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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4 14:37:49

동양그룹

<colbgcolor=#e60012><colcolor=#ffffff> 동양
東洋 | Tongyang
파일:동양 국문 로고.svg파일:동양 국문 로고 화이트.svg
국가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창립일 1957년 6월 15일
해체일 2013년 10월 13일 (그룹 법정관리 돌입)
2016년 10월 17일 (㈜동양 유진기업 편입)
창업주 이양구
회장 이양구 (1957~1989)
현재현 (1989~2013)
규모 대기업
유형 복합 기업, 기업 집단
본사
서울특별시 중구 청계천로 100 (수표동)[1]
(시그니쳐타워 서관 14~17층)
사업 분야 시멘트, , 가전제품, 화학, 식품, 건설

1. 개요2. 역사3. 기업 정신
3.1. 경영 이념3.2. 사훈3.3. 3BEST 정신3.4. 사가
4. 역대 로고5. 2013년 그룹 위기
5.1. 원인과 전개5.2. 회생5.3. (주)동양 인수를 위한 물밑 경쟁
6. 계열사
6.1. 제조/건설6.2. 금융6.3. 식품6.4. 무역/건설/유통/정보통신6.5. 기타6.6. 산하 기관6.7. 지분 관계사
7. 이름은 유사하지만 전혀 무관한 회사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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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57~2016년까지 (주)동양을 주축으로 존속한 중공업 및 금융 특화 기업 집단. 존속 당시 홈페이지 도메인은 'www.tongyang.co.kr'이었다.

2. 역사



1956년, 서남 이양구 창업주가 적산기업인 풍국제과를 인수해 '동양제과'로 재창립한 것이 그룹의 모태이다. 1957년에 귀속재산 삼척시멘트(주)[2]를 불하받아 동양세멘트공업으로 출범시켜 본격적인 역사를 썼다. 1950년대 내내 6.25 전쟁 이후 국가재건 사업에 참여하여 주로 폐허가 되거나 파괴된 사회간접자본들의 구축에 집중하였다. 주로 참여한 사업은 도로, 항만 등과 주택 건설이다.

이 사업으로 삼성, 락희, 삼호, 삼양, 개풍, 대한 등과 더불어 재계순위 10위권까지 올랐으나 1960년 4.19 혁명과 1961년 5.16 군사정변 때 부정축재자로 몰려 10위권 아래서 떨어졌다. 그럼에도 고난을 딛고 1960년 동양산업개발, 1966년 동양건설진흥 등을 세워 중공업에 주력했으며, 1984년에 일국증권을 인수해 금융업에 처음 진출했다. 이후 1989년에 동양베네피트생명, 1995년 동양카드 등을 세워가며 새로운 금융시스템도 도입하였다. 2012년 기준으로 동양그룹 매출의 75%가 증권, 금융계열의 매출이라고 한다.

1983년에 이양구 회장이 고혈압으로 건강이 나빠지자 첫째사위 현재현 동양시멘트 사장이 사실상 그룹을 이끌었고, 1989년 이 회장이 사망한 후 시멘트/금융업은 첫째사위 현재현에게, 제과업은 둘째사위 담철곤에게 각각 넘겨졌다. 현재현 회장이 금융과 중공업 쪽을 맡는 동안 담철곤 동양제과 부회장은 1990년 동양마트, 1994년 오리온카툰네트워크 등을 세우며 유통업과 미디어사업까지 손을 벌렸고, 그룹 측은 1995년 창립 38주년 기념식에서 '스피드 경영'을 선언하며 '3BEST 운동'을 벌여 의식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2001년에 담철곤 부회장은 동양제과와 온미디어, 메가박스 등 일부 계열사들을 가지고 분가했다. 아직도 이곳과 같은 CI를 쓸 정도로 관계가 좋았지만 정작 동양그룹 망할 때 도와주지는 않았고, 처형 이혜경 전 동양그룹 부회장과 민사소송을 제기할 정도로 사이가 나빠졌다.[3]

비슷한 시기에 극심한 위기를 맞았지만 극복한 기업으로는 동부그룹(現 DB그룹)과 웅진그룹, 오리온그룹이 있다. 이중 웅진그룹[4]과 오리온그룹은 규모가 크게 줄었지만[5] 어느 정도 실체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에, 아래에 계열사의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동양그룹은 계열사 하나 남기지 않고 싸그리 청산, 매각되면서 말 그대로 해체됐다.

