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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23:26:46

오지에 르 다노아

홀거 단스케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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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헬싱외르에 위치한 크론보르 성 지하에 있는 오지에 르 다노아의 동상.

1. 개요2. 그의 연대기
2.1. 축복?2.2. 유년기2.3. 불운2.4. 첫 출진2.5. 음모와 전쟁의 종결2.6. 왕위 포기2.7. 샤로트와 보르도 전쟁2.8. 정복전쟁
3. 그 이후?4. 사용한 물품5. 대중 문화에서6. 관련 문서7. 둘러보기

1. 개요

Ogier le Danois

유럽 전설에 나오는 기사. 샤를마뉴의 12기사 중 한 명으로, 이름의 '르 다노아'란 덴마크인이라는 뜻이다.

11세기 롤랑의 노래에서 샤를마뉴와 함께 싸우며 바이에른의 군단을 이끄는 것으로 처음 등장하지만 오늘날에 알려진 이야기는 1220년 '기사 오지에(La Chevalerie Ogier)'라는 문헌에 처음 등장한다. 역사에서 카를로마누스 1세의 밑에서 일했다가 그가 죽은 뒤 랑고바르드족의 왕 데시데리우스에게 건너가 샤를마뉴와 맞선 프랑크인 기사 '아우트카리우스 프랑쿠스'라는 인물이 모티브라고 한다. 다만 실제 역사를 보면 게오프로이 왕의 행보에 가깝다. 굳이 덴마크인으로 등장한 이유는 샤를마뉴 치세 말기인 800년대에 덴마크와 분쟁을 일으킨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 역사적 사건이 770년대의 랑고바르드 정복과 혼합되어 같은 시대의 사건으로 등장한 것. 볼드윈이 죽은 후 실제 역사처럼 데시데리우스를 찾아가는 판본도 존재한다.

설정상 고향인 덴마크에서는 샤를마뉴의 12기사 이야기들이 '대제 카를의 사가'로 번역되면서 처음 알려졌다. 설정상 덴마크인이지만 정작 북유럽 신화에는 이런 사람에 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오히려 16세기에 샤를마뉴 전설이 북유럽에 번역되어 수입되면서 비로소 "홀거 단스케(Holger Danske)"로 현지화되었다.[1] 그리고 9세기의 덴마크 국왕 구드프레드#[2]의 아들이라는 후대의 설정이 붙으면서 덴마크의 민족주의를 상징하는 영웅이 된다.

2. 그의 연대기

태어날 때부터 요정으로부터 6가지 축복을 받았지만, 일대기가 12용사 중에서도 너무 살벌하고 암울하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은 여러 이야기로 나누어 전해지기에 정확한 내용을 찾기 힘들다.

2.1. 축복?

마인츠 백작인 동 드 마양스 혹은 메이엔스의 둘린의 아들인 게오프로이 왕의 아들로 태어났다. 오지에가 태어나자 침례를 받기 전에 매혹적인 여섯 여인이 아기의 방에 홀연히 나타나 아기를 에워쌌다. 그리고 여인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오지에에게 말했다 .

1. 너를 우리 시대의 가장 용감한 무사로 만들어주겠다.
2. 네가 용기를 발휘할 기회를 많이 주겠다.
3. 언니들은 아기에게 위험한 호의를 베풀었지. 나는 이 아기가 결코 정복당하지 않게 할 거야.
4. 너에게 사람들을 기쁘게 만드는 재능을 주겠다.
5. 지금까지의 선물이 실현되도록 너에게 사랑으로 보답할 수 있는 분별력을 주겠다.
6. 예쁘기도 해라. 너를 내 아이로 삼겠다. 그리고 네가 나에게 올 때까지 결코 죽지 않게 하겠어.

2.2. 유년기

그 후 게오프로이 왕은 오지에가 완벽한 전사의 기준에 도달하고 영웅이 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기예를 배울 수 있도록 소홀함이 없게 조치했다. 오지에가 채 16살도 되지 않았을 때 모든 군주들 위에 군림하는 세력을 확립한 샤를마뉴는 게오프로이 왕이 자신에게 당연히 해야 할 충성의 맹세를 하지 않았음을 상기했고, 그는 덴마크왕에게 충성의 맹세를 요구하기 위해 사신을 보냈다. 그러나 게오프로이 왕은 오만한 말투로 충성을 거절했고 샤를마뉴는 강제로 자신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다.

