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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4 11:20:36

구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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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이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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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구인회
(1947~1969)
제2대
구자경
(1970~1995)
제3대
구본무
(1995~2018)
제4대
구광모
(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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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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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창수
제39대
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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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LG그룹 제2대 회장
구자경
具滋暻 | Koo Ja-kyung
파일:LG_구자경_명예회장.jpg
<colbgcolor=#6b6b6b> 출생 1925년 4월 24일
경상남도 진주군 지수면 승내리
(現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1]
사망 2019년 12월 14일 (향년 94세)
본관 능성 구씨 (綾城 具氏)[2]
상남(上南)
직업 기업인
학력 지수공립보통학교 (졸업)
진주중학교 (졸업)[3]
진주사범학교 (졸업)
부모 아버지 구인회 어머니 허을수
형제자매 누나 구자숙
남동생 구자승, 구자학, 구자두, 구자일, 구자극
여동생 구자혜, 구자영, 구순자
배우자 하정임
자녀 장남 구본무
장녀 구훤미
차남 구본능
삼남 구본준
차녀 구미정
사남 구본식
신체 172cm, 70kg, O형

1. 개요2. 생애3. 그의 경영이념4. 수상경력5. 선거 이력6. 저서7. 대중매체에서8. 이야깃거리9. 가족관계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기업인. LG그룹 제2대 회장.

2. 생애

1925년 4월 24일, 경상남도 진주군 지수면 승내리(현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에서 아버지 구인회와 어머니 허을수 사이에서 6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래 그는 지수공립보통학교(14회)와 진주공립중학교,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모교인 지수공립보통학교 등지에서 교사로 일하다가 이 시기에 일제로부터 입대영장이 날아왔는데 그 날이 1945년 8월 12일이었다. 입대 예정일은 1945년 8월 21일. 영장을 받은 그는 한동안 친구들과 을 마시며 신세한탄을 했다고 한다. 물론 3일 뒤 일본이 항복하면서 없던 일이 되었지만...

이후 아버지가 가업에 참여하라기에 하러 갔더니 그 일이 알고 보니 공장 관리인이었다고 한다. 물론 폼나는 공장 책임자가 아니라 말 그대로 공장 문 여닫고, 경비 서고, 잡일하는 관리였다. 그러나 이는 일종의 경영 수업의 일환이었다.

1969년 12월 31일, 아버지 구인회 창업주가 뇌종양으로 작고하여 이듬해인 1970년 1월에 후임 럭키그룹 회장으로 취임하였다. LG그룹을 현재의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구씨 및 허씨 가문 사람들과 함께 기반을 닦았다.

1972년과 1978년 제1·2기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서울 종로구 2선거구)과 1981년 대통령선거인단 선거(서울 종로구 3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는 등 정치인으로도 활동하기도 하였다.
파일:2기 대의원 구자경.jpg 파일:선거인단 구자경.jpg
제2기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左) & 제12대 대통령 선거 선거인단 선거(右) 벽보

71세가 되던 1995년 2월, 그룹의 경영권을 장남 구본무에게 넘기면서 명예회장으로 영전하였고, 그 후로 천안시 소재 본인의 농장으로 낙향하여 편안하게 여생을 보냈다. 근데 이 농장, 정확히는 수향식품에서 된장, 만두도 같이 파시더니 5년도 채 안 돼서 총 매출 100억 원을 찍어버렸다. 사실 LG그룹 임직원들에게 명절만 되면 뿌려지는 선물 세트가 수향식품 제품인 걸 보면 단순 내부 거래로 당연한 결과이다. 일반 시중에서도 수향식품 제품을 쉽게 만날 수 있는데 범LG가 계열 편의점GS25에서 판매하는 '순수향 냉동만두' 등이 이 회사 제품이다.

하지만 2011년 이후로 수향식품의 매출은 내리막길이며, 2014년엔 4억 여 원의 적자를 봤다. 또한 대표자도 김유진이라는 사람으로 바뀌어 있고, 대주주도 구본능과 구본식이 50%를 나눠 가진 걸로 보아 수향식품의 경영권도 넘어가고 이 시점부터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듯 하다.

