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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30 01:55:02

조선일보/오너 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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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가계도3. 기업 지배구조4. 둘러보기

1. 개요

조선일보 방응모의 가족관계. 본관은 온양 방씨다.

김성수의 집안에서 이어진 동아일보 오너 일가, 범삼성가의 사돈이자 측근이었던 홍진기 집안의 중앙일보 오너 일가와 달리, 조선일보는 6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일보에도 밀리는 신세였지만, 70년대 제4공화국 시대에 박정희 정부와 결탁하며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였고, 80년대 이후에는 전두환 신군부의 비호를 통해 급격히 위세가 커졌다. 신문사로서의 조선일보조중동중에 가장 규모가 크고 영향력이 강하지만, 반대로 혼맥은 조중동 중 제일 단출하다. 엄밀히 말해 조선일보 가문도 삼양통상, 태평양그룹, 영풍그룹 등 다른 재벌들과의 혼맥이 있지만, 범삼성가 직계인 이건희 회장 일가와 혼맥으로 연결된 중앙일보 가문, 동아일보 가문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단출한 건 사실이다.[1] 중앙일보 오너 일가동아일보 오너 일가과는 달리 조선일보 일가는 본업인 미디어와 코리아나 호텔 외의 기업을 경영한 적이 없다. 참고로 동아일보 일가는 동아일보 외에도 삼양그룹, 경방을 경영하고 있으며, 중앙일보 일가는 중앙그룹, BGF그룹을 경영하고 있다. 그나마 조선일보 일가는 동아일보, 중앙일보나 다른 재벌가문도 아직은 못 한 5대 세습을 벌써 성공했다.[2]

참고로 조중동이라는 말은 90년대 말에서야 만들어진 말이다. 조중동 중 조선일보는 예나 지금이나 꾸준히 논조와 성향이 보수 우파 반공주의였지만, 동아일보중앙일보는 사회 분위기나 정권의 성향에 따라 약간씩 논조가 달라지기도 했다. IMF 이전까지만 해도 개혁적 성향을 띄던 동아일보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정부의 관계가 완전히 틀어지게 되고, 더불어 IMF 외환위기 등을 겪으며 90년대 말 이후부터 논조가 급격히 보수화되었다. 1997년 대선 때 노골적으로 이회창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중앙일보와 함께 보수 신문의 대열에 합류한 이후 비로소 조중동의 강력한 보수 우파 언론 겸 족벌 언론 트로이카가 완성되었기 대문.

이른바 '밤의 대통령' 집안 답게 1970 ~ 1990년대까지 최전성기 시절에는 김영삼이 대통령 당선자가 된 뒤에 조선일보 방일영 회장과 연회를 하러 그의 자택에 방문했을 정도였다. 신문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남아 있던 2010년까지는 정권과 대놓고 신경전을 하거나, 아예 특정 권력 집단을 옹립하고 버리는 등 특정한 재벌을 의도적으로 흔들면서 위세를 과시할 정도의 막강한 위상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2012년 이후 스마트폰 시대가 오면서 사람들이 신문을 잘 안 보게 되고, 신문 구독자들도 대거 이탈하는 등 여론을 이끄는 주체가 신문사에서 방송사[3]SNS, 유튜브 등 소위 온라인 대안 미디어로 넘어가면서 위상이 확실히 예전만 못해진 점이 확연하다. 일례로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매년 조사하여 발표하는 '언론수용자 조사' 통계를 보면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조선일보가 모든 매체를 통들어 영향력 및 신뢰도 조사 모두에서 줄곧 3위 안에 꼽혔으나, 2020년 통계 기준으로 보면 여러 지상파 채널 및 종편과 포털 사이트에 밀려 영향력 및 신뢰도 조사 순위 모두에서 10위로 추락했다.[4] 그래도 조선일보는 다른 신문사들에 비하면 여전히 규모, 영항력이 꽤 있는 편이긴 하지만, 물론 어디까지나 '신문의 선두'일 뿐, 더이상 예전처럼 '언론의 선두'는 아니게 된 것이다.

방씨조선이라는 멸칭도 있다. 같은 메이저 언론 가문인 중앙일보, 동아일보 일가와는 달리 조선일보 가문은 장자연 사건, 조선일보 손녀 갑질 논란, 방용훈 부인 자살 사건 등 온갖 사건들이 쏟아지는지라 많은 비판을 받는다.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에는 방씨일가의 저택이 있는데, 수천평에 달하는 대저택으로 오랫동안 서울에서 가장 비싼 단독주택으로 꼽혔었다. 지도 위성사진을 보면,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 주택가 옆에 갑자기 거대한 녹지와 함께 어마어마한 대저택이 위치한 곳이 대번에 눈에 띄는데, 이곳이 바로 방씨 집안 저택이다. 흑석동 주민센터와 조선일보 뉴지엄 바로 뒷편이다.