게오프로이는 샤를마뉴의 무력에 헛되이 저항하다가 실패해 부득이 충성의 맹세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성실함에 대한 맹세로써 맏아들인 오지에를 샤를마뉴에게 볼모로 넘겨주어 그를 황제의 궁전에서 자라게 해야 했다. 오지에는 아버지의 친구이자 자기를 친아들처럼 대해 주는 바이에른(게르마니아)의 나모의 손에 맡겨졌다. 오지에는 매일 점점 더 호감을 주는 잘 생긴 젊은이로 성장했고 생김새, 힘, 일처리 솜씨에 있어서 모든 젊은 귀족들을 능가했지만 자신이 볼모로 잡혀 있다는 사실과 아버지가 자기를 잊고 있는 것만 같은 생각에 남 모르게 반감을 갖기도 했다.

2.3. 불운

사실 그 무렵 덴마크 왕은 새로운 사랑에 빠져 있었다. 오지에의 어머니가 사망하자 새 여자와 결혼하여 구욘이라는 아들을 얻었던 것이다. 남편에 대해 절대권력을 휘두르던 새 부인은 남편이 오지에를 다시 보게 된다면 구욘보다 오지에를 더 사랑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남편을 교묘하게 설득하여 샤를마뉴에 대한 남편의 충성의 맹세를 연기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충성의 맹세를 한 지 4년이 지나고 있었다.

샤를마뉴는 그가 충성의 맹세를 이행하지 않는 것에 화가 나서 자신이 다시 보낸 소환장에 덴마크 왕이 응답을 할 때까지 더 철저히 오지에를 감시했다. 그러나 게오프로이의 답변은 모욕적이고 반항적이었고, 샤를마뉴의 분노는 극에 이르렀다.
분노한 샤를마뉴는 볼모인 오지에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으나 오지에를 친아들처럼 아끼던 나모의 간청을 받아들여 오지에를 살려주기로 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지에가 샤를마뉴에게 신하로서의 충성을 맹세하고 샤를마뉴의 허락 없이는 궁전을 떠나지 않겠다고 서약하라는 조건이 붙은 것이었다. 오지에는 이 조건을 받아들여 겨우 지금까지 누린 모든 자유를 유지할 수 있었다.

2.4. 첫 출진

한편 이슬람 군이 로마 근처에 상륙하여 자니쿨룸 산을 점령하고 티메르강을 지나 로마를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3] 이에 샤를마뉴는 군대를 이끌고 진군을 하였고 선봉은 나모에게 맏겼다. 오지에는 기사의 자격을 가지지 않았기에 후방에 머물렀다.

전투는 난전으로 진행되었고 오지에는 기사 알로리가 말머리를 돌려 도망가는 것을 목격했다. 오지에는 젊은이들에게 알로리를 지적한 후 곤봉을 집어들고 말을 탄 그에게 타격을 가했다.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그를 무장해제 시킨 뒤 그의 갑옷을 벗겨 입은 다음, 알로리의 말에 올라타 적의 첫 대열을 향해 돌진했다.

