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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4 22:34:48

1세대 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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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주요 그룹

1. 개요

1990년대 후반에 데뷔해 2000년대 초반(대략 2003~2004년)까지 큰 인기를 얻었던 아이돌 그룹들을 일컫는 말이다. K팝 아이돌의 시작을 알린 세대이기도 하다.

2. 역사

1990년대 이전까지는 '아이돌'이나 '그룹'이라는 개념 자체가 희미했다. 그 시절에는 오히려 솔로 가수가 인기가 많은 시절이었고, 그룹들은 그저 잠깐 밤무대에서 활동하거나 하는 게 전부였다.[1]

그러다가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하면서 그룹 문화에 대한 형성이 생기기 시작했고[2], 듀스, 노이즈, R.ef, 솔리드 등 몇몇 보이그룹들이 팬덤을 형성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물러간 1996년 2월 IDOL이 데뷔를 하면서 10대들에게 반응을 얻고, 드디어 같은 해 9월에 H.O.T.가 데뷔하면서 1세대 아이돌 시장이 공식적으로 열리게 된다. 이후 H.O.T.는 1997년 4월 데뷔한 젝스키스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면서 1세대 보이그룹의 양대산맥을 이뤘다.[3]

한편, 걸그룹 역시 발전을 거듭했으나 걸그룹은 90년대 중반 이전까지는 남성그룹들보다도 위치가 더 낮았다. 우정의 무대에나 잠깐 출연하고 잊혀지는 경우가 대다수였는데, H.O.T.가 데뷔하고 약 1년 후인 1997년 11월, H.O.T.를 데뷔시킨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에서 데뷔한 S.E.S.가 남성팬들의 지지를 얻으며 걸그룹 문화를 만들었고, 이듬해 4월 젝스키스를 데뷔시킨 대성기획에서 데뷔한 걸그룹 핑클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게 된다.

1998년에는 신화가 데뷔했고, 1999년에는 god가 데뷔하면서 두 그룹 역시 라이벌이 되었다.[4][5]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2000년 5월 18일 젝스키스가 해체되었다. H.O.T.는 젝스키스의 해체에도 불구하고 2000년 10월 5집 앨범을 발매하며 우려를 씻는 듯 했으나 2001년 2월 27일 잠실주경기장에서의 마지막 콘서트를 끝으로 결국 해체되었다.

걸그룹 역시 S.E.S.는 2002년 12월 19일부로 해체했고[6], 핑클은 공식적으로 해체 선언을 하지 않고 '따로 또 같이' 라는 전략을 내세우며 2002년 말까지 개인활동과 단체 예능 출연, 광고 모델 활동을 병행하였으나 2003년 이후 이런 구분이 뜸해졌고 이효리와 옥주현이 솔로 음반을 발표하고 소속사를 이적하며 사실상 해체 상태에 들어갔다.

그렇게 4개의 그룹이 사라졌고, 후발주자로 나온 신화와 god는 해체 없이 가는 듯 했으나 god는 2004년 윤계상이 탈퇴하고 4인조로 활동하다 2005년 10월 7집 <하늘 속으로> 을 끝으로 활동을 중단했다. 신화는 별도의 활동 중단 없이 멤버들의 군 복무가 끝난 2010년대 초반부터 다시 완전체 활동을 시작했으나, 2020년 이후로는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다시금 활동이 뜸해진 상황이다. 그러나 멤버 교체 없는 최장수 아이돌이라는 타이틀은 여전하며[7], 기나긴 소송을 통해 본인들의 상표권을 직접 획득하는 위업도 세웠다.

2010년대엔 무한도전이 기획한 토토가 등을 통해 1세대 아이돌들이 재발굴되면서 대중적 반응이 오자 다시 팀이 재결성되는 일도 늘어났다. god는 2014년에 활동을 재개했고[8], 젝스키스, S.E.S.가 2016년에 재결합했다. H.O.T.는 공식적인 재결합을 한 것은 아니지만, 2018~19년에 대규모 단독 공연을 개최했다. 물론 지속적인 활동을 한다기보단 팬들과 가끔 만나거나 멤버들간 우정 활동 비슷한 느낌이 더 강한 측면도 있지만, 아예 이런 활동 자체를 못하는 팀들도 많긴 하다.

