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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3 01:44:03

제26기계화보병사단 포병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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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기계화보병사단 포병여단
第26機械化步兵師團 砲兵旅團
The 26th Mechanized Infantry Division Artillery Brigade
파일:불무리 포병여단 로고.png
기가 살아있는 최정예 공격부대
창설일 1953년 6월 18일(26사단 포병연대)
1994년 10월 1일(제26기보사단 포병연대)
2018년 1월 1일(제26기계화보병사단 포병여단)
해체일 2018년 11월 30일
상징명칭 불무리포병여단
소속 대한민국 육군
상급부대 제26기계화보병사단
규모 여단
역할 공격 부대, 전시 진격
해체 전 여단장 대령
위치 경기도 연천군

1. 개요2. 상세3. 예하부대
3.1. 여단직할대3.2. 제222포병대대 청룡3.3. 제228포병대대 화랑3.4. 제231포병대대 백호3.5. 제631포병대대 명중
4. 출신인물
4.1. 여단장4.2. 장교/부사관4.3. 병
5. 기타
5.1. 근무환경5.2. 여단가
6. 사건 사고7.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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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육군 제7기동군단 제26기계화보병사단 예하 포병여단이다.

2. 상세

3. 예하부대

3.1. 여단직할대

3.2. 제222포병대대 청룡

보통 신교대에서 겁을 제일 많이 주는 부대 중에 하나로서 (물론 어느 부대나 힘들다고 겁주지만...) 155 mm 자주포를 이용하고 막사는 구막사...한때 병영부조리가 최고로 달했던 부대이며 자살 및 탈영사고가 꽤 많았다. 사단 사령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예하대대이기도 하다. 실제로 사단내 최북단 부대이고 일부 전방 철책사단 예하 대대들 북쪽에 위치한다(경기도 내 최북단 포병대대라 카더라)[1] 그래서 포병여단 예하 부대에서 사고친 사람을 귀양...보내는 곳으로 쓰이기도 했다. 여단장이 낚시를 좋아하면 이곳에 있는 호수로 낚시를 하러 자주 왔기 때문에, 군자산 깊은 곳에 있는 부대임에도 위병 근무를 서는 병사들에게 긴장할 것을 많이 요구했다. 신병들 중 이곳에 걸리면 그냥 건투를 빈다... 였지만, 17년도 말에 구 65사단이 위치한 천보대로 이동하면서 631 대대와 함께 양주시에 위치했다.

3.3. 제228포병대대 화랑

연천군에 위치한, 여단 내 유이한 신 막사 대대. 각 생활관에 에어컨 다 달려있다. 대대급으로 한 건물에 4개 포대가 다 생활한다.[2] 연병장 옆에 인조잔디 풋살장이 있으며, 대대 뒤에도 깔끔한 농구장 겸 족구장이 있다 .체육관도 지을 예정이라고 한다. 식당을 새로 지었는데 훨씬 좋다.

155 mm 최신형 자주포를 사용했다.

하도 사건사고가 자주 터지다 보니 한때 대대를 없애버린다는 얘기까지 있었다. 대대장에 따라 다르지만 전통적으로 관리가 빡셌다. 훈련은 훈련대로 하고, 부대관리는 부대관리대로 하고.

전곡터미널에서 1시간에 1대 있는 56번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고 'ㅇㅇ리 8포요'라고 하면 기사님들이 알아들었다. 아니면 통상명칭(XXXX부대)을 대도 알아듣는다. 면회소는 위병소 바로 뒤에 붙어있어서 여름이 되면 면회소 건너편 정자에서 야외면회를 할 수도 있었다 겨울에도 할 수 있지만 연천의 겨울은 혹독하다 외출외박 시 위수지역은 과거 전곡까지였으나 동두천 지행까지로 확대되었다.

대대 안에 교회가 있으며 기독교 종교행사는 대대 교회에서 불교는 앞에도 말한 부대 바로 뒤에 있는 절, 그리고 천주교는 여단본부로 갔다.

3.4. 제231포병대대 백호

26사단 신교대에서 포병으로 주특기를 받은 사람들이 잠깐 제2신교대로 이용했던 곳이기도 하다. 동두천이나 연천군 전곡읍에서 택시에 타서 "ㅇㅇ리 포대요." 라고 하거나, 동두천 중앙역 역전 사거리 정류장에서 52번을 타고 가면 갈 수 있었다.

155 mm 자주포를 사용하며 신 막사를 사용했다.

2008년 완공된 신막사 시설이 정말 좋은 편이었다. 통합 막사라서 본부포대 참모부 행정병들은 근무를 제외하고는 막사 밖으로 나갈 일이 별로 없었다. 신 막사는 과거 알파, 브라보 포대와 대대본부가 있었던 자리에 건물을 허물고 자리잡았다. 알파 포대는 완전이 헐렸고 브라보 포대는 건물이 살아남아 신 막사가 완공될 때까지 구 막사에서 잘 먹고 잘 지냈다. 바야흐로 2005년 여름 8월의 태양빛이 따갑고 8시 되도록 해가 지지 않는 시절, 우리는 그 좋은 축구 한 판을 못하고 임시막사 건설 노동현장에 투입됐다. 군대의 특성상 고물 같아도 버리는 일이 없었기에 막사 이전은 정말 아찔했다.