그는 나모와 합세하여 이교도를 몰아내면서 왕기를 들고 흩어진 적의 대열 깊숙이 전진했다. 나모는 알로리의 옷을 입은 오지에를 자신이 그리 높이 평가하지 않던 알로리라고 생각하고 그의 힘과 용기에 깜짝 놀랐다. 오지에의 젊은 동료들도 오지에처럼 죽은 자들의 시체에서 갑옷을 벗겨 입었다. 그리고 오지에를 따라 사라센 병사들을 무찌르며 나아가자 당황한 사라센 병사들이 주력부대 쪽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한편 샤를마뉴가 있는 본진은 선봉대 보다 훨씬 무시무시한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야말로 혼란의 극치였으며, 샤를마뉴는 사라센군 사령관 중 한 명인 코루수블을 쓰러뜨리고 주와이외즈를 빼어들었다. 그때 두 명의 사라센 전사가 샤를마뉴를 덮쳐 한 명은 샤를마뉴의 말을 살해하고 다른 한 명은 황제를 모래 위에 쓰러뜨렸다. 사라센 병사들은 황제의 투구에 그려진 독수리 문양을 보고 그의 신분을 알아채고는 치명타를 가하기 위해 급히 말에서 내렸다. 황제의 목숨이 이렇게 위험에 처한 적은 결코 한번도 없었다. 이때 다행히 오지에가 와서 두 명의 사라센 전사를 쓰러트리고 샤를마뉴를 구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샤를마뉴는 평소의 알로리라고 생각하고 감사를 표하였다. 오지에는 이에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으며 그는 황제를 구하러 달려온 많은 기사들에게 황제를 맡기고 자신은 왕기를 높이 들고서 적이 밀집한 대열 속으로 되돌아갔다.

전투가 끝난 후, 대승정 튀르팽은 피묻은 자신의 검 알마스를 치우고 승리를 기념하는 성가를 불렀다. 오지에가 샤를마뉴의 발 밑에 무릎을 꿇자 샤를마뉴는 그를 알로리라고 부르며 포옹을 했고, 튀르팽은 높은 제단위에서 그들을 축복했다. 그때 롤랑이 오지에의 투구를 벗게 하였다. 지금까지 알로리라고 생각한 이가 오지에였다는 사실에 샤를마뉴와 여러 기사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샤를마뉴는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보답으로 자신의 검 주와이외즈를 뽑아 무릎을 꿇고 있는 오지에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하였다. 이로써 오지에는 샤를마뉴의 12기사 중 한 명이 되었다.

2.5. 음모와 전쟁의 종결

그날 저녁 기사들은 축제를 즐기며 보냈다. 튀르팽은 젊은 기사들을 보호해 달라는 기도와 함께 그들을 위해 준비된 흰 갑옷에 축복을 내렸다. 나모 공작는 그들에게 황금빛 박차를 나누어 주었고 찰스는 그들의 칼에 띠를 매주었다. 평소에 오지에를 야만인 노예취급로 취급하던 샤로트는 이에 크게 질투심을 느꼈다.[4]

이후 이슬람 군의 카라후에가 결투로 승부를 결착내자고 제안하였고, 오지에와 샤로트는 이 결투에 응하게 된다. 그러나 샤로트는 터무니 없는 일을 계획하여, 몰래 잔인한 기사 몇 명을 모아 결투 도중 카라후에와 오지에를 습격했다. 그러나 이는 실패로 돌아가, 오지에와 카라후에는 서로 협동하여서 암살자들을 처단하였다. 카라후에는 오지에에게 감사를 표하며 결투 도중 방해받았다는 이유로 물러간다.

당시 이슬람 군에는 덴마크의 게오프로이 왕을 피하여 이슬람 세력으로 망명한 단네몬트가 전투를 지휘하고 있었고, 그는 뛰어난 전술로 오지에를 생포하기에 이른다. 카라후에와 사돈은 단네몬트에게 오지에의 석방을 요구하였으나 단네몬트는 이에 반대하였다. 이에 이슬람군의 총사령관은 이들의 의견을 타협하여 허가없이 사라센군의 진지를 떠나지 않는 한 오지에가 진지 안에서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카라후에는 단네몬트의 비열함과 그런 부분적인 양보가 만족스럽지 않았고, 이에 그는 다음 날 아침 도시를 떠나 샤를마뉴 진영에 찾아가 스스로 포로가 되었다. 나모와 여러 귀족들은 자진하여 찾아온 카라후에를 정중하게 대우해주었다. 샤로트는 이때 자신이 저지른 일이 폭로될까 봐 두려움에 떨었다.

한편 이슬람군은 불화로 인해 분열상태에 빠져들었다. 카라후에의 군대는 자신들의 왕이 적군의 진지에 감금되어 있다는 이유와 튀르팽의 이간책에 의하여 총사령관에게 크게 반대를 표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들은 전투에서 이탈해 동맹국에게 무력으로 저항하겠다는 위협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후 이슬람 군이 샤를마뉴의 집중공세에 의해 연전연패 당하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휴전을 제안하였고, 이틀 뒤 휴전이 성립되어 오지에는 카라후에과 교환되었고 두 친구는 서로 얼싸안고 평생 형제로 지내자고 맹세했다.

