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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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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12F8B><colcolor=#fff> HD현대중공업
| HD HYUNDAI HEAVY INDUSTRIES
파일:HD현대중공업 로고.svg
법인명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에이치디현대중공업 주식회사
파일:미국 국기.svg HD Hyundai Heavy Industries Co.,Ltd.
약칭 HHI[의미],현중
국가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설립일 2019년 6월 3일[2]
업종명 기타 선박 건조업
기업 규모 대기업
대표이사 한영석, 이상균
자본금 3,538억 6,558만 원 (2020년 기준)
매출액 연결: 8조 3,120억 982만 원 (2020)
별도: 8조 3,101억 8,105만 원 (2020)
영업이익 연결: 325억 906만 원 (2020)
별도: 325억 668만 원 (2020)
순이익 연결: -4,314억 4,590만 원 (2020)
별도: -4,314억 6,255만 원 (2020)
자산총액 연결: 13조 7,996억 5,785만 원 (2020)
별도: 13조 7,996억 7,418만 원 (2020)
부채총액 연결: 8조 4,388억 7,323만 원 (2020)
별도: 8조 4,388억 7,099만 원 (2020)
모회사 HD한국조선해양
자회사 Hyundai Heavy Industries Free Zone Enterprise[3]
상장 여부 상장 기업
상장 시장 유가증권시장 (2021년~ )
종목 코드 329180
시가총액 10조 5,019억원 (2024년 1월)
직원 수 12,610명(2022년 6월 기준)
소재지 울산광역시 동구 방어진순환도로 1000 (전하동)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
1.1. 사업부1.2. 분사된 사업본부/부문
2. 역사
2.1. 대우조선해양 인수 시도와 무산
3. 지배구조4. CI5. 역대 임원
5.1. 구 현대중공업5.2. 신 HD현대중공업 대표이사
6. 직제 및 구직7. 노동조합8. 사내 아나운서9. 논란 및 사건사고
9.1. 물적분할 및 관련 논란9.2. 중소기업 기술 탈취 논란9.3.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 논란9.4. 울산조선소 노동자 사망 사고
10. 여담11.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파일:attachment/현대중공업/HHI_Yard.jpg
HD현대중공업 울산 본사
범현대계 대규모 기업집단인 HD현대의 조선·해양 플랜트 사업을 운영하는 기업으로, 물적분할을 통해 HD한국조선해양의 자회사가 되었다. 약칭은 '현중'이며 영문 약칭은 'HHI'이다.[의미]

현대중공업 로봇사업부가 인적분할되어 신설된 현대로보틱스를 지주회사로 한 지주사 전환 이후에도 여전히 그룹 내 최대 규모의 자산규모와 매출을 기록하고 있고, 글로벌 1위 조선사라는 상징적 의미를 보유하고 있다. 여담으로 지주사 전환 이후 최상위 지배회사가 현대로보틱스니 더 이상 현대중공업그룹이 아니라 현대로보틱스 그룹 아니냐는 소수 논란이 있었으나, 2018년 3월 30일 정기주총에서 현대로보틱스가 현대중공업지주로 사명을 전환하면서 이러한 논란이 종식되었다.

2017년 4월 이전 현대중공업 단일 기업 시절에는 정몽준이 최대 지분을 보유하여 대주주의 위치에 있었으나, 17년 4월 분할 이후 지분 거래를 통해 정몽준의 지분은 모두 현대중공업지주로 이전되었고, 대신 정몽준은 장남 정기선(당시 현대중공업 그룹 부사장)과 함께 현대중공업지주의 지분을 30% 이상 보유한 상태이다.

정몽준은 대외적으로 정치를 하기 때문에 그룹 경영에 공식적으론 관여하지 않고 있었으나[5], 아들인 정기선은 2009년에 대리로 입사한 이후 초고속 승진을 통해 지주사 HD현대 사장과 중간지주사 HD한국조선해양 사장 등을 겸직하며 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여담으로 대주주였던 정몽준이 국회의원이던 당시에는 국회의원 평균 자산을 계산할 때 정몽준을 포함시킬 경우 심각한 평균 왜곡 현상이 발생하여 정몽준을 제외하고 계산해야 했다.[6]

이후 2019년 6월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한 물적분할을 단행하여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기존 사업자번호 유지)과 사업회사인 현대중공업(신규 사업자번호 취득)으로 분할되었기 때문에 2021년 4월 기준 현재는 한국조선해양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2021년 연내 기업공개[7]를 추진하고 있으며 계획에 따르면 지분 20%를 공모하여 한국조선해양 지분이 80%로 줄어들 전망이다.

