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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0-03-16 19:58:00

LG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대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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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번 기업집단명 동일인 지주회사 주요 상장법인
(볼드체 코스닥 상장법인)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대기업)
1 삼성 이재용 삼성물산(사업)
삼성생명(금융)
MC SDI 삼바 SDS 삼엔 전기 전자 삼중 S-1 제일기획 호텔신라
증권 카드 화재
2 현대자동차 정몽구 현대모비스 기아차 이노션 건설 로템 모비스 B&G스틸 오토에버 위아 제철 현대차 증권
3 SK 최태원 SK주식회사 SKC 솔믹스 SKM SKBL SKB(3) SKI SKT SKH 나노엔텍 부산가스 드림어스 SM코어
인크로스 SKD SKG 케미칼 SKD&D SKN 렌터카 SKC코오롱PI(2,7) 증권(6)
4 LG 구광모 LG LGD LG상사 LG생건 LGU+ LGI LGE LGH LGC LG헬로 로보스타 실리콘웍스 지투알
5 롯데 신동빈 롯데지주 리츠 손보(6) 쇼핑 화학 통신 제과 칠성 케미칼 푸드 하이마트
6 한화 김승연 한화 갤러리아 생명 손보 시스템 케미칼 에어로스페이스 증권
7 GS 허창수 GS GS건설 GS글로벌 GS리테일 GS홈쇼핑 삼양통상 자이 S&D
8 현대중공업 정몽준 현대중공업지주 건설기계 미포조선 에너지솔루션 일렉트릭 한국조선해양&대우조선해양(4)
9 신세계 이명희 이마트(마트)
신세계(백화점)
광주신세계 신세계 I&C 신세계건설 신세계인터내셔날 신세계푸드
10 한진 조원태 한진칼 대한항공 한국공항 한진 진에어
11 CJ 이재현 CJ CGV 대한통운 씨푸드 ENM 제일제당 프레시웨이 스튜디오드래곤
12 두산 박정원 두산 건설 밥캣 인프라코어 중공업 오리콤 솔루스 퓨얼셀
13 부영 이중근 부영(9) 없음
14 LS 구자홍 LS E1 LS네트웍스 LS산전 LS전선아시아 가온전선 예스코홀딩스
15 대림 이준용 대림산업 고려개발 대림씨엔에스 삼호
16 미래에셋 박현주 미래에셋캐피탈(9) 미래에셋대우 미래에셋벤처투자 미래에셋생명
17 현대백화점 정지선 현대백화점 에버다임 한섬 현대그린푸드 현대리바트 현대HCN 현대홈쇼핑
18 효성 조석래 효성지주 갤럭시아SM 갤럭시아컴즈 신화인터텍 진흥기업 ITX 중공업 첨단소재 티앤씨 화학
19 한국투자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없음
20 영풍 장형진 영풍 고려아연 시그네틱스 영풍정밀 인터플렉스 코리아써키트
21 하림 김홍국 하림지주 선진 엔에스쇼핑 팜스코 팬오션 하림
22 교보생명 신창재 교보생명(9) 교보증권
23 금호 박삼구 금호고속(9) 금호산업 아시아나항공(2) 아시아나IDT(2) 에어부산(2)
24 코오롱 이웅열 코오롱 글로벌 머티리얼 생명과학 인더스트리 티슈진 플라스틱 SKC코오롱PI(2,7)
25 OCI 이우현 OCI 삼광글라스 유니드 유니온 유니온머티리얼 이테크건설
26 카카오 김범수 카카오 없음
27 HDC 정몽규 HDC HDC아이콘트롤스 HDC현대EP HDC현대산업개발
아시아나항공(1) 아시아나IDT(1) 에어부산(1)
28 KCC 정몽진 KCC KCC건설 코리아오토글라스 KCC글라스
공시대상 기업집단(준대기업)
29 SM 우오현 삼라(9) 남선알미늄 대한해운 티케이케미칼
30 중흥 정창선 중흥건설(9) 없음
31 HTG 조양래 HTG 한국아트라스BX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32 세아 이순형 세아제강지주 세아베스틸 세아제강 세아특수강 세아홀딩스
33 태광 이호진 태광산업 대한화섬 흥국화재
34 이랜드 박성수 이랜드월드(9) 이리츠코크렙 이월드
35 셀트리온 서정진 셀트리온홀딩스(9) 셀트리온 셀트리온제약 셀트리온헬스케어
36 DB 김준기 DB DB금융투자 DB손해보험 DB하이텍
37 호반 김상열 호반건설(9) 없음
38 네이버 이해진 네이버 라인(8) 야후재팬 (7,8)
39 태영 윤세영 태영건설 SBS SBS미디어홀딩스 SBS콘텐츠허브
40 넥슨 김정주 엔엑스씨(9) 넥슨지티 넷게임즈 넥슨재팬(8)
41 동원 김재철 동원엔터프라이즈(9) 동원F&B 동원산업 동원시스템즈
42 한라 정몽원 한라홀딩스 만도 한라
43 아모레 서경배 아모레G 아모레퍼시픽
44 삼천리 이만득 삼천리 없음
45 동국제강 장세주 동국제강 인터지스
46 유진 유경선 유진기업 동양 유진투자증권 한국특수형강
47 금호석화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없음
48 하이트진로 박문덕 하이트진로홀딩스 하이트진로
49 넷마블 방준혁 넷마블 코웨이
50 애경 장영신 AK홀딩스 애경산업 애경유화 제주항공
51 다우키움 김익래 다우데이타 다우기술 미래테크놀로지 사람인 키다리스튜디오 키움증권 한국정보인증
(1) 인수 진행중, (2) 매각 진행중, (3)상장 심사중, (4)기업결합 심사중(분할합병), (5) 인적 분할 재상장 예정, (6) 지배력 상실, (7) 조인트 벤처 (8) 해외증시 상장법인 (9) 비상장 지주회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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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열사
지주회사 주식회사 LG
전자 LG전자 | LG디스플레이 | LG이노텍 | 실리콘웍스
화학 LG화학 | LG하우시스 | LG생활건강 | 코카-콜라 음료 | 해태htb | 더페이스샵 | LG TOSTEM | LG MMA | 팜한농 | 씨텍
통신·서비스 LG유플러스 (LG헬로비전) | LG CNS | LG상사 | S&I코퍼레이션 (곤지암리조트) | 판토스 | GIIR | HS Ad | LG경제연구원 | LG경영개발원 | LG스포츠 (LG 트윈스 · 창원 LG 세이커스)
CSR
공익재단 LG연암문화재단 | LG복지재단 | LG상록재단 | LG연암학원 (연암대학교 · 연암공과대학교) | LG상남언론재단
사회공헌 LG 의인상
방계 기업
LS그룹 | GS그룹 | LIG그룹 | 아워홈 | LF | 깨끗한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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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설립일 1947년 1월 5일
본사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대로 128 (여의도동)
창업주 구인회, 허만정
회장 구광모
유형 대규모 기업집단
규모 대기업
성장 여부 성장기업
사업분야 전자, 화학, 통신
시가총액 93조 100억원 (2020년 2월 17일 기준)[1]
링크 LG그룹 홈페이지
1. 개요
1.1. 역사1.2. 범 LG의 금융잔혹사1.3. 반도체 잔혹사
2. 기업정신
2.1. 창업이념2.2. 기업이념2.3. 비전
3. CI
3.1. 변천사3.2. 사명 변경 후 CI 통합
4. 슬로건5. 사가
5.1. 럭키금성 시절 가사5.2. 현재의 가사
6. 특징
6.1. 독립운동 지원? 6.2. 사회 환원 활동
7. 계열사
7.1. 지주회사7.2. 전자 부문7.3. 화학 부문7.4. 통신·서비스 부문7.5. 기타7.6. 범 LG가 기업들7.7. 매각/독립된 회사7.8. 해산된 회사7.9. 사회 공헌
8. 오너 일가9. 지주회사 지배구조10. 경영진
10.1. 회장급10.2. 부회장급10.3. 사장급10.4. 역대 그룹임원
11. 취업12. 기타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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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위치한 쌍둥이 건물이며 LG 트윈타워라고 불린다.
대한민국의 대규모 기업집단. 2020년 기준으로 자산총액 기준 국내 재계서열 4위이다.[2] 시가총액 기준으로는 국내 3위이다.[3]