2.6. 왕위 포기

샤를마뉴는 게오프로이를 잊지 않고 있었고, 덴마크는 외척의 침입에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오지에는 15년 동안 타지에 감금되어 있는데도 아들에 대해 전혀 관심도 보이지 않고 연락도 취하지 않는 아버지의 매정함을 깊이 통감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오지에는 아버지를 돕고 싶었기에 샤를마뉴에게 간청을 하였고, 이에 샤를마뉴는 오지에에게 천 명의 병사를 주었다. 하지만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오지에와 함께 싸우기 위해 자원 입대했다.

그는 덴마크로 신속하게 달려가 침략자들을 격퇴하였지만, 이 무렵 게오프로이 왕은 세상을 떠나 오지에는 아버지와 재회하지 못하게된다. 게오프로이 왕은 유언으로 오지에에게 왕위를 물려준다고 말했기에 오지에는 왕위를 물려받으려 했으나, 그 순간 천국의 빛이 오지에의 주위를 감싸고 천사의 목소리가 오지에에게 말을 걸었다. 천사는 '왕위를 동생 구욘에게 주어라, 그대의 운명은 영광스러우니, 다른 왕국들이 그대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오지에는 바로 왕위를 동생 구욘에게 주고 덴마크를 떠났다.

2.7. 샤로트와 보르도 전쟁

이후 오지에는 벨리센과 결혼하여 어린 볼드윈을 낳았다. 그의 숙적인 샤로트는 처음에는 볼드윈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얼마 후 오지에를 닮은 볼드윈에게 그의 증오심을 표출했고, 장기판으로 볼드윈을 죽이기에 이르렀다. 샤로트는 이런 범죄 행위에 두려움을 느꼈고, 오지에의 보복이 두려워 궁전 안으로 몸을 숨겼다.

그러나 볼드윈의 친구가 급히 이 사건을 오지에에게 알렸고, 오지에는 샤로트를 찾으려고 궁전을 뒤졌다. 샤로트는 샤를마뉴가 있는 큰 방으로 피신하여 나모 공작과 브리타니 공작인 살로몬 공작과 함께 탁자에 앉아 있었다. 분노한 오지에는 칼을 뽑아들고 황제의 탁자가 있는 곳에 이르렀다. 오지에가 난데없이 폭력적인 행동을 하자 아무것도 모르는 귀족들은 당황하였고, 샤를마뉴는 격노하여서 오지에에게 칼을 휘둘렀다. 나모는 서둘러 상황을 정리하고 오지에를 파리 밖으로 내보냈다.

샤를마뉴는 오지에를 체포하기 위해 귀족들에게 오지에를 잡아라고 명령을 내렸고, 오지에는 샤로트를 처벌하면 자수하겠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샤를마뉴는 다음 왕위 계승자인 샤로트를 처벌하지 않았다.

결국 오지에는 추격자들을 격퇴한 뒤 덴마크에 있는 동생 구욘에게로 가는 길을 선택하였다.

추격자를 피하던 오지에는 이내 지쳐서 샘가 근처에 잠을 청하였다. 한편 대승정 튀르팽은 많은 성직자과 다수의 기사를 대동하여 각 지방의 교회들을 방문하고 있었다. 그들 중 한 기사가 목이 말라 오지에가 자고 있는 샘가로 다가갔고, 그는 그곳에서 어떤 기사가 사지를 쭉 뻗고 누워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급히 달려가서 그가 본 것을 튀르팽에게 보고했고 튀르팽은 샘가로 가서 그 기사가 오지에임을 알아보았다. 튀르팽은 오지에를 놓아주려고 하였지만, 황제가 내린 명령을 우선시하였기에 오지에를 생포하여 황제에게 넘겨버렸다. 샤를마뉴는 그를 투옥시키고 그에게 하루에 빵 1/3 조각과 고기 한 조각, 포도주 1/4 잔만 주라고 명령을 내렸다. 오지에는 큰 키와 체격을 가지고 있어 그만큼 많이 먹었기에, 샤를마뉴는 오지에를 굶겨 죽이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나모와 튀르팽은 밀가루 2부셀(70리터)로 만든 빵의 1/3, 양이나 송아지의 1/4 되는 고기 한 덩어리, 용량이 40파인트(19리터)나 되는 술잔을 만들어 그 술잔의 1/4을 제공함으로서 샤를마뉴의 명령을 어기지 않으면서도 오지에를 살리기 충분한 음식을 제공하였다.

