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관 | 남양 홍씨 당홍계 |
출생 | 1923년 1월 10일 |
충청남도 논산군 상월면 한천리 | |
사망 | 2000년 11월 17일 (향년 77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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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광복군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의 군인, 기업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 수여.2. 생애
1923년 1월 10일 충청남도 논산군 상월면 한천리에서 태어났다. 1944년 2월 일본군에 학도병으로 징병되어 하남성 귀덕에서 일본군 기병소사로 복무하던 중 12월 장이호, 정일명 등에 포섭되어 김기도[2], 최일룡 등과 탈출하여 제2지대에 입대해 현지에서 공작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8.15 광복 후 대동청년단 성동 검찰단 조직부장으로 활동하다가 1946년 경찰에 들어가 상주경찰서 등에서 근무, 1949년 육군 헌병 장교로 임관하였다. 6.25 전쟁 발발 시 서울이 점령당할 위기에 처하자 한국은행이 보유한 금괴 1.89톤과 은괴 2.15톤을 진해 해군통제영으로 운반하였다.
1953년 6월 9일 육군 헌병사령부 작전처장으로 근무하던 중 원용덕 헌병 총사령관의 명으로 송효순 육군 헌병부사령관과 반공포로 석방 사건을 기획해 18일 한필동 중령이 36경비대대장으로 있는 마산 포로수용소 등 전국의 포로수용소에 있는 포로들을 일시 탈출, 석방시켰다.
전후 헌병 총사령부 제5 부장, 육군형무소장 등을 역임하다가 대령으로 예편하였고, 조화양조[3]를 운영하였다. 1961년 세금 4억을 포탈했다는 이유로 조사를 받았으나, 경영권을 노리던 이들이 탈세한 것 처럼 허위장부를 만든 것이 밝혀졌다. 1965년 허위장부를 만들어 모함한 이들이 그를 살해하고자 모의한 것이 밝혀져 구속되었다.
1970년대 부터 세아산업, 대화브레이크[4] 등 자동차 및 철도 브레이크 업체를 운영하였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이후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해 2000년 11월 17일 그 곳에서 사망하였다. 11월 23일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여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에 안장했다.
3. 참고자료
독립유공자 공훈록독립운동사 제6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