LG화학(구 럭키)과 LG전자(구 금성사)가 주요 계열사이다. 금성사는 삼성그룹, 효성그룹과 함께 '성(星)'자 돌림이었는데 세 재벌 가문 사이에 친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과 삼성 이병철 회장, 효성 조홍제 회장은 진주 지수초등학교 동창으로 구 회장과 이 회장은 사돈 사이였는데, 삼성이 전기·전자 제품으로 진출하자 LG 쪽에서 삐쳐서 사이가 멀어졌다고 한다. 당시 구인회 회장과 이병철 회장이 담소를 나누다가 이병철 회장이 "전자업종에 진출한다"[4]고 하자 구인회 회장이 "사돈이 하는 업종에 뛰어드는 상종 못할 사람"이라고 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고 한다. 그래도 2018년 구본무 회장의 장례와 2019년 구자경 명예회장의 장례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조문한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앙금이 풀린 듯 하다.[5]

과거에는 그룹의 주력인 저 두 회사의 이름을 따 럭키그룹 또는 럭키금성그룹이라고 불렸다. 락희화학의 사세가 커져서 그룹의 형태로 처음 조합되던 시절의 명칭은 럭키그룹이었다. 그러다가 금성사의 위세가 높아지면서 (주)럭키와 금성사가 양대 주력 계열사로 성장하면서 1980년대 그룹의 공식 명칭을 럭키금성그룹으로 개명하게 된다.

1995년 구본무 회장이 취임하면서 그룹명을 LG로 바꾼다. 그룹에선 LG가 무슨 뜻인지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모두들 Lucky와 Goldstar의 앞글자를 딴 것이란 사실을 안다. '럭키금성'그룹이던 시절 줄임말로 '럭금'이라고 부르기도 했었는데, 구자경 회장은 그걸 상당히 싫어했다고 한다.

친족들에게 방계 계열사들을 모두 분리한 후에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완료하였다. 현재는 순환출자 없이 지주회사인 (주)LG 아래로 수직적인 계열사 구조를 가지고 있다. 2017년에 구본준 부회장 중심의 전면적인 조직개편을 연내 단행했다.

각종 만악의 근원으로 오해받는 한국의 재벌가 중 욕을 덜 먹는다.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잘했고, 오너 일가가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잘 하고 있고, 경영권 분쟁 없이 GS와 계열분리도 무난히 했고, 주주배당도 잘 하는 편. 특히, LG전자의 유상증자 때는 무감자 유상증자라는 초강수 때문에 화제가 됐을 정도. 한국 재벌가로서는 이례적인 행보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어디까지나 욕을 상대적으로 먹는거지 먹는 것은 아니다. 탈세 의혹, 비자금 조성 의혹, 하청업체 착취 논란, 뇌물수수, 비정규직 대우 문제 등 LG도 논란이 될만한 흠결은 꽤 있다. 그래도 최근 국민여론의 가장 중점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그나마 재벌 중에서는 관련이 적은 것으로 알려져 타 재벌들과는 달리 치명상은 면했다.

현시대에서 LG는 삼성, SK, 현대를 비롯한 다른 그룹에 비해 경영형태와 기업문화가 경직성이 강하고, 특히 오너 일가가 서초동(검찰청)에 가는 것을 한사코 꺼리기로 유명하다. 실제로 LG는 국내 5대 재벌(삼성, 현대, SK, LG, 롯데) 중 유일하게 사법 처리를 한 번도 받지 않았다. 그리고 최순실 게이트에서 삼성과 달리 무관해서 이미지면에서 여러 이득을 보았고, 이재용은 상속 문제로 감옥에 갔고 다시 감옥에 갈 확률이 높은 상황에서 구광모의 LG 승계는 거액의 상속세를 냈지만 그야말로 깔끔하다. LG만의 장단점이 있는 셈. 그룹 분가 역시 GS, LS, LIG를 비롯한 방계들이 독립할때 어떠한 잡음 하나 없었다. 대신 SK, 롯데 등이 아직 분가와 독립을 하지 않아서 LG와 경쟁하거나 더 큰 규모의 재벌이 된 것을 생각하면 꼭 장점만은 있는 건 아니다. 단적으로 계열분리한 범 LG가를 합치면 자산 220조 이상의 재계 2위 규모이다. 경쟁 기업들이 합병으로 거대규모의 하나의 기업으로 경쟁력을 강화하는 트렌드에서 LG 방계들의 독립은 LG의 경쟁력을 악화시켰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만약 방계들이 독립하지 않았으면 LG의 사이즈와 경쟁력은 넘사벽이었다. 이제 독립할 방계들은 모두 정리되었으니 앞으로 LG가 어떤 식으로 다시 치고올라올지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1.1. 역사

