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창씨명 | 노베야마 타츠슈(延山龍珠) |
이명 | 현상유(玄相裕) |
자 | 관여(寬汝) |
본관 | 연주 현씨[2] |
출생 | 1906년 6월 2일[3] |
경상북도 하양군 중림면 죽림동 (현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상림리 중림마을) | |
사망 | 1980년 9월 16일[4]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3묘역-217호 |
상훈 | 건국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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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004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독립유공자 현영조는 그의 첫째 남동생이다.
2. 생애
1906년 6월 2일 경상북도 하양군 중림면 죽림동(현 경산시 진량읍 상림리 중림마을)에서 아버지 현기근(玄基根)과 어머니 경주 최씨 사이의 4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그는 일제강점기 말 경상북도 경산군 진량면 상림리에서 상림교회(上林敎會) 장로로 활동하던 중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1943년 6월 18일 밀보를 받은 일본 경찰들이 당시 봉회교회 장로 김종철(金鍾徹)의 집을 수색했는데, 이때 봉회교회·상림교회·평사교회 등에서 시무하던 교역자 강만조 장로가 출애굽기 20장을 본문으로 하여 '민족주의자 모세를 본받자'라는 제목으로 "2차대전에서 미국이 승리할 것이며 머지않아 한국도 독립이 된다"는 요지로 쓴 설교 메모가 발견되었다.
일본 경찰들은 이를 빌미로 현용주를 비롯한 세 교회의 장로·집사 등 14명을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모두 체포하였다. 그는 미결수로 1년 4개월간 옥고를 치르다가 1944년 11월 11일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에 대해 혐의없음 판결을 받고서야 출옥할 수 있었다.#
이후 고향 경산군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80년 9월 16일 별세하였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4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그리고 2005년 11월 11일에 본래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사리리에 안장되어 있던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3묘역에 이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