노조는 1987년 결성 이후 한국노총 금속노련 소속이었으나, 1994년 탈퇴 이후 민주노총 창립에 기여해 금속산업연맹 소속이 되었고, 하청노동자 문제를 계기로 상급단체와 갈등을 겪다가 2004년 민주노총에서 제명되었다. 그 이후 개별노조를 유지하다가 2016년 산별노조 재가입 추진을 진행하여 현재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이다.

1.1. 사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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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정 분야 및 그룹 내 방산 계열사 시가총액 총합이 1조원 미만인 방위산업체는 문서 참고 }}}}}}}}}


조선사업 외에도 많은 분야에 발을 걸치고 있던 회사였으나, 대부분의 사업부를 인적분할 및 분사하여 현재는 조선ㆍ해양 사업 포트폴리오만을 구성한다.

1.2. 분사된 사업본부/부문

2016년 7월 이전까지는 현대중공업의 사업본부/부문이었으나, 분사를 통해 2021년 4월 기준 별도 법인으로 분리된 사업부는 다음과 같다.

2. 역사

파일:70's HHI.jpg
70년대 당시 선박 건조 중인 현대중공업 전경[18]
1968년 제2차 경제개발계획 기간 동안 박정희 정부는 제철, 기계, 화학, 조선을 4대 국책사업으로 설정하고 중점적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1970년 현대건설 조선사업부가 발족된 후 1971년 당시 정주영 현대건설 회장이 처음에는 우방인 미국에 자금을 빌리러 갔으나 거절당했고 일본 역시 한국에서는 시장이 크게 성장치 못할 것이라며 거절당했다. 하지만 스페인, 프랑스, 영국, 서독, 스웨덴 등 유럽 선진국에서 돈을 빌려서 조선소를 건설할 수 있었으며, 영국 애플도어 및 스코트리스고우 조선소와 기술/판매협조를 맺었다.

1972년그리스 리바노스 사와 26만톤짜리 초대형 원유운반선 건조계약을 맺었고, 어촌 마을 경남 울산 미포만에서 첫 삽을 뜬 후 이듬해 선각공장을 준공하여 '현대조선중공업'으로 분사했으며, 현대조선폭동사건이 일어난 1974년에 울산조선소 1, 2도크를 세워 리바노스사에 원유운반선 1호선을 인도하였다.당시 명명식을 다룬 대한뉴스[19][20][21] 1975년 철구사업부를 신설한 후 처음으로 비조선 사업을 시작했고, 선박수리 담당업체 현대미포조선소도 세웠다. 1977년 중전기사업부와 기관차사업부를 신설 후 엔진공장도 세우고, 이듬해 현대중공업으로 사명으로 개칭하고 기관차와 엔진, 중전기사업을 '현대차량[22]', '현대엔진[23]', '현대중전기[24]'로 분사시켰다.

1980년 플랜트사업본부에서 원자력사업본부를 분리,발족하고 한국형 구축함 'FF-951 울산함'을 진수했으며, 국내 최초로 자동차운반선을 건조했다. 1981년 현대특수화학을 비롯해 1985년 현대해양개발, 1986년 현대종합제철, 1989년 현대엔진공업 등 관련 기업들을 각각 합병해 규모를 넓혔고, 1982년 정주영 그룹회장의 6남 정몽준이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2세 경영을 시작했다. 1983년에 화공사업부를 빼내 방계기업 한국내화로 넘겼고, 1986년에 미국 드레서와 로자 등과 기술제휴를 맺어 이듬해 건설장비사업부를 발족했다. 1991년 잠수함 전문화업체로 선정된 후 1993년에 현대중전기, 현대중장비산업, 현대로보트산업, 현대철탑산업 등 4개사를 또 합병했고 1994년 장외시장에 등록되었다.

1995년 한국 제조업계 최초로 베트남에 가스파이프라인을 준공한 뒤 1996년 인터넷 홈페이지를 열었고 8,9도크가 속해있는 제2야드를 본격 가동해 선박 생산량을 늘렸고, 1998년 울산 현대 호랑이 프로축구단을 현대자동차로부터 넘겨받고 '현대예술관'을 세웠다. 1999년 유가증권시장으로 옮기고 2000년 현대그룹 왕자의 난을 계기로 2002년에 현대미포조선 등을 끌고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리하여 정몽준을 중심으로 한 현대중공업그룹 출범을 주도했다.

