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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두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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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주
박승직
(1896~1946)
초대
박두병
(1946 ~ 1973)
제2대
정수창
(1977~1981)
제3대
박용곤
(1981~1991)
제4대
정수창
(1991~1993)
제5대
박용곤
(1993~1996)
제6대
박용오
(1996~2005)
제7대
박용성
(2005~2009)
제8대
박용현
(2009~2012)
제9대
박용만
(2012~2016)
제10대
박정원
(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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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두산가
{{{#fff
汎斗山家}}}
파일:두산 로고.svg
<colbgcolor=#005eb8><colcolor=#fff> 건립일 1896년 8월 1일
창립자 박승직
본가 밀양 박씨[1]

1. 개요2. 가계도

[clearfix]

1. 개요

범두산가
파일:두산 로고.svg


두산그룹 박승직의 가족관계. 두산그룹은 다른 기업들과 달리 형제들 간의 계열분리 대신 형제가 돌아가면서 경영을 하는 기업이다. 범두산가 3세인 박용곤 회장부터 박용만 회장까지 형제들[2]이 모두 한 번씩 두산그룹의 회장을 했고, 현재는 4세인 박정원이 두산그룹 회장을 맡아 경영중이다.[3] 다른 재벌들이 현재는 2세, 3세 정도가 많은 것에 비해 범두산가는 기업 역사가 길다 보니[4] 벌써 4세가 회장을 하고 5세들도 경영에 참여하는 오랜 역사의 재벌이다.

게다가 형제들이 돌아가며 회장을 맡는 등 가족적인 정서를 중시하다 보니 기업 경영에 참여하는 오너 일가도 굉장히 많다. 범LG가의 구씨, 범GS가의 허씨 분포도 수준이다. 단, 현재는 6남 박용욱이 이생그룹으로 독립하고 2남 박용오와 그 후손들은 형제의 난으로 인해 제명, 5남 박용만 일가는 벨스트리스 파트너스로 독립하여 장남 박용곤, 3남 박용성, 4남 박용현의 후손들만 두산 경영에 참여하는 것으로 그 수가 줄기는 했다.[5]

중앙일보 가문의 2세인 홍진기의 자녀들과 비슷하게 두산 가문의 3세 형제들은 모두 굉장한 수재로, 차남 박용오와 3남 박용성, 4남 박용현, 5남 박용만 모두 비평준화 시대 최고 명문고인 경기고를 나왔고[6], 박용오는 뉴욕 대학교 스턴스쿨, 박용성과 박용만은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박용현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출신이다. 그 아래의 4세, 5세들도 대부분 명문 사립 및 해외 유학파다.

4세대(밀양 박씨 부마공파 25세손, 혁거세 66세손#)의 항렬자는 원래 '멀 원(遠)'인데 창업주 박승직이 글자가 어려워 아이들이 쓰기 힘들다며 (자신의 자손들에 한해) 음만 같고 한자가 다른 '근원 원(原)'으로 바꿔쓰게 하였다. #

2. 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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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충헌공파-판서공파-부마공파.[2] 6남인 박용욱 제외.[3] 같은 밀양 박씨범금호가금호아시아나그룹도 원래는 형제경영 체제였지만 박삼구 회장 대에 박삼구의 회장직 독식 시도로 형제경영이 깨지게 된다. 그리고 동생인 박찬구 회장은 이에 반발해 석유화학 부문을 들고 나갔고, 이후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억지로 인수했다가 몰락했다.[4] 무려 1896년에 창업했다. 대한제국 선포 1년 전이었다.[5] 따라서 장남 박용곤의 장남 박정원 이후에는 박용곤의 차남 박지원, 박용성의 아들 박진원, 박석원, 박용현의 아들 박태원, 박형원, 박인원 순으로 회장직이 옮겨질 듯하다. 다만 이 중 일부는 이미 두산의 계열사 중 하나를 독식하는 상황인지라 그걸 갖고 독립하는 대신 회장직을 포기할 가능성도 있다.[6] 경기고-서울대 출신을 특히 KS라인이라 하여 국내 최고 권위 학벌로 취급했다.[7] 박승직이 어릴 때 별세했다.[8] 박승직 창업주의 장남의 장남의 장남, 즉 증장손. 그야말로 적통 중의 적통이다.[9] 김인기공군참모총장의 딸.[10] 구자열 LS그룹 회장의 장남. 자세한 내용은 범LG가 참고.[11] 권태흥 (주)태흥 창업주의 딸.[12] 이원달 전 코오롱상사 사장의 외손녀.#[13] SPC그룹 회장 허영인의 장남. 또한 코오롱 창업주 이원만의 외손자이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범코오롱가 참고.[14] 귀뚜라미그룹 명예회장 최진민의 아들.[15] 구철회 LG그룹 창업고문의 딸. 자세한 내용은 범LG가 참고.[A] 요절[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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