일제 강점기인 1931년 7월 연암 구인회 창업주가 경상남도 진주에 구인회상점을 개업한 것을 시초로 보기도 한다. 1941년부터 허씨 일가와 동업을 시작하였다.

해방 이후 1947년에 경남 부산에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를 설립했으며 '럭키크림'이라는 이름으로 그 유명한 동동구리무(화장품)를 제조, 판매하였다. 대한민국 최초로 플라스틱을 생산한 전력이 있고, 대한민국 최초의 연고 치약인 럭키치약을 개발하기도 하였다. 1953년 서울사무소를 열고 락희산업(현 LG상사)을 세워 무역업을 시작한 후 1958년 금성사(현 LG전자)를 설립해 이듬해 국산 라디오를 처음 생산했다. 1966년 최초로 흑백 텔레비전 생산을 시작했다.

1968년에 기획조정실을 신설해 그룹의 형태를 갖추었고, 1969년 그룹본부를 서울 종로구 관철동 대왕빌딩으로 옮겼다. 그해 구인회 회장이 별세하고 1970년에 장남인 상남 구자경이 가업을 이어받아 국제증권을 세워 금융업에도 손을 뻗었다. 1971년 서울 중구 도동 삼주빌딩으로 이전 후 1979년에 처음으로 그룹 로고를 도입하고 1983년 그룹명칭을 럭키그룹에서 럭키금성그룹으로 변경하였고, 1984년 새 CI로 변경하였다.

1984년 인하우스 광고기획사인 LG애드가 발족되면서 처음으로 'LG'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이후 1980년대 후반부터 LG카드LG 트윈스 등으로 LG라는 명칭은 그룹 내에서 점차 확대되기 시작한다. 1987년 여의도 럭키금성트윈타워로 이전 후 이듬해에 종합연수원 '인화원'을 열었다. 1990년 기업이념을 변경하고 이듬해부터 주요 계열사에 '사업문화단위(CU)'를 도입해 기업 단위가 아닌 업종 단위로 사업군을 나눴으며, 1995년에 그룹명을 LG그룹[6] 으로 그룹 명칭을 수정하고, 럭키ㆍ금성ㆍ럭키금성ㆍ희성ㆍ반도ㆍLG 등이 혼재되어있던 각 계열사들의 명칭을 LG로 통일하였다. LG 트윈스가 전년도에 잘 나가서 야구 좋아하는 회장이 그룹 명칭을 야구팀 따라 갈아 버렸다는 말이 있으나 그룹에서는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물론 수출 지향형 제조업 기업으로서 해외 시장을 고려한 CI 재정비 작업의 일환이었다고 보는게 더 타당하다. 그해 구자경 회장이 명예회장으로 일선에서 물러나고 화담 구본무 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하여 '3세 경영체제'를 이룩해냈다. 1998년 책임경영제를 도입하고 2001년과 2002년에 기존 LG화학과 LG전자 법인을 'LGCI'와 'LGEI'란 지주사로 각각 출범시킨 후, 2003년에 두 회사를 합쳐 '(주)LG'란 통합 지주사를 출범시켰다.

2004년에 허씨 일가를 중심으로 'GS홀딩스'가 세워졌고, 2005년에 57년 동업 관계를 청산하고 구씨 일가와 허씨 일가가 LG그룹을 분리하여 허씨 일가는 GS그룹을 경영하게 된다. 그 밖에도 분할된 기업이 많은 편이다. 이 기업들을 통틀어서 부르는 말이 범 LG그룹이다. 애초에 구씨와 허씨의 동업으로 시작하였고 그룹 성장 과정에서 회장의 형제들의 역할이 컸기 때문에 현대그룹만큼이나 방계그룹의 규모가 크고 계열사가 많다. 구씨 일가와 허씨 일가의 동업관계와 많은 형제들로 인한 내부분란을 막기 위하여 인화를 상당히 강조하였다.[7] 그래서 그런지 방대한 가계에도 불구하고 가족간에 경영권 분쟁이나, 계열 분리시 잡음이 거의 없었다. 두 가문이 무려 65년 간 동업관계를 유지했다는 것도 대단한 사실이다. 특히나 롯데家에서 왕자의 난이 발생하자 재평가받기도 했다.


1.2. 범 LG의 금융잔혹사

범 LG그룹은 유달리 금융업과 인연이 없다. 본래 신용카드, 증권, 화재보험을 위시로한 금융업은 90년대까지는 전자, 화학과 함께 LG그룹의 삼각편대라고 할 정도였으나, 2000년대가 시작하자마자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원래 단자회사 금성투자금융이 전환된 보람은행은 IMF 시절 하나은행에 합병되었다.

LG할부금융은 LG카드에 합병되었고, 그 천만인의 카드라던 LG카드신한금융지주에 인수되어 신한카드에 합병되었다. 이 때 채권단의 지원을 받는 대신 LG투자증권을 매각하기로 발표한다. LG투자증권이 사실상 LG금융의 지주회사격이었기에 이는 LG의 금융업 포기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LG투자증권·LG선물·LG투자신탁우리금융지주에 매각되었다가, 우리금융 민영화로 다시 다 팔려나갔다. 증권은 우리증권과 합병, 우리투자증권이 되었다가 다시 농협금융에 팔려 NH농협증권과 합병,NH투자증권이 되었다. 선물은 우리선물이 되었다가, 증권과 같이 농협에 팔려 NH농협선물과 합병, NH선물이 되었다. 투신은 우리투자신탁과 합병, 우리자산운용이 되었다가, 키움증권에 팔려 키움투자자산운용이 되었다. 부민상호저축은행은 SLS그룹을 거쳐, 한국·진흥·경기저축은행에 매각되어 영남상호저축은행이 되었다가, 저축은행 사태로 파산, 경은·부산·토마토2저축은행과 함께 가교저축은행인 예솔저축은행으로 흡수된 후 기업은행에 인수되어 IBK저축은행이 되었다.

