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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3 14:56:08

2004학년도 수능 언어 영역 복수정답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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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수능 복수정답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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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년도 영역 과목 문항번호 원 정답 바뀐 정답 정정 유형 문서
2004 언어 영역 17번 3 3, 5 복수정답 2004학년도 수능 언어 영역 복수정답 사태
2008 과학탐구 영역 물리Ⅱ 11번 4 2, 4 복수정답 2008학년도 수능 물리Ⅱ 복수정답 사태
2010 과학탐구 영역 지구과학Ⅰ 19번 3 1, 3 복수정답 2010학년도 수능 지구과학Ⅰ 복수정답 사태
2014 사회탐구 영역 세계지리 8번 2 정답 없음 전원 정답 2014학년도 수능 세계지리 출제 오류 사태
2015 영어 영역 25번 4 4, 5 복수정답 2015학년도 수능 영어 영역 복수정답 사태
과학탐구 영역 생명과학Ⅱ 8번 4 2, 4 복수정답 2015학년도 수능 생명과학Ⅱ 복수정답 사태
2017 한국사 영역 14번 1 1, 5 복수정답 2017학년도 수능 한국사 영역 복수정답 사태
과학탐구 영역 물리Ⅱ 9번 3 정답 없음 전원 정답 2017학년도 수능 물리Ⅱ 출제 오류 사태
2022 과학탐구 영역 생명과학Ⅱ 20번 5 정답 없음 전원 정답 2022학년도 수능 생명과학Ⅱ 출제 오류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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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사건 정황
2.1. 정답 논쟁

1. 개요

200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발생한 복수정답 사례로, 일명 "미궁의 문" 문제로 유명하다. 진짜로 답이 미궁으로 가버렸다.

2. 사건 정황

1993년에 대학수학능력시험 제도가 최초로 도입된 이래, 불명예스럽게도 수능 사상 최초의 복수정답 사례.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고른 답이 오답으로 취급되었던 경우로, 언어영역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때 전체 수험생 중 2/3인 44만명이 해당 문제에서 5번 보기인 "실"을 답으로 택했다. 그런데 그것이 정답이 아니었다. 지금 보면 그런가보다 하지만, 당시에는 수능시험에서 복수정답을 인정한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기에 뒷말이 무성했다.

당시엔 공식적으로 정답 이의신청을 하는 시스템도 없었고, 공론화가 가능했던 것도 시험을 치르고 온 딸의 이야기를 듣고 문제를 제기한 서울대학교 불문과 최권행 교수[1]문학평론을 하는 교수였던 데다가 문제가 서양문학의 근간인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의제기가 없었다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던 일. 결국 복수정답으로 결론이 나왔고, 출제위원장과 평가원장이 대국민사과 후 사퇴함은 물론 윤덕홍 당시 교육부총리까지 대국민사과 후 사표를 내고 말았다.[2]

한편으로는 수능에서 복수정답이 인정된다는 것 자체에 불만을 가진 이들이 최권행 교수가 딸의 이익을 위해 한쪽에 치우친 입장에서 문제를 봤다는 의견을 제기하기도 했다. 물론 그냥 전문가도 아니고 서울대 교수의 위엄을 가진 전문가가 이의를 제기하여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이지 평가원(과 교육관료들)의 매우 권위주의적인 행태로 볼 때 다른 이들이 이의제기를 했더라면 쿨하게 씹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이는 실제로 오류를 발견하고 처음으로 공론화한 사람이 교수가 아닌 일개 물리 강사에 불과했던 2008학년도 수능 물리Ⅱ 복수정답 사태에서 "왜 우리 말고 학회에 얘기했음? 기분 나쁘네"같은 반응이나 보이면서 뻗대다가 교과서에 서술된 내용조차 무시한 것이 드러나서 망신을 당하고 인정한 복수정답 인정조차 대학들이 원서접수를 마감한 시기에나 인정한 막장스런 사례로 증명되었다.

당시 출제된 17번 문제는 백석의 시 '고향'과 그리스 신화 '미노타우로스미궁' 두 지문을 읽고 답하는 문제로, '고향'에서 화자가 찾아간 '의원'(의사)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도구가 무엇인지를 '미노타우로스의 미궁' 중의 5개 단어(테세우스, 미노타우로스, 미궁의 문, 비밀의 방, 실)중에서 고르는 것이었다.

아래는 답이 될 수 있는 후보들.