3. 기업 정신

3.1. 경영 이념

인재육성, 가치창출, 사회봉사

3.2. 사훈

3.3. 3BEST 정신

최고의 인재가 모여 최고의 업적을 이루고 최고의 대우를 받는 회사

3.4. 사가

(1절)하늘높이 오리온은 우리의 이념 / 쉬임없이 빛내가는 보람찬 일손
번영하는 겨레들을 보다 즐겁게 / 봉사하는 우리 노력 나라의 소명

(후렴)어제보다 알찬 오늘 늘보다 값진 내일 / 신의 정직 협동 창의로 뭉쳐진 동양그룹

(2절)물결치는 새 역사에 몸을 담고서 / 서로서로 도와가며 이루어 가는
선진조국 산업건설 우리의 일터 / 오리온의 그 빛이여 영원하여라
(1절)아침을 열어라 태양보다 더 빨리 / 이 나라 아침을 열어라
우리는 이렇게 손에 손을 잡고서 / 끝 없는 미래로 달려가리라

(후렴)나가자 모두가 타오르는 패기로 인류의 꿈을 향해 앞으로 / 언제나 새로운 길을 만들어

(2절)찬란히 빛나라 저 하늘에 별처럼 / 우리는 이 땅을 비추자
우리는 이렇게 손에 손을 잡고서 / 저 넓은 세계로 뻗어가리라

* 나가자 모두가 타오르는 패기로 인류의 꿈을 향해 앞으로 / 영원한 내 사랑 동양가족
(1절)오늘도 꿈이 있는 우리의 동양 / 동양의 가족들은 모두 정다워
눈가에 묻어나는 미소 속에서 / 꽃처럼 피어나는 미래를 보자

(후렴)라~ 랄라라 내 눈에 고인 사랑은 / 너를 향해 끝없이 흐르고 있네

(2절)내일이 펼쳐지는 우리의 동양 / 동양의 가족들이 아침을 열면
찬란히 피어나는 이 땅의 꿈이 / 저 넓은 세계 속에 빛을 뿌리네

* 라~ 랄라라 네 맘에 묻은 향기는 / 내 가슴을 흠뻑 적시고 있네

4. 역대 로고

파일:오리온 로고(1956-1989).png 파일:동양그룹 로고.svg
1956년[6] ~ 1988년 8월 5일 1988년 8월 5일 ~ 2016년

1956년부터 왼쪽 위의 '오리온 별' 로고를 줄곧 써왔으나, 1987년 1월부터 두달 간 그룹 측이 일반 소비자와 사내 임직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인터뷰, 포커스 그룹 등 다양한 조사 방법에 의해 그룹 및 로고에 대한 이미지에 대해 평가해 본 결과 문제점이 폭로되었다. 먼저 제기된 문제는 종전 로고가 시행 및 이미지 전달 면에서 그룹의 실상을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인식시키지 못해 온 것이었다. 오리온이라는 상표명이 그룹명인 '동양'과 체계적이고 통일되지 않은 데다, 상표명인 '오리온'이 당시 개척 중이던 증권·가스기기 등 신사업의 성격과 안 맞을 뿐더러 상표 자체가 디자인·컬러·균형 등에서 소비자와 임직원들로부터 '약하다', '복잡하다', '시대에 뒤처졌다', '공산당 마크 같다' 등의 혹평으로 적극적인 호응을 얻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특히 일반 소비자들은 동양그룹의 실체를 거의 인식하지 못한 채 동양맥주, 동양고속, 동양나일론(현 효성T&C) 등과 혼동하는 문제도 있었다.