이후 조선업황의 호황으로 사세가 크게 확장됨에 따라 2005년 포항 블록공장[25], 2006년 울산 용연공장[26], 2010년 군산조선소, 2011년 울산 온산공장[27] 등의 사외 공장들이 가동되었다. 그러나 이 호황이 지나고 불황이 찾아왔고, 그룹 지배구조개편 작업에 들어감에 따라 2016년 비조선 사업부문 일부가 현대중공업 그린에너지, 현대중공업 MOS, 현대중공업 터보기계, 현대글로벌서비스 등으로 분사되는 것을 시작으로 2017년에는 1993년 이전처럼 조선(현대중공업), 로봇(현대로보틱스), 전기전자(현대일렉트릭앤에너지시스템), 중장비(현대건설기계)로 사업부문이 분할되었다. 2018년 현대중공업지주가 설립되면서 그룹사 컨트롤타워가 변경되었고 2019년에는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합병하기 위해 조선 사업부문의 중간지주사 한국조선해양이 설립되면서 현대중공업의 그룹 내 위상은 그룹의 중심에서 계열사로 격하되는 아픔을 겪는다.

2022년 창립 50주년을 맞아, 그룹의 명칭에 HD가 들어감에 따라 현대중공업도 2023년 3월 HD현대중공업으로 변경되었다.#

2024년 3월 볼티모어 교량 붕괴 사고의 선박을 건조한 업체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사고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며 인도 시기가 10년을 넘었기 때문에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선사의 책임이 클 것으로 예측되나, 당일 주가는 급락했다.

2.1. 대우조선해양 인수 시도와 무산

2019년 1월 31일 산업은행대우조선해양을 경쟁사인 현대중공업그룹에 매각하는 내용의 기본 합의서를 발표하였다.@ 2017년 4월 분사를 통해 조선해양사업의 중간 지주회사 역할을 맡고 있던 현대중공업을 다시 분할하여 지주회사(한국조선해양)와 100% 자회사인 사업회사(현대중공업)로 분할하고, 산업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55.7%의 대우조선해양 주식 전량을 중간지주회사에 현물 출자하여 중간지주회사의 지분을 대신 취득하는 방식이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제작 선종이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양사 노조에서는 중복 부문에 대한 구조조정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 대우조선해양 노조에서는 총파업 등 강경투쟁 방침을 밝히며 거제 시민들의 탄원서를 접수하고 있고, 현대중공업노조 역시 당시 진행중이던 임단협 합의안 찬반투표를 연기하고 영향 파악에 들어갔다.

삼성중공업에도 동일한 제안이 전달되었으나 거절되었기에 현대중공업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로 확정되었다. 때문에 2019년 2월 12일 산업은행은 인수후보자로 현대중공업을 최종 선정하였으며 인수가 완료되면 현대중공업그룹은 세계 시장 점유율 20%, 국내 시장 점유율 80%가 넘는 조선업 공룡이 될 전망이다.

다만 이를 위한 기업분할 과정에서 멀쩡하던 현대중공업이 비상장 손자회사로 전락하였고, 직원들에게 충분한 설득이나 보상[28] 과정 없이 분할을 강행하였기에, 원성을 사게 되어 노사관계가 극단으로 치달아 2021년 4월 기준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임금협상이 타결되지 않는 등 회사 내부적인 잡음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하기의 물적분할 관련 논란을 참조할 것.

이렇게 갖은 노력을 통해 진행한 인수합병인데, 2022년 1월 13일 EU 집행위원회는 독점 우려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을 불허했다.

EU기업결합을 불승인 하면서 한국일본의 기업결합 심사도 중단될 가능성이 커졌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다른 국가의 경쟁당국에서 기업결합 승인을 불허하면 업체 측에서 심사 철회서를 제출한다”며 “철회서가 제출되면 심사절차는 종료된다”고 말했다.

1월 14일 한국조선해양이 공정거래위원회에 대우조선해양과의 기업결합 신고를 철회하며 인수를 포기했다.

