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2-16 15:28:55

LG정보통신

LG정보통신
LG Information & Communications
파일:LG정보통신 기본로고.jpg
정식명 엘지정보통신 주식회사
영문명 LG Information & Communications Co., Ltd.
국가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업종명 통신 및 방송 장비 제조업
설립일 1976년 10월 6일
해체일 2000년 9월 1일
소재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로 508 (역삼동)
규모 대기업
상장 상장폐지
시장 유가증권시장 (1995년 ~ 2000년)
종목코드 011650
형태 피합병법인
1. 개요2. 역사3. 역대 대표이사4. 참고 자료

[clearfix]

1. 개요

LG 계열 종합 통신기기 제조사다.

2. 역사

1976년 대한전선이 세운 '대한반도체'가 기원이다. 1979년 금성사금성통신, 금성전기 3사에 공동 인수되어 '금성반도체'로 사명을 바꾸고 그룹 내 반도체 사업을 그쪽으로 이관시켰다. 1980년 경북 구미에 반도체공장을 세우고 미국 웨스턴 일렉트릭 사와 전자교환기 사업 합작투자 및 기술제휴 계약을 맺었으며, 대한전선 측의 지분도 전부 사들였다. 1981년부터 WE와의 합작투자회사로 전환 후 국내 최초의 미니컴퓨터 'GS Level-6'를 생산했고, 1982년에는 미국 하니웰 사와의 기술제휴와 관련해 컴퓨터 사업을 금성사에 넘기기로 결의했다. 또한 한국전자기술연구소와 'UNIX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1983년 구미 반도체공장 내에 연구소를 세운 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서니베일에 첫 해외 사무소를 열었고, 1984년 국내 최초의 8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 'Z80'을 개발했다. 같은 해에는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번째로 'CMOS 게이트어레이 제조공정'을, 국내 최초로 반도체 TTL(논리소자) 및 정전압 IC를 개발했다.

1985년 이탈리아 올리베티와 합작해 '금성소프트웨어'를 세운 후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번째로 CMOS 64K D램을 개발했고, 동년도에 1986 서울 아시안게임 및 1988 서울 올림픽 종합 정보통신망 공급자 겸 후원자로 지정됐다. 또한 세계 3번째로 1메가 ROM도 개발해냈다. 1986년 한국전자통신연구소 구미분소를 인수한 후 국내 최초로 CENTREX(내부통화장치)의 국산화에 성공했고, AT&T의 미니컴퓨터 3B20S의 국산화도 달성했다. 또한 국내 최초로 HC MOS형 스탠다드 셀 기술을 개발하고 고성능 32비트 중형 유닉스 컴퓨터를 개발한 뒤, 서울 아시안게임 종합정보망(INS) 운용도 개시했다. 1987년에는 금성사 및 럭키엔지니어링과 함께 소프트웨어 개발부문을 금성소프트웨어에 넘겼고, 금성전기로부터 전송사업을 이관받았다. 같은 해 국내 최초로 가입자 방송장치를 자동화하고 금성통신으로부터 사설교환기(PBX) 연구부문을 이관받았으며, 세계 최초로 컬러TV의 4대 기능 및 주변회로를 장착한 단일 HIC를 개발했다. 또한 금성통신으로부터 PBX 사업을, 금성전기로부터 팩시밀리사업을 각각 넘겨받고 컴퓨터사업부문을 금성사로 넘겼고, 1988년 초부터 금성사의 시스템사업을 넘겨받았다. 같은 해 국내 최초로 이더네트(Ether Net) 시스템을 개발하고 무선호출기를 발매해서 이동통신기기 사업에 발을 넓혔다. 1989년 한국전기통신공사 서울중앙전화국에서 국내 최초로 대도시형 전전자교환기 '5ESS'를 개통시킨 후, 그룹이 추진하는 'V프로젝트'에 따라 반도체 사업을 금성일렉트론으로 넘겼다.

1990년에 '금성정보통신'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자체 종합정보통신망 'VLANIC'를 구축한 후, 1991년에 국내 최초로 베트남에 STAREX-TD 전자교환기를 수출하여 현지 개통도 처음 달성했다. 같은 해 루마니아 일렉트로 마그네티카 사와 합작해 첫 해외법인 'EMGS'를 세웠고, 국내 최초의 인공위성 '무궁화호' 제작사로 선정됐다. 1992년 국내 최초로 무선 PBX를 개발하고 중국 화광전자집단공사와 합작해 '화금통신설비유한공사'를 세웠다. 1995년 그룹명 변경에 따라 사명을 'LG정보통신'으로 바꾸며 AT&T와의 합작관계를 청산한 뒤, 세계 최초로 CDMA 방식 이동통신시스템의 개발 및 상용화를 달성하고 한국증권거래소에 주식상장했다. 1996년 미국 PCS 통신사인 넥스트웨이브 사에 자본참여한 뒤 정보통신부로부터 PCS 사업권을 따내 LG텔레콤을 세웠으며, 국내 최소형인 190g짜리 플립형 휴대폰 '프리웨이'를 출시했다. 1997년에는 단말기 생산라인을 가산동으로 확장이전 뒤 국내 최초로 PCS폰 '싸이언'을 출시했으며, 미국 아메리테크에 CDMA 디지털 단말기를 처음 출하했다. 1998년 LG전자로부터 시스템사업부문을 넘겨받고 세계 최초로 옥외형 PCS 광중계 기지국장치를 개발 및 상용화했으며, IMT-2000 개발을 위해 '차세대 통신연구단'을 발족하고 한국증권거래소로부터 우수공시법인으로 선정됐다. 같은 해 LG전자로부터 통신기기 및 IPC사업부문, 청주 유무선단말기 공장을 넘겨받고 세계 최경량(62g) PCS폰(LGP-6400)을 개발해냈다. 1999년에는 IMT-2000 시스템을 개발하고 2000년 미국 스프린트 사와 인터넷폰 수출계약을 맺고 스웨덴 에릭슨과 포괄적 업무협정을 맺었으며, 같은 해 LG전자에 합병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3. 역대 대표이사

4.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