둘째로, 그룹의 계열사 신규 설립과 사업 내용의 다양화에 따라 현실적이고 국제적인 감각에 맞춘 새로운 그룹 이미지를 정립할 시기에 다다랐고, 이미 새로운 CIP를 도입해서 많은 효과를 얻은 경쟁사들과 대등한 위치를 확보해서 소비자들에게 동양그룹의 이미지를 전달하고, 이와 더불어 경쟁사와의 싸움에서 우위를 차지한다는 뜻이 도출되었다.

이를 토대로 그룹 측은 현재현 당시 동양시멘트 사장을 주축으로 'CIP추진위원회'를 꾸린 후, 동양제과 선전과를 중심으로 먼저 CIP의 시각적 요소 개발/제작을 위한 작업이 입안된 후, 각종 자료 수집, 디자인 현장 검토, 전문 외주팀의 선정 및 CIP 방향 설정, 디자인 선정을 위한 총 4차례의 조사, 사장단 프리젠테이션을 두루 거쳐 외주 전문팀 2곳이 참여해서 진행했다. 심볼마크 및 로고타입의 기본 디자인 시스템은 미국의 랜도 어소시에이츠가, 응용디자인 시스템은 국내 디자인 업체인 '심팩트'가 각각 맡았고, 이 둘은 CIP추진위와 지속적으로 의견을 조정하여 작업을 차차 진행해나갔다. 이와 더불어 그룹 측은 전 사원을 대상으로 새 슬로건 공모를 진행하여 '세계로 미래로'로 정하는 등 비 시각적 요소인 의식개혁 운동 및 기업 기본목표 설정도 진행했으며, 이 두 작업이 끝나고서 사내외적으로 CIP 관련 홍보 캠페인을 진행했다. 회사 안에선 사보 등 사내 홍보매체를 통한 홍보, CIP 관련 교육, 포스터 및 패용 마크 부착, 사기(社旗) 이양식 등을, 대외적으론 언론/옥외매체 등을 통한 대대적인 홍보, 전단지 제작 등을 진행했다.

1988년부터 변경된 심볼 마크의 전체적인 형상은 지구와 별을 상징했으며, 지구는 크고 강함을, 움직이는 모양의 별은 세계무대와 미래를 향한 도약과 발전을 표상했다. 로고타입의 기본색은 심볼마크의 빨강색과 조화를 이루는 부드러운 이미지의 진회색(Warm Gray)이며, 이 두 색을 전용 컬러로 하여 보조 컬러로 진노랑색, 파랑색, 주황색, 회색 계열의 색 등 7개 색상을 썼다. 도입 후에는 분산된 그룹의 이미지를 일관적이고 결속된 이미지로 전환하여 시멘트/제과 등 제조업 중심 이미지에서 사업다각화에 맞는 그룹의 이미지를 올바로 전달하게 되며, 전 사원들에게 애사심을 고취시켜 '동양그룹의 일원'으로써 긍지를 불어넣어 책임의식 강화, 단결 도모, 사기진작에 기여하고 제품 및 서비스의 품질에 대해 신뢰성을 키워 금융시장에서의 인기를 높이게 했다. 또한 인재 확보 용이와 광고효과/매출액 증대, 시각 디자인 통일에 따른 사후비용 절감 등의 여러 효과들이 나타났다.[7]

5. 2013년 그룹 위기

5.1. 원인과 전개

매각한 계열사와 자산
폐열발전소 400억 원
레미콘공장 1,145억 원
선박 350억 원
냉동창고 345억 원
주식 1,600억 원

2013년 9월 23일, 동양그룹은 위기에 처한 상태였다. 이들은 자금난에 빠져 주요 계열사를 매각하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대략 7,000억원 ~ 8,000억원의 자금이 필요한 것으로 추측되었다. 동양그룹은 동양파워의 지분도 전량 매각하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동양그룹의 부채 비율은 1,200%이고 매년 갚아야 하는 이자만 2,000억원에 이르는 상태였다.
동양그룹 주요 계열사 기업어음(CP)의 만기 예정액 # (단위: 억원)
만기 시기 동양시멘트 동양 동양레저 동양인터네셔널 합계
2013년 9월 128 30 618 429 1,205
10월 157 64 1,458 1,989 3,668
11월 20 899 910 1,829
12월 498 323 821
2014년 1월 267 157 424
2월 46 83 333 462
소계 331 114 3,823 4,141 8,409