2. 가계도

3. 기업 지배구조

주주명 지분율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방상훈 30.03%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방성훈 21.88%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방일영문화재단 15%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방용훈 10.6%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방준오 7.7%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기타 분산 지분[30] 11.4%
오너 일가가 대부분의 조선일보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4. 둘러보기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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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기업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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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 BGF
동아일가
동아 · 경방 · 삼양 · JB금융 · 고려중앙학원
舊 범대우가 舊 범쌍용가 舊 범기아가 }}}}}}}}}




[1] 애초에 중앙일보이병철 회장이 창간해서 홍진기 일가에게 주었다.[2] 역사가 길기로 유명한 그 두산도 이제야 4대 세습을 했다. LG 역시 마찬가지.[3] 신문의 힘이 전성기를 달리던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언론인 지망생들은 웬만하면 신문 기자를 꿈꿨지, 방송국 기자는 어디까지나 차선책, 혹은 개인이 방송 매체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경우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미디어 시장의 헤게모니가 영상매체 중심으로 확고히 재편되고, 방송의 위력과 영향력이 급격히 커진 2000년대 이후부터는 방송사 기자가 점점 주류가 되기 시작했고, 급기야 신문 업계가 확연한 사양산업이 된 2010년대 이후부터는 신문 기자를 굳이 선호하는 분위기는 정말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졌다.[4] 이는 다른 신문사들도 마찬가지인데, 신문산업 자체가 사양산업이기 때문.[5] 박이천(朴利天)의 딸이다.[6] 삼촌인 방응모의 양자로 입적되었다.[7] 다만 조선일보를 창업한 사람은 조진태다. 중간에 방응모가 인수한 것.[8] 윤영구 메트로항공 회장의 장녀이자 윤치호의 증손녀.[9]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의 장녀.범GS가 중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수많은 인물들 중 한 명이자 직계와는 멀고 먼 친인척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집안 뿌리와 인성 특성상 원수지간이거나, 방준오 만큼은 조선일보 일가 중에서는 정상인일 가능성이 있다.[10] 남동생 허서홍은 중앙일보의 사주인 홍석현의 장녀랑 결혼했다.[11] 이인수 前 수원대학교 총장의 장녀.[12] 조선일보 손녀 갑질 논란의 당사자이다.[13] 이부용 대림비앤코 고문의 3남. 자세한 내용은 범DL가 참고.[14] 천신일 세중그룹 회장의 차남.[15] 의사로 알려져 있다. 이하는 방일영과 첫째 혼외부인의 자녀들이다. 이쪽 3형제는 가족들에게 그나마 인정받은 것으로 알려졌다.[16] 국립재활원장과 대한재활의학회 이사장 등을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스키부 지도교수로 재직중이다. 2019년 서울대병원장 선거에 출마하려고 했으나 이복형의 논란으로 불출마하게 되었다. 방문석 교수, 서울대병원장 선거 '불출마'[17] 증조부와 이름이 겹쳐 피휘를 어겼다.[18] 증조부와 이름이 겹쳐 피휘를 어겼다.[19] 이하는 방일영과 둘째 혼외부인의 자녀들이다. 이쪽은 아예 방일영 사망 당시 발인식에도 참여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사후 서울가정법원에서 친자확인소송을 제기해 호적에 이름을 올렸다.[20] 이영조 전 서울대학교 교수의 딸.[21] 성덕고등학교등 학원을 소유하고 있는 태평양개발 계열 재단이다.[22] 서성환 태평양그룹 창업주의 아들.[23] 김도창 법제처장의 장남.[24] 정해영 국회부의장의 손자, 정재문 국회의원의 아들.[25] 사촌형인 방상훈 사장에 이어 조선일보 2대 주주다.[26] 최창근 고려아연 회장 딸. 동생 최민석은 김부겸의 사위다.[27] 김형남 일신방직 창업주의 아들.[28] 방응모가 환갑이 다되어 본 늦둥이. 태어날 당시 사촌형이자 아버지의 양자였던 방재윤은 사망하고, 그의 아들들이 조선일보를 이끌고 있었다. 조선일보 가문의 다른 사람들이 방응모의 반민족행각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달리 부친의 반민족행각을 폭로하고 다녀서 가문 사람들과 사이가 나빠졌고, 방일영이 죽자 빈소에 문상하러 갔다가 가문 사람들과 조선일보 사원들에 의해 조문을 거부당하고 쫓겨났다. 방상훈은 방재선한테 "어떻게 아들이 아버지가 친일했다는 헛소리를 내뱉을 수가 있느냐?! 아버지가 친일했다는 헛소리를 내뱉은 것을 사죄하면 조문을 허락하겠다"며 방응모의 반민족행각 발언을 사죄하라고 말했고, 방재선은 방상훈한테 "친일한 것은 친일한 것이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상속 관련 소송전을 벌였으나 결국 조선일보 상속을 포기했다.[29] 이하 후처 소생.[30] 조선일보 국장, 임원 모임인 '조중회'가 지분 7.74%를 보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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