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순위 | 변동 | 집단명 | 동일인 | 계열사 수 | 자산총액 (조 원) | |||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대기업) | |||||||||
1 | (-) | 삼성 | 이재용 | 63 | 566.8 | ||||
2 | (-) | SK | 최태원 | 219 | 334.3 | ||||
3 | (-) | 현대자동차그룹 | 정의선 | 70 | 281.3 | ||||
4 | (-) | LG | 구광모 | 60 | 177.9 | ||||
5 | (▲1) | 포스코그룹 | 포스코홀딩스(주) | 47 | 136.9 | ||||
6 | (▼1) | 롯데 | 신동빈 | 96 | 129.8 | ||||
7 | (-) | 한화 | 김승연 | 108 | 112.4 | ||||
8 | (▲1) | HD현대 | 정몽준 | 29 | 84.7 | ||||
9 | (▼1) | GS | 허창수 | 99 | 80.8 | ||||
10 | (-) | 농협 | 농업협동조합중앙회 | 73 | 78.4 | ||||
11 | (-) | 신세계그룹 | 이명희 | 53 | 62.0 | ||||
12 | (-) | KT | (주)KT | 48 | 46.8 | ||||
13 | (-) | CJ | 이재현 | 55 | 39.8 | ||||
14 | (-) | 한진그룹 | 조원태 | 34 | 39.0 | ||||
15 | (-) | 카카오 | 김범수 | 128 | 35.1 | ||||
16 | (-) | LS그룹 | 구자은 | 67 | 31.9 | ||||
17 | (-) | 두산그룹 | 박정원 | 22 | 26.9 | ||||
18 | (-) | DL그룹 | 이해욱 | 45 | 26.7 | ||||
19 | (▲8) | 셀트리온 | 서정진 | 8 | 25.6 | ||||
20 | (▼1) | HMM | HMM(주) | 5 | 25.5 | ||||
21 | (▼1) | 중흥그룹 | 정창선 | 53 | 24.9 | ||||
22 | (▲2) | 미래에셋금융그룹 | 박현주 | 30 | 23.2 | ||||
23 | (-) | 네이버 | 이해진 | 54 | 22.8 | ||||
24 | (▼3) | 현대백화점그룹 | 정지선 | 27 | 22.1 | ||||
25 | (▲2) | S-OIL | (주)S-OIL | 2 | 21.6 | ||||
26 | (▼3) | 부영그룹 | 이중근 | 21 | 21.0 | ||||
27 | (▲18) | 쿠팡 | 쿠팡(주) | 13 | 17.6 | ||||
28 | (▼1) | 금호아시아나 | 박삼구 | 24 | 17.3 | ||||
29 | (▼1) | 하림그룹 | 김홍국 | 45 | 17.3 | ||||
30 | (▲1) | SM그룹 | 우오현 | 58 | 17.0 | ||||
31 | (▼1) | HDC | 정몽규 | 35 | 16.9 | ||||
32 | (▼3) | 영풍그룹 | 장형진 | 28 | 16.8 | ||||
33 | (▼1) | 효성그룹 | 조현준 | 57 | 16.5 | ||||
34 | (-) | 호반그룹 | 김상열 | 39 | 16.0 | ||||
35 | (▲13) | DB그룹 | 김준기 | 25 | 15.7 | ||||
36 | (▼1) | KT&G | (주)KT&G | 14 | 14.9 | ||||
37 | (▼1) | KCC그룹 | 정몽진 | 14 | 14.2 | ||||
38 | (▼1) | 장금상선 | 정태순 | 27 | 14.2 | ||||
39 | (▲13) | 교보생명 | 신창재 | 14 | 13.2 | ||||
40 | (▼1) | 코오롱 | 이웅열 | 48 | 13.0 | ||||
41 | (▼3) | OCI그룹 | 이우현 | 24 | 12.7 | ||||
42 | (▼2) | 태영그룹 | 윤세영 | 82 | 12.3 | ||||
43 | (-) | 넥슨 | 유정현 | 19 | 11.9 | ||||
44 | (▼2) | 세아그룹 | 이순형 | 26 | 11.7 | ||||
45 | (▼1) | LX그룹 | 구본준 | 17 | 11.3 | ||||
46 | (▼5) | 넷마블 | 방준혁 | 35 | 11.3 | ||||
47 | (▲15) | 에코프로 | 이동채 | 23 | 11.2 | ||||
48 | (▼3) | 이랜드그룹 | 박성수 | 31 | 10.9 | ||||
공시대상 기업집단(준대기업) | |||||||||
49 | (▼3) | 한국앤컴퍼니 | 조양래 | 24 | 10.3 | ||||
50 | (▲1) | 태광그룹 | 이호진 | 20 | 9.6 | ||||
51 | (▼2) | 금호석유화학그룹 | 박찬구 | 14 | 9.5 | ||||
52 | (▼2) | 다우키움그룹 | 김익래 | 48 | 9.5 | ||||
53 | (▲6) | 두나무 | 두나무(주) | 12 | 9.4 | ||||
54 | (▼6) | 삼천리그룹 | 이만득 | 47 | 9.4 | ||||
55 | (▼2) | 동원그룹 | 김남정 | 26 | 9.3 | ||||
56 | (▼2) | KG그룹 | 곽재선 | 34 | 9.1 | ||||
57 | (▼2) | HL그룹 | 정몽원 | 13 | 8.8 | ||||
58 | (▼2) | 한국GM | 한국지엠(주) | 3 | 8.8 | ||||
59 | (▼2) | 아모레퍼시픽 | 서경배 | 13 | 8.3 | ||||
60 | (▼2) | 대방건설 | 구교운 | 42 | 8.1 | ||||
61 | (-) | 한국항공우주산업 | (주)한국항공우주산업 | 42 | 8.1 | ||||
62 | (▲1) | 애경그룹 | 장영신 | 31 | 7.1 | ||||
63 | (▲2) | 엠디엠 | 문주현 | 15 | 7.0 | ||||
64 | (▲3) | 크래프톤 | 장병규 | 8 | 6.9 | ||||
65 | (▲1) | 삼양그룹 | 김윤 | 13 | 6.9 | ||||
66 | (▲3) | 보성그룹 | 이기승 | 65 | 6.8 | ||||
67 | (▼4) | 동국제강그룹 | 장세주 | 12 | 6.7 | ||||
68 | 재지정 | 현대해상 | 정몽윤 | 13 | 6.7 | ||||
69 | (▼10) | 중앙그룹 | 홍석현 | 54 | 6.6 | ||||
70 | (-) | 글로벌세아그룹 | 김웅기 | 20 | 6.3 | ||||
71 | (▼3) | 아이에스동서 | 권혁운 | 36 | 6.3 | ||||
72 | (▼5) | 유진그룹 | 유경선 | 60 | 6.2 | ||||
73 | 신규 | 영원무역 | 성기학 | 50 | 6.0 | ||||
74 | (▼2) | DN그룹 | 김상헌 | 8 | 5.8 | ||||
75 | (▼7) | 고려해운 | 박정석 | 24 | 5.8 | ||||
76 | (▼3) | OK금융그룹 | 최윤 | 16 | 5.8 | ||||
77 | (▲4) | BGF그룹 | 홍석조 | 18 | 5.8 | ||||
78 | 신규 | 대신증권 | 양홍석 | 117 | 5.7 | ||||
79 | (▼4) | 하이트진로그룹 | 박문덕 | 11 | 5.5 | ||||
80 | (▼2) | 농심그룹 | 신동원 | 23 | 5.4 | ||||
81 | (▼10) | 신영그룹 | 정춘보 | 33 | 5.3 | ||||
82 | (▼6) | 한솔그룹 | 조동길 | 21 | 5.3 | ||||
83 | (▼3) | 반도건설 | 권홍사 | 18 | 5.3 | ||||
84 | (▼5) | 삼표그룹 | 정도원 | 33 | 5.2 | ||||
85 | 신규 | HYBE | 방시혁 | 15 | 5.2 | ||||
86 | 신규 | 대명소노그룹 | 박춘희 | 23 | 5.1 | ||||
87 | 신규 | 원익 | 이용한 | 54 | 5.0 | ||||
88 | 신규 | 파라다이스 그룹 | 전필립 | 14 | 5.0 | ||||
※ 2024년 기준 ※ 동일인이 법인인 기업: (주)포스코홀딩스, 농업협동조합중앙회, (주)케이티, 에이치엠엠(주), (주)케이티앤지, 한국항공우주산업(주) 6개사 ※ 동일인이 외국인인 기업: 에쓰-오일(주), 오씨아이(주), 쿠팡(주), 한국지엠(주) 4개사 ※ 다음 업종의 기업 중에서 중소기업법에서 정하는 중소기업의 규모보다 더 큰 기업(가. 금융업, 나. 보험 및 연금업, 다. 금융 및 보험 관련 서비스업)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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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5eb8><colcolor=#fff> 두산 斗山 | Doosan | |
국가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다국적 기업) |