부채 중 개인이 보유하는 CP회사채가 많아 탕감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동양그룹의 부채는 각각 1, 2금융권이 1조 2,000억원, CP와 회사채가 1조 8,000억원을 차지하고 있다.# 결국 같은 집안인 오리온그룹에 SOS를 요청했다. 주요내용은 담철곤 오리온회장과 이화경 부회장이 보유한 오리온 주식중 15~20%를 담보로 5,000억~1조정도의 자산유동화 증권을 발행하자는 내용. 하지만 오리온그룹이 이를 거절하면서 지원은 무산됐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동양증권에서는 뱅크런이 우려되고 있고 금융감독원 또한 동양증권에 대한 특별 감사를 펼치고 있어 사실상 사면초가에 빠지고있다.

심지어 9월 26일 발행하려고했던 650억 규모의 회사채 발행이 잠정적으로 취소되면서 10월 동양 위기설이 점차 현실화 되고있다. 9월 27일, 금융투자업계에 의해서 새로운 정보가 공개되었다. 동양증권은 동양그룹 내에 회사채를 연평균 70%씩이나 소화했다. 동양그룹이 발행한 회사채 중 동양증권이 모집주선한 물량은 67.3%라고 한다. 소화한 물량은 해마다 증가했다고 한다. 소화한 회사채 물량은 2011년에는 66.4%에 달했고 2012년에는 94.9%였다고 한다.# 9월 30일, ㈜동양,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 등 3개 동양그룹 소속 계열사가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였다.# 2013년 10월 1일, 동양시멘트마저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그룹해체의 수순을 밟게 되었다.#[8]

결국 2016년 (주)동양이 유진그룹에 인수되면서 완전히 해체되었다.

5.2. 회생

"기업회생 신청 당시 37,000 명의 대규모 채권자를 피해자로 만들며 파산까지 우려됐던 (주)동양이 극적인 반전을 통해 실질 변제율 100%를 초과 달성한 것은 대한민국 회생절차의 전무후무한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법정관리를 맡은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자체 평가

동양은 2015년 10월 20일 미변제 회생채권 1,779억원을 변제해 사실상 모든 채무를 해소했다. 출자전환 주식 가치가 급등하면서 16일 주가 3,320원 기준으로 회생채권자에 대한 실질 변제율은 118%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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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은 회생계획상 예정된 7,100억원의 현금변제 채무를 계열사 매각을 통해 2년 만에 모두 갚았다. 지난해에는 동양매직 지분 100%를 2,798억원에 매각하고, 동양파워(19.99%)를 862억원에 매각하는 등 예상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계열사 지분을 처분해 4,141억 원을 조기 변제했다. 또 올해에는 동양시멘트(54.96%) 매각으로 8,00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수혈하며 나머지 현금변제 채무를 모두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5,000억 원대 현금까지 보유하게 됐다.

5.3. (주)동양 인수를 위한 물밑 경쟁

동양이 파산 위기 기업에서 알짜 기업으로 거듭나자 주식시장에서는 지분 취득 경쟁이 일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레미콘과 섬유사업이 주력인 동양은 현재 확실한 대주주가 없어 주인이 없는 회사에 가깝다. 법원이 이대로 법정관리 졸업 결정을 내린다면 시장에서 지분을 확보해 단숨에 5,000억 원 현금을 보유한 기업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파일:external/file.mk.co.kr/image_readtop_2015_1010243_14455205822186660.jpg
2015년 10월 22일 기준

일단 수면 위로 드러난 동양 인수 경쟁자는 유진그룹과 파인트리자산운용이다. 파인트리자산운용은 21일 동양 지분 6.27%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했다. 앞서 지난달 3일에는 유진기업과 유진투자증권이 동양 지분 5.67%를 취득했다고 밝힌 후 이어 추가 취득을 통해 지분율을 7.05%까지 끌어올렸다. 유진그룹과 파인트리운용을 제외한 주요 주주는 상반기 기준 3.03%를 보유하고 있는 동양레저가 유일하다.