3. 지배구조

<rowcolor=#fff> 주주명 지분율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HD한국조선해양 78.02%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국민연금공단 6.01%
2023년 4월 기준

4. CI

파일:현대 심볼(1957-1974).svg 파일:현대 심볼(1974-1984).png 파일:현대 심볼.svg
<rowcolor=#fff> 1972 ~ 1974 1974 ~ 1984 1984 ~ 2022
파일:현대중공업 로고(1992-2004).svg 파일:현대중공업 (구)로고.svg 파일:현대중공업 로고.svg
<rowcolor=#fff> 1992 ~ 2004 2004 ~ 2022 2022 ~ 2023
파일:HD현대중공업 로고.svg
<rowcolor=#fff> 2023 ~ 현재[29]

5. 역대 임원

5.1. 구 현대중공업

5.2. 신 HD현대중공업 대표이사

6. 직제 및 구직

오랜 역사와 제조업 특성 상 생산직군이 있기 때문에 직책 및 직급 체계가 복잡하다. 기존에는 단순히 생산기술직과 사무기술직으로 직제가 구분되어 있었으나 개편을 통해 일반 사무직, 생산기술직 외 연구직과 설계기술직으로 직급 체계가 구분되었다.

2021년 기준 직급은 아래와 같다.

1) 사무직(설계/개발 제외): 매니저 - 선임매니저 - 책임매니저 - (수석매니저)
2) 설계/개발: 엔지니어 - 선임엔지니어 - 책임엔지니어 - (수석엔지니어)
3) 연구직: 연구원 - 선임연구원 - 책임연구원 - (수석연구원)
4) 생산기술직: 7급기사 - 6급기사 - 5급기사 - 4급기사 - 기원(선임급 대응) - 기장(이상 책임급 대응) - 기감 - 기정기존의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5단계가 매니저/엔지니어(4급 이하) - 선임(대리급) - 책임(과장/차장/부장급) 3단계로 축소되었다. 간혹 사무직과 연구원, 설계/개발직 간 직군 전환이 일어나기도 하며 직군 전환 시에는 해당하는 직급으로 변경된 후 전보 조치된다.

그 외 특수채용(전문직[30], 별정직[31], 계약직 등)의 경우 별개의 직급을 부여받기도 한다.

생산직의 경우 정규직 외 일반적인 하청업체와는 생태가 다른 사내하청(이하 사내협력사)도 존재한다. 사내협력사의 경우 아예 HD현대중공업 부지와 건물에 사무실을 차리고 HD현대중공업 생산관리자들의 작업지시를 받는 특이한 형태를 보여준다. 물론 일단은 독립된 법인들이기 때문에 완벽한 상하 관계나 종속 관계에 있지는 않다. 물론 갑을 관계에 속해있기는 하지만 세계적인 비정규직 증가, 고용 유연화 추세 탓인지 비교적 협력사의 비중이 커지는 추세에 있다.[32] 정규직 생산직(이하 직영)의 경우 노조의 보호로 인해 고용 안정도가 매우 높으며 보수 측면에서도 사무직군과 다르지 않다.[33] 다만 이들도 노천의 도크나 안벽 등 후행 공정에서 작업을 하는 것은 비슷한 만큼 작업환경이 비교적 열악한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근처에 현대자동차 직영 생산직이라는 귀족(?)이 존재해 이를 부러워하는 경우도 있다고.

현대중공업 창립과 동시에 설치되어 조선 기능인력을 양성 하는 기관인 HD현대중공업 기술교육원[34]에서는 용접, 특수용접, 배관, 기계, 전기, 도장 등 각 직종별 제작기술을 이론, 실습을 통해 자사 및 협력사 기능 인력의 육성 및 양성과 자사의 국제기능올림픽 출전 사우들의 기술지도 및 훈련을 담당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의 생산기술직 채용 방식은 타 기업의 채용방식과 달라서 대부분 경력직 출신자로만 뽑는다.[35] 매년 몇 회에 걸쳐 기술연수생을 뽑는데, 수료자에 대해 사내외 협력사에 취업기회를 제공하고 수료 후 1년 이상 협력사에서 근무할 경우 직영 채용 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기술교육원에 입교하여 교육을 받았다. 다만 2015년부터는 기술교육원 수료자가 아니더라도 협력사에서 1년 이상 근무시 직영 채용 면접에서 가산점을 부여하도록 바뀌었다. 최근에는 교육지원금 및 울산시 및 동구청에서 지원금을 주면서 조선업 인력 유치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의 급여 체계는 기본적으로 연봉제가 아니라 월급제를 채택하고 있어 급여 계산이 매우 복잡하다. 연봉제를 적용하는 회사가 연봉을 결정하고 이를 일정 횟수로 나눠서 지급하는 형태라면 현대중공업은 기본급을 정하고 이에 따라 수당, 상여, 성과급등을 계산하기 때문에 연봉 계산에 반영해야 되는 요소가 너무 많아져서 받는 본인조차 연봉을 알지 못한다. 실제로 받는 금액도 사람마다 수당(위험수당, 직무수당 등)의 차이가 있고, 이 수당이 계산에 들어가는 순간 이중 삼중(월급, 상여, 성과급)으로 작용한다. 결국 연말정산을 하지 않으면 자신도 얼마나 받는 것인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쉽게 말하자면 한번에 주는 돈은 적어 보이나, 이를 굉장히 자주 주기 때문에 실제로 받은 것을 합산해보면 유사한 규모의 타 기업에 비해 적지도 많지도 않다[36]. 과거 호봉제의 잔재이나 기업 역사가 오래되고 인원 규모가 크기 때문에 성과 기준 연봉제 전환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사무직 과장급 이상(비노조원)을 대상으로만 연봉제 전환이 이루어졌다.

