 일부 급진파 회원들은 다른 회원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스페인 제2공화국 기간 동안 무정부주의자들은 1933년 반란과 1934년 아스투리아스 광부들의 파업과 같은 봉기를 계속 이끌었다.
3. 스페인 내전과 대규모 공세
1936년 7월 스페인 내전이 일어나자 아나키스트와 민병대가 카탈루냐와 아라곤 동부의 국민파 군대를 물리쳤다.전화 교환소나 우체국 같은 많은 전략 건물들을 장악했고, 카탈루냐 자치정부를 전복시키지 않기로 결정했다.
1938년 3월 7일, 국민파는 아라곤에서 대규모 공세를 시작했다.
공화파를 격파하여 4월 15일까지 지중해 연안에 도달해서 카탈루냐와 나머지 공화파 지역을 단절시켰다.
이후, 카탈루냐는 소련 요원들에 의해 지배되었고 정치적 억압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카탈루냐 전쟁 산업, 항구, 법정을 국유화함으로써 카탈루냐 자치권을 잠식한 법령은 카탈루냐 사회 계층들 사이에서 광범위한 불만을 야기했다.
4. 자치 정부의 분열과 멸망
자치 정부의 대통령 사임으로 바르셀로나에 본부를 둔 자치 정부와 중앙 정부 사이의 관계는 악화되었다.공화주의자, 카탈루냐인, 바스크인, 사회주의자들 사이에 중앙정부에 대한 적대감이 퍼져 있었다.
공산주의자들이 군과 경찰을 장악하는데 점점 더 의존하게 되면서, 반대하던 국민들이 체포되거나 총살당하면서 전선에서의 사기는 저하되었다.
1938년 7월에서 11월 사이에 공화국군은 분열된 영토를 카탈루냐와 다시 연결하기 위해 가장 큰 공세를 시작했다.
그러나 물자부족으로 공화국군은 전투에서 대패함과 동시에 사실상 궤멸되었고, 국민군은 카탈루냐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카탈루냐는 국민파에 의해 빠르게 정복되었으며, 결국 바르셀로나는 1월 26일에 함락되었다.
그 후 국민파에 의한 약탈과 학살이 이어졌으며 패배한 카탈루냐 군대를 포함한 40만 명에서 50만 명 사이의 난민들이 국경을 넘어 프랑스로 들어왔다.
이후 프랑코 체제가 들어서면서 카탈루냐어의 공식적 지위가 없어지고 카탈루냐의 신문들은 모두 징발되었고 금서들은 불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