개인장구는 물론 사지방 컨테이너부터 보도블럭용 벽돌, 빨래 건조 겸 헬즈장이었던 비닐 하우스까지 난리가 났었다. 대대본부(현재의 신 막사 정중앙) 앞이 예전엔 잔디밭이었다. 대대주임원사가 그 잔디떼도 아까웠는지 두께가 최하 25 cm 이상되는 떼를 포상에 옮겨 심으라 지시했다.

알파 포대와 브라보 포대의 포상은 신 막사와 가까워 기동에 문제는 없지만, 차리포대는 비상거리면 산 중턱까지 올라가야 한다. 거기서 군생활 2년을 했지만 그 차리포대 포상에 가보지 못한 것으로 보아 꽤 먼 것으로 추정된다. 때문에 이전에 쓰던 구 막사는 분리수거장으로 이용한다. 신 막사 대대본부 내부에 있는 각 포대 지휘소는 당시 육사 출신 사격지휘장교와 FDC분대장이 이기자 부대 신 막사를 견학하고 벤치마킹하여 일괄적으로 만들었다. 디자인은 비슷하게 하지만 중대마다 색깔이 달라 어떤 곳은 아기자기하고 어떤 곳은 휑했다.

제2신교대 때 조교들이 이곳으로 배치를 받은 훈련병들에게 "저기 분리수거장 보이지? 저기가 니네 막사야." 설명해준다. '설마...' 생각하는데 맞다. 특이하게도 차리 포대가 산 위에 걸쳐 있어서 포까지 뛰어가는데 상당히 힘들다. 매우 많이. 제28보병사단 신교대가 이 부대 앞에 있어서 식사시간에 훈련병들의 하나둘셋넷 고함소리가 자주 들린다. 영내에 교회는 있지만, 사찰이나 성당이 없는 관계로 28사단 신병교육대대로 예불과 미사를 드리러 간다.[3]

8.20 완전작전 유공부대였다. 이곳에서 2015년 서부전선 포격 사건 대응사격을 발사하였다. 주둔지에서 포를 쏘는 광경은 당시 대대에서 가장 짬이 높은 부사관조차도 처음 보았다는 후문. 게다가 주둔지에서 포를 발사하여 포상 근처 유리창이라는 유리창은 다 박살났고, 상황해제 이후 잔해를 치우는 데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후 엄청난 높으신 분들이 왔다 가셔서 병사들이 엄청나게 고생했다. 육군참모총장제3야전군사령관ㆍ6군단장ㆍ사단장ㆍ6포병여단장ㆍ문재인(당시 새정치민주연합대표)[4] 등이 다녀갔고, 심지어 육군참모총장은 취임 후 첫 야전부대 방문을 이곳에 왔다. 심지어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도 다녀가는 바람에, 높으신 분들이 오시기 전까지 부대에서 제초가 어떻게 되는지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육군참모총장 방문 시에는 사단장마저 얼어버리는 엄청난 광경을 고작 일개 대대병사들이 목격할 수 있었다. 그 후 8.20 완전작전을 기념하여 8월 20일에 부대개방행사를 진행했는데, 사단장이 방문하기에 병사들이 죽어나갔다고 한다.

3.5. 제631포병대대 명중

다른 포병대대보다 먼저 신형 자주포를 사용했다. 훈련이 장난 아니게 많아서 다른 포병대대들이 훈련을 안 나가도 여긴 나간다. 다른 곳들과는 달리 독립포대라 악명이 높고 실제로 매우 빡셌다. 본부포대는 구 막사지만, 위병소만 나가면 도보 3분 거리에 편의점과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신형 자주포라 다른 부대가 부러워했지만, 이곳 병사들은 구형 써도 되니 제발 훈련 좀 어떻게 해달라며 징징대었다. 구 막사를 사용하는데, 다른 대대의 분리수거장과 시설 수준이 한치도 다르지 않았다. 리모델링 한다는 소리는 군생활 내내 들을 수 있지만 정작 언제 실행될지 모른다.

자주포 부대로 바뀌기 전에는 포병연대 전체가 견인포부대였는데, 222ㆍ228ㆍ231대대는 105 mm 견인포(일명 딱총)였고 631대대만 155미리 견인포대였다. 1993년(?) 쯤부터 자주화부대로 개편하였다. 631대대는 지리여건상 본부포대가 한탄강 유원지 바로 옆에 위치했고, 포대의 규모상 독립포대로 구성되어 병영생활은 나름 자유로웠다. 그러나 영역이 넓다보니 야간초소가 여럿 있어 하룻밤에 야간보초를 2번 서는 경우가 많아서 한겨울에는 정말 고역이었다.