오지에의 감옥생활은 그렇게까지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아라비아 왕 부르히프가 보르도를 공략하려 하고 있었고, 이에 부르히프를 대적하기 위해 오지에를 풀어주고 파견하였다. 오지에는 세인트 데니스 평야에서 부르히프와 사투를 벌였다. 오지에의 칼은 브루히프의 투구 일부를 잘라냈고, 부르히프의 귀와 뺨의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 그렇지만 브루히르는 예수의 몸에 발랐던 '아리마태아의 요셉의 향유'를 이용하여 상처를 순식간에 회복했다.

싸움이 이어지자 오지에는 상처투성이가 되었지만 브루히르는 멀쩡했다. 오지에가 굉장히 세차게 타격을 가하자, 브루히르의 방패가 두 조각이 나며 그의 팔 하나가 떨어져나갔다. 브루히르가 다시 한번 향유를 이용하여 상처를 회복하려는 찰나에 오지에는 틈을 주지 않고 사정없이 공격을 하여 브루히르의 몸뚱아리를 형태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난도질했다. 마침내 부르히르는 죽었고 오지에는 귀중한 향유를 찾아서 자신의 상처를 회복하는 데 사용하였다.

오지에의 친구인 카라후에와 동생 구욘은 오지에가 석방되어 그가 보르도에서 전투 중인 것을 알고 구원군을 보내어서 아라비아 군대를 섬멸시켰다.

보르도의 전투가 끝난 이후 개선식이 거행되었고 샤를마뉴는 샤로트의 대한 처벌을 오지에에게 맡겼다. 그는 샤로트의 계승권을 박탈했고 샬로트의 머리칼을 붙잡아 무릎을 꿇게 했다. 모두들 샤로트가 참수당할 것이라 여겼지만 오지에는 그를 살려주었다. 샤로트는 론세스바예스 전투 이후 나모와 보르도의 후안에 의해 처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2.8. 정복전쟁

덴마크와 마우리타니아의 연합군이 바다 건너 사라센군의 나라로 들어가 전쟁을 수행하자는 결정이 내려졌고, 왕은 아니지만 오지에는 두 나라의 왕과 같은 서열에서 자신의 깃발 아래 군대를 지휘하게 되었다.

이 전쟁에서 오지에와 그의 동맹자들이 수행한 모든 유명한 행위를 모두 기록할 수는 없다. 여기서는 그들이 프롤레아이스와 유태 지역의 사라센군을 정복하고 그곳에 왕국을 건설하여 오지에를 왕으로 옹립했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구욘과 카라후에는 오지에와 헤어져 각자의 나라로 되돌아갔다. 오지에는 구욘의 아들 월터를 자기 왕국의 후계자로 삼아 월터의 교육을 돌보면서 월터가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오지에는 그의 지위와 모든 영광에도 불구하고, 샤를마뉴의 궁전과 자신을 아들처럼 존중해준 나모 공작과 경건한 살로몬 공작을 그리워했다. 마침내 월터가 나라의 중책을 떠맡을 수 있을 만큼 나이가 들자, 오지에는 남몰래 배 한 척을 마련하여 시종 한 명만 대동한 채 한밤중에 궁전을 떠나 샤를마뉴 곁으로 되돌아갔다.

3. 그 이후?