창립일 | 1896년 8월 1일([age(1896-08-01)]주년) (조선, 건양 원년) |
본사 |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단로 275 (을지로6가, 두산타워) |
창업주 | 박승직 |
회장 | 박정원 |
규모 | 대기업 |
매출액 | 19조 1,301억원[1] |
영업이익 | 1조 4,363억원[2] |
자산총액 | 28조 2,868억원[3]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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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두산타워(두타) |
분당두산타워 |
대한민국 최고(最古)의 기업집단.[4] 2022년 기준으로 재계서열 16위다.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6가 두산타워가 본사이며, 쇼핑몰이 함께 있다.[5] 창업주는 박승직이며, 1896년 8월에 서울 종로에서 창업한 '박승직 상점'이 시초다. 2016년 3월 25일부터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이 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6] 두산(斗山)이라는 이름은 그룹의 창업주인 박승직이 "쌀을 한 말(斗) 두 말 쌓아서 큰 뫼(山)를 이루라"는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7]
2. 역사
2.1. 100년 역사의 시작(1896~)
구한말인 1896년 8월, 창업주 매헌 박승직이 한성부(현 서울) 종로에 세운 '박승직 상점'이 모태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다. 다만 현 모기업 (주)두산은 존속법인이 다를 뿐더러[8] 업종 변경이 있다는 이유로 정통성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동화약품을 최장수 기업으로 꼽기도 한다. 동화약품은 설립 당시부터 현재까지 줄곧 한 상호와 한 업종과 한 제품으로 한 자리를 지켜 왔다.[9] 비슷한 역사를 가진 기업으로는 동화약품과 닌텐도가 있는데 동화약품은 1년 늦은 1897년에, 닌텐도는 7년 앞선 1889년에 설립됐다. 조흥은행 역시 1897년에 창립됐는데 2006년 존속법인 지위를 유지한 채 신한은행과 대등합병되면서 동화약품과 신한은행이 국내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기업이 된 상태다.설립 당시에는 포목점으로 시작했다. 당시 창업주였던 매헌 박승직은 넓은 안목으로 조선 내에서 생산되는 포목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 생산되던 고가의 수입산 포목까지 취급하여 박승직상점은 늘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박승직은 박승직상점의 주요 단골들에게 사은품으로 화장품을 제공했는데 이게 반응이 좋자 1916년 화장품 공장을 만들고 '박가분'이란 화장품으로 히트시켰다.[10] 이 성공으로 종로의 거상이 된 박승직 사장은 일제로부터 우리 상권을 지키기 위해 광장시장의 대표로 취임했으며 1925년 박승직상점을 주식회사로 개편했다. 1933년 박승직 사장은 쇼와기린맥주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해 주식 200주를 소유하고 쇼와기린맥주 대리점을 열었다.
다만 사업 과정에서 1909년 이토 히로부미 국민대추도회 발기인을 지낸 것을 비롯해 1940년 박승직 사장이 창씨개명을 하고 '미키상사'로 바꾼 후, 조선인 강제징용과 일본군 위안부 모집에 앞장서고 국방헌금을 내는 등 친일에 앞장섰던 흑역사가 있었다. 자세한 것은 박승직 문서 참조.[11] 1945년 8.15 광복 후 박승직상점은 문을 닫았으나, 박승직의 아들 연강 박두병이 1946년 두산상회를 다시 세웠다. 귀속재산 쇼와기린맥주 관리인으로 선임되어 주류 생산에 뛰어들었고, 1952년에 후신인 동양맥주를 정부로 부터 귀속재산 불하받아 그 약자인 OB라는 이름의 브랜드를 출범시켰다. 그래서 1978년 이전까지 그룹명도 두산그룹이 아닌 'OB그룹'이었다.
1969년 박두병 동양맥주 사장이 회장으로 일선에서 물러난 후 삼성에서 돌아온 정수창이 사장이 되면서 전문경영인 운영체제가 확립됐고, 1973년 박두병 사후 1975년 동양맥주 기획실을 '그룹운영위원회'로 개편하면서 산하 사무국으로 '그룹기획실'을 신설한 후 1977년부터 정수창 사장이 그룹회장이 되어 국내 최초로 전문경영인 출신 총수 시대를 열었다. 같은 해 서울 강동구 길동에 두산연수원(현 DLI-연강원)을 신설했다. 1981년 박용곤이 회장이 되어 3세 경영체제를 확립하고 1983년 을지로 신사옥으로 이전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기술소재사업, 정보유통사업, 생활문화사업 등, 주로 경공업 위주의 포트폴리오로 짜여져 있었다. 이 당시 계열사가 병뚜껑을 만드는 삼화왕관, 코카콜라를 유통하던 두산음료, OB맥주, 두산백화, 두산경월 같은 소비재 기업이었고, 두산상사는 폴로 랄프 로렌 및 월풀의 수입사로도 유명했다. 한때는 유가공사업(두산유업)[12]이나 즉석김치 사업(두산종합식품)까지 각각 손댄 적도 있었다. 1982년에 프로야구단 OB 베어스를 창단했고, 1985년 동아출판사 및 동아인쇄공업을 인수해 출판/인쇄업에도 손을 뻗었다.
참고로 두산그룹의 발상지 터가 종로구에 표시되어 있다. 종로4가 세운스퀘어 맞은편 효성주얼리시티와 매헌빌딩 사이에 있다. 두산그룹의 로고가 크게 보이며 발상지 기념 조형물이 세워져있다.
2.2. 가업을 버리다(1991~)
1991년 이전까지 두산의 주력 사업분야는 현재의 중공업 분야가 아닌 소비재 중심, 특히 주류산업이였다. 그룹의 모태나 다름없었던 OB맥주의 경우 창립 당시부터 꾸준히 업계 1위를 고수했으며 1982년에는 상표 이름을 딴 야구단까지 창단할 정도로 OB는 인기를 독차지했다. 심지어 후발주자인 크라운맥주는 OB맥주의 아성에 밀려 도매상에게 홀대받기 일수였다.그렇게 잘 나가고 있었던 그때, 1991년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두산전자(현 두산 전자BG)가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을 발생시켜 낙동강 라인인 대구 및 경북, 부산 및 경남 지역으로부터 두산 불매 운동 대상이 되어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당시 두산그룹은 OB맥주, 코카콜라, 버거킹, KFC(이하 두산음료), 네슬레, 코닥, 3M 등 소비재 사업을 주로 하던 기업이였기에 타격이 만만치 않았으며 무엇보다 100여년을 이어온 OB맥주가 직격탄을 맞게 된다. 주류의 특성상 물 맛이 중요한데 같은 계열사인 두산전자가 거하게 사고를 치는 바람에 이미지가 거하게 깎여나간데다 경쟁사인 크라운맥주가 이를 겨냥하듯 천연암반수를 강조한 하이트를 출시하면서 시장 1위의 자리를 빼앗긴 것도 모자라 매출이 곤두박질쳤다. 이 사건 이후 당시 회장이던 박용곤이 물러나고 기업 이미지 쇄신을 위해 두산종합기술원을 세우고 1993년 새 경영이념을 제정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너무나 뼈 아팠던 시절인 1995년에는 적자 규모 9,000억원, 부채비율 625%로 창사 이래로 최대 위기가 찾아왔다.
1996년 동생 박용오가 회장으로 취임했고 두산가 3세들은 그룹의 미래를 건 가족회의를 열게 된다. 그룹의 뿌리나 다름없는 소비재 산업에 대한 운명을 결정하는 회의였다. 당시 큰형이던 박용곤, 둘째 박용오는 소비재 산업을 버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집안의 뿌리나 다름없는 OB를 버리는 것은 가문의 정체성을 집어던지는 것이라며 완강히 반대했고 셋째 박용성, 막내 박용만 등은 다 죽게 생겼는데 가업이 무슨 소용이냐며 되받아쳤다. 특히 박용성은 우리에게 필요없는 것은 다 걸레로 봐야 한다는 소위 '걸레론'을 내세우며 기존의 소비재 산업을 깎아내렸고 형제 간의 갈등이 폭발하며 그룹 전체로 번져나갔다. 3남 박용성, 5남 박용만이 차남 박용오를 회장 자리에서 퇴출시켰고 박용오는 박용성과 박용만을 비자금 조성과 탈세로 고발하는 등 난타전을 벌였다.