본사가 울산에서도 가장 끝자락인 동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타 지역 출신을 위한 기숙사와 사택 제공이 다양하였지만, 경기 불황 시절에 대부분 매각하여 현재 남아있는 기숙사는 예전만큼 많지 않다. 다만 서부동의 율전재 기숙사는 새로 신축해서 좋은 편이다. 하지만 율전재 기숙사는 남여공용 기숙사이다. 기숙사마다 각종 편의시설(매점, 당구장, 노래방, 독서실, 피트니스 룸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월 임대료는 5만 원 가량으로 저렴한 편. 이 기숙사들은 회사 바로 앞에 있어서 셔틀버스를 이용한 출퇴근이 용이하다. 울산광역시광역시 중 유일하게 지하철이 없기 때문에 수많은 버스 노선이 이를 커버하는데, 동구를 지나는 대다수의 버스들은 현대중공업 앞을 지나가도록 노선이 구성되어 있어 시내나 번화가로의 교통도 크게 불편하지는 않다. 다만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이 있는 북구부터 동구까지의 도로가 유동인구에 비해 좁기 때문에[37] 출퇴근시간에 교통체증이 있다는 단점이 있긴 한데 이마저도 아산로가 아닌 염포동으로 들어가는 도로에 한정되는 이야기다.

자동차를 이용한 출퇴근은 권장되지 않는다. 우선 임원 등 특정 인원을 제외하고는 사내에 자동차 출입이 제한되어 있어 출입문 근처에 차를 주차해야 되는데, 주차장이 극히 부족하여 출근시간 1~2시간 전 만차가 된다. 때문에 대부분 대중교통이나 사설 출퇴근버스로 이동하며, 동구나 북구에서 거주하는 임직원들은 자전거나 오토바이 및 버스를 이용하여 출근하는 경우가 많다. 이 출퇴근 시간의 긴 오토바이 행렬은 처음 보는 관광객들이 신기해하는 장관 중 하나이다. 북구에서 거주하는 임직원들을 위해 회사에서 출퇴근 셔틀버스를 운영하기도 한다. 사내에 오토바이 판매/수리점이 운영되고 있어 사내에서 갑자기 오토바이가 고장나더라도 수리를 받기 용이한 것도 있다. 또한 사내 말고도 회사 근처 여러 오토바이 판매점이 있어서 편리하기도 하다.

기업문화의 경우 보수적으로 군대에 준하는 문화, 술을 좋아하는 문화 등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대부분의 기업이 그렇듯 부서마다 분위기가 다르며 현업 생산부서나 생산관리 계통의 사무직이나 생산직에서 이런 분위기가 강하고 반대로 일반 사무직의 경우는 이런 분위기가 덜하다. 2010년대 후반 들어 50~60년대 베이비붐 세대가 정년, 희망퇴직 등으로 퇴장하기 시작했으며 직군을 가리지 않고 젊은 신입사원 및 경력직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기업문화가 바뀌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경향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문과 계통의 경우 학벌, 스펙, 인상 등을 많이 보는 편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과 계통의 경우 그런 양상이 비교적 덜하다.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조선해양공학과를 보유한 대학이 수도권에는 몇 개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제조업 회사 특성상 문과에 대한 상대적 규모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게 다 이과 계통에 비해 문과 계통이 경쟁률이 치열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7. 노동조합

1987년 현대엔진[38]에서 권용목 등을 중심으로 현대엔진 노조가 최초 결성되고, 이후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 조직되어 노동자 대투쟁, 89년 회사 점거농성, 90년 골리앗 투쟁으로 불리는 골리앗 크레인 점거농성, 128일 파업 등의 사건으로 인해 80년대 말 ~ 90년대 초에는 노사분규가 매우 심했으며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었다. 이에 따라 정부와 사측이 강경대응으로 일관해 1989년 현대중전기 노조 및 현해협 피습사건, 현중노조 식칼테러 등의 와해 시도가 일어났다.