그 이후 오지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현재 확인된 일화 중 몇 가지는,
토머스 불핀치가 정리한 버전에서는 샤를마뉴 곁으로 되돌아가려고 한 오지에가, 배가 난파하는 바람에 어떤 섬에 도착했는데 섬을 돌아보기 위해 빠삐롱을 타자 말이 질풍처럼 달려 도금양나무가 있는 정원으로 오지에를 데려갔다고 한다. 그곳에서는 모르가나가 오지에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모르가나가 오지에에게 꽃으로 된 왕관을 씌워주자 오지에는 샤를마뉴와 프랑크 왕국 등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모르가나의 매력은 쇠퇴하지 않았고 오지에도 보통 사람들과 달리 아무리 나이를 많이 먹어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 어느 날 모르가나가 장난삼아 오지에의 머리에서 왕관을 낚아채는 사건만 발생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더없는 행복이 얼마나 더 오랫동안 지속되었을는지 알 수 없다. 모르가나가 그의 왕관을 낚아채는 순간, 오지에에게는 기억이 되살아나며 만족감이 사라졌다. 샤를마뉴와 친척들 그리고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이 떠오르며, 모르가나와 함께 보낸 시간이 슬프게 생각되었다. 모르가나는 슬픈 눈으로 연인의 변화된 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그녀는 그가 잠시 동안만이라도 샤를마뉴의 궁정을 방문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마지못해 그의 소망에 찬성하고 자신의 손으로 그에게 갑옷을 다시 입혀주었다. 오지에는 빠삐롱을 데리고 나와 그의 등에 올라타고, 눈물을 글썽이는 모르가나와 작별인사를 나눈 뒤 모르가나의 궁전을 해변으로부터 분리시키는 바위 지대를 빠른 속도로 가로질렀다.

파리의 성벽 밑에 도착한 오지에는 자신이 떠나 있던 사이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생트 쥐네비브의 높은 탑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그는 파리의 성벽을 거의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 그가 보기에 궁전은 완전히 다시 지어진 것 같았다. 그리고 자기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는 성곽 경비원과 하인들의 언어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오지에의 놀라움은 극에 달했다. 이윽고 궁전으로 가고 있던 몇 명의 귀족들이 이 장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귀족들의 식별 표지를 알아본 오지에는 그들에게 말을 걸며 나모와 솔로몬 공작들이 아직도 황제의 궁전에 살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의 질문에 귀족들은 놀라서 서로를 바라보다가 나이가 가장 많은 귀족 한 사람이 다른 귀족들에게 말했다. "이 기사는 우리 큰할아버지인 덴마크인 오지에를 얼마나 많이 닮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러자 오지에가 대답했다. '아! 사랑하는 조카야, 내가 그 덴마크인 오지에다." 그러면서 그는 모르가나가 자신과 함께 사는 동안에는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알지 못하리라고 했던 말을 상기했다.

놀란 귀족들은 오지에를 위그 카페왕에게 데리고 가기로 한다.
그가 왕의 큰 방에 도착하자 귀족들이 그에게 프랑스 왕에게 절을 하라고 지시했다. 오지에는 키가 작고 머리가 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상하고 용감해 보이는 남자가 옥좌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렇게 키가 크고 가장 잘 생겼던 샤를마뉴의 옥좌에 말이다.

위그 카페는 오지에가 궁전을 떠나 있는 동안이 일어난 일들을 알려준다. 샤를마뉴의 혈통이 끝나 새로운 왕조가 시작되었고 아직도 왕국의 오랜 적인 사라센들이 여전히 골칫거리로 남아있으며, 바로 그 순간에도 이교도들이 사르트르 도시를 공격하고 있기에 며칠 있으면 구원하기 위해 떠날 예정이라는 이야기였다. 오지에는 자신도 나서서 싸움에 임하겠다고 한다.
오지에는 왕비를 알현하면서 늙은 여황제 베르타 대신에 당당한 풍채와 우아함, 그리고 솔직함과 매력을 겸비하고 있는 젊은 여왕을 보고 그녀에게 반하게 된다.

위그 카페 왕은 샤르트르 주민들이 포위공격에 의해 궁지에 몰리고 있다는 보고를 받아 그들을 구하기 위해 오지에와 함께 급히 떠나기로 했다. 오지에는 과거에 신속히 일을 처리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렇게 했다. 빠삐롱은 콧구멍으로 불을 뿜으며 사라센군을 무질서로 빠뜨렸고 오지에는 무적의 팔로 코타나를 휘두르면서 적을 무찔렀다.