"지금 이 상태로라면 3개월 안에 그룹이 망할 수도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OB맥주를 매각하는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 미국 컨설팅 업체 맥킨지&컴퍼니 -
- 미국 컨설팅 업체 맥킨지&컴퍼니 -
형제들 간의 싸움은 결국 이 권고를 기점으로 마무리됐고 큰형인 박용곤이 맥주를 비롯한 소비재 산업에서의 철수를 결정하면서 두산은 OB맥주를 비롯해 코카콜라, 버거킹, 3M 등의 계열사를 매각 혹은 사업 철수를 통해 구조조정하여 소비재 산업에서 떠났고[13][14], 1998년에 기존 OB맥주 법인이 모기업이던 두산상사, 두산정보통신, 두산동아, 두산경월 등을 합병해 '(주)두산'으로 탈바꿈한 후, 을지로 사옥을 하나은행에 매각하고 동대문 두산타워로 본사를 이전했다. 하지만 적지 않았던 타격 탓에 여전히 그룹의 미래는 불투명했고 형제들 간의 갈등도 아물지 않아서 둘째 박용오가 형제들과 의절하는 등 진통을 겪어야했다.
2.3. 중공업 분야로의 진출 (2000~)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인수합병과 비주력 사업부문의 매각을 통해 우리가 알고있는 중공업, 플랜트 건설 기업으로 변했다.2000년대 10년 남짓한 기간 동안 두산이 보여준 행보는 그야말로 공격적이다. IMF 전에 그룹을 이끌던 박용성 전 회장의 걸레론, '나에게 걸레면 남에게도 걸레이기 때문에 사지 않을 것이다'라는 인수합병에 대한 생각에 따라 돈 되는 주력 기업들, 국내에서 영위하던 해외 프랜차이즈 식당 기업들과 종가집 김치까지 몽땅 비싸게 팔아넘기며 꽤 상당한 실탄을 장전했다. 2000년 네오플럭스를 세운 뒤 2001년에 대아건설 등으로 이뤄진 스페코컨소시엄을 제치고 한국중공업을 인수하면서 중공업 그룹으로의 토대를 마련했는데, 이때 5조 원의 자산가치를 가진 한국중공업을 3,057억원에 두산에 민영화하면서 헐값 매각이니 특혜니 하는 의혹이 퍼지기도 했다.[15] 2003년 고려산업개발, 2005년 대우종합기계[16]를 인수한 두산은 해외에서도 엄청난 인수 러시를 벌였는데,
- 2005년 미국 AES社 미주지역 수처리사업 (現 두산하이드로테크놀로지)
- 2006년 영국 미쓰이밥콕 (現 두산밥콕)[17]
- 2006년 루마니아 IMGB (現 두산IMGB)
- 2007년 미국 잉거솔랜드사 밥캣[18] 등 3개 사업부
- 2007년 미국 CTI, 중국 연대유화기계
- 2008년 독일 물류장비 전문업체 ATL(現 두산목시)
- 2009년 체코 발전설비업체 스코다파워 (現 두산스코다파워)
- 2011년 독일 발전설비업체 AE&E 렌체스 (現 두산엔퓨어)[19]
- 2012년 영국 수처리 전문업체 엔퓨어 (現 두산엔퓨어)
- 2014년 룩셈부르크 동박제조업체 서킷포일[20]
- 2014년 미국 클리어엣지파워 (現 두산퓨얼셀)[21]
- 2016년 미국 에너지저장장치업체 원에너지시스템즈 (現 두산그리드텍)[22]
- 2017년 미국 가스터빈서비스업체 ACT 인디펜던트 터보 서비시스 (現 두산터보머시너리서비시스)
등을 인수해 건설중기, 해수 담수화, 발전 플랜트 분야에서 상당한 내공을 쌓게 됐다.
이 외에도 원전설비 세계 1위인 웨스팅하우스가 매물로 나왔을 때 두산도 물망에 올랐었지만, 결국 도시바에 인수되었다. 하지만 두산에 원전 기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래 전부터 국내에 건설 중이거나 건설 예정인 모든 원자력 발전소에는 두산의 설비가 들어갔고, UAE 원전 수출처럼 정부가 밀어주는 사업 말고도 세계 각지에 원전기자재를 수출하고 있다.
그 와중에도 두산은 2008년에 롯데 등을 제치고 중앙대학교 재단을 인수했다. 두산은 중앙대 인수 후 박용성 회장이 직접 이사장을 맡아서 구조조정에 나섰다.'학문단위 재조정'의 명분으로 기업식 구조조정을 단행해서 사실상 학과 계열[23]을 대폭 폐지, 축소하고 경영/경제 계열을 대규모로 확대하는 개편을 단행했다. 이러한 개편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 단위의 극심한 반발이 있었으며 총학 및 교수들과도 갈등을 빚었다. 다만 그동안 지나치게 세분화돼서 난립했던 일부 학과 단위를 재조정한 것은 필요한 일[24]이지만, 폐과된 학생들의 수업축소 문제와 학문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인기 학과 위주로의 통폐합이라는 비판도 있다.[25] 하지만 재단 인수 후에 신교사 건축과 도서관 리모델링 등 학교 인프라에 대한 투자는 확실히 대폭 늘어났다. 그러나 서울캠퍼스에 한해서만 투자가 이루어져 안성캠퍼스는 방치에 가까운 수준이라는 비판이 있다.[26] 여담이지만, 두산그룹이 재단에 들어오면서 중앙대학교는 대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기초회계를 교양필수과목으로 이수하게 했는데, 처음에는 대학을 직업훈련소로 만드냐는 비판이 많았지만, 회계는 모든 기업의 기본이기 때문에 지금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한편, 2007년 인수한 밥캣이 6조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인수했음에도 엄청난 적자를 보고 있어 발목을 잡고 있다. 또한 인수 당시 밥캣의 부채를 떠안은 것이었으며, 그리고 인수자금 조달원 중 자기자본 1조원을 제외한 나머지를 외부에서 조달해 이에 대한 이자가 만만찮다는 것이 많은 부담으로 작용하고있다. 덕분에 2007년 30조원에 가깝던 두산그룹의 시가총액은 2011년 16조원 수준으로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이것 때문에 그룹 차원에선 밥캣의 정상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으며 계열사 정리를 통해 재무구조 개선을 꾀하고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두산그룹의 골칫거리라고 할 수 있겠다.
2011년 포츈지 선정(매출기준) 세계 500대 기업에 489위로 이름을 올렸다.
2.4. 위기 (2012~2020)
2009년부터 사람이 미래다라는 슬로건 캠페인을 전개, 2011년 iPhone을 언박싱하는 영상을 올리며 얼리어답터로서 젊은 대학생들에게 호감을 얻던 박용만 회장의 이미지가 인기 있는 회사였지만 두산의 위기는 이전부터 시작됐다.2012년 서울시내 주요 대학에서 열린 채용설명회는 고려대학교에 박용만 회장, 성균관대학교에는 두산중공업 한기선 사장, 인하대학교에는 두산인프라코어 김용성 사장이 직접 참가했고 취준생에게도 인기 있는 회사였다.[27] 그리고 여기까지가 두산이 이름있는 회사로서 최소한 대중들에게 날리던 시절이었다.
두산의 위기는 소비재 중심의 기업에서 중공업 중심 기업으로 체질 개선을 하면서[28] 한때 성공적인 혁신이라 추켜세운 성과를 거두었지만, 이면에는 M&A와 경영진의 경영 실패에서 본격적인 위기가 도래하기 시작한다.
2.4.1. 밥캣의 위기
두산그룹의 위기설은 위에 상술한 밥캣 인수부터 시작한다. 2008년 밥캣 인수를 위해 과다한 차입금을 지불하면서 운없이 서브프라임 사태로 건설 경기가 맛이 가버렸다. 그로인해 기업가치가 폭락하면서 부채 문제가 도래했고, 이를 영구채로 전환시켜 한숨 돌린다. 2012년 11월 초 계열사 두산인프라코어가 발행한 영구채(신종자본증권)가 금융위원회에서 '부채로 판단해야 한다'라는 판단이 나와서 논란이 되고 있는 중이다. 금융감독원, 한국산업은행 측에서는 두산인프라코어의 영구채를 자본으로 인정했고 IFRS 자본분류 기준으로도 자본으로 판단했으나 금융위원회는 인정하지 않고 있는 중. 11월 8일 한국회계기준원 연석회의에서 부채인지 자본인지가 결단날 듯 했으나 이 날 회의에서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결국 12월 13일 자본으로 결정나며 두산은 한시름 놓게 됐다.2.4.2. 두산건설의 위기
또 다른 문제는 밥캣 인수와 동시기인 두산건설의 PF 부실이 두산그룹을 위기속으로 몰아넣는다. 2013년 11월 26일 두산건설이 오전에는 자본 감소를,[29] 오후에는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사실 두산건설은 몇 년 전부터 적자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특히나 일산에 짓고 있던 위브 더제니스 주상복합 단지가 미분양 물량이 쏟아지면서 맛이 가 버렸다.[30] 그래도 일산 위브 더제니스는 2016년 기준 미분양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2018년에도 대형평수는 여전히 시망, 용인시에 지어놓은 용인 행정타운 두산위브 아파트는 2012년에 준공 이후 2016년까지 미분양률이 80%, 1293가구 단지에 1034가구가 여전히 미분양 상태이다. 그래서 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에서 돈을 쏟아부었는데, 문제는 실패했다는 것이며 현재진행형이다. 2018년에도 용인 행정타운 분양을 6,000만원을 깎아주면서 미분양을 해소하려 애썼지만 결과는 시망했다.즉 일산 위브 더제니스의 미분양으로 1,646억원의 손해를 보았다. 더 골때리는 점은 일산 더제니스 미분양은 워낙 유명하고 잘 알려진 것이지 그것만으로 두산건설만 아니라 두산그룹을 늪으로 밀어넣는 정도는 아니다. 진짜 시작은 2006년 PF에 보증 1,550억원을 건 울산 대현 주택사업은 10년 만인 2015년 분양했지만 1,437억원의 적자를 보았다. 용인 삼가, 천안 청당, 화성 반월 등의 PF 보증도 2019년 2월 기준 대여금을 포함해 7,705억원 규모인데 아직 미분양 상황이다. 여기에 맥쿼리는 흑자를 안정적으로 땅짚고 버는 지하철 사업을 두산건설은 신분당선을 가지고 있음에도 누적적자가 4천억에 육박해서 매각까지 고려하지만 신통치 않다.