3. 주요 그룹

보이그룹에선 1세대 아이돌의 대표격인 H.O.T.가 가장 유명했으며, 젝스키스가 라이벌 구도였다. 그러다 1.5세대 기간엔 신화가 어느정도 반응을 얻기 시작했고, 1세대 보이그룹의 대미를 장식했다고 할 수 있는 god가 큰 인기를 얻게 된다. 앨범 판매량만 보면 H.O.T.와 god가 투탑이었다.

걸그룹에선 S.E.S.핑클이 양강 구도를 이뤘으며, 바로 다음으로 3인자격인 베이비복스가 두 그룹과는 다른 컨셉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 외 보이그룹으로는 언타이틀, IDOL, NRG, 태사자, 유비스, UNO(우노), TNB, OPPA, 이글파이브, A4, 팬클럽, 클릭비, Y2K, 플라이 투 더 스카이, 원타임, UN, 디베이스, K-POP, 블랙비트, 테이크, 악동클럽, 량현량하, 오션, 오투알(O2R), YB 등이 있었다.

걸그룹으로는 써클, 클레오, 디바, O-24, 슈가, 티티마, 파파야, 샤크라, 쥬얼리, SWi.T, 투야, 밀크, 신비 등이 있었다.

혼성그룹으로는 영턱스클럽, UP, , 코요태, , 오룡비무방, 고구려 등이 있었다. 2세대 이후 거의 사라져버린 혼성그룹의 전성기 시절이기도 했다.


[1] 그 시절은 댄스음악이라는 장르 자체가 생소하던 시절이었기에 그룹은 백두산이나 무한궤도 같은 밴드가 대부분이었고, 댄스음악의 경우는 나미와 붐붐, 현진영과 와와, 인순이와 리듬터치 등 가수 뒤의 댄스팀 개념으로 서는 방식이 대세였다. 이후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 이라는 (지금와서 보면 다소 불평등적인) 팀 이름 또한 그 시기의 산물이자 다소 흔한 그룹 작명법이었다. 허나 서태지와 아이들은 3인조로 온건한 하나의 그룹이었고 이들의 대성공 이후로는 댄스그룹에 한해서는 이러한 작명법은 사라지게 되고 보컬이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밴드들만이 이런 작명을 사용하고 있다. 그룹 가수로서 소방차가 다소 인기를 끌기는 했으나, 소방차는 가요톱10에서 1위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음악적으로도 소방차의 음악은 서구식 댄스 음악이 아니라 템포만 빠르게 올린 트로트였다.[2] 전술하였듯 이전부터 조금씩 씨앗은 뿌려지고 있었으나, 태지보이스의 성공 이전엔 업계 판도를 바꿀만큼은 아니었다. 서태지와아이들이 가요대상 등을 받으며 돌풍을 일으킨 이후 데뷔한 그룹들이 롤모델을 들때 태지보이스 이전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 없는 이유도 이런 사연이 있다. 즉, 실질적인 K팝 아이돌 문화의 시작은 서태지와아이들부터였고, 애초에 그 서태지와아이들이 1996년 1월 은퇴하면서 사라진 빈자리를 벤치마킹한 그룹으로 채우고 기획사가 사업적으로 체계화한게(서태지와아이들은 독립 기획사 체제였다) 1세대 아이돌의 시작이었다.[3] 다만 냉정하게 보면 H.O.T.가 1인자고, 젝스키스는 2인자였다. 앨범 판매량에서도 차이가 많이 났다.[4] 앨범 판매량만 보면 신화가 god한테 심하게 밀려서 사실 동급 라이벌로 보긴 좀 어렵긴 하다. 그래도 신화 역시 롱런하긴 했다.[5] 여담으로 이때 보이그룹 god 제작에 관여한 JYP엔터테인먼트였지만, 1세대 아이돌 기간 걸그룹은 딱히 기획하지 않았다. 때문에 JYP 최초의 아이돌 걸그룹은 2세대인 원더걸스가 된다. 참고로 YG는 1세대 기간엔 아이돌보단 힙합 기획사 느낌이 더 강했다. 원타임이나 지누션만 봐도 전형적인 아이돌 그룹은 아니었다.[6] 멤버 유진의 말에 의하면 멤버들은 SES로 함께 재계약을 하고 싶었는데, 소속사 측에선 개별 재계약을 원해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해체하게 되었다고 한다.[7] 신화 멤버들 말에 의하면, 본인들도 사이 나빠지면 치고 박고 싸우는 경우도 있었지만, 얼마 안가 또 화해하고 잘 지내는 등 해체로 이어지지 않은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한다.[8] 뒤의 세 팀과는 달리 해체 한 것은 아니었기에 수월하게 활동 재개를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