사라센군에게서 승리를 쟁취한 왕은 덴마크 영웅을 다시 파리로 데려왔으며, 프랑스의 구원자 오지에는 자신의 용기에 걸맞은 영광을 얻었다. 그러나 얼마 뒤 왕의 죽음을 목격하는 고통을 맛보아야 했다. 그러던 중 여왕이 지닌 모든 완벽함에 마음이 움직인 오지에는 그녀에게 청혼을 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으며, 왕비도 그를 받아들이고 싶었다. 오지에의 청혼을 받아들이기 위한 귀족 회의를 소집하기 전날, 오지에는 여왕의 발밑에 무릎을 꿇고 있었는데, 왕비는 오지에의 이마에 보이지 않는 손이 다가와 금관을 얹는 것을 목격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구름이 오지에를 감싸더니 그는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모르가나가 왕비와 오지에를 보고 질투하여 그를 다시 아발론섬으로 데리고 간 것이었다.

아직도 오지에는 아발론섬에서 아서 왕과 함께 잠들어 있으며, 언젠가 아서왕이 귀환할 때가 오면 그의 친구와 함께 돌아와 승리를 나눌 것이라고 한다.

참고로 오지에와 모르가나 사이에서는 뮈르벵(혹은 말린)이라는 이름의 자식이 있으며, 이 자식의 후손이 부용의 고드프루아라고 한다.[5]

4. 사용한 물품

5. 대중 문화에서

6. 관련 문서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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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덴마크의 동화작가인 안데르센 또한 이 홀거 단스케에 대한 동화를 썼다.[2] 아인하르트의 기록에도 나오는 데인인의 왕으로 말년에 샤를마뉴와 만나기 위해 아헨에 왔다 피살된다. 그리고 전설상 구드프레드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시그프레드'와 조카로 여겨지는 '시그프레드'(앞과는 동명이인)은 전설상의 왕인 '시구르드 링'과 동일시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시구르드 링은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아버지로 여겨진다. 이 동일시 되는 전설을 채용한다면 구드프레드와 라그나르는 형제 관계, 혹은 친척 관계인 것.[3] 시기상 776년 랑고바르드 귀족들의 반란에 대한 전설이 수 세기동안 전해지다가 이슬람의 침입으로 와전된 듯하다. 롤랑의 노래에서 실제 롤랑의 적이었던 바스크족이 이슬람 군으로 잘못 알려졌듯이 말이다. 일단 샤를마뉴가 776년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로 간 것 자체는 사실이다.[4] 샤를마뉴에게는 루이와 샤로트라는 2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리고 샤로트는 적법한 계승자였다. 실제 역사의 카롤루스 이우니오르(772~811)가 모티브.# 다만 샤를마뉴 전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롱스보 전투(778) 당시에는 겨우 6살밖에 안 되었다. 애초에 샤를마뉴의 12기사 전설은 740년대생인 샤를마뉴가 200살 넘은 노인으로 등장하는 등 실제 역사에 대해 무지한 상황에서 허구의 이야기가 추가되어 실제 역사와 어긋나는 경우가 태반이다. 정황상 전설상에서 롱스보 전투는 샤를마뉴의 생애 말년에 벌어진 것으로 나오는듯하다.[5] 각종 전승을 더할 경우 재미있게도 아홉 위인 중 '3명의 기독교인'인 아서 왕, 카롤루스 대제, 부용의 고드프루아 셋 모두와 밀접한 연관이 있게 된다. 카톨루스는 오지에가 샤를마뉴의 12기사의 일원이니 말할 것도 없고, 아서 왕과 오지에는 같이 아발론에 잠들어 있고 친구가 되어 함께 귀환한다고 하며, 고드르푸아는 후손이 된다.[6] 북마크 시작 시점에 라임스 주교좌를 꿰찬 튀르팽도 있기는 하다. 다만 플레이 할 방법도, 특별한 이벤트도 없으니 별 의미는 없다. 능력치 자체는 제법 출중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