그러나 1994년 LNG선상 파업 이후 19년 연속 무파업으로 안정적인 노사관계가 유지되어 오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사이 2004년 박일수 열사 분신 사건이 발생하여 당시 분신대책위 불참 등 반 조직적 행위, 영안실 난입 등의 부조리로 인해 민주노총에서는 제명되었다. 1995년 민주노총 창립에 공헌하였음에도 88%의 높은 찬성률로 제명되었을 정도. 이후에도 조선업 호황기와 맞물려 위와 같은 노사관계가 항구적으로 정착되는 줄 알았으나 19년 연속 무파업의 이면에 가려졌던 문제점들이 서서히 수면 위에 떠오르기 시작했고 기존 노조 집행부의 비리 의혹으로 인해 2013년 10월 강성 노조가 집권하였고, 2014년부터 임금/단체 협상이 난항을 겪게 되었다. 수십 차례의 협상 끝에 합의점을 찾지 못한 노사관계는 연일 파국으로 치달았고 2015년 2월 16일에 겨우 2014년 임금/단체협상이 타결되었다. 2015년 임금협상은 새 노조 집행부가 선출된 2015년 11월까지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가 2016년 새해를 불과 이틀 남긴 12월 30일에 타결되었다. 그 이후로도 계속 임금/단체협상은 해를 넘기고 있으며 노사분규가 심각한 상태이다.

조선업황의 장기 침체, 그룹 구조 개편으로 인한 분사와 물적분할, 이에 따른 희망퇴직과 퇴사 종용 등의 고용 불안과 낮아지는 임금, 처우 등의 악재가 연달아 터지면서 2019년 노조는 물적분할 주주총회장 점거에 이어 회사 크레인 점거 농성과 전면 파업을 벌였고 사측은 업무방해 등으로 고소, 고발을 하는 등 관계가 매우 악화되었다. 이후 극적으로 타결되어 2019년 임협과 2020 임단협이 한꺼번에 해결되었고 2021년 임금협상은 해를 넘기긴 했지만 9년 만에 무쟁의로 타결되었다.

8. 사내 아나운서

9. 논란 및 사건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9.1. 물적분할 및 관련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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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MBC 탐사기획 돌직구

자세한 내용은 한국조선해양 항목 또한 참조할 것. 윗 문단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한 과제로 물적분할을 통한 중간지주회사 설립 의결이 필요하였으며, 회사의 일방적인 물적분할을 반대하는 노동조합에서는 주주총회 개최를 방해하기 위해 주총장소인 한마음회관(울산 동구 소재, 현대중공업 소유)을 점거하였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회사는 주주총회 당일 갑작스럽게 장소를 울산대학교로 변경하여 순식간에 기업분할 안건을 의결, 분할을 확정지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기물파손 및 업무방해에 대해 회사가 조합원을 무더기로 징계 및 고소하면서, 노사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지경까지 악화되었다.[39]

9.2. 중소기업 기술 탈취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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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현대중공업이 기술을 탈취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공정위는 현대중공업이 엔진 부품회사로부터 기술을 탈취하였다고 판단하여 9.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고,@ 법원에서는 동일 회사에 8.35억원을 일방적인 단가 인하에 대해 배상하라고 판결하였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은 공정위와 법원의 판단에 불복하고 공정위와 법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다만 본 논란에 대해서는 현대중공업도 억울한 면이 없지 않은 것이, 현대중공업의 기술탈취를 주장한 회사가 현대중공업의 힘센엔진 도면을 무단 도용하여 제품을 제작/판매한 혐의로 적발되어 재판 진행 중에 있기 때문.@@ 즉 상호간에 소송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큰 기업이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언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셈.

