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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기계화보병여단 第二十一機械化步兵旅團 The 21th Mechanized Infantry Brigade | ||||||
영천대첩의 주역! 常勝! 독수리부대 | ||||||
창설일 | 1949년 6월(제21연대) 2019년 1월 (제21기계화보병여단) | |||||
상징명칭 | 독수리부대 | |||||
소속 | 대한민국 육군 | |||||
상급부대 | 제8기동사단 | |||||
규모 | 여단 | |||||
역할 | 공격 부대, 전시 진격 | |||||
여단장 | 대령 최봉호 | |||||
위치 |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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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35기보대대(구1대대 강포리 중군봉대대), 82전차대대(구2대대 신철원리 연봉대대), 138기보대대(구3대대 운천리 각흘봉대대) 등으로 구성되었었다.2. 연혁 및 특징
1949년 6월까지 창설된 21연대가 전신이며 6.25전 창설된 초기연대 중 하나이다.21연대는 강릉에서 10연대와 함께 8사단을 구성하는 연대였으며 한국전쟁 초기 강릉전투를 비롯해 안동의성전투, 영천·신녕전투,수도고지-지형능선전투, 금성전투 등에 참여하였다. 채명신 전 주월한국군사령군이 대위시절 21연대 1대대소속 중대장으로, 허순오 전 31사단장이 21연대 군수참모로 영천에서 싸웠다.(21연대 1대대는 원래 2사단 25연대 1대대였으나 6.25당시 안동에서 21연대 1대대로 이관되었다) 영천대첩 당시 21연대는 화남면 사천리 인근에서 북한군 73독립연대, 15사단 45연대, 103치안연대를 홀로 막아내어 대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영천지구 전승비 참조]
인천상륙작전이후 21연대 1대대는 국군 북진의 최선봉에 서서 10월 13일 평북 희천을 탈환하고 방산면 유덕리 전투(사살 10명, 생포 28명), 도지리 903고지 전투(사살 200명, 생포 10명), 지리산·용면 전투(사살 154명, 생포 12명), 고산 항사벌 전투(사살 40명, 생포 12명), 김화 풍동 569고지 전투(사살 178명, 생포 100명) 등 크고 작은 전투에서 성과를 거두며 6·25전쟁 이후 남한 내의 안정화 및 국군의 기세 유지에 큰 공을 세웠다.
7월 27일 휴전이후 강원도 홍천, 경기도 연천, 파주, 철원, 포천 등 국군의 중심에서 각종 임무를 수행하였다.
1995년부터 21연대본부와 3대대는 포천 영북면에 있었고 2개대대(1, 2대대는 나중에 135기보대대, 82전차대대가 된다)는 철원군 갈말읍에 주둔하였다. 이전에는 원래 포천군 이동면 수입리에 주둔했으나 작계(83년부터 신철원이 작계였다) 가 멀어서 작계투입시간을 줄이고자 1995년 12월 산정호수 인근 영북면으로 본부를 옮겼고 예하대대도 작계인근의 신철원, 영북면 등지로 옮겼다고 한다.
백골부대, 청성부대와 쌍방훈련을 많이 했으며 군단예비부대 중 최북단에 위치하면서 철책부대를 백업하고 반격하는 임무를 맡았다. 21연대뿐 아니라 다른 10,16연대 부대들도 그렇겠지만 보병대대원들은 늘 걸어다녔다. 훈련은 행군과 동의어나 마찬가지였기에 21연대원들은 서쪽으로는 노동당사 동쪽으로는 와수리, 남쪽으로는 포천일동까지 다 걸어다녔다. 기계화 되기 전 알보병이었을 때는 8사단은 행군으로 악명높은 부대였다. 3, 6사단과 인접하였기 때문에 자주 대항군으로 갔다.
1996년 호국훈련에 원년부터 참여했고 1997년 김포지역에도 대항군으로 갔다 (수도군단, 17사단 해병2사단의 대항군). 5군단 예하시절 3군사령부 내에서 유일한 알보병예비사단이라 야외훈련량이 보병사단 중에는 1티어였다. 8사단과 11사단은 예로부터 훈련량이 많기로 유명했는데 3군지역에선 8사단, 1군지역에선 11사단이 차출단골고객이었다고 한다.
8사단은 3군사령부예하 수도권방어의 핵심통로를 지키고 있다는 전략적 중요성(그리고 26, 30사단은 기계화보병사단이라서 대항군으로 쓰기에 기동훈련 시 돈도 많이 들고 도시 인근에 있어서 움직이는게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11사단은 1군지역에서 두루쓰는 예비사단이라는 특수성때문에 단골손님이 되고 말았다
(그 8,11 사단이 지금은 7군단의 원투펀치다)
3군지역에는 수기사, 26기보사, 30기보사, 1,2,5 기갑 등의 주요 전력을 군단에 배속시켰으나 1군지역은 군단을 하나 더 만들 정도 여력도 안되고 중요도도 떨어져서 11사단을 군사령부에 배속시켰다. 11사단이 다른 사단에 비해 특별해서가 아니고 1군사령부에 넣어두고 필요한데 쓰겠다는 의미였다. 특히 홍천이면 수도권과도 가까워 유사시 수도권 지원도 가능하다(간혹 11사단 전역자들은 11사단이 특수부대처럼 대단해서 군사령부에 배속된 줄 오해하기도 한다. 그런거 없다. 그냥 2사단, 27사단 처럼 보통의 예비사단이었다)
2013년, 2016년에 호국훈련에 참가하였다.
