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1819 Hall Rifle M1819 홀 소총 | |||
M1819 홀 소총 | |||
M1843 홀-노스 카빈 | |||
<colbgcolor=#c7c7c7,#353535><colcolor=#000,#fff> 종류 | <colbgcolor=#ffffff,#121212><colcolor=#000,#fff>소총 | ||
원산지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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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7c7c7,#353535><colcolor=#000,#fff> 역사 | <colbgcolor=#ffffff,#121212><colcolor=#000,#fff>1819년~1840년대 | ||
개발 | 존 핸콕 홀 | ||
개발년도 | 1811년 | ||
생산 | 하퍼스 페리 조병창 시메온 노스 | ||
생산년도 | 1820년~1840년대 | ||
생산수 | 23,500정 13,684정 (카빈) 14,000정 (M1843) | ||
단가 | $25 (1817년 기준) | ||
사용국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아르헨티나| ]][[틀:국기| ]][[틀:국기| ]] | ||
사용된 전쟁 | 인디언 전쟁 미국 멕시코 전쟁 남북 전쟁 아르헨티나 내전 | ||
기종 | |||
파생형 | M1843 홀-노스 카빈 | ||
세부사항 | |||
탄약 | .525 구형 탄환 (원형) .69 페이퍼 카트리지 (M1843) | ||
급탄 | 단발 브리치로딩 | ||
작동방식 | 플린트락 퍼커션 캡 (M1843) | ||
총열길이 | 830mm (소총) 530~580mm (카빈) | ||
전장 | 1,330mm (원형) 1,200~1,500mm (M1843) | ||
중량 | 4.6kg (소총) 3.6kg (카빈) | ||
발사속도 | 8~9RPM | ||
유효사거리 | 730~1,370m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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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Forgotten Weapons의 리뷰 영상 | 사격 영상 |
2. 상세
약실이 개방된 상태의 홀 소총의 그림 |
홀 소총은 당대의 표준 화기였던 머스킷과 달리 강선이 있는 소총이었다. 홀 소총 이전에도 강선식 소총이 없던 것은 아니었으나, 여러 단점에 의해 활강식 머스킷에 밀려 많이 사용되지 못했다. 강선의 효과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총알이 총열에 완전히 맞물려야 했는데, 당시의 전장식 장전 방식으로 강선이 파인 총열에 총알을 집어 넣으려면 힘이나 시간이 활강식 총열에 비해 훨씬 많이 소요되었다. 단시간에 더 많은 화력을 투사하는 것이 목표였던 군대에게 해당 단점은 치명적이었고, 때문에 강선에 특화된 총알인 미니에 탄이 발명될 때까지 강선식 총기는 비주류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홀 소총은 장전의 큰 장애물이 되는 강선을 피해 장전한다는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정확성과 장전 속도 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데 성공했다. 일단 구조상으로 상당히 특이했는데, 당시 플린트락 총기의 대부분은 부싯돌 장치가 총의 오른쪽에 붙어 있었던 반면 홀 소총은 총 상부에 달려 있었다.[4] 총 하단의 후크를 당기면 부싯돌 장치를 포함한 브리치블록 뭉치가 통째로 위쪽으로 들려 올라감으로 약실이 개방되고, 약실에 화약과 총알을 채워 넣고 도로 브리치블록 뭉치를 닫아 주면 되었다. 이후 일반적인 플린트락의 방식대로 화약접시에 점화용 화약을 넣고 프리즌을 닫은 후 해머를 코킹함으로써 장전이 완료되는 방식이었다.
실제로 이러한 장전 방식은 강선식 소총뿐만 아니라 꼬질대로 총구를 쑤시는 활강식 머스킷보다도 획기적으로 빨랐는데, 미군에서 머스킷과 전장식 소총, 홀 소총을 나란히 놓고 사격 테스트를 한 결과 홀 소총이 장전 속도도 가장 빠르면서 가장 정확했다는 결과를 얻었다. 물론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로 전군에 홀 소총을 들려 주지 못했는데, 대표적인 문제는 바로 가격이었다. 복잡한 기계 장치가 들어 가는 구조에 강선까지 파였으니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미군에서도 일부 특수 병종에 들려 줄 목적으로 홀 소총을 채택했을 뿐이었다. 또 다른 문제는 화약 폭발로 인한 가스 누출이었는데, 당시 기술력으로는 약실과 총열 사이의 틈으로 가스가 누출되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 없었다. 해당 문제는 30년 뒤에 개발된 샤프스 소총도 해결 못한 문제였으니 어쩔 수 없긴 했다.
홀 소총은 인디언 전쟁, 미국-멕시코 전쟁 등에서 사용되어 왔으며, 약 40년 뒤인 남북 전쟁에서도 일부 사용되었으나 노후화된 총기였기에 많이 사용되지는 못했다. 1854년에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주 군대가 홀 소총 약 50정을 구해 사용했다.
Forgotten Weapons의 M1843 홀-노스 카빈 리뷰 영상 |
3. 여담
- 해당 총의 개발자인 존 핸콕 홀은 총기뿐만 아니라 미국의 공업 발전사에도 큰 기여를 했다. 당시 총기는 장인들이 수공업으로 제작하여 같은 총기라도 부품이 제각기 달라 부품 교체가 불가능했는데, 홀은 부품을 표준화하고 이러한 부품들을 찍어내는 기계를 개발했다.[5] 미국 정부도 처음에는 홀의 방식을 믿지 못해 100정의 홀 소총을 분해하여 부품을 무작위로 뒤섞은 뒤 재조립하는 테스트를 했고, 물론 100정의 총들은 부품이 서로 바뀐 상태에서도 멀쩡하게 작동했다. 하퍼스 페리에서 홀과 같이 일했던 그의 동료들은 그의 방식을 보고 배워 소총뿐만 아니라 시계, 자전거, 신발 등의 제조 공정에도 해당 시스템을 도입했으며, 이는 나아가 헨리 포드의 자동차 대량 생산 시스템으로 이어짐으로써 미국의 산업 혁명의 뿌리가 되었다.
4. 참고 자료
[1] 단 세계 최초로 군에 채용된 브리치로딩 소총은 아닌데, 미국 독립 전쟁 시기에 영국군 경보병이 소량 사용한 퍼거슨 소총이 있기 때문.[2] 당시에는 매사추세츠 소속이었으나, 1820년에 메인주가 독립하면서 같이 떨어져 나왔다.[3] 미국 정부가 세운 두 번째 연방 조병창. 버지니아주 하퍼스 페리에 위치해 있었는데, 스프링필드 조병창과 함께 정확히 동일한 치수의 교환 가능한 부품을 만드는 기계 가공 기술 의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4] 때문에 홀 소총의 가늠자 및 가늠쇠는 부싯돌 장치를 피해 살짝 왼쪽으로 쏠려 있었다. 해당 구조가 단점만 있던 것은 아니었는데, 점화용 화약에 붙은 불이 바로 밑의 약실로 쉽게 내려갈 수 있는 덕분에 불발률이 감소한다는 장점이 있었다.[5] 흔히 일라이 휘트니가 부품의 표준화를 먼저 시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휘트니의 방식은 표준 부품을 여전히 수공업으로 깎아 만들어야 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