원래 출제의도에 따르면 정답은 다음과 같이 찾을 수 있다. 일단 '고향'을 읽어보면 혼자 앓던 화자는 의원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그리운 고향 등을 떠올리게 되며, 이는 의원이 무언가를 얻는 수단으로 기능함을 알 수 있다(밑에 서술되겠지만 이 해석 또한 자의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은 테세우스가 미궁의 문을 열고 비밀의 방에 들어가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실을 통해 밖으로 나온다는 내용인데, 여기서 앞의 '의원'과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은 결국 테세우스가 괴물을 죽이기 위해 비밀의 방에 들어가기 위한 중요한 실마리인 '미궁의 문'이라서 답이 '③미궁의 문'이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수험생들이 테세우스가 괴물을 물리치고 무사히 밖으로 나오려면 을 이용해야 하므로 답이 '⑤실'이라고 주장했고, 처음에는 이 주장이 무시된 채 3번이라는 잠정 결론이 내려졌으나 행정소송 등이 거론되기 시작하자 한국교육과정평가원측은 출제 교수진 7명에게 자문을 했고 그중 4명만 원래 정답이 맞다고 결론을 내리는 바람에 복수정답이라는 희대의 해프닝이 발생하였다.

2.1. 정답 논쟁

5번이 더 타당하다는 주장은 다음과 같다. 무엇보다도 백석의 시에서 화자가 의원을 통해 느끼는 감정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해소되는 반가움, 즉 긍정적인 감정이다. 그러나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기 위해 미궁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은 이러한 시상과는 정반대이다. 오히려 이 경우, 대다수의 수험생들이 택한 대로 테세우스가 "다시는 빠져나오지 못할지도 모르는" 미궁에서 무사히 바깥의 안전한 세계로 탈출하기 위해 설치해 놓은 실이라는 소재가 주는 심상이 백석의 시에서 의원이 주는 심상과 일치한다. 또한 "병으로 앓아 누워 있는" 화자를 치료하는 의원의 역할과 "미궁을 빠져나오는 데 도움을 주는" 실의 역할도 일치한다.

하지만 이는 제시문에 주어진 논리로 접근하지 않은 채 자신의 임의의 판단이나 배경지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발상에 의한 잘못된 접근이라고 평가원은 주장했다. 평가원 공식 답변에서도 이 점에 대해 강조하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단, 평가원의 주장 역시 자신들의 자의적 판단과 배경지식으로 문제를 의도했다는 점에서 잘못된 접근인 것은 매한가지다.).
(전략)...여기서 실이 문제가 됩니다. '실'은 '구명줄', '인도' 같은 이미지가 있습니다만, 그것은 우리의 머리 속에 선지식으로 남아있는 어떤 잔상 때문인 것 같습니다...(중략)...문제의 <보기>에서 실은 분명 비밀의 방에 이르는 과정에서의 역할보다는 나중에 나오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비밀의 방에 이르기 위해 테세우스는 '자신의 예지와 본능으로' 미궁을 더듬어 가고 나중에 실을 따라 밖으로 나온다고 되어 있습니다...(후략)

백석의 고향에서 화자가 궁극적으로 접근하고자 했던 곳은 '고향'이다[4]. 그렇다면 문제 해결의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야 할 <보기>에서 그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소재는 무엇인가? 그것 역시 <보기>에 명백하게 나와 있다. 테세우스는 미궁으로 들어가 '비밀의 방에 이르고자 한다' 라고 분명히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기>에서 비밀의 방(시에서는 고향)에 테세우스(시에서는 화자)를 이어주는 매개체는 실이 아닌 미궁의 문 단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출제자는 주관적 감정으로 접근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최대한 배제시켜 주고자 하나의 힌트를 더 제시하고 있다. 미궁의 문은 누구에게나 보이는 것이 아닌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보인다는 것이다. 시에서 고향 역시 마찬가지다. 평소 고향을 그리워했던 화자에게만 의원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정리하면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에서 목적은 괴물을 죽이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서는 미궁의 문을 통과해야 하므로 마땅히 답은 3번인 것이다.

그러나 진짜 문제가 되는 지점은 미궁 지문에서는 주인공의 목적이 명확히 제시되었지만, 백석의 시에서는 시적 화자의 목적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보기> 등의 외적 준거(박스에 들어 있다.)를 둠으로써 작품 해석의 방향을 제시했다면 모르되 그런 것도 아니다. 시적 화자는 미노타우로스를 쳐부수러 들어가는 테세우스마냥 아득바득(?) 고향에 가고 싶어하는 것인가? 아니면 객지 생활에 그럭저럭 만족하지만 의원과의 만남으로 느낀 편안한 감정을 노래한 것에 불과한가? 당연히 주인공은 고향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 역시 임의의 판단에 불과하다. 고향에 가고 싶은 게 당연하다면 미궁을 나가고 싶은 것도 당연하다는 논리가 성립하므로. 즉 출제자의 본의와는 달리 미궁 밖 세상을 고향으로 등치시켜도 된다.

그리고 한 지문은 뚜렷한 목적이 있지만 다른 지문은 목적이 애매하다면 목적이 아니라 정서적 동질성에 초점을 두고 문제를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만약 손길이 따스하고 부드럽다는 표현에서 고향을 목적하는 것이 드러나 있다고 주장한다면, 미궁 지문에서도 '무사히' 밖을 나온다는 표현이 있다는 반박이 가능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고향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고 보는 것은 통념을 기반으로 한 자의적 해석에서 결국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평가원 측은 '오답을 주장하는 측에 대해 잘못된 접근을 운운했음에도 자기들도 매한가지로 잘못된 접근을 한 셈이다.

