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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1-30 12:29:50

황연석

대한민국의 축구감독
파일:staff_list_c2.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황연석
Hwang Youn-Seok
출생 1973년 8월 17일 ([age(1973-08-17)]세)
대구광역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조건 192cm, 84kg
직업 축구선수(스트라이커 / 은퇴)
축구 감독
학력 청구중 - 청구고 - 대구대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천안-성남 일화 천마 (1995~2003)
인천 유나이티드 FC (2004~2005)
대구 FC (2006~2007)
고양 KB국민은행 (2008)
서울 유나이티드 FC (2009)
감독 청구고등학교 (2010~2012 / 코치)
해성중학교 (2012~2014)
용남중학교 (2015)
신갈고등학교 (2016~2017 / 코치)
대전 시티즌 (2018 / 2군 코치)
대전 시티즌 (2019 / 코치)[1]
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4. 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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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이다.

2. 선수 경력

2.1. 성남 일화

본래 대구 토박이 출신으로 대학교까지 대구대학교를 나온 선수였다. 1995년 K리그 드래프트에서 일화 천마에 임의 지명되어 프로 무대에 입문했다. 좋은 신체조건과 기술까지 겸비하고 있었던 황연석의 가능성에 박종환 감독은 주목했고, 황연석을 주로 조커로 투입하며 전폭적으로 기회를 부여했으며, 입단 첫 해에 30경기에 출장해 9골을 기록하며 유력 신인왕 후보로도 거론되기도 했지만, 결국 노상래가 당 해의 신인왕이 되었다. 이후에도 성남에서 맹활약하며 일화에서 무려 4회의 우승에 공헌했다. 그는 일화 천마 시절부터 천안 일화 천마, 성남 일화 천마로 변해가는 과정을 오랫동안 함께 해 온 일화 축구단의 상징적인 선수로 자리잡아가던 선수였다.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한 적은 없었지만, 중요한 순간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 능력이 있던 황연석은 일화에 큰 도움이 되었다.

2.2. 인천 유나이티드 FC

이후 2004년, 황연석은 성남 동료였던 권찬수, 김우재, 전재호, 김정재, 김현수 등과 함께 무려 여섯 명이 한 팀에서 한꺼번에 인천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성남에서 이미 충분히 좋은 경력을 쌓았던 선수였고, 확실한 제공권을 지닌 선수인 만큼 인천에게도 큰 도움이 되리라 기대를 모았고, 창단 기념 경기였던 감바 오사카전에서 헤딩 골을 성공시키기도 하였다. 하지만 헤딩 이후 착지를 잘못하며 왼쪽 발목 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입고 말았고, 결국 2004 시즌의 상당수를 재활하는 데 보내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하향세가 뚜렷해졌으니, 창단 경기가 황연석에게는 축구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어버린 셈. 어찌저찌 회복에 성공한 황연석은 후반기에 교체 자원으로 본격적으로 기용되었고, 대구 FC와의 경기에서 멋진 오버헤드킥을 성공시키며 올해의 키카골을 수상했다.

한 해 간 크게 보여준 것은 없었으나 부상이 있었고 이전 경력이 충분히 좋았던 점, 그리고 상기한 멋있는 득점 등 여러 요소가 겹쳐 2005년에도 인천 소속으로 팀에 남았다. 2005 시즌에는 전남 드래곤즈와의 컵대회 개막전에서 득점에 성공하며 나름 좋은 출발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팀이 고공 행진을 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본인은 부상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국 황연석은 인천에서 단 한 차례도 풀타임 경기를 소화하지 못한 채 2005년을 마지막으로 이적하게 된다.

2.3. 대구 FC와 선수 생활 말년

2006 시즌을 앞두고 황연석은 고향 팀 대구 FC로 이적했다. 첫 해에는 조커로 괜찮은 활약을 보이며 과거 전성기 시절을 잠시나마 연상시켰지만, 2007 시즌에는 또 다시 부진에 빠졌고 결국 젊은 선수 위주로 팀을 개편하면서 팀을 떠나게 된다.

이후 내셔널리그의 고양 KB국민은행에서 1시즌을 보낸뒤 2009년 K3리그의 서울 유나이티드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하게 된다.

3. 플레이 스타일

장신의 체격에 기술까지 겸비한 선수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선수로 평가받았다. 주로 상대 수비수들이 체력이 저하될 시간대에 조커로 투입되어 상대에 부담을 주는 역할을 맡았으며, 높이를 이용한 공격에서 강점을 보였다. 특유의 고공 플레이 덕분에 특급 조커라는 칭호를 받기도 했다.

4. 지도자 경력

2010년 청구고등학교의 코치를 시작으로 해성중학교와 용남중학교의 감독을 맡았으며, 2016년 신갈고등학교의 코치로 부임하며 과거 성남 시절 팀동료였던 이기범 감독을 보좌하였으며, 2018년 이기범 감독을 따라 대전 시티즌의 2군 코치로 부임해 R리그에 참가하는 2군 선수들을 지도하게 되었다.

시즌 중반 이기범 2군 감독이 1군 선수단에 합류해 사실상 2군 감독보다는 1군 코치로 활동하면서 실질적인 2군 감독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으며, 대전의 R리그 남부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2019년 코치로 등록이 되었는데, 문제는 프로팀 코치로서 필요로 하는 자격증이 없는 관계로 경기 전후로 그라운드를 밟지 못해 경기 전 몸풀기는 물론, 하프타임 훈련도 진행할 수가 없게 되었고, 이런 황연석을 코치로 선임한 대전 구단은 비난을 피하기 힘들게 되었다.#

결국 5월 고종수 감독까지 경질되고 이흥실 감독으로 변경되면서 대전 구단을 떠나게 되었다.

이후 대전에 대전 FC 넘버원이라는 이름의 축구 교실을 차린 것으로 알려졌다.


[1] 대전 시티즌 구단에서 임의로 지정한 보직일 뿐 연맹에서는 공식적으로 자격증이 없는 황연석을 코치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식 코치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