여단은 현재는 해체되어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여단본부에서 10여 분 걸으면 산정호수 및 한화리조트가 있었다. 지금은 6사단 직할대대가 들어와 있다.
3. 예하 부대
3.1. 135기계화보병대대 백호
철원군 갈말읍 강포리에 있었다. 가수 SE7EN이 국방홍보원 홍보지원대에서 전출되어 이 부대에서 복무했다. 가수 세븐이 복무했던 2013년에는 컨테이너 건물에서 생활했었다. 2018년에 들어서야 이미 해체된 139기보대대의 막사로 이전했다.90년대에 1~3중대는 보병중대(K2소총, K3경기관총, K201유탄발사기, 60밀리 박격포), 4중대는 중화기(90밀리 무반동총, 81밀리 박격포, K4 고속유탄기관포)중대였다. 각 중대와 식당은 조립식 건물이었고 CP, PX, 물자창고 등은 구형벽돌로 지은 옛날건물이어서 전방부대의 느낌이 확실히 났다.
위병소근무는 4중대에서 섰고 뒷문 옆문 들은 1~3중대가 맡아서 섰다.
부대에서 명성산이 잘 보였다. 신병들에게 명성산에 탱크 수백대를 숨겨놓았다는 장난을 치기도 했다.
135기보대대(구 1대대 혹은 중군봉대대)는 1995년 12월부터 2018년 11월까지 중군봉에 주둔하였다. 중군봉이 동송과 신철원에서 각각 오는 길을 모두 감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래서 장군들이 헬기타고 간혹 왔다. (부대주둔지 인근이 철원-포천북부를 통과하는 적군의 전력이 집중되는 지역이라 북한군 침공시 반드시 막아야할 길목이었다.)
주요 거점으로 지포교가 있었다. 지포교 낙석폭파는 공병대에서 했는데 공병대를 엄호하고 인근에 철조망과 지뢰지대를 만드는 연습을 수없이 했다. 철조망 설치는 연병장에서 주로 연습하였다. 딱딱한 바닥에 철항을 박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겨울이 오기전에 지뢰를 설치할 지역에 지뢰공도 미리 파두었다.(겨울에는 땅이 잘 안파지기 때문이다)
영점사격은 부대 뒤 중군봉 영점사격장에서 했고 실거리사격은 운천리 3대대 사격장까지 걸어가서 하고 왔다.
1대대 중군봉 진지구축은 이미 1983년 5월 28일 완성되었다.
중군봉 표지석에 그 당시 임무에 맞게 "초전3일 돌격결전의 대전차 공격 기동 축선"이라고 적혀있다. 당시에는 북한군에 비해 전차전력이 열세여서 초전3일 간 적의 전차공격을 방어하는 것이 중요했다. 2000년대 이후 한국군의 지상군 전력이 북한군을 능가하게 되어 8사단은 공세지향의 기동사단으로 임무전환되었다.
중군봉은 낮은 뒷산임에도 전술도로 경사가 급해 중군봉 헬기장까지 줄맞춰서 구보하고 오면 매우 힘들었다. 1990년대 중후반 아침 점호때는 연병장을 5바퀴 정도 뛰었고(기보대대로 전환 전이라 연병장이 넓었다) 매주 수요일 아침점호 때 일직사령 통제하에 중대별로 전 대대원이 중군봉 헬기장까지 뛰어 올라가곤 했는데 초겨울에도 웃통을 벗고 뛰어야 할 정도로 땀이 나곤 했다. 낙오하는 병사도 아주 간혹 있었다.. 한겨울에는 티셔츠를 입고 뛰었다.. (원래 뛰던거 아닌가? 2008년~2010년까지는 아침점호때 다같이 뛰었다.) 아침 점호 때 뜀걸음 코스는 부대 옆 마을 근처로 뛰는데 닭똥냄새가 엄청났다(창덕비료)
부대입구와 인근에 닯사육장, 돼지사육장, 비료공장도 있었다. 간혹 돼지축사 대민지원을 나가면 막걸리와 고기를 얻어먹기도 했다.
5공병여단 도하중대 역시 가까운 위치에 있어서 해당 부대 장병들도 부대앞 1대대교회(임마누엘교회)를 함께 이용하였다.
1996년, 1997년 그리고...중간은 모르겠고 이후 2009년, 2010년 호국훈련에 참가하였다.
