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菅達長? - 1615
간 미치나가는 센고쿠 시대의 다이묘이다.
2. 생애
간 가문은 스가와라노 미치자네의 후손을 자칭하나, 실제로는 아와지의 호족 출신으로 추정된다. 전반생은 알려져 있지 않다. 당시 아와지 일대에서 세력을 다투던 모리 가문과 오다 가문 중 미치나가는 모리 데루모토 측을 택했고, 덕분에 모리 측이 함락시킨 이와야 성을 받게 되었다. 이후 여러 전투에서 모리 측에서 활약했으나, 1581년 가을 하시바 히데요시의 공격으로 하루만에 성을 빼앗겨 세력을 잃고 미치나가 또한 피신하게 된다.혼노지의 변에서는 아케치 미츠히데에게 가담해 센고쿠 히데히사의 스모토 성을 함락시키나 곧 패퇴해 쵸소카베 모토치카의 동생 코소카베 치카야스 휘하로 들어간다. 이후 쵸소카베군, 사이카슈 등과 함께 코마키 나가쿠테 전투 당시 전투를 벌이나 또다시 패하고, 이후 히데요시의 시코쿠 정벌로 쵸소카베 가문과 함께 히데요시에게 굴복한다.
도요토미 정권 하에서는 이요에 1만석 가량의 영지를 받아 수군을 이끌게 되어, 규슈 정벌, 오다와라 정벌, 임진왜란 등에 출전한다. 칠천량 해전 등에서 활약했으나, 임진왜란 당시 아들 간 마사카게를 잃게 된다. 히데요시 사망 당시 그에게서 유품으로 칼을 하사받기도 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구키 요시타카 등과 서군에 가담하나 패전 후 은거하지만, 도도 다카토라가 5천석의 영지를 주며 그를 가신으로 들인다. 오사카 전투 당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히데요리와 화친하며 오사카 성의 해자를 메우는 조건을 걸었는데, 이는 사실 이에야스의 함정이었다. 이를 알고 있던 미치나가는 다카토라의 명으로 매립 공사를 맡고도 무사도에 어긋나는 행동이라며 매립을 거부해 다카토라와 큰 갈등을 빚었고, 결국 화가 난 다카토라에게 할복을 명받아 1615년 할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