IMF 이후 김대중 시절 LG의 차세대 먹거리는 금융으로 잡힌 적이 있었고, 실제로 매물로 나왔었던 대한생명을 인수하려 시도했던 적이 있었다. 생보사 2위를 다투던 대한생명을 인수해서 LG의 금융계열을 삼성의 금융에 못지않을 정도로 강화시키려 했다. 이러면 정말 삼성의 기업 포트폴리오와 비슷해진다. 하지만 너무 비싸다는 그룹 내 의견에 결국 구본무 회장은 인수를 하지 않기로 하고, 대한생명은 한화에 매각되어 한화생명으로 개칭한다. 어차피 대한생명을 인수했어도 머지않은 LG카드 사태를 생각하면 인수해봤자 도로 정리했을 것이다. 향후 금산분리 이슈건까지 있으니 LG그룹 차원에서는 지주회사 체제 개편처럼 미리 금융사를 선제 정리해서 잡음없이 금융 정리를 끝냈다는 성과는 있다.

이와는 별개로 LG화재를 주축으로 분가하여 범LG계열에서 금융은 최고 전문가라고 불렸던 LIG그룹 역시 이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LIG생명이 시너지효과 저조를 이유로 우리금융지주에 매각되어 우리아비바생명이 되었다가, 우리금융의 민영화 과정에서 NH농협은행에 매각되었고, 인수한 지 1년도 안 되어 다시 DGB금융지주에 팔려 DGB생명이 되었다. 그룹의 모체인 LIG손해보험은 오너의 무리한 건설업 진출과 그에 따른 회사채 사기발행의 뒷감당을 위해 매각, KB금융지주에서 인수하여 KB손해보험이 되었다.

LG증권 매각이후 범 LG가 중 LS그룹에서는 친척이자 금융전문인 LIG그룹과 함께 증권사 설립을 추진하였으나, LS는 종합증권을, LIG는 단종증권을 희망하였기에 의견 차이로 결별하였다. LIG그룹에서 설립하였던 LIG투자증권(現.케이프투자증권)은 LIG손해보험 매각시 같이 팔렸다가, 인수자인 KB금융에서 여러 사정 때문에[10] 지점을 모두 폐쇄하고 여의도 본점영업부만 남겨 덩치를 줄인 후 '케이프 인베스트'라는 조선기자재업체에 매각하였고, 사명도 케이프투자증권으로 바뀌었다.

LS그룹의 오너들이 금산분리 때문에 사모펀드를 통해 우회하여 인수하였던 이트레이드증권(現.이베스트투자증권)은 재매각하기 위해 노력 중이나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아 사명을 이베스트증권으로 바꾸고 계속 매각하려고 노력 중이다. 금산분리 때문에 LS그룹의 오너 개인들이 투자자문사를 인수하여 만든 LS자산운용은 DGB금융지주에 매각되어 DGB자산운용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허씨家에서 분가한 GS그룹에서도 GS자산운용을 세웠는데, GS와 그 방계인 코스모그룹까지 휘청이는 상태라 BNK금융지주에 매각하여 BNK자산운용으로 변했다.

금융계열사가 없기에 금산분리로 골치 썩을 걱정없이 무난히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을 할 수 있었다. 현재 삼성, 한화를 비롯한 금융사를 가진 재벌들은 금산분리 문제로 골치가 아픈 실정이다. 금산분리를 다소 완화시키자는 분위기가 있었으나 동양그룹 사태를 비롯한 재벌들의 병크로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금산분리를 강화시키려 하는 입장. 롯데그룹롯데지주 체제로 전환하면서 금융계열사들을 매각하게 된 이유가 바로 금산분리 문제 때문이다.

LG의 금융잔혹사가 역으로 지금 시점에서는 전화위복까지 아니더라도 미리 선제적으로 골치아픈 씨앗을 제거했다는 뜻하지 않은 상황이다. 삼성이 가장 골치가 아프다. 금산분리 때문에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해야 하고, 오너 일가가 인수하지 못하면 삼성생명 지배권을 상실하며 인수 자체를 돈 없어서 못한다. 그리고 금융지주회사로 분리 또한 보통 힘든 작업이 아니다. 한화는 한화생명을 중심으로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중이지만 승계 이슈와 맞물러 해법을 내놓기 요원한 상황이다.

정리하면, LG그룹의 방계그룹 분리 이전에 있던 금융사의 현재 상태는...
금성투자금융 : 현 KEB하나은행(원조(?) 하나은행과 합병)
LG카드 : 현 신한카드
LG투자증권 : 현 NH투자증권(우리증권과 합병된 '우리투자증권' 시절 이후)
LG선물 : 현 NH선물(NH농협선물과 합병된 '우리선물' 시절 이후)
LG투자신탁 : 현 키움투자자산운용(우리투자신탁과 합병된 '우리자산운용' 시절 이후)
부민상호저축은행 : 현 IBK저축은행(영남상호저축은행, 영남저축은행, 두 시절 이후)
LG화재 : 현 KB손해보험(LIG손해보험 시절 이후)

정리하면, LG그룹의 방계그룹 분리 이후에 생긴 금융사의 현재 상태는...
LIG투자증권 : 현 케이프투자증권
LS자산운용 : 현 DGB자산운용
GS자산운용 : 현 BNK자산운용

LG그룹그룹 금융사를 국내의 어지간한 한번 이상 인수했다(...).

그리고, 범 LG계 그룹인 GS그룹이 GS리테일을 통해 케이뱅크은행에 참여하고 있다.(근데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LK자산운용 덕분이다.)