온갖 미분양과 사업적자가 발생하니 당연히 적자는 천문학적으로 증대되어 2011년부터 두산건설은 적자를 3,000억원, 2012년은 무려 적자를 6,500억원이나 기록하며 현재까지 단 한번도 흑자를 낸적이 없다. 2018년에도 적자 4,200억원을 내며 답이 없으니 2019년에 상장폐지 크리를 밟는다. 계열사가 1년만 수천억대의 적자가 나도 웬만한 재벌은 분위기 매우 안 좋아지며 이 회사의 전문경영인들은 당연히 목이 날아간다. 무려 10년 동안 두산건설이 연간 수천억에 총 수조가 넘는 적자를 내는 것을 두산이 살리려고 하니 그룹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결국 두산건설은 혼자서 그룹 자금 1조 7,000억원을 빨아먹은 블랙홀이 되고 말았다.#
당연히 경영적 판단으로는 하루라도 빨리 두산건설을 정리 매각해야 했다. 각종 언론과 시장에서 이미 지적했듯이 두산건설은 어떻게든 빨리 정리했어야 하는데 계열사의 재무 악화와 알짜 자산 매각에 부실 전이까지 감수하며 무리하게 살리려다 이런 참사가 난 것으로 보고 있다. 두산건설을 쉽게 처리하지 못했던 건 건설사 특성상 비자금 조성의 필수요소라는 음모론적인 시각 외에도 형제가 돌아가며 경영권을 맡는 두산그룹의 사촌경영 구조가 원인이었다는 시각도 있다.#
물론 두산도 자금마련을 위해 사업 매각을 통해 자금확보를 했다. 일례로 두산중공업은 알짜중에 알짜인 배열회수보일러(HRSG) 사업부를 두산건설에게 넘겨주며 두산건설의 위기를 해소하려 했다. 그러나 유일한 알짜였던 HRSG를 두산건설은 결국 2017년에 3,000억원에 GE에 매각해버리고, 보유한 두산DST 지분 51%를 3,500억원에, 논현동 사옥조차 빚갚는다고 매각해버린다.[31] 거기에 두산그룹이 중앙대에 온갖 공사를 해서 죄다 두산건설에 몰아준 것은 덤. 이럼에도 두산건설의 부실은 상술했듯이 꾸준해서 2018년에,도 적자 4,200억원을 기록했고, 급기야 두산중공업과 같이 유상증자로 9,500억원을 그 해에 조달했지만 결과는 알다시피 두산건설의 상장폐지 - 두산중공업 자회사 편입으로 사망테크를 탔다. [32] 2013년부터 두산중공업이 두산건설에 쏟아부은 지원금은 1조 9,252억원이다. 당연히 두산이 삼성도 아니고 휘청거릴 수 밖에 없다. 1조 9,000억원을 보존했으면 두산의 상황이 어떠했을까? 유동성 위기로 매각한 온갖 알짜 자산들을 가지고 있다면 그룹이 이렇게 핀치에 몰리지 않는다. 또 두산인프라코어의 진짜 알짜중에 알짜인 공작기계 사업부도 1조 1,000억원에 매각한 후 두산 밥캣 상장으로 3,000억을 끌어모았는데 여기서도 실패한 결과물이 됐다. 두산공작기계는 두산이 MBK에 판지 3년만에 2019년 M&A 매물로서 무려 2조 8,000억원부터 몸값이 시작하며 두산의 마음을 다시 한번 울렸으며[33] 밥캣 상장도 밥캣의 규모에 비해 그저그런 실적이었다. 그리고 맥킨지&컴퍼니 컨설팅의 LG그룹과 더불어 컨설팅 실패의 양대산맥으로 꼽히고 있다. [34]
2.4.3. 기타 사업부문의 위기
2015년에 당시 황금알 거위 취급받던 면세점 사업권을 따내 동대문 두산타워에 면세점을 개장했지만 면세점 사업에 대한 회의론도 만만치 않으며, 실제로 사업권을 따낸 직후 주가가 급락했다. 결국 2019년 말, 두산은 면세사업 면허를 반납하며 사업을 접었다. 그러나 중앙대 특혜 논란, 인프라코어 쪽에선 영업이익을 상회하는 이자 때문에 지속적으로 적자가 누적되어 주가는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중이고 경영문제 때문인지 사원, 대리 직급까지 비자발적 명예퇴직을 신청 받는다는 소문이 '언론에까지' 나도는 등 악재도 터지고 있다. 다만 이 부분은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되자 회장이 직접 나서 철회했다. 하지만 실제로 사원, 대리 직급의 정규직 사원들의 수는 급감했으며 현재(2022년) 사원~대리 : 과장~차장 직급의 비율은 2:8정도며 과장급이 각 팀의 막내역할을 하고 있다. 상당히 비정상적인 비율이며 사원, 대리 직급은 비정규직(계약직)을 채용하여 일반계약직인 경우 2년 사용 후 계약 해지 수순을 밟으며, 프로젝트계약직의 경우 프로젝트가 끝날때까지 사용하나 대한민국 비정규직법을 잘 이용하여 2년이상 근무 시 무기계약직 전환이나 정규직 전환은 프로젝트계약직의 경우 예외인 사항이기에 거의 모든 계약직 사원들은 프로젝트계약직으로 계약하게 된다.2.4.4. 일시적 회복 후의 구조조정
2012년에 새로운 고유 경영체계 '두산 Credo'를 전파해서 변화의 계기를 마련, 2014년 퓨얼셀파워 인수합병과 2017년 두산로보틱스 설립으로 신사업 개척에 진력하며 2018년 들어서는 두산중공업, 두산밥캣, 두산인프라코어의 흑자전환으로 그룹 분위기가 한숨 나아졌다. 특히 두산인프라코어는 자회사인 밥캣과 중국시장에서의 성공으로 영업이익이 1조에 육박하는 성과를 내었다. 하지만 영업이익 성과는 흑자일지언정 영구채의 이자와 당기순손실이 누적돼서 당기순이익은 계속 적자였다. ##이와중에 두산중공업이 2018년 3분기까지는 순이익을 올리다 갑자기 4분기에 순손실 5,000억원이라는 대형사고를 치고 급하게 유상증자를 하자 주가는 땅을 뚫고 내려가고 있다. 그래도 순손실의 원인이 시장에서 실패해 손실이 난건 아니고 위에 자세히 설명한 두산건설 살리기 위해 투입한 출자금에 대한 대손충당금 설정에 의해 생긴 손실이라 한다. 하지만 전세계적인 탈석탄 트랜드에 의해 직접적으로 악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커 두산중공업의 전망이 매우 좋지 않다. 2017년부터 3년동안 두산중공업의 주요 사업인 원전과 화력발전의 수주 감소로 급격히 줄어들었으며 규모는 10조원에 달하는 수주가 취소되면서 영업이익이 2012년과 비교해서 17% 수준에 불과한 상황이다. 여기에 순손실이 1조원이 넘어가니 2018년 3분기 말 두산중공업의 차입금은 무려 5조원에 육박하면서 두산중공업이 버틸 수 없는 상황에 몰린 것이었다. 두산건설에 큰돈을 쏟았지만, 전세계적으로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가속화된 탈석탄 추세에 의해 소모된 자본과 시너지가 나서 완전히 늪에 빠져버린것이다. 2010년대 초반 두산인프라코어의 위기보다 지금 두산중공업의 위기가 더 심각한 상황이다. 결국 2020년 2월 직원 2,600여명을 명예퇴직 시킨다고 발표했으며 3월 11일에 무려 회사 휴업까지 검토한다는 뉴스까지 나온 상황이다. #
4월 1일에는 아예 구조조정의 칼을 빼들었다. # 산업은행과 채권단에서는 우선 1조원을 지원해주기로 하여 잘 이루어지면 급한 불은 끌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채권단에서는 당연히 경영 책임을 물어 지배구조 개편을 요구하고 있으며 특히 두산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밥캣의 계열분리를 요구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의 부실 전이를 막기위한 방법. 두산중공업이 두산의 중간지주회사라서 채권단 요구대로 연결고리가 끊어지면 두산그룹은 금호그룹처럼 중견 그룹으로 떨어지게 된다.[35] 두산 경영진은 두산건설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지만 너무 비싸게 팔려고 하는 바람에 엎어지고 말았다. # 고육지책으로 알짜 계열사까지 팔려 하지만 문제는 이미 알짜 계열사들을 모조리 팔아버렸다.