위치가 철원군 갈말읍 강포리여서 신철원리와 영북면 운천리 중간이었다. 참으로 애매했다. 2대대나 3대대 처럼 어디가 가까운 게 아니라 중간이라 어디가도 괜찮았다. 그래서 어차피 남쪽으로 가는 거라 보통은 운천에 가서 버스를 타는데 거기까지 가는데 애로사항이 많았다. 부대 앞이 43번 국도여서 버스를 한참 기다리거나 지나가는 트럭에 히치하이킹 하면 거의 태워줬다. 아저씨들이 낭만이 있었다.
3.2. 82전차대대 국가대표
사단에서 가장 시설이 좋은 부대 중 하나로 손꼽히며 바로 옆에 지포리 전차포 사격장을 끼고 있다. 철원군 갈말읍에 있지만, 21여단 통틀어 외박, 외출, 휴가 나갈 때 가장 편한 부대이기도 하다.신철원 읍내와 가까웠다.[1]
보병대대시절(2대대) 영내에 수영장이 있었다.
3.3. 138기계화보병대대 각흘
여단 본부 근처에 위치해있다. 주변에 산정호수와 운천터미널이 있어 면회나 출타 시 좋다.(여단본부에서 산정호수 걸어서 20분정도였는데 그래서 항상 행군코스에 들어가있었음.. 산정호수 꼴도 보기싫다)또한, 승진훈련장과 가까워 관리작업하러 가기도 한다.(매일 점심 여단 병영식당 와서 밥 가져감...) 승진훈련장과 가깝다 보니, 관리를 맡았던 3대대 장병들의 노고가 컸다.
2018년 9월부로 제1기갑여단으로 이관되었다.
보병대대 시절 2009년 KCTC에 참가했으며 전차대대 1개중대가 상주하였다.
예전 삼청교육대 부지로 추정된다.
4. 출신인물
역대 제21기계화보병여단장 | |||||
역대 | 이름 | 계급 | 임관 | 비고 | 기타 |
초대 | 박기병 | 예)소장 | 군영 | 前 제5관구사령부 사령관 | |
2대 | 김관오 | 예)소장 | 육사 특7기 | 前 육군 병무감 | |
3대 | 김용배 | 예) 대장 | 군영 | 前 육군참모총장 | |
00대 | 장호강 | 예)준장 | 육사 특8기 | 前 육군 특전감 | |
00대 | 노태우 | 예) 대장 | 육사 11기 | 前 국군보안사령관, 대한민국 대통령 | |
53대 | 송운수 | 예)소장 | 학군 24기 | 前 777사령관, 국군정보학교장 | |
54대 | 강인순 | 예)소장 | 육사 44기 | 前 20사단장,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 | |
55대 | 류홍렬 | 준장 | 육사 46기 | 前 육군본부 육군시험평가단장 | |
56대 | 손대권 | 중장 | 육사 47기 | 現 육군군수사령관 | |
57대 | 이종화 | 준장 | 육사 48기 | 現 육군본부 육군시험평가단장 | |
58대 | 최봉호 | 대령 |
5. 기타
5.1. 근무환경
사단본부와 꽤 멀리 떨어져있었다. 135기보대대의 경우 컨테이너 건물에서 생활하고 있었으나 2018년 135기보대대는 해체된 139기보대대의 막사로 이전하면서, 모든 예하부대는 신막사를 사용하고 있다.
6. 여담
- 1996년 2월 5일 MBC <우정의 무대>에 소개된 바 있다.
- 90년대에 21연대본부는 포천 영북면에 있었고 2개대대(1,2대대는 나중에 135기보대대, 82전차대대가 된다)는 철원군 갈말읍에 주둔하였다. 강포리 부대앞 1대대교회(임마누엘교회)가 있었으며 길건너 5공병여단 도하중대 장병들도 함께 이용하였다. 백골, 청성부대와 연대급 이상의 훈련이 많았으며 군단의 최북단 예비부대로서 철책부대를 백업하였다. 다른 곳도 그렇지만 부대주둔지 인근이 전력이 집중되는 지역이라 북한군 침공시 반드시 막아야할 길목이었다.
- 1997년 김포지역에서 호국훈련에 참가하였다. 5군단 예하시절 3군사령부 내에서 유일한 알보병예비사단이라 야외훈련량이 일반보병사단 중에는 1티어였다. 8사단과 11사단은 예로부터 훈련량이 많기로 유명했는데 3군지역에선 8사단, 1군지역에선 11사단이 차출단골고객이었다. 8사단은 수도권방어의 전략적 중요성, 11사단은 사령부예하라는 특수성때문에 단골손님이 되었다. 또한 승진훈련장 관리를 맡았던 3대대 장병들의 노고가 컸다.
[1] 가까운 신철원 터미널까지 위병소 기준 도보로 15분 이내로 도착 가능한 거리일 만큼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