92년도부터 94년에 한화 최향남 선수가 631 찰리포대에 근무 했었다. 발싸이즈가 300이 넘어 포대장이 미국군화를 사다가 줬다는 소문이 있고, 최향남을 위해 조그마한 훈련장을 만들어 일과시간외 투구연습을 하게 배려했다는 소문도 있다.

4. 출신인물

4.1. 여단장

볼드체대장 진급이 된 연대장 및 여단장.
||<-6><bgcolor=#192189> 역대 제26기계화보병사단 포병여단장 ||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초대 000 예) 대령 육사 00기 연대장
00대 대령 여단장

4.2. 장교/부사관

4.3.

5. 기타

5.1. 근무환경

사단 직할대나 보병여단이 양주를 중심으로 동두천, 포천 쪽에 주둔하는 데 반해 포병여단 본부와 직할대대는 모두 연천에 있다. 이 때문에 양주 신교대에서 대기 타던 보충병들이 포병 걸리면 좌절한다 카더라. 그래도 여단본부와 명중대대는 전곡읍에서 걸어 갈 수 있는 위치라 외박이나 휴가 시에는 시간적으로 용이했다. 서울이 집이라면 집에서 점심 먹고 천천히 가도 됐다. 서울에서 오후 3시에 나가도 5시 전에 부대복귀가 가능할 정도.

여단본부는 구 막사이고 여타 사단의 연대본부나 여단본부와는 달리 구성원들이 적어 부대 규모는 조촐했다.

기계화보병사단이니 만큼 여단 내 모든 화포는 155 mm 자주포였다. 연천에 주둔하다 보니 사단 내 보병여단을 지원하기도 하고, 연천에 주둔한 5사단이나 28사단과 함께 훈련을 하기도 했다. 오히려 사단보다는 5사단28사단ㆍ6포병여단 등과 더 가까워 이쪽에 친밀감이 더 생겼다(...) 26사단이 군단 기준포 역할을 했기에 더욱더 그랬다. 심지어 해병대 포병 3사단 9사단 등 거리상으로 매우 떨어진 부대와도 합동훈련을 하며 미군과도 한미화력훈련을 한다. 자세한 내용은 군사기밀이라지만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대대와 포반까지도 나오는 현실.

특이점이라면 대부분 군 부대는 담장이 매우 높고 벽돌로 쌓아 부대 내부를 살필 수 없지만, 이곳은 부대를 철조망으로 둘러 내부가 다 보였다. 부대가 한탄강변에 있어서 여름 장마철 집중호우가 있으면 매우 높은 확률로 위병소까지 물이 올라오고 심하면 연병장까지 침수된다. 그럴 때마다 담이 무너져서 매번 보수할 수는 없기 때문에 철조망으로 부대벽을 대신한다. 침수되면 여단병력으로는 보수할 수 없어서 대대병력을 차출하여 수리했다. 침수될 때면 부대 진입로가 물에 잠겨 보급이 중단되므로, 부대원들이 더플백 매고 산을 넘어 주변 부대에서 부식을 수령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기간에 휴가 나간 병력이 있다면 복귀를 연기했다.

여단 내 유일한 성당이 있어 종교활동이 있는 날이면 여기저기서 군용 버스가 왔다(...) 하지만 정작 천주교 군종장교 신부가 사단에 한 명밖에 없으므로 2주에 한 번씩 온다. 안 오는 주에는 그냥 한 시간 노는 거다. 여단 내 기독교 군종병이 되면 부대가 아니라 부대 밖 교회에서 생활했다.

정식 PX가 없었다. 부대인원수가 1개포대(중대) 병력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충성클럽 파견대라는 이름으로 운영된다. 일과시간 중에는 문을 닫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담이지만 부대 중앙에 수백 년 된 목련 나무가 있는데, 성인 남자 3명이 둘러야 할 정도로 크다. 매년 봄 목련꽃이 필 때면 장관이다. 야간근무 교대할 때면 부대 전체가 목련향으로 물든다.
별도의 여단가가 있어서 포병들은 신교대이후 사단가를 부를일이 없고 행사에서는 여단가를 부른다 그래서 신교대 출신들도 대부분 사단가를 잊어먹고 논산 출신이라면 아예 알리가 없다.

5.2. 여단가

26사단 포병 여단가

한탄강 푸른물결 남아패기 드높이고
젊음의 힘찬기상 이곳에 널렸다
명중탄 뇌성포곡 지축을 흔든다
전우여 전진하자 백두산 천지까지
우리는 야전의 주축
공격의 선봉
힘찬 걸음 약진하는 불무리의 포병여단

6. 사건 사고

7. 여담


[1] 실제로 부대 바로 근처에 28사단 예하부대들이 포진했다.[2] PX, 헬스장, 대대목욕탕, 사지방 등 도 다 한 건물에 있어 편하다.[3] 그것 때문에 금토일 당직부사관들이 골치 아팠다. 주말 종교를 변경하는 사람이 많은데, 어쨌든 병력이 영외로 나가는지라 지휘통제실은 언제나 가장 정확한 인원을 원하기 때문이다.[4]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 자격으로 방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