전세계적으로 친환경 트렌드 때문에 석탄발전이 사양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두산중공업은 석탄 발전에 목을 매 미래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다. 다른 에너지발전에 다방면 투자를 해야 했으나 원자력에 올인을 했고, 이는 두산중공업의 패착이 됐다. 내수시장 아파트 건설에만 올인한 경영전략의 실패로 그룹의 돈을 막대하게 빨아먹는 암덩어리가 된 두산건설 때문에 두산은 많이 약해진 상태였고, 한국과 유럽의 탈원전 추세는 두산중공업에겐 너무나 아픈 타격이었다. 두산중공업은 석탄과 원자력 말고는 주력 먹거리가 없는 상황이었고, 결국 실적부진으로 두산중공업의 영업손실액이 불어나자 두산건설과 함께 그룹 전체의 위기로까지 번진게 현재의 두산 위기이다. 미국에너지경제 재무분석연구소가 말하는 두산이 무너진 이유
결국 두산중공업을 제외한 모든 자산을 매각하는 3년 약정 체결 기사가 나왔다. 단독]"두산重 뺀 모든 자산 매각"..채권단, 두산과 3년간 특별약정체결
2020년 6월 16일 두산그룹의 핵심인 두산인프라코어가 매물로 나왔다. #
2.5. 부활 (2021~)
2020년 9월 두산타워를 마스턴투자운용에 매각, 12월 3일 재무구조가 나아지고 있는 상태다.[36] 두산중공업은 1.2조의 유상증자에 성공하여 현재 그 금액은 빚을 갚는데 사용한다고 한다.혹독한 구조조정과 산업용 로봇 계열사인 두산로보틱스의 약진 덕분에[37] 2021년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도 대비 무려 403%나 증가했다고 하며, 계열사인 두산중공업 역시 최고 558%가 급증하면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
2021년 1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일로 115에 신사옥을 세우고 11월 그룹 위기의 중심인 두산건설 지분권을 사모 펀드에 매각했다. 이로 인해 두산건설은 두산에서 계열 분리되었다. # 이로써 두산의 구조조정 및 재무구조 개선 작업은 사실상 거의 마무리됐고, 신성장 산업을 중심으로 그룹 구조를 재편할 계획이라고 한다.
2022년 2월 27일에는 지난 2020년 채권단과 체결한 3년 특별약정이 종료된 것으로 보인다. # 재무지표 개선 등 전통적인 기준뿐만 아니라 국가 기간산업인 '에너지 분야의 대표기업'으로서의 중요성도 감안하여 채무단이 약정을 종결한 것으로 보인다.
두산이 부활하면서 두산 베어스 팬들은 더 이상 팀 해체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고, 구단이 FA 선수 계약에 신경쓸 수 있게 됐다며 행복해했다.[38]
3. 기업정신
3.1. 1978~1993
- 사훈: 인화[39]
- 경영이념: 자아의 실현, 기업의 성장, 사회에의 봉사
3.2. 1993~2012
- 경영이념: 고객은 우리의 스승이고 품질은 우리의 자존심이며, 혁신은 우리의 생활이고 인재는 우리의 보배이다.
- 사원정신: 우리는 두산인으로서의 긍지를 갖고 모든 일에 전문가적이고 열정적이며 긍정적인 자세로 사고하고 행동한다.
3.3. 2012~ : 두산 Credo
- 목표: 세계 속의 자랑스러운 두산
- 핵심가치: 인재, 인재양성, 정직과 투명성, 인화, 고객, 이익, 기술과 혁신, 사회적 책임, 안전과 환경
4. 오너 일가
자세한 내용은 범두산가 문서 참고하십시오.5. 역대 경영진
이하 내용은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주)두산 다트공시 등지 참고.- 명예회장
- 박용곤 (1996~2019)
- 그룹 회장
- (주)두산 회장
- 박정원 (2012~2016)
- (주)두산 대표이사 회장(총괄)
- 고종진 (2002~2003)
- 박용만 (2009~2012)
- (주)두산 부회장
- 고종진 (1998~2002, 대표이사 총괄)
- 유병택 (2003~2007, 대표이사 총괄)
- 박용만 (2005, 대표이사 총괄)
- 제임스 비모스키 (2006~2015)
- 강태순 (2007~2009, 대표이사 겸 이사회 의장)
- 이재경 (2008~2018, 대표이사)
- 박지원 (2012~2016, 관리)
- (주)두산 사업부문 CBO
- 동현수 (2018~2020, 대표이사)
- 곽상철 (2020~2021, 대표이사)
- 문홍성 (2021~, 대표이사[40])
- (주)두산 대표이사 사장(총괄)
- 박용만 (2001~2005)
- (주)두산 지주부문 CFO
- 김민철 (2018~, 대표이사)
- (주)두산 지주부문 CSO
- 문홍성 (2019~2021)
- 김도원 (2021~)
- (주)두산 전략기획본부장: 2008년경 폐지.
- 박용만 (1998~2001, 대표이사)
- 정지택 (2001~2002)
- 이재경 (2002~2008)
- 김용성 (2003~2005)
- (주)두산 관리본부장: 2015년경 폐지.
- 강태순 (2002~2007/2009~2011)
- 박용만 (2007~2009)
- 최광주 (2011~2015)
- (주)두산 최고기술책임자(CTO): 2020년경 폐지.
- 이현순 (2014~2020)
6. 역대 로고
<colcolor=#fff> 1978년 ~ 1995년[41] | <colcolor=#fff> 1996년 ~ 2021년[42] | <colcolor=#fff> 2022년 ~ 현재[43] |
7. 계열사
지배구조. 출처 두산그룹은 지배구조가 상당히 안정적인 편이다. 지주회사 (주)두산이 거의 모든 핵심 계열사를 종속회사로 두고 있어 실적을 계산하기도 아주 편하다. 연결기준의 지주회사에 다른 계열사들의 실적이 모두 반영되기 때문이다. (주)두산은 사업지주회사로 계열사들을 지배하는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자체적으로도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7.1. (주)두산
자체 사업군을 영위하는 사업 지주회사이며, 범용적으로 사용되는 용어는 아니지만 자체적으로 사업부문을 규모에 따라 'BG(Business Group)' 혹은 'BU(Business Unit)'로 구분하고 있다. BG가 좀 더 큰 사업부문이고 BU가 상대적으로 소규모 사업부문을 뜻한다.상술했듯 거의 모든 계열사를 종속회사로 두고 있기 때문에 연결기준의 실적은 곧 두산그룹 전체의 실적이다.
이하는 그룹 홈페이지의 계열사 설명란 요약.
- ㈜두산 전자BG
전자제품의 필수부품인 인쇄회로기판(PCB)의 주요소재인 동박적층판(CCL)을 생산 공급한다.
사업영역: 동박적층판, 전자 소재
- ㈜두산 퓨얼셀 파워BU
국내 최초 건물/주택용 연료전지 핵심 소재 및 시스템기술을 기반으로 연료전지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사업영역: 신재생에너지, 연료전지 시스템
- ㈜두산 디지털이노베이션 BU (舊 정보통신 BU)
Digitalization 서비스, Application 개발 및 운영, Platform/IT Infra구축 및 운영을 포함한 Total IT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업영역: 컨설팅, IT 시스템 구축/운영, IT 인프라 운영
- ㈜두산 유통BU
동대문의 랜드마크 쇼핑몰인 두타몰을 운영하고 있다.