1.3. 반도체 잔혹사

반도체 사업에 철천지 한이 있다.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지면서 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가 되자 당시 김대중 정부에서는 재벌그룹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빅딜' 정책을 추진하는데 LG그룹의 LG반도체를 현대그룹현대전자억지로 넘겨주게 된다. 구자경 당시 LG그룹 명예회장은 끝까지 저항했으나,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압박하고 은행신규대출을 모두 끊어버리는 금융제재까지 당하자 결국 포기한다. 이때 매각 대금으로 받은 현금으로 데이콤을 인수하고 LG화재그룹을 분가시켰다.

LG는 당시의 결정을 인정하지 않았고, 총수는 기회가 날 때마다 여러 경로를 통해 당시 정부 시책이었던 대북지원에 현대가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하곤 하였다. 또한 당시 빅딜을 주도한 전경련에 발길을 끊는다. 전경련회관이 그룹 사옥인 LG트윈타워에서 고작 5분 거리인데 1999년부터 전경련 모임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 2013년에 갔던 것도 전경련회관이 새로 지어져서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했던 개관 축하행사 참석차 어쩔 수 없이 간 것이지 자의로 간 것이 아니다. 그리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난 뒤 전경련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대한민국의 5대 그룹 중에서 처음으로 전경련에 공식 탈퇴 의사를 통보하며 전경련과의 연을 아예 끊어버렸다.

그러나 당시 LG반도체는 당시 시장에서 주력으로 팔리던 128Mbit DRAM에 대한 투자는 건너뛰고 히타치로부터 도입한 공정으로 차세대 RAM으로 각광받던 RDRAM 생산에 올인하는 전략을 선택하였는데, RDRAM의 참상은 해당 항목 및 제조사 램버스, 주수요처인 펜티엄 3, 펜티엄 4, 참조. 당장 수십억이 없어 대기업 집단들이 무너지던 시절에 안 팔릴 제품에 올인한 LG반도체의 미래는 뻔하였을 것이다. 이른바 세계 반도체 기업들의 운명을 가른 '램버스' 사태이다. 당시 삼성은 DDR D램을 선택하고, NEC, 히다치 같은 일본기업들과 LG반도체는 램버스 D램을 선택하는데, 결국 시장에서는 DDR D램이 선택받는다. 그 결과 삼성전자는 독보적인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 기업으로 올라서고, 세계를 장악하고 있던 일본 반도체 기업들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삼성전자는 일본 10대 전자기업들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순이익을 내게 된다. 마이크론은 뭔가 낌새를 눈치채고 램버스 D램에서 DDR D램으로 옮겨 결국 세계 메모리 3강에 들게 된다. 그렇지만 NEC, 히타치, LG반도체는 끝까지 램버스 D램을 고수한다. 현대전자는 DDR D램을 선택했으나 램버스 D램을 선택한 LG반도체를 인수한 후폭풍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는데, 그나마 그때 DDR D램에서 쌓은 저력이 현재 SK하이닉스 경쟁력의 밑바탕이 되었다. 결과론이지만 시장에서 퇴출된 램버스 D램에 올인했던 LG의 운명은 결국 반도체 사업을 접을 수 밖에 없었던 일본 전자기업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11] 그리고 어차피 훗날 터진 LG의 흑역사 LG카드 사태를 생각하면 LG가 반도체를 안고갈 여력은 더욱 없었다. 오히려 LG반도체가 있었으면 오너 일가의 반도체 사업에 대한 애착을 볼 때 그룹 전체가 몰려들어가 연쇄 부실로 그룹이 공중분해될 위기에 처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현대전자는 LG반도체 인수로 현금은 써버리고 부채를 떠안는 바람에 불과 1년만에 유동성위기에 봉착하였다. 원래 현대전자는 LG그룹의 LG반도체 지분 전부를 인수할 생각은 없었으나 LG그룹에서 아예 반도체 사업에서 손을 털고 나가겠다고 해서 무리해서 인수하게 된다. 이후 현대그룹왕자의 난에 이은 형제들의 분가, 현대건설 등 다른 계열사들의 유동성 위기 등이 겹겹이 터지는 바람에 역시 해체 수순을 밟게 된다. 현대전자의 후신인 반도체사업부는 현재 하이닉스반도체로 존속 중인데 이러한 연유로 하이닉스의 인수전에 LG그룹은 조건없는 인수 후보로 거론되었지만 결국 2011년 하이닉스반도체는 SK텔레콤에 인수되어 SK하이닉스로 변경된다.

그리고 2017년 8월 SK그룹에 반도체 웨이퍼 제조사인 LG실트론을 매각하면서 이제 반도체와 관련된 사업은 사실상 완전히 손을 떼게 된다. 아직 실리콘 웍스가 있긴 하지만 이쪽은 중견기업 규모에 LG측에서도 주력은 아니라서 손을 뗀거나 다름없다.

LG에게는 이미 충분히 재인수할 기회가 여러번 있었다. 하이닉스가 천덕꾸러기 받던 시절에 심지어 LG보다 넘사벽으로 낮은 동부그룹에게도 인수 제의가 갈 정도에 효성그룹 같은 LG에 비해 소규모 재벌의 하이닉스 인수설까지 있었다. 원래 주인이었던 LG에게는 당연히 수많은 인수 제의가 오갔다. 2011년 SK가 인수하기 전에도 LG는 첫번째 인수 후보군이었고, 거의 읍소하는 수준의 조건으로 재인수 제의가 갔지만 LG는 인수를 거부했다. 여기에 대해서 가타부타 말은 많으나 간단히 말하면 구본무 회장을 비롯한 구씨 집안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수조원을 써야 하고 다시 수십조를 넣어야 할지 모르는 반도체 인수 결정은 결국 오너가 하는 것이다. 보다 근원적인 원인으로 LG 구씨 측에서는 원래 자기거였던 하이닉스를 거액을 들여 다시 인수해야 하는 것에 반감이 매우 강했다고 한다. 그리고 반도체 치킨게임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확실성과 막대한 자금 투입에 부담을 크게 느껴 인수를 하지 않았다. 구본무 회장은 반도체 사업이 잘못되면 그룹 전체가 위험할 수 있다고도 했다. 결국 SK가 인수를 했고 운좋게 반도체 치킨게임이 종식되면서 한국 M&A 역대 1위를 다투는 성공적인 기업 인수 성과를 거두었다. 만약 LG에서 재인수했다면 본의 아니게 '램버스' 사태를 남의 힘으로 해결하고 또 미국에서 중국의 반도체 진출을 결사적으로 막는 분야가 비메모리가 아닌 메모리 분야인 걸 볼 때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는 대목이다.