물론 문학사적으로 보았을 때, 백석이라는 실제 시인이 고향을 늘 그리워했던 것은 사실이고, 그의 그런 감정이 그의 여러 작품들에 나타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시인이 내세운 가상의 대리인인 시적 화자와 실제 시인은 엄연히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이 시의 경우 시적 화자와 시인이 거의 같은, 자전적이고 고백적인 시이기 때문에 문제가 덜할지 모르나, 그렇더라도 "시적 화자는 고향에 돌아가는 걸 뚜렷한 목적으로 삼고 있다."라는 식의 논지를 담고 있는 <보기>(외적 준거)나 백석의 시 세계 및 경향을 해설한 <보기>(외적 준거) 등이 주어졌어야 옳다.

애초에 두 지문의 성격이 워낙 달라서(하나는 시, 하나는 설명문)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이고, 따라서 문학적 감정을 통해 문제를 접근하려 했던 사람들교수님을 아버지로 둔 학생 포함이 많았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글의 내용이나 목적이 명확히 제시될 수 없는 시를 가지고 논리적인 문제를 내려면 어느 이상의 개연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다시 한번 비판하면 '실'과 '고향'은 대체적으로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고 여겨지지만 이는 객관화 할 수 없는 자의적 판단이므로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원정답파의 주장인데, 이것은 역시 '고향'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주장에 불과하다. 객지에 있으면 당연히 고향에 가고 싶어한다는 해석은 완전히 자의적이며, 애초에 정서를 노래하는 시에서 화자의 목적이 있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냥 의원을 통해 우연히 느낀 감수성을 노래한 시라고 해석해도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이다. 시에서 화자의 목적이 애매하다면 차라리 목적성은 문제의 의도가 아닌 것으로 보고 정서적으로 유사한 부분에 주목하여 문제를 푸는 것이 오히려 논리적이다.

사실 이러한 문제가 생기게 된 것은 시와 설명문의 차이 외에도 내용적으로 백석의 시와 테세우스 신화 자체가 잘 들어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석의 시에서 의원을 만나는 과정은 우연에 의한 것이고 그 계기도 화자가 아닌 의원에 의해 제시된 것이지만,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찾는 것은 뚜렷한 목적성 때문이다. 고향에 대한 추억과 미노타우로스를 죽이러 가는 길 또한, 굉장히 평화적인 이미지와 전투적인 이미지가 서로 들어맞지 않아 지문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았다. 한마디로 서로 어울리지 않는 두 소재를 억지로 꿰맞춰 낸 문제였기에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문인들도 두 손 든 수능 시험 문학 문제 오랜 시행 끝에 짬이 찬 덕분인지 문제가 깔끔하고 정교해진 2010년대 이후의 국어 영역 시험지에 익숙해져 있을 현재 수험생들 입장에선 굉장히 거칠고 투박해 보일 듯.

수능 출제/검토를 맡은 적이 있는 서울 소재 모 재수학원의 한 강사에 의하면, 출제를 처음 맡게 된 신임 출제위원이 여러 동료 출제/검토위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위의 문제 출제를 강행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시말서행(...). 게다가 손해배상까지 전부 자비로 물어줘야 했다고.

이런 무리한 출제로 인한 논란으로 시말서를 쓰는 실책은 이후 2009 수능 대비 9월 평가원 윤리 과목에서 재현되기에 이른다. 수능 검토를 맡은 적이 있는 또다른 재수학원 강사에 의하면, 평가원 모의고사 및 수능에서는 복수정답 '시비'만 붙어도 해당 문제의 출제에 책임을 가진 사람들이 상당히 피곤해진다고 한다. A4 용지에 그 문제의 출제 의도, 그 문제가 교육과정 내의 타당한 문제임을 증명하고 해명하는 내용, 그 문제가 학문적으로 오류가 없음을 밝힐 수 있는 학술적 근거까지 서술하여 제출할 것을 요구한다고 한다. 출제자는 해당 분야 전공자이자 교수이므로 그야말로 굴욕이라고.


[1] 1954년 전라도 광주 출생. 서울대 불문과에 72학번으로 입학한 후 유신 반대 운동 중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내란음모와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아 징역살이를 하고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조치로 이듬해 2월 석방됐다. 그리고 1975년에 제적됐고 1986년이 되어서야 복학하여 이듬해에 졸업했다. 장장 15년이 걸린 셈.# 해당 사건은 재심을 통해 2011년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19년 2월에 정년퇴임했다#.[2] 당시 윤덕홍 교육부총리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의 시행으로 인해 교육계에서 여러모로 질타를 받던 중이었다.[3] 후술하겠지만 이 등치가 꽤나 자의적이다. 일단 느껴지는 감정 자체가 너무 다르다.[4] 일단은 목적성이 있는 것으로 보자. 후술하겠지만 반론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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