사업영역: 패션 전문몰
7.2. 스포츠단
- 두산 베어스
한국프로야구 출범 첫 해인 1982년 1월 대한민국 최초로 창단한 프로야구단이다. 창단명은 "두산프로야구단 OB 베어스"였으며, 창단일부터 현재까지 계속 두산 산하에 있다. 프로야구 원년 한국시리즈 우승과 첫 2군 클럽하우스 준공을 시작으로 유망주와 신진 선수 육성에 꾸준히 힘쓰고 있다. - 두산 핸드볼선수단
원래는 강원 지역 소주 업체인 경월에서 창단한 팀으로, 1993년 경월을 두산이 인수하는 과정에서 같이 넘어 왔다. 핸드볼팀은 두산건설을 거쳐서 2007년부터는 두산 베어스 야구단 산하로 들어가 있다.
- FC 빅토리아 플젠
두산이 2009년 플젠을 후원하던 체코의 기업 스코다 파워를 인수하며 후원하게 되었다.
7.3. 부속기관
- 두산경영연구원
2016년 2월 18일 설립됐으며, 그룹의 Think-Tank 기능을 담당하는 BI(Business Intelligence, 전략지원실) 부문과 임직원을 글로벌 리더로 양성하는 DLI(Doosan Leadership Institute, 연강원) 부문으로 구성돼 있다. (주)두산의 100% 자회사이다. - (재)두산연강재단
두산연강재단은 "교육은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연강(蓮崗) 박두병 초대회장의 뜻을 기리고자 1978년 설립됐으며, 장학금 지원, 학술연구비 지원, 교사해외학술시찰, 도서보내기 등의 장학사업과 두산아트센터, 창작자 지원, 교육프로그램 운영 등의 다양한 문화사업을 펼치고 있다. - 두산아트센터
2007년 두산 창립 111주년을 기념하여 문을 연 두산아트센터는 연강홀, Space111, 두산갤러리를 통해 젊은 예술가들의 새로운 시도를 지원한다. - (학)중앙대학교
7.4. 기타 계열사
- 두산에너빌리티: 舊 두산중공업. 산업의 기초 소재인 주단조 제품, 원자로, 보일러, 터빈, 발전기 등 발전설비를 비롯해, 담수를 생산하는 해수담수화 설비 및 수처리 설비, 운반 하역 설비 등을 제작해 국내외 플랜트 시장에 공급하는 글로벌 EPC 전문 기업이다. 발전, 수처리, 주조 및 단조, 건설, 운반설비, 그린에너지 등의 사업을 영위한다. 2022년 3월 29일에 정기주주총회 의결을 통해 두산에너빌리티로 사명을 변경했다.[44] 채권단 관리체제를 거치며 채권단과 두산그룹간 체결한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이행하기 위해 두산그룹의 여러 회사들을[45] 자회사로 편입함에 따라 중간지주사로 거듭났다.
- 두산밥캣: 2016년 11월 말 코스피시장에 상장을 완료했다. 원래는 두산인프라코어의 자회사였으나, 두산인프라코어가 현대중공업에 매각됨에 따라 알짜회사인 밥캣은 두산인프라코어와 분리하여 두산에너빌리티의 자회사가 됐다. 현재는 연매출 10조를 기대하는 등 그룹의 주요 캐시카우를 담당하고 있다. [46]
- 두산밥캣코리아: 2023년 9월 이사회를 통해 두산산업차량과 두산밥캣의 한국법인인 두산밥캣코리아의 합병이 결정되었고, 이에 따라 사명이 두산밥캣코리아로 변경되었다. 두산밥캣의 100% 자회사이다.
- 두산퓨얼셀: 2019년 10월 1일 (주)두산의 연료전지 사업부문을 인적분할하여 설립된 계열사로, 발전용 연료전지를 제작한다. (주)두산 산하인 (주)두산 퓨얼셀파워와는 별개의 회사다.
- 두산큐벡스: 골프장(라데나GC) 운영 및 기숙사[47] 위탁운영을 하는 GC사업부문과 계열사들의 급여·총무·구매업무 위탁운영 및 건물·시설[48]관리를 하는 IBS(통합 비즈니스 지원)사업부문을 영위한다.
- 두산테스나: 반도체 후공정의 핵심인 테스트 서비스 전문 업체이다. 채권단 관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자산과 계열사를 매각한 두산에서 신성장 동력으로 키우기 위해 인수했다.
- 두산로보틱스: 고성능 토크센서 및 충돌 감지력을 탑재한 협동로봇을 제작한다.
-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 드론에 부착하는 연료전지 파워팩을 만든다. 일반적으로 10~15분 비행이 가능한 드론을 2시간 이상 비행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 두산로지스틱스솔루션: 물류 센터 설계 및 컨설팅, 물류 프로세스 제어 및 관련 소프트웨어/자동화설비를 통합 공급한다.
- 오리콤: 한국 최초의 종합광고회사로, 광고기획, 크리에이티브, 브랜드컨설팅, 미디어, 프로모션, 인터넷 마케팅 등 모든 서비스를 제공한다.
7.5. 과거 계열사
이하 내용은 <두산그룹사(1988)>, 상장계열사별 다트공시 등지에서 확인.- 금강융단: 1975년 해산.
- 대관농산: 1972년 해산.
- 덴쯔영앤드루비컴코리아: 일본 덴츠, 미국 영 앤 루비컴과의 합작법인으로 2003년 청산.
- 동방여운: 1972년 설립된 관광업체로 1979년 정리.
- 동아인쇄공업: 1996년 동아출판사에 합병.
- 두산백화 (現 롯데칠성음료 주류영업본부) : 1985년 12월 두산그룹이 군산의 주류(청주, 위스키 등) 생산업체인 백화양조(주)를 인수했다. 이후 1990년 백화(주), 1995년 12월 로고 변경에 따라 '두산백화(주)로 사명을 변경했다. 1998년 9월 1일 OB맥주 등 9개사를 통합하여 합병법인인 (주)두산을 설립함에 따라 (주)두산 주류BG가 됐다. 이후 2009년 주류사업을 롯데그룹에 매각하여 독립법인인 '롯데주류BG'가 됐다가 2011년 롯데칠성음료와 합병해 산하 사업부로 존속하고 있다.
- 두산경월 (現 롯데칠성음료 주류영업본부) : 1993년 강릉 소주업체 경월(鏡月)을 인수했고 1995년 12월 로고 변경에 따라 '두산경월'로 사명을 변경했다. 1998년 9월 1일 OB맥주 등 9개사를 통합하여 합병법인인 (주)두산을 설립함에 따라 (주)두산 주류BG가 됐다. 이후 2009년 주류사업을 롯데그룹에 매각하여 독립법인인 '롯데주류BG'가 됐다가 2011년 롯데칠성음료와 합병해 산하 사업부로 존속하고 있다.
- 두산상사 : 1896년 세워진 '박승직상점'을 모태로 한 종합상사. 1925년 주식회사로 개편했으며, 1946년 두산상회, 1953년 두산산업(주), 1993년 두산상사(주)로 회사명을 변경했다. 1998년 9월 1일 OB맥주 등 9개사를 통합하여 합병법인인 (주)두산을 설립함에 따라 (주)두산의 상사BG가 됐다. 2007년 두산 글로넷BU, 2017년 바이오BU를 거쳐 2019년 신규법인 두산솔루스로 흡수.
- 두산메카텍 : 1967년 설립. 반응기, 압력용기, 타워&컬럼, 열 교환기 등의 CPE(Chemical Process Equipment) 제품 제작 회사이다. 2022년 9월 15일자로 두산에너빌리티의 보유지분 100%를 범한산업(주) 및 메티스톤에퀴티파트너스(주)에 1,050억원에 매각했다.
- 두산솔루스 (現 솔루스첨단소재) : 2020년 스카이레이크에 매각.
- (구)두산전자 : 舊 한국오크공업. 1998년 9월 1일 OB맥주 등 9개사를 통합하여 합병법인인 (주)두산 설립.
- 두산건설 : 2021년 12월 매각
- 두산동아 (現 동아출판) : 1998년 9월 1일 OB맥주 등 9개사를 통합하여 합병법인인 (주)두산 설립. 2008년 10월 1일 두산동아로 물적분할하여 두산의 100% 자회사가 됐다가 2014년 YES24에 매각됐다. 다만, 물적분할 시 두산백과 사업은 (주)두산에 존속함.
- OB맥주 (舊 동양맥주) : 1998년 9월 1일 오비맥주 등 9개사를 통합하여 합병법인인 (주)두산을 설립하여 맥주사업부문이 됐으며, 이와 동시에 신 오비맥주 법인을 설립하여 벨기에의 맥주회사인 '인터브루'에 일부 지분을 매각하면서 2001년 계열 분리됨. 1999년부터 KBO 리그 OB 베어스가 두산 베어스로 바뀌기도 했다.
- 두산음료 : 서울/강원지역 코카콜라 보틀링 업체. 1997년 OB맥주에 합병됨.