당시 SK와 LG는 3,4위에서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었다. 하이닉스 인수로 두 그룹의 운명이 바뀌게 된다. 하이닉스 인수전까지 매출액과 영업이익 모두 LG가 근소하게 앞서던 시절이 있었지만 하이닉스 인수 기점으로 잭팟을 터트린 SK는 자산과 매출, 영업이익 모두 LG와 비교할 수 없는 넘사벽 3위로 올라섰다. 현재 2위인 현대자동차그룹과 자산규모가 고작 몇조밖에 차이 안 날 정도로 어마무시한 이득과 성장을 일구었다. 반면 LG는 도저히 SK와 비교할 수 없는 차이나는 4위로 주저앉았고 5위인 롯데그룹과 경쟁도 위태위태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LG가 하이닉스를 재인수했다면 SK와 같은 잭팟을 터트릴지 불확실하다. SK는 텔레콤과 정유 사업으로 축적된 현금이 매우 풍부하고 수십조를 쏟아야 하는 반도체 특성상 지금도 용인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착공 등을 비롯하여 열심히 투자운영중이다. 확실한 캐시카우가 없는 LG가 하이닉스를 인수했다 해서 SK만큼 잭팟을 터트릴지 그야말로 넌센스. 유플러스:??

여담로 이 당시 외부전문 평가기관으로 미국계 경영자문사인 '아서 디 리틀(ADL)'이 선정됐고, 당시 ADL 평가단의 핵심 구성원 중 1명이 넥센 히어로즈의 그 이장석이었다. 관련 기사 ADL 측에서 현대전자에 후한 점수를 주는 바람에 LG반도체가 현대전자로 넘어갔다고. 현대그룹 계열 분리 당시 하이닉스의 계열사였던 현대 유니콘스 역시 이후 자금난을 겪으면서 2008년에 해체되었고, 이 사단의 첫 시작에 관여한 이장석이 현대의 선수단을 사들여서 히어로즈를 창단한 것. 그리고 이후 LG 트윈스가 히어로즈에게 몇 차례 선수 트레이드에서 상당한 손실을 입었던 것까지 고려하면 대단한(?) 악연이다.

2. 기업정신

2.1. 창업이념

2.2. 기업이념

2.3. 비전

3. CI

3.1. 변천사

연도/사명 LG화학 LG전자 LG
1960년대 파일:Lucky logo 1950s.jpg 파일:GoldStar logo 1950s.jpg
1970년대 파일:Lucky logo 1970s.jpg 파일:GoldStar logo 1970s.jpg 파일:Lucky Group logo 1979.jpg
1980년대 파일:Lucky logo 1980s.jpg 파일:GoldStar logo 1980s.jpg 파일:Lucky-GoldStar logo 1980s.jpg
1995년 이후 파일:LG Chem logo 1995.jpg 파일:LG Electronics logo 1995.jpg 파일:LG logo 1995.jpg
2015년 이후 파일:LG Chem logo 2015.jpg 파일:LG Electronics logo 2015.jpg 파일:LG logo 2015.jpg

3.2. 사명 변경 후 CI 통합

파일:img_ci_story03_pc.jpg
보다시피 얼굴무늬 수막새에서 LG의 로고가 창안되었다고 한다.
파일:external/www.pressat.co.uk/5cb7548bbe026ca7ed40f2377a02828b.jpg
2014년 12월까지 쓰인 로고로, 이 때 사용된 전용 라틴 문자 서체는 Unica SH라고 한다.
파일:LGLOGO.gif
2015년 1월부터 옆에 붙은 글꼴이 바뀌었다. 기존의 LG로고와 크게 다른 점은 뒷글자 'G'의 모양. 2014년 하반기에 LG전자에 시범적으로 적용되었다가 12월 LG유플러스에 적용된 후 2015년부터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새로 바뀐 글꼴은 LG Smart 글꼴로, 해당하는 한글 글꼴은 산돌에서 만들었다.

LG가 유명한 것으로 한번 보면 잊기 힘든 로고를 빼놓을 수 없다. 이 로고는 그룹명을 정식으로 LG로 바꾼 1995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GE, 코카콜라, 맥도날드 등 유명기업들의 CI를 제작했던 미국의 Landor社에서 CI 개발 작업을 진행하였으며, Landor社는 이후 국내의 KB, GS, 대한항공 등의 CI 개발도 담당했다. 최종 채택된 시안의 제목은 "The Face of the Future." 즉 미래의 얼굴이다. 신라 기와(얼굴무늬 수막새)의 사람의 얼굴을 형상화했는데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는 의미는 기업세계, 미래, 젊음, 인간, 기술 등의 5가지 개념과 정서를 형상화해 인간이 경영의 중심에 있음을 상징한다는 것. 눈을 하나만 넣은 것은 한가지 목표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구본무 회장이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고 한다.[12] 그리고 이 로고를 이어폰에 넣는 짓을 저질렀다(...) 그리고 CI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L,G 글자가 보인다. 여담으로 일본에 나오는 LG 휴대폰은 얼굴 로고를 거의 볼 수 없다. 일본에 나오는 LG 휴대폰은 보통 LG Electronics[13] 레터링만 넣거나 이마저도 없이 제품명과 추노마크만 들어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
파일:attachment/lgpacman.gif
하지만 해외에선 팩맨같이 생겼다고 놀림받기 일쑤. 특히 LG의 안습한 스마트폰 실적이 겹치면서 언제부턴가 저놈의 로고만 안 붙어있으면 스마트폰이 더 잘 팔릴 거 같다는 말을 자주 듣고 있다.