현대중공업의 산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혐의없음'으로 불기소된 상태이며, 부품회사에서는 이에 불복하여 재정신청을 요청하였으나 심리가 진행 중에 있다.@

9.3.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 논란

파일: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jpg
군산조선소
2008년 전라북도 군산시 소룡동에 군산조선소가 건설되었고 2010년 준공되면서 군산조선소 직원 및 하청/협력업체 공장 직원들까지 하면 상당한 수의 인원이 근무했기에 군산 입장에선 지역경제를 지탱하는 큰 축으로 여겨졌으나 세계적으로 조선업이 불황이 심해지며 현대중공업 측에서 2017년 군산조선소의 가동을 중단시켰다. 군산조선소 직원들 뿐만 아니라 하청/협력업체까지도 줄폐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업체가 페업하면 당연히 근무하는 인원들 또한 퇴직할 수 밖에 없기에 해당 인원들이 군산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면서 주변 상권/부동산은 크게 몰락하였다. 이에 따라 전라북도와 군산시를 비롯한 해당 지역 정치/경제계에서 군산조선소를 재가동시키길 요구했지만 현대중공업 측에선 난색을 표했다.

2021년 부터 조선업황이 개선되어 선박 수주량이 늘자 2022년 2월 산업통상자원부 및 고용노동부는 군산조선소에서 현대중공업, 전라북도, 군산시와 조선소 재가동을 위한 협력 협약을 체결했으며# 10월 28일 군산조선소 재가동 선포식이 열렸다.[40] 현대중공업 측에선 5년만에 재가동되는 만큼 공장 개/보수를 12월까지 진행하기로 하고 내년 1월까지 재가동이 완료될 수 있도록 하고 전라북도와 군산시는 기술인력양성 및 고용보조금 지원등을 하기로 하였다.#

재가동 이후 2023년 1월에 첫 생산한 선박 블록들을 울산 본사로 출항시켰으며, 이 자리에는 윤석열 대통령까지 참석하는 등 각계각층에서 많은 관심을 보였다.#

9.4. 울산조선소 노동자 사망 사고


2022년 4월 2일, 울산조선소에서 폭발로 추정되는 사고로 인해 협력 업체 노동자 1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2024년 2월 12일에는 울산조선소에서 협력 업체 노동자 1명이 숨지고 1명이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부유식 원유생산설비의 상부 구조를 이동하는 과정에서 철제 구조물이 내려앉아 발생한 사고로, 노동당국은 작업 중단 조치를 내리고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10. 여담