- 두산생물자원 : 가축용 배합사료 브랜드 ‘백두사료’를 전문으로 생산, 판매하는 축산전문기업이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식품 관련 기업으로, (주)두산 식품BG(생물자원BU)로 사업을 영위하다가 2007년 12월 21일 두산타워와 함께 두산에서 물적분할하여 두산의 100% 자회사가 됐다. 2017년 3월 10일 지분 100% 353억에 동원그룹에 매각됐다.
- 테크팩솔루션 (舊 대한유리공업→두산유리→두산테크팩) : 1956년 2월 해남초자공업(주)으로 설립한 후 1962년 대한유리공업(주)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1969년 한국병유리(주)를 설립했으며, 1972년 기업을 공개했다. 1979년 대한유리공업(주)과 한국병유리(주)를 합병하여 두산유리(주)로 상호를 변경. 1998년 9월에 두산제관(주)과 합병하고 상호를 두산포장(주)으로 변경, 2000년 3월 다시 두산테크팩(주)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2001년 12월 31일 (주)두산에 합병된 후 2008년 12월 1일 테크팩솔루션으로 물적분할함과 동시에 MBK파트너스에 팔렸다가 2014년 동원그룹으로 넘어갔고, 2021년 동원시스템즈에 합병됨.
- 두산제관 : 1998년 두산유리에 합병됨.
- 두산모트롤 (舊 동명중공업→舊 동명모트롤) : 2008년 6월 30일 1,041억원에 52.9%의 지분을 취득함. 2010년 (주)두산에 합병되어 (주)두산 모트롤 BG로 운영되다가 2020년 12월 1일 (주)모트롤로 물적분할 후 매각했다.
- 두산모터스 : 2004년 5월 7일 설립되어 자동차(혼다, 재규어, 랜드로버) 수입판매/정비 및 건물관리용역과 소방/기계공사업을 영위했다. 2011년 5월 3일 사명을 두산모터스에서 DFMS로 변경했으며 2012년 11월 1일 (주)두산에 합병됨. 박용곤 등 두산 일가가 100% 주식을 소유하고 있었다.
- 동현엔지니어링(주) : 2011년 5월 1일 두산모터스(주)에 합병됨.
- (주)엔셰이퍼 : 두산그룹 계열사에 총무, 복리후생 등 공통지원업무(shared service)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2013년 9월 1일 (주)두산에 합병됨.
- DFMS: 구 두산모터스. 혼다 딜러사 겸 건물 용역업체로 2012년 (주)두산에 합병됨.
- DIP홀딩스(주) : 두산이 2009년 구조조정을 위해 설립한 페이퍼컴퍼니로, 두산DST와 삼화왕관, SRS, KAI 4개 회사의 지분을 미래에셋 PEF 등이 설립한 오딘홀딩스와 함께 보유하고 있다. 2018년 3월 1일 (주)두산에 합병됨.
- 두산DST : 2016년 한화그룹에 매각된 후 '한화디펜스'로 변경했으나, 2019년 한화지상방산에 합병됨.
- 삼화왕관 : 1994년 세우회로부터 인수했으나, 2010년 (주)금비에 매각됨.
- SRS코리아(주) : DIP홀딩스의 자회사. KFC 및 버거킹 한국사업 담당사로, 2004년 12월 29일 두산의 외식사업부문에서 물적분할하여 100% 자회사가 됐다가 2014년 매각됨.
- 두산인프라코어 : 크게 건설기계, 공작기계, 엔진의 세 분야로 나뉜다. 매출의 75%가 건설기계에서, 25%가 나머지 사업분야에서 비롯됐다. 연결기준 14년 매출 7조 6,886억, 영업이익 4,530억. 다만 공작기계 사업부문은 2016년 4월 유동성 위기 해결을 위해 약 1조원에 MBK파트너스에 매각했다. 그러나 유동성 위기는 좀처럼 해결이 안됐고 결국 인프라코어 자체가 매각대상으로 나왔다. 결국 2020년 12월 10일, 현대중공업이 두산인프라코어를 8,500억원에 인수하기로 결정하며, 회사명도 '현대두산인프라코어'로 변경됐다. 이후 HD현대인프라코어로 재개명해 두산의 흔적이 사라졌다.
- 두산공작기계 : 2016년 MBK파트너스가 두산인프라코어로부터 공작기계 사업부문을 인수하며 두산그룹에서 분리 그렇게 국내 사모펀드운용사(PEF)인 MBK파트너스에 매각된 이후 2022년에 디티알오토모티브에 재매각됐다. 기사
- 두산밥콕 : 일본 미쓰이 그룹으로 부터 2006년 미쓰이 밥콕 에너지를 인수한 두산에너빌리티의 유럽 자회사이다. 밥콕이 소유한 지분은 없다. 밥콕의 보일러 원천기술을 두산 측이 확보하자 2022년 협력관계에 있는 프랑스의 알트라드에 매각했다.
- 두산엔진 (現 HSD엔진) : 디젤 엔진 생산 전문 기업으로, 선박용 중.저속 디젤엔진 생산, 디젤발전소 건설과 운영, 엔진부품 판매와 서비스한다. 2018년 소시어스-웰투시 컨소시엄에 매각됨.
- 두산씨그램 (現 디아지오 코리아) : 1980년 오비씨그램(주) 설립. 2000년 미국 씨그램 사에 매각됨.
- 두산엔지니어링 : 2001년 (舊)두산건설에 합병됨.
- 렉스콘 : 2014년 두산건설에 합병됨.
- BNG증권 : 2015년 청산됨.
- 빅앤트 : 광고기획사로, 2017년 청산됨.
- 두산개발 : 舊 덕수개발→덕수종합개발→동현건설. 1997년 두산농산에 합병됨,
- 한국네슬레 (現 롯데네슬레코리아) : 1991년 스위스 본사측의 증자로 사실상 경영권을 잃고 1996년에 지분매각함.
- 한국맥아공업: 1972년 동양맥주에 합병됨.
- 한국도서보급 (現 티알엔) : 2003년 태광그룹에 매각됨.
- 한국병유리: 1979년 대한유리공업에 합병됨.
- 합동통신사: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뉴스통신 사업이 연합통신으로 흡수. 반면 존속법인은 운수업만 남긴 채 (주)합동이 되었으나 1981년 두산개발로 역합병.
- 두산캐피탈 : 舊 연합캐피탈. 2015년 미국계 사모펀드 JC캐피탈에 팔린 후 2016년 애큐온캐피탈에 합병됨.
8. 논란 및 사건 사고
8.1. 박가분의 납 성분 함유
자세한 내용은 박가분 문서 참고하십시오.8.2.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
자세한 내용은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 문서 참고하십시오.8.3. 형제의 난
8.4. 경영상의 악습
최근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국내 투자자들에게 알려지며 주주들을 등한시하는 계열사들의 악습이 부각되고 있다.9. 기타
- 대구광역시 수성구에 두산동이 있으며 한자까지 斗山으로 똑같지만, 두산그룹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다.[49] 수성못역이 있는 교차로 이름도 "두산오거리"다. 다만, 두산오거리에서 한참한참 북쪽의 범어네거리 동쪽에 범어 두산위브 더 제니스아파트[50]가 있다. 강원도 강릉시에도 두산동이 있고 한자까지 斗山으로 똑같지만, 마찬가지로 두산그룹과 별다른 관계가 없다. 또한, 서울특별시 금천구 독산동에는 서울두산초등학교라는 이름을 가진 초등학교도 있지만, 이 학교 역시 한자만 같을 뿐 아무 상관도 없다.
