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연(永延) 2년 6월 17일(988년 8월 7일)
1. 개요
일본 헤이안 시대의 귀족이자 무관이자 도적.[1] 할복의 원조다.2. 세계(世系)
남가(南家)의 파조(派祖)인 무치마로(武智麻呂)의 운손자(雲孫子)로, 후지와라노 카마타리의 11세손이다.후지와라노 카마타리→후지와라노 후히토→무치마로(武智麻呂)→코세마로(巨勢麻呂)→쿠로마로(黑麻呂)→하루츠구(春繼)→요시히사(良尙)→스가네(菅根)[2]→모토카타(元方)[3]→무네타다(致忠)[4]→야스스케(保輔) |
3. 생애
무관으로 출사해서 미기노츠와모노노토네리노죠([ruby(右,ruby=みぎノ)][ruby(兵衛,ruby=つはものノとねりノ)][ruby(尉,ruby=じょう)])를 지내고 미기노우마노스케([ruby(右,ruby=みぎノ)][ruby(馬,ruby=うまノ)][ruby(助,ruby=すけ)])를 지내다가 미기노미사토노스케([ruby(右,ruby=みぎノ)][ruby(京,ruby=みさとノ)][ruby(亮,ruby=すけ)])를 지냈는데알려진 범죄를 살피자면 관화(寬和) 원년(985년) 미나모토노마사노부([ruby(源,ruby=みなもとノ)][ruby(雅,ruby=まさ)][ruby(信,ruby=のぶ)])가 집에서 잔치를 벌이자 쳐들어가서 21촌 족증손(族曾孫)인 스에타카([ruby(季孝,ruby=すゑたか)])를 다치게 했다. 검비위사 미나모토노 타다요시([ruby(源,ruby=みなもとノ)][ruby(忠,ruby=ただ)][ruby(良,ruby=よし)])가 자신의 형 나리미츠([ruby(齊光,ruby=なりみつ)])를 체포하자
[1] 장교가 어떻게 도적질을 저지르고 다닐 수 있는 지는 표철주 참고. 그나마 표철주는 천수를 누렸다.[2]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 참소했는데 그 뒤 벼락을 맞아 죽어 음주(陰誅)되었단 소문이 돈다.[3] 15촌 조카이자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할아비인 모로스케(師輔)가 외손자를 황태자로 책봉받게 하는데 성공하자 이에 홧병으로 죽었는데 원귀가 되었다는 소문이 돈다.[4]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고 타치바나노 코레요리([ruby(橘,ruby=たちばなノ)][ruby(惟賴,ruby=これより)])와 그의 가신들을 죽인 혐의로 타치바나노 코레요리의 아비 스케마사(輔政)의 고발을 받아 사도노쿠니([ruby(佐渡國,ruby=さどノくに)])로 유배를 갔다.[5] 줄여서 존비분맥이라고 한다.[6] 시대가 아직 평안시대 중기임을 감안하면 아카네는 우지 같지만 기록이 없어서 뿌리를 알 수 없다.[7] 후지와라노 야스스케와 같은 겨레인 건 확실하나 寸數(동안)을 알 수 없다.[8] 그렇다면 후지와라노 야스스케처럼 무관일 가능성이 크다.[9] 아스와도 우지로 추정되지만 마찬가지로 기록이 없어서 알 수 있는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