사람 얼굴을 형상화해 왠지 친근한 이미지를 주기도 하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살짝 변형된 LG 짝퉁로고가 판을 치고 있기도 하다.
파일:external/thimg.todayhumor.co.kr/1433774119174.jpg
이 양반이 제일 좋아하는 기업인 것 같다

4. 슬로건

인간 기술 미래 (1984~1989)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 (1990~1994)
럭키금성이 LG로 바뀝니다. (1995)
이젠 LG입니다 (1995)
사랑해요 LG (1995~1998/2003~2009)
正道경영 초우량 LG (1995~1998)
도전 50년, 도약 50년 (1997)
새 생각 새 기술 새로운 미래 - 밀레니엄 드림 LG (1999)
무한커뮤니케이션 - LG (2000)
기본을 생각합니다. 미래를 생각합니다. (2001)
With LG (2002~2003)
생각의 힘을 믿습니다. (2004)
Think New LG (2005)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2007~2008)
LG는 사랑입니다. (2009~2012)
사랑해요 코리아 (2010)
함께해요 다문화 (2012)
innovation for a better life (2014)
옳은미래. (2017)

5. 사가

1978년 6월부터 <럭키가족의 노래>라는 명칭으로 제정되었으며, 작사는 이은상, 작곡은 김성태가 맡았다.

5.1. 럭키금성 시절 가사

듣기
(1절) 우리는 이 나라의 젊은 일꾼들
번영을 향해가는 보람찬 대열

사랑으로 한데뭉친 동지들이다
무궁화의 낙토건설 우리 손으로

(2절) 시대를 선구하는 산업전사들
새롭고 꾸준한 창의와 연구

거룩한 우리 사명 다하는 곳에
겨레와 인류의 행복이 있다

(후렴)나라의 자랑이다 럭키금성
세계로 뻗어가는 럭키금성

5.2. 현재의 가사


우리는 이 나라의 젊은 일꾼들
번영을 향해가는 보람찬 대열

사랑으로 한데뭉친 LG인이다
아름다운 미래건설 우리 손으로

나라의 자랑이다 LG LG
세계로 뻗어가는 LG LG

6. 특징

6.1. 독립운동 지원?

독립운동가인 안희제에게 1만원[14]을 건네며 독립운동을 지원했다는 이야기가 대중적으로 널리 퍼져있지만, 이는 LG그룹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관련사료가 부족하며 한겨레에서도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반대로 동양척식주식회사에서 사업자금 8천원을 대출받고, 일제가 조직한 진주상공회의소의 의원직을 역임함과, 태평양전쟁을 찬양하는 신문광고에 후원기업으로 이름을 올리고, 전시에 조선의 물자통제를 담당했던 경남상공경제회의 진주지부원을 지낸등 친일 행적에 대한 관련 근거는 충분하기에 독립운동을 지원했다고 보기엔 불분명하다.

오히려 범 LG가인 GS그룹이 독립운동에 지원했다는게 더 정확하다. 현 GS그룹 허창수 회장의 아버지 허준구[15]는 만주 독립운동의 자금줄 역할을 한 백산상회를 공동 설립한 인물이다. 백산상회는 독립운동 전체 자금의 60% 가량을 차지했던 곳이다. 기사 또한 그의 할아버지 허만정 선생도 일제 몰래 독립운동을 꾸준히 지원했다.

6.2. 사회 환원 활동

7. 계열사

7.1. 지주회사

7.2. 전자 부문

7.3. 화학 부문

7.4. 통신·서비스 부문

7.5. 기타

7.6. 범 LG가 기업들

7.7. 매각/독립된 회사

7.8. 해산된 회사

7.9. 사회 공헌

8. 오너 일가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범 LG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오너 일가에 대해서는 범 LG가 문서를 참고할 것.

창업주는 연암 구인회 회장이며, 현 회장은 구광모이다.

최근들어 세계 5G 선발 통신기업 중 유일하게 화웨이 장비를 선택하는 등 중국 공산당과 인민해방군의 산하에 있어서 서구 선진국가들에게 외면당하는출처 화웨이의 영향력 하에 있는 친중매국기업이라는 소리가 인터넷에서 나오고 있다. 출처 자세한 내용은 화웨이 대한민국 통신사업 진입 논란 참고.

역사적으로도 유서 깊은 양반 가문이기도 하다.출처 사농공상 일례로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로 인해, 딸은 물론 안주인들조차 문밖 출입이 쉽지 않다고 한다. 삼성 일가의 여성(이명희, 이부진 등)들이 기업 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것과 대비되는 부분.

경영 승계에서도 마치 옛 양반 가문이나 조선 왕실처럼 장남 승계 원칙을 엄격하게 지키고 있다. 초대 구인회 회장 본인부터 구본무 회장까지 모두 장남이며, 구본무 회장의 경우 유일한 아들이 사고로 일찍 죽자 딸들에게 승계하지 않고 조카인 구광모(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를 양자로 입양했다. 굉장히 보수적인 원칙이지만 대신 이른바 '왕자의 난'과 같은 재산 상속 및 경영권 계승과 관련된 갈등은 적은 편이다.

9. 지주회사 지배구조

2019년 5월 30일 보통주 기준.
주주명 지분율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구광모 15.00%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구본준 7.72%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국민연금공단 7.09%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구본식[27] 4.48%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김영식[28] 4.20%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구본능 3.45%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구연경[29] 2.92%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LG연암학원 2.13%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구자경 0.96%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김선혜[30] 0.75%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구미정[31] 0.69%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구연수[32] 0.66%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이욱진[33] 0.63%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구형모[34] 0.60%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구자영[35] 0.35%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LG연암문화재단 0.33%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자사주 0.05%

10. 경영진

10.1. 회장급

10.2. 부회장급

10.3. 사장급

10.4. 역대 그룹임원

{{{#!wiki style="color:#FFFFFF; margin: -0px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color:#1D1D1D; margin: -6px -1px"
초대
구인회
(1947~1969)
2대
구자경
(1970~1995)
3대
구본무
(1995~2018)
4대
구광모
(2018~)
}}}}}}}}} ||

11. 취업

LG그룹/채용 문서 참조.