11. 관련 문서



[의미] Hyundai Heavy Industries[2] 현 법인 설립연도 기준.[3] 지분율: 100%[의미] [5] 대외적으로만 그렇다는 뜻이며, 실제 HD현대중공업의 경영 행보를 보면 과연 관여하지 않고 있는 것이 맞는지 의문인 점이 한 둘이 아니다. 예를 들면 현대가의 자존심을 위한 구 범현대그룹 계열사 M&A 및 경영과는 일절 관련이 없는 축구단 운영 등.[6] 당시 국회의원 재산 2위는 농우바이오 창업주인 고 고희선 의원이었는데, 재산신고가액이 1,984억원이었다. 동일 시기 정몽준의 현대중공업 지분 평가액은 1조 9249억이었다.[7] 엄밀히 말하면 현대중공업은 상장 폐지된 적이 없으며, 기존 상장된 현대중공업 주식은 한국조선해양으로 종목명이 변경되었을 뿐이다. 이번에 상장하는 회사는 신규 사업자등록번호를 가진 신설법인이기 때문에 재상장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기업공개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8] 기존 조선사업부와 해양 플랜트사업부가 2021년 7월 통합됨[9] 방어동 HD현대미포 인근[10] 조선업이 유럽에서 동아시아로 넘어간다는 의미의, 어떻게 본다면 유럽의 조선업에 사망 선고를 내렸던 사건이었다. 다만 초호화 유람선 건조는 이탈리아핀칸티에리가 독점적으로 건조 중이라 완전하게 죽지는 않았다.[11] 해외로는 미국의 Mcdermott, 프랑스의 Technip, 싱가포르의 Seatrium 등이 있다.[12] 덴마크에 위치하고 있으며 트럭을 생산하는 독일 MAN과는 같은 사명을 쓰는 별개의 법인이다. 과거 Burmeinster & Wain(B&W)를 MAN에서 인수하여 사명을 변경한 회사이며 기관사들에게는 B&W로 더욱 친숙한 기업이다.[13] 과거 핀란드 Wartsila 사 소속이었으며, 기관사들에게는 Sulzer로 기억되어 있다.[14] 자체적으로 엔진 생산 회사를 보유한 STX 제외[15] STX중공업이 대형엔진을 생산하며, STX엔진이 중형엔진을 생산한다.[16] 양사는 잠수함 건조를 번갈아 맡고 있다.[17] 2016년 7월 분사 당시 동력부, 보전부, 장비지원부 등의 부서[18] 現 1안벽[19] 이 1호 선박은 막상 인도시기가 다가오자 오일 쇼크가 발생하여 환율이 불리하게 되었고, 선박을 인도하지 않다가 고소를 당해 사건명 'The Atlantic Baron'으로 영국 법원에 기록되어 있다.[20] 그 1호 선박은 이름을 2번 바꿨다가 1991년 앙골라에서 폭발, 침몰하였다.[21] 정주영의 자서전 등을 통해 전해진 무용담은 적당히 걸러들어야 한다. 일단 당시 울산이 작은 어촌마을 이라는건 틀린 이야기이다. 1962년 울산이 특정공업지역으로 지정되고, 이후 유공이 설립되었고 현대자동차 울산1공장이 1968년에 완공되는 등 울산의 공업단지화가 진행되고 있던 시점이며, 이미 일제강점기부터 방어진항과 장생포항이 일본의 어업포경기지로서 발전해 있었고 방어진철공조선소 등 기초적인 인프라는 구축되어 있었다. 기술자도 부산 영도의 일제시절부터 있었던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조선중공업을 통해 수급하였다. 최초의 유조선 수주도 정부의 보증이 있었다.[22]현대로템[23] 現 엔진기계사업부[24] 現 현대일렉트릭[25] 現 현대힘스 포항공장[26]HD현대미포 용연공장[27] 2018년 에쓰오일에 매각됨[28] 2017년 4월 갑작스러운 기업분할로부터 겨우 2년 정도 흐른 시점이었고, 그 이후 입사자 수는 매우 적었기 때문에 대다수 직원들 입장에서는 그룹 대표회사이자 지배구조 최상단에 있던 대기업에 입사했더니 갑자기 회사가 주식시장에도 없는 신설법인이 되는 날벼락을 맞은 상황이었다. 신용정보가 바뀌어 임직원들이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 금리 및 한도가 달라진 것은 덤.[29] HD현대중공업으로의 사명 변경은 2023년 3월 28일에 이뤄짐.[30] 변호사, 변리사, 간호사 등[31] 산업보안팀[32] 사실 현대중공업 창립 당시부터 사내 하청은 존재하고 있었다. 조선업 초창기에는 용접 등 숙련공들이 부족하여 대규모의 고기능 인력충원이 어려웠고 사세가 확장되기 까지는 많은 인력을 고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랐기 때문에 선박 수주량에 따라 유연하게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 이런 고용형태를 도입하였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는 삼성이나 대우 등 국내의 타 조선소들도 비슷하거나 같은 형태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현대만의 독특한 고용 구조라 하기엔 이미 국내 조선소들의 고용 형태로 완전 고착되었다.[33] 사무직이 더 높다는 인식은 직급의 차이로 인한 것이며, 비슷한 등급으로 인정되는 사무-생산직, 가령 대리-기원, 과장-기장, 차장-기감, 부장-기정에 대해서는 당연하게도 근속연수의 차이로 인해 생산직이 훨씬 더 많이 받는다. 다만 HD현대중공업의 급여 체계는 낮은 기본급을 수당으로 만회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야근과 특근의 유무에 따른 급여 차이가 크게 나는 편이라 단정지을 수 없다.[34] 창립~1999년 까지는 훈련원[35] 고졸 신입사원 채용 등 특별채용 제외[36] 하지만 기본급 인상 없는 일회성 일시급 지급 위주의 임금협상으로 인해 해가 갈수록 동일 업종의 타 기업 대비 낮아지는 모양새. 노조는 삼성중공업한화오션 대비 적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37] 북구의 도로 자체는 그렇게 심각하게 좁은 편이 아니다. 다만 현대자동차가 있어서 해당지역에 자차 출근족이 많다.[38] 現 엔진기계사업부[39] 한국조선해양 문서에 적힌 바와 같이 이는 처음부터 사측이 각본을 짜서 계획대로 노조 측 반대를 분쇄하고 누명을 씌운 것일 가능성이 농후하다.[40] 한덕수 국무총리, 김관영 전라북도지사, 신영대 국회의원, 김미정 군산시 부시장, 한영석 현대중공업 부회장 등이 참석했다.[41] 상선보다는 크루즈선이나 해양경찰, 해군이 쓰는 수상함을 주로 건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