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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생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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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생포
長生浦 | Jangsaengpo
파일:장생포.jpg

1. 개요2. 역사3. 장생포항4. 여담5. 장생포고래박물관6. 울산함7.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울산광역시 남구 야음장생포동에 있는 항구이다.

2. 역사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서 표현된 여러 종류의 고래와 고래 사냥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선사시대부터 장생포를 포함한 울산 지역이 고래잡이의 중심지역이었음을 잘 나타내고 있는데 울산만 서쪽에 위치한 장생포는 울산 도심과 어느 정도 인접해 있어 연안 어업으로 생활하던 주민들이 잡은 해산물을 도심으로 가져다 팔면서 포구가 형성되었다.

조선시대 태종 때인 1407년에 '장생포만호영'을 설치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역할도 했다. 또한 장생포를 중심으로 한 울산만 일대가 최적의 고래 서식지였기에 포경업이 잘 되었다. 구한말 러시아 포경선들이 잡은 고래들을 이곳 장생포에서 주로 불법적으로 해체하면서 고래 해체장 등이 건설되었고 러·일전쟁 이후에는 일본이 한반도 근해의 포경을 독점하면서 일본 포경 업체들이 장생포에 들어섰고 일제강점기에는 장생포가 포경 전진기지로서 크게 발전했다. 덕분에 장생포구와 마을에는 관공서와 각종 상점들이 들어서면서 동해안의 주요 항구 중 하나로 우뚝 솟았다.

광복 이후에도 장생포는 대한민국의 포경 전진기지로 중심을 잡고 많은 포경선들이 오갔으며 잡은 고래고기 대부분을 일본에 수출하였으므로 고래고기를 맛보기 위해 전국의 미식가들이 이곳 장생포로 몰려들어 고래고기집들이 성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로 무분별한 고래 포획으로 고래 개체가 급감했고 1982년 국제포경위원회에서 발표한 5년 간 포경 금지 협약에 따라 장생포와 우리나라에서의 포경은 사실상 막을 내렸고 그동안 왁자지껄했던 장생포도 포경 종사자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주민 감소와 지역 쇠퇴를 겪게되었다.[1] 하지만, 이 장생포가 있기에 울산이 고래로 유명한 도시가 된 주요 요인이 되었다. 그래서 여기에 장생포고래박물관이 있는 것이다.

포경 외에도 장생포는 일제강점기 때는 대륙 침략의 전진 기지로서 장생포항에 유류 비축을 위한 축항계획이 시도되어 장생포 일대에 안벽이 축조되었고, 울산·장생포간에 철도 지선을 부설하여 군수 물자를 수송하기도 하였다.

위에서 말한 듯이 장생포는 중요 거점지역이기 때문에 도로와 철도가 이곳을 중심으로 발달하였다.[2] 실제로 울산의 도로는 1904년 ~ 1920년에 걸쳐 울산·부산, 경주 등 간선도로와 장생포, 방어진, 언양, 남창을 경유하여 해운대에 이르는 도로가 개설되면서 발달하였다. 철도는 한국전쟁 이후 산업선이 진행되면서 ‘장생포선'이 개통하였고, 1960년부터 화물운송에 있어서 장생포역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또한 공업 발전에도 최적의 도시였기 때문에 이곳을 포함해 울산 지역에 울산미포국가산업단지가 건설되었다.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정부는 1962년에 울산을 특정공업지구로 결정하고 장생포동 납도(현 동양나이론(주) 공장부지 안)에서 국민의 관심 속에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을 거행했다. 이를 계기로 주변에 울산석유화학공업단지, 온산국가산업단지 등의 대규모 공업단지가 들어섰다.

그러면서 장생포도 공업이 발달하는 등 농촌적 성격에서 벗어나 도시적 특징을 나타내게 되었다. 장생포는 울산공업단지의 일부로 대규모공장들이 입지하여 공업이 발달하여 있으며 산업도로와 신시가지를 연결하는 도로가 발달되어 있다. 자연스럽게 공장수와 종업원수가 늘게 되었고, 1962년에서 1980년까지 18년 사이에 공업에 종사하는 종업원수는 약 60배, 공장수는 약 3.4배가 증가하였다. 이후 현재까지도 공업단지가 많다.

주변 공업단지에 둘러싸인 덕분에 도심 속 섬으로 전락했던 장생포는 2008년 고래문화특구로 지정되고 '고래바다여행선'의 기항지로 선정되면서 울산의 주요 관광 명소로 발전을 시도하고 있다.

3. 장생포항

울산항의 여러 항 중 울산본항에 속해있는 장생포항은 장생포 부두와 장생포 소형선 부두로 형성되어 있으며 인근 화물 부두에 입항하는 화물선들을 위한 역무선(급유, 청소, 선원용 물품 수송 등을 위한 선박)과 일반 어선들이 주로 입출항하고 있다. 이외에도 울산해양경찰서 전용 부두와 고래바다여행선 선착장 등의 시설과 울산지방해양수산청, 울산지방해양수산청 항로표지관리센터, 울산해양경찰서 울산항파출소,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 국립울산검역소 등의 관공서가 자리잡고 있다.

또한 1971년 12월 부터 2014년 1월까지 이곳에 해군 제3함대 소속 제231 전진기지가 위치해 울산 지역의 해상 방위를 맡았으나 43년 만에 해체되었고 해군이 사용하던 기지 건물과 해군부두는 울산 남구청이 사들여 '장생포 웰리키즈랜드'라는 키즈카페로 바뀌었다.

4. 여담

5. 장생포고래박물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장생포고래박물관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6. 울산함

1980년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건조된 '대한민국이 자체적으로 설계·생산한 호위함' 울산함이 임무를 마치고 2014년 퇴역하자, 울산 남구청이 함정의 역사적 가치를 기리고 국가안보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해군으로부터 무상대여를 요청해 2016년 함선의 고향인 울산으로 귀항했다. 이후 관람을 위한 시설 공사 등을 거쳐 2017년 4월 부터 장생포고래문화특구에 전시 개방하고 있다.

현재 울산함은 고래 박물관 바로 옆에 전시되어 있다. 관람료는 개인 1,000원, 20인 이상 단체는 800원이다. 함선의 겉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고 제한이 적기 때문에[4] 밀덕[5]들을 유인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카더라에 따르면 전시를 위해 울산함을 지상으로 올리는 작업을 할 당시 하필이면 작업장이 장생포항을 꽉 막아버리는 형국이 되어서 여길 드나들어야 하는 배들이 꽤나 고생을 했다고 한다.#

7. 관련 문서


[1] 포경업이 번성하던 시절에는 '장생포에는 동네 개들도 만원짜리(그 당시 화폐 가치로 볼 때 지나치게 과장된 표현인 듯하다)를 물고 다닌다' 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였다.[2] 물론 현재의 기준으로 봤을 땐 형편 없는 시골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3] 장생포에 위치한 죽도섬에 대한 노래로 환상의 섬(노래)을 작사 작곡하고 발표한 바 있다[4] 함정의 문들이 거의 모두 잠겨있지 않고 여러 가지 장비와 조타 키를 만질 수 있다.[5] 전함소녀의 글로벌 서비스가 시작한 이후 등장한 한국인 캐릭터울산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