2008년 1월 9일, 평생의 반려자이던 아내 진주 하씨 하순봉(河恂鳳)의 딸[4] 하정임(河正任)[5] 여사가 지병으로 별세한지 만 10년 4개월 만인 2018년 5월 20일에는 장남 구본무 회장마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남으로써 자식을 먼저 보내게 되었다. 당시 구 명예회장은 93세의 고령이었는데다 건강도 안 좋고 거동도 상당히 불편해 도저히 서울특별시로 올라올 수 없어 아들 구 회장의 참척에도 사망 순간을 지키지도 장례식에 참여하지도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미 회장 시절 때 장손이자 구본무의 외아들이었던 구원모를 먼저 보낸 적도 있다. 그리고 명예회장이 된 지 1년 만에 둘째며느리마저 보내고 말았다.

그리고 장남을 보낸 지 약 1년 7개월 후인 2019년 12월 14일 오전, 본인도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4세. 김우중 대우그룹 창업주가 별세한지 단 5일 만이였다. #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졌으며, 외부 조화도 전혀 받지 않았다. 한 달 뒤인 2020년 1월 19일에는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도 별세하면서 이렇게 신격호를 마지막으로 1세대 재벌들은 모두 저 하늘의 별들이 되었다.

묘소는 LG가문 선영이다. 가문 전통에 따라 화장된 후 유골이 선영으로 들어간 듯하다. 참고로 SK 최종현 전 회장도 화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3. 그의 경영이념

4. 수상경력

5.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72 초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 서울 종로구 제1선거구

[[무소속(정치)|
무소속
]]
8,268 (23.6%) 당선 (2위) 초선
1978 제2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 서울 종로구 제2선거구 무투표 당선 당선 재선
1981 1981년 대통령선거인단선거 서울 종로구 제3선거구 3,422 (17.5%) 당선 (1위)

6. 저서

7. 대중매체에서

8. 이야깃거리

9. 가족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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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능성 구씨 집성촌이다.[2] 도원수파 27세 자(滋) 윤(潤) 항렬.[3] 구자경 회장의 생일과 모교의 개교일이 일치한다.[4] 출처: 《능성구씨족보》 구자경편.[5] 출처: 구인회 묘비.[6] 당시 프로야구단을 맡을 기업의 선정 기준으로는 해당 기업의 오너가 연고지 출신이거나 해당 기업의 창업지가 연고지 내에 있는 경우로 한정했다. 삼성 라이온즈대구광역시를 연고로 창단했던 것도 삼성그룹의 뿌리인 삼성상회대구광역시 중구 인교동에 있었다는 점 때문이었다.[7] 비슷한 사례로 현대그룹 창업주였던 정주영 회장이 강원도 통천군 출신의 실향민이었다 보니 인천·경기·강원 연고팀을 현대그룹이 맡아 달라고 제안했으나, 당시 서울 올림픽 준비에 전념해야 한다는 이유로 프로야구 진입 제의를 거절했고, 대신 삼미그룹이 인천·경기·강원 지역 연고팀의 모기업으로 낙점된다. 그러다가 14년 후 이미 주인이 몇 번 바뀐 인천 연고팀을 현대그룹이 인수해 프로야구에 진입하긴 하지만.[8] 요즘이면 전화로 연락하고 비대면 화상 회의를 하거나 보고서를 e메일 등으로 보내면 되겠지만 이 시기에는 국제전화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이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걸 회장의 의사를 묻지 않거나 그냥 하겠다고 받아들였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였던 게, 예나 지금이나 엄청난 돈이 나가는 야구단 창단을 회장의 의사결정 없이 한다면 엄청난 월권이었으니 만약 기조실장이 단독으로 그걸 수락했다면 그건 그것대로 구자경 회장의 화를 불렀을 것이다. 특히 유교적 가풍으로 보수적인 LG그룹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