10. 참고/관련 문헌
[1] 2023년 기준[2] 2023년 기준[3] 2023년 기준[4] 현재 재벌 중 시가총액 1위인 삼성은 1938년이고, 한때 최상위권 재벌이었던 현대그룹은 1947년이다. 다른 기업집단들이 대부분 20세기 출신인 반면 두산은 19세기 출신이다.[5] 두산의 사옥이면서 쇼핑몰의 이름이기도 한 경우이다. 줄여서 두타라고 부른다.[6] 참고로 두산그룹은 형제 경영을 추구하며 장남 박용곤 전 회장을 시작으로 차례로 차남 박용오 - 3남 박용성 - 4남 박용현 - 5남 박용만이 회장직을 맡아 왔다.[7] 관련 기사[8] 현 (주)두산은 구 OB맥주가 모태며, 1896년 설립된 박승직상점을 모태로 한 두산상사는 1998년 소멸법인으로서 합병됐다. 하지만 기업 자체가 없어지거나 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최초 기업으로 본다.[9] 2014년부터 재개발 때문에 임시로 본사를 옮겼지만, 구 본사 자리는 현재도 동화약품 소유지로, 2024년 말 새 건물이 완공되면 복귀가 가능하다.[10] 그러나 박가분의 재료는 다름아닌 납이였다. 사실 예전에는 납이나 수은같은 중금속이 화장품으로 쓰이던 시대니 놀라운 일은 아니다.[11] 이 때문에 두산그룹이 한국 기업임에도 전범기업/일본 제국 분류가 붙었다.[12] 프랑스 유가공업체인 '다논(Danone)'의 국내 판매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었다.[13] OB맥주 매각 과정에서 잔류했던 주류BG(비 맥주부문, 구 두산경월/두산백화)나 KFC, 버거킹, 두산동아 등은 2000년대 후반 ~ 2010년대 초반에 최종 매각되었다.[14] 이 과정에서 1999년 1월에는 프로야구 OB 베어스가 두산 베어스로 구단명을 변경했다.[15] 물론, 당시 한국중공업의 주가와 액면가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매입한 것이긴 하다. 그리고 기업의 자산이란 것은 자기자본에 부채를 더한 개념이고, 자산과 기업가치는 별개의 문제인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총자산 5조원 중에서 순수 자기 자본은 1조 원이고 부채는 4조원이다.[16] 현 HD현대인프라코어. 두산이 인수후 두산인프라코어로 변경했으나, 2021년 구조조정으로 다시 16년만에 현대중공업에 매각했다.[17] 전세계에서 화력 발전 원천기술을 가진 단 3개 회사중 하나다.[18] 북미지역 소형중장비시장에서 밥캣은 상당한 네임드다.[19] 순환유동층 보일러, 탈황설비 등 친환경 발전 원천기술을 보유.[20] 연성회로기판(FCCL, Flexible CCL) 등 동박적층판(CCL, Copper Clad Lamintes)용 동박 제조 기술을 보유.[21] 건물용 연료전지 원천기술 보유.[22] 에너지저장장치(ESS, Energy Storage System 이하 ESS) 소프트웨어 원천기술 보유.[23] 학과 구조조정이라고 해서 인문학 계열을 대폭 줄였다는 오해를 많이 받는데, 사실 구조조정의 대부분은 안성캠퍼스를 본교화시키면서 중복학과를 통폐합한 것이고, 서울캠퍼스의 인문대학에서 폐과된 것은 한 학부의 세부전공 하나뿐이다. 참고로 서울캠퍼스 인문대의 정원은 오히려 늘어났다.[24] 일례로 그 이전까지는 사실상 똑같은 내용을 교육하는 사회복지학과, 아동복지학과, 청소년학과 3곳이 병립했다. 과거부터 학과 간의 기득권 문제로 번번히 통합이 무산됐는데 2010년 사회복지학부로 전격 통합했다.[25] 아시아문화학부의 경우 일어일문학과, 중국어학과, 민속학과가 합쳐지고 국어국문학과는 제외됐고, 유럽문화학부의 경우 불어불문학과, 독어독문학과, 노어학과가 합쳐지고 영어영문학과는 제외됐다. 줄어든 정원은 경영경제대학에 배정됐다.[26] 반면 운동부에 대한 투자는 이전만 못하다는 평. 전통의 강호이자 2010년 대학 농구를 평정했던 중앙대학교 농구부는 09학번 5인방(장재석, 임동섭, 유병훈, 김현수, 정성수)이 졸업하는 2013년부터 하락세를 보일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고 실제로 2013년에는 6강 플레이오프에도 오르지 못했다. 중앙대학교 야구부는 2008년 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 우승 이후 2022년 대통령기 전국대학야구대회 공동우승까지 14년의 세월이 걸렸을 정도로 실적을 내지 못했다.[27] 2012년에는 채용설명회 USB 메모리가 기념품으로 엄청 퍼졌다. 채용설명회 10번을 가면 4~5번 정도는 USB를 받아 처치곤란이라는 사람도 있을 정도. 두산정보통신, 스마일게이트, 나비스오토모티브가 16GB짜리를 주었다. 8기가짜리도 많았고 오히려 4기가짜리가 적었다. 그 시각에 수업이 있었던 학생들은 아쉬워했다. 재밌는건 두산산업차량 채용상담회에선 4GB USB를 줬다. 그러니 두산산업차량 채용상담을 받고, 설명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졸지에 두산에서 USB를 두 개씩 준 셈이다.[28] 그래도 주류 부분은 남겼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두산이 체질 전환에 성공했다고 여겨질 때는 무슨 소리냐는 듯이 묵살됐지만 맥주 부분을 가져간 AB InBev와 소주 부분을 가져간 롯데주류가 잘 나가는 것을 보면 결과론적으로는 안 파는 게 맞았다. 주류는 안전 사고가 없는 한 꾸준한 실적을 내기 때문이다. 적어도 소주 부분은 안 파는 게 좋았을 것이다.[29] 그냥 감자도 아니고 90%다. 한마디로 말해서 두산건설 자본이 1/10로 토막이 났다는 것이다.[30] 그것도 미분양 물량을 그룹 임직원들에게 밀어냈다는 루머가 있을 정도로 막아보려 했지만, 부동산 불패 신화에 금이 가기 시작한 2010년대에 제대로 된 메리트도 없는 곳에 누가 가려고 할까 의문이다.[31] 논현동 사옥을 세일앤리스백으로 매각해서 자금을 확보하려 했는데, 두산분당센터가 지어지면서 두산건설이 두산분당센터에 임대차 계약을 새로 맺어 얻은거 없는 삽질이 됐다. 사옥을 매수한 하나은행과 임대차 해지는 답없으니 두산건설이 다시 논현동 사옥을 하나은행에게 사서 되팔아야 하는 삽질이 진행중이다.[32] 더 갑갑한 점은 두산건설의 순차입금이 2020년 현재 6,000억원에 육박하며 이 때문에 가뜩이나 실적 안 좋은 두산중공업에 부담이 클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치 않다.[33] 두산을 울린 M&A 매물은 역시 뭐라해도 OB맥주이다. 박씨 일가는 OB맥주를 적절하게 잘 팔았다고 인터뷰했지만 OB맥주가 두산에게 팔리고 난 뒤 6조 2,000억에 실거래로 팔리고, 현재 몸값이 9조원을 왔다갔다 하고 있으니 속이 안 아플수가 없다. 한진의 S-OIL 지분 매각과 버금가는 밑지는 거래였다.[34] 유동성 위기는 두산그룹이 2000년대 초반 중공업 중심으로 체질변화를 꾀하며 인수했던 기업들의 실적부진에서 비롯된 탓에, 중공업 중심으로의 체질변화를 주문했던 맥킨지는 20여년 전의 컨설팅 결과 때문에 두산 위기의 주범 내지는 종범 정도의 취급을 받고 있다.두산인프라코어 구조조정 위기 ‘일파만파’[35] 두산중공업과 두산건설의 자산이야 많지만 빚잔치로 쌓은 자산일뿐이다.[36] 구조조정도 거의 완료됐다. http://www.newspim.com/news/view/20201203000892[37] 두산로보틱스는 산업용 로봇 분야에서 점유율 국내 1위, 세계 5위를 기록하고 있는 기업이다.[38] 그 전까지는 잘하는 자팀 선수를 고액 계약을 잘 못해서 타 팀에 내주는 경우가 많았다. 모기업인 두산이 살아난 결과 양의지를 다시 두산으로 불러오는데 성공했고, 2021년부터 박건우를 제외하면 다른 FA 선수들도 팀에 잔류시키는데 성공했다.[39] 1978년 이전에도 사용.#[40] 2022년부터 대표이사 선임.[41] 두산산업의 경우 빨간 방패모양의 레이아웃에 斗山 도안 대신 'DSI'라는 사명 약어 알파벳이 들어간 버전이다. 사명도 당시 몇몇 대기업처럼 한자 표기가 우선이었다.[42] 한글서체는 2006년 경 HY견고딕으로 교체되었다.[43] 폰트 자체는 동일하나, 3개의 사각도형이 사라지고 블루 컬러 로고로 바뀌였다.[44] 에너빌리티(Enerbility)는 에너지(Energy)와 서스텐빌리티(Sustainbility, 지속가능성)를 결합한 조합어이며, 그 결합을 가능하게 한다는 '엔에이블(Enable)'의 의미도 내포되고 있다.[45] 주로 사업형 지주회사인 (주)두산의 자체 사업부문 중 일부[46] https://biz.newdaily.co.kr/site/data/html/2023/09/27/2023092700139.html[47] 두산에너빌리티 사원숙소, 게스트하우스 등[48] 두산타워, 분당타워, 두산베어스파크, 두산아트센터 등[49] 삼성동과 삼성이 관계없는 것과 같다.[50] 前 야구선수 이승엽이 거주하는 아파트로 알려져 있다. 공교롭게도 그 이승엽은 현재 두산 베어스 감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