유진그룹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는 "동양시멘트가 높은 가격에 매각되면서 회사가 좋아질 것이라는 사실을 가장 잘 아는 유진그룹이 투자 목적에서 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모두 지분 취득 목적을 '단순 투자'로 명시하고 있지만 '경영 참여'로 언제든지 변경 가능하다. 지난 1월에는 엔씨소프트 지분 15.08%를 보유하고 있던 넥슨이 투자 목적을 돌연 '경영 참여'로 변경하면서 경영권 분쟁이 불붙기도 했다.

시장에서는 삼표 등 주요 전략적 투자자(SI)들이 지분 공시 의무가 없는 5% 미만의 지분을 이미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 동양에 가장 관심이 많은 곳은 동양시멘트를 인수한 삼표일 것"이라며 "동양시멘트 인수대금이 그대로 동양으로 들어가는 구조인데 가만 놔둘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현재 (주)동양은 지난해 말 기준 지분율 1% 미만인 주주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 수가 전체 주식 중 86%에 달한다. 지난해 채권단 출자전환 당시 유상증자 물량 10억 5,000만주 중 가장 많은 주식을 받은 채권자 주식 수가 2,577만주에 불과할 정도로 지분이 흩어져 있다. 이 때문에 특정 세력이 장내 매수나 장외 거래로 주식을 매집하는 지분 경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충분한 상황이다.

법정관리 여파에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은 전년 대비 30% 이상 감소한 3,812억원을 기록했지만 올해는 상반기에만 1,939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충격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 IBK투자증권은 올해 동양 매출액이 5%가량 증가한 4,000억원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법원은 아직까지 동양 M&A 계획이 없다며 신중한 입장이다. 대규모 현금을 보유하고 있어 제3자 유상증자 등을 통해 추가로 자금을 유치할 필요성이 작고 출자전환 주식을 매각해 자금을 회수해야 할 대주주도 없기 때문이다.

2017년 4월 유진그룹의 ㈜동양 지분율은 30.03%이 되었고 유진그룹은 기업결합신고도 마쳤다.#

6. 계열사

그룹 자체가 산산조각 난 다음이니 만큼 큰 의미는 없지만 기존 동양그룹의 사업구조에 대해 신용평가사의 「동양그룹 현황과 주요 모니터링 요소」라는 리서치를 읽어볼 것을 권한다. 해체 이전에도 워낙에 자잘한 계열사들이 많고 지분관계도 순환출자 등 매우 복잡했는지라 모든 계열사들을 파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사업 측면에서 유의미한 매출을 기록했던 계열사로는 사업 지주회사인 동양, 그룹 내 핵심 계열사인 동양시멘트, 유통 및 SI에서 그룹 내부 물량에 의존하던 동양네트웍스, 가전회사 동양매직, 그리고 금융사인 동양증권동양생명 정도이다. 나머지는 연매출이 1,000억도 되지 않기 때문에 무시해도 좋을 정도이다. 단 동양레저와 동양인터내셔널은 일종의 중간 지주사로서 오너 일가가 지분을 들고 여타 계열사를 지배하는 데 활용되었다.

2012년 기준으로 그룹의 전체 매출액은 6조 4,000억이었고 금융 부문이 4조, 비금융 부문이 2조 4,000억이었다. 비금융 중에서는 건설·건재·시멘트 등 건설자재 관련 계열사의 매출이 전체의 43%를 차지했고 섬유 관련 매출이 37%였다. 그러나 영업이익 측면에서는 섬유부문의 기여도가 -32%로 손실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건설 관련 이익기여도가 100%를 넘어 사실상 동양그룹의 핵심은 금융+건설 관련 사업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6.1. 제조/건설

6.2. 금융

6.3. 식품

6.4. 무역/건설/유통/정보통신

6.5. 기타

6.6. 산하 기관

6.7. 지분 관계사

7. 이름은 유사하지만 전혀 무관한 회사

아래는 동양이라는 이름만 같고 동양그룹과는 전혀 무관한 기업 혹은 단체다.