12. 기타



[1] # 70조원대까지 내려간적이있으나 전기차 부흥에 따른 배터리 산업 관련주인 LG화학 주가가 급등하여 그룹 시가총액이 90조원까지 증가하였다.[2] 1위는 삼성그룹, 2위는 현대자동차그룹, 3위는 SK그룹이다.[3] 1위 삼성(524조) 2위 SK(133조) 3위 LG(93조) 4위 현대차그룹(86조) #. 여담으로 시가총액기준 5위인 롯데는 일본 불매운동의 영향으로 그룹 시총이 18조까지 추락하여 사실상 우리나라 경제에 이 4개의 대기업 그룹이 미치는 영향력은 실로 막대하다고 볼 수 있다.[4] 당시 한비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삼성은 한국비료 지분 51%를 국가에 헌납한다. 그래서 비료사업 대신 대체사업으로 선정한 것이 바로 전자사업이었다.[5] 물론 가문 간의 화해와는 별개로 삼성전자와 LG전자 간의 신경전은 현재진행형이다.[6] 공식적으로 LG그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언론에선 LG그룹이라고도 한다.[7] 흔히들 인화의 LG, 관리의 삼성, 뚝심의 현대라고 칭했다. 이는 일본의 거대 기업집단 중 '인화(人和)의 미쓰이, 조직의 미쓰비시, 결속의 스미토모'라고 부르는 것과도 유사하다.[8] 19~21대 KBO 총재.[9] 그룹명 GS가 과거 금성사의 상표이던 GoldStar의 약자라는 이야기가 있다. 허나 금성사는 전자회사고 LG전자의 이전 사명이기 때문에 전혀 관련이 없다. LG그룹에서 분리될 때 LS그룹이 LG의 L을 따서 만들고 GS는 LG의 G를 따서 만들었다는게 속설이다. LIG그룹은 LG 사이에 I를 넣었다.[10] 사정1. 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인 보험회사는 손자회사로 보험과 관련 없는 회사를 둘 수 없다는 규정. 사정2. KB금융은 이미 보유하고 있는 KB투자증권(자산6조)조차도 그룹에 어울리는 규모를 갖추지 못했다고 하여 추가 M&A전에 뛰어드는 판에 자산 6000억의 LIG투자증권은 합병해 봐야 자산증식에 도움이 안 되는 계륵만도 못한 존재라는 판단.[11] 2019년 기준 일본 반도체 기업으로 볼 수 있는 기업은 이미지센서를 생산하는 소니뿐이다. 그나마 이미지센서 분야도 삼성, SK하이닉스가 눈독을 들이고 있고, 사실 소니가 이미지센서 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건 이미지센서가 메모리 반도체보다 이익이 훨씬 낮으므로 삼성이 여유를 부렸기 때문인 부분도 있다.[12] 참고로 새 CI 발표는 구본무 회장의 LG그룹 회장 승계와 더불어 이루어졌다. 취임부터 본인의 이미지를 크게 각인시킨셈.[13] 2015년부터 서체가 바뀌었다.[14] 현재 가치로 약 1억원[15] 허준구의 부친인 허만정이 구인회가 하던 사업에 투자를 하면서 경영수업을 받게 된다. 그 이후로 계속 LG 창업주 구인회를 도와 오늘날의 LG그룹을 만드는데 큰 기여를 했다. 비슷한 연배인 구인회의 장남 구자경이 구씨 가문을 대표한다면, 허준구는 허씨 가문의 좌장 역할을 했다.[16] 여러 작물을 테스트해본 결과, 마늘이 에티오피아 환경에 가장 적합한 것으로 나와 마늘로 결정했다고. 더불어 에티오피아 요리에 마늘이 많이 사용되어 꽤나 고소득 작물인 점도 고려.[17] 2013년에는 바다에 빠진 시민을 구하려다 순직한 인천 강화경찰서 경감의 유가족에게 5억 원의 위로금을 전달했고, 작년 7월에는 진도 팽목항에서 세월호 사고 현장에서 추락해 순직한 소방관 5명의 유가족에게 각각 1억원씩 전달하기도 했다.[18] 카메라 모듈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에 적용되는 초슬림, 고화소 카메라모듈을 얘기하고, 차량용 전장부품사업은 기존 자동차부터 전기차, 스마트카 등에 장착되는 모터와 센서, 통신모듈,파워모듈, 카메라모듈, LED조명모듈, LED사업에서 친환경 조명으로 주목 받고 있는 LED조명의 핵심인 LED칩과 패키지를 국내외 조명 업체에 공급하며, 기판소재사업에서는 스마트폰, 노트북PC, 올인원PC 등 IT기기의 핵심 부품인 터치스크린패널과 반도체 패키지용 기판 등을 판다.[19] 두산그룹 계열이었으며 창립 시 한양식품임. 1997년 OB맥주에 합병됨.[20] 건축자채는 주로 창호재(창호, 커튼월, 유리), 장식재(바닥재, 벽지/벽장재, 하이막스, 비아테라, 인테리어필름, 데코시트)를 만들고 고기능소재는 자동차 원단, 자동차 부품, 고기능점착필름(PSAA), 가전 표면소재, 고성능진공단열재(VIP), 광고시트, 윈도우필름, 우젠, 엘판넬 등을 만든다고 한다.[21] 2005년 GS그룹 분가로 LG건설이 떨어져 나가면서 LG그룹 내 건설회사는 없었으나, 전자나 디스플레이 등 계열사 공장에서 보안성이 요구되기에 이웃 GS의 사업분야로 웬만하면 진출하지 않기로 하였지만, 건설회사를 차리게 된 것이 사명 변경 이전의 서브원이다.[22] 구인회 창업주의 삼남 구자학 회장. 삼성 이병철의 사위다. 구자학 회장의 부인 이숙희씨가 이병철의 딸이다.[23] 구본무 회장의 동생, 구자경 명예회장의 2남 구본능KBO 총재가 회장이다.[24] GS그룹의 방계이다. 허경수 회장은 허만정 LG그룹 공동 창업주의 4남인 허신구 GS리테일 명예회장의 장남.[25] 구인회 창업주의 4남 구자두 회장 소유.[26] 구본무 회장의 동생, 구자경 명예회장의 4남 구본식이 회장이다.[27] 구자경의 넷째아들[28] 구광모의 양어머니[29] 구광모의 양동생[30] 구자경의 외손녀[31] 구자경의 둘째딸[32] 구광모의 양동생[33] 구자경의 동생의 아들[34] 구광모 사촌[35] 구자경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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