그 외에 오리온전기와 파생 기업인 오리온디스플레이 역시 동양그룹과는 관계가 없으며 과거 대우 계열이었다.[16]

8. 관련 문서



[1] 금융 계열사들은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 76 (現 유안타증권 본사)에 있었다.[2] 일제 땐 오노다시멘트 삼척공장이었다.[3] 오리온그룹도 바이더웨이, 온미디어, 메가박스, 베니건스를 매각하는 등 자기 몸 추스리기에도 정신이 없었던데다가 2011년에 담철곤 회장이 비자금 문제로 사법처리가 되었으며, 2017년에는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고발된 상황이며, 2018년에는 오리온그룹 노조 탄압 및 갑질 논란으로 오리온그룹 이미지가 타격을 입었고 악재는 현재진행형이다.[4] 신속한 계열사 매각과 사내 출연을 통해 빚은 거의 다 갚았지만 그룹 자체는 거의 다 분해되었으며 중견 기업으로 몰락했다.[5] 동양제과를 중심으로 한 16개의 계열사가 분리되어 오리온그룹으로 형성되었지만 4개의 계열사로 줄어들었고 이후 8개로 늘어났지만 재계 서열 50위에 들지 못한 준대기업(2016년 개편 이전에는 대기업)에서 중견 기업으로 몰락했다.[6] 사사 <동양그룹 사십년사(1997)> 350쪽에 따르면, 1957년 6월 15일부터 1964년 3월 11일까지 쓰였던 정식 로고는 벤츠 로고와 비스무리한 형태였다.[7] 이하 출처: <동양그룹 사십년사(1997)> p349~352.[8] 일각에서는 동양시멘트가 은행의 간섭을 피하고 손쉬운 채무탕감을 위해서 법정관리를 신청한것이라는 분석을 하기도 한다. # 이로 인해서 동양시멘트 회사채에 투자한 5,000여명이 피해를 보게 되었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회사채의 상당수는 원금 회수가 불가능해지기 때문.[9] 모체는 1967년 세워진 동양종합공업이었다. 몇달 후 동양세멘트공업에 흡수됐다가 1978년 재분사되기도 했고 1979년 동양건설진흥에 흡수되어 동양종합산업 기계사업부가 됐다가 1985년 동양시멘트에 합쳐졌다. 이후 1992년 동양산업기계로 재분사됨.[10] 특히 가스레인지, 오븐에서 강세를 보였다. 동양매직 브랜드로 나온 오븐류 조리기기의 경우 잘하면 상표의 보통명사화까지도 노릴 수 있을 정도로 인지도가 있었던 기함급 제품군이었다.[11] 해당 부지는 2002년 한솔스포렉스에 넘겨진 뒤 2006년 삼성 트라팰리스가 들어섰다.[12]KBS2, JTBC.[13]메리츠화재[14] 동양미래대학교 등 3개 학교들을 운영한다.[15] 대전광역시에 있었던 지역백화점으로 전 지점이 한화유통(현 한화갤러리아)으로 매각되었고 타임월드점은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라는 법인으로 존속중이며 동양백화점 본점이었던 동백점은 이랜드그룹에 매각되어 NC백화점 대전중앙로점 으로 남아있다.[16] 모니터를 생산했는데 동양 오리온의 계열사로 착각한 소비자들에게 한때 꽤 인기있는 제품이었다. 이런 붐에 착안한 동양그룹 쪽에서 '동양 르네상스'라는 회사를 만들어 '동양(TONG YANG)'의 상표로 중국에서 모니터를 수입하여 1999년~2000년대 초반에 판매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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