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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8 22:36:59

개태사역

폐역 계룡 - [ruby(신도, ruby=1966~2006)] - 개태사
개태사역
다른 문자 표기
로마자 Gaetaesa
한자 開泰寺
간체자 开泰寺
가나 [ruby(開泰寺, ruby=ケテサ)]
주소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계백로 2625 (천호리)
관리역 등급
무배치간이역
(서대전역 관리 / 한국철도공사 대전충청본부)
운영 기관
호남선 한국철도공사
개업일
호남선 1944년 4월 9일
승강장 구조
2면 5선 쌍섬식 승강장
철도거리표
호남선
개태사
파일:attachment/gaetaesa.jpg
현 역사(1968년 준공)

1. 개요2. 역 정보3. 역 주변
3.1. 전설의 개태사 드리프트
3.1.1. 폐역 수순
3.2. 개태사
4.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호남선철도역.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계백로 2625 (천호리 306-8)에 소재.

2. 역 정보

역명은 역 인근에 있는 개태사에서 따 왔다. 실제로 개태사에서 개태사역까지 정말 가깝다. 걸어서 3분거리. 역이 연산면 광석리에 위치해서 광석역으로 개업했지만 하필 같은 논산에 광석면이 있어 혼동의 우려가 있어서 1968년에 역사 신축 겸 인근의 사찰인 개태사역으로 개명되었다.

1956년 2월 20일보통역으로 승격했지만 주변 역세권이 작은 마을 뿐이고 개태사가 크게 유명한 관광지도 아니라[1] 1992년부터 수요가 급격히 줄었다. 결국 2008년 12월 1일부터 여객영업을 중단했다. 화물영업은 이미 2007년 11월 1일부터 중단되어 있었고. 결국 2009년 7월 6일에 역무원이 철수하면서 무배치간이역으로 격하되었다. 그나마 개태사역은 무인화로 끝났지만 과거에 다음 역이었던 신도역은 폐역되었다. 신도역 주변은 6,000세대 아파트촌 인구밀집지역이다.

이렇듯 그 자체로는 별 볼일 없는 역이지만 이 역의 이름이 유명해진 계기는 이 역 주변에 따로 있었으니...

3. 역 주변

3.1. 전설의 개태사 드리프트


[2]
철덕들과 호남선 대전 이남지역을 자주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이른바 개태사 드리프트로 유명한 역이다. 영상은 개태사 드리프트 구간을 지나는 새마을호며 사진 명당으로도 유명하다. # [3]

계룡역과 개태사역을 지나는 계룡시 엄사면 구간에 있는 곡선 반경 약 400m(400R)[4] 지역으로 KTX, 새마을, 무궁화는 이곳에서 시속 80km/h 될까말까 한 속도로 달린다.[5] 1979년 복선화 전에는 상습 지연 구간으로 악명이 높았다.[6] 개태사 드리프트 따위는 전혀 모르는 일반 승객도 예민한 사람들은 용산-서대전 구간에서는 빠르게 쌩쌩 달리던 열차가 서대전부터 익산까지는 속도가 확 느려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경우까지 있을 정도. 사실 1970년대 복선화 기술로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다.

비슷한 시기 복선화된 충북선 사례와 비교하는 경우가 있는데, 충북선이나 호남선이나 둘 다 골짜기 회랑을 따라 선로를 놓은 것은 매한가지다. 당장 충북선은 400R 곡선이 수십 곳 있고, 300R 곡선도 존재한다. 그러나 야트막한 산지의 연속이라 그 사이를 돌파할 수 있는 충북선 회랑과 달리 호남선은 계룡산과 대둔산이라는 두 거산의 사이를 지나야 하니 답이 없었다. 이 구간의 선형을 조금만 개량하려고 해도 수십km의 터널 건설이 불가피하다. 인근을 지나는 호남고속도로지선만 봐도 극악한 구배와 선형 때문에 벌곡휴게소 - 계룡 나들목 구간에 무려 80km/h 제한이 걸려있을 정도다.

파일:논산가수원직선화.jpg

그동안 철도 동호인들만 아는 문제였지만[7] 상습지연으로 악명높았던 대전조차장~서대전 구간의 입체교차화로 인해 상당히 해결되면서 잠시 동안 잊혔다가 여러 지역에서 크게 공론화가 된 시기와 이유는 호남고속철 서대전역 정차요구건. 이로 인해 개태사 드리프트의 문제가 충남에서 다시 이슈가 되고 있다. 관련 기사 보기. 결국 서대전-논산 구간은 직선화 및 고속화 사업을 진행한다고 하는데 문제는 서대전-논산보다는 좋을지 몰라도 불량한 선형으로 인해 제 속도를 내지를 못 하는 논산-익산 구간은 고속화 사업에서 빠져 있다. 논산역-익산역 구간은 언덕 하나도 없는 평야지대임에도 익산역 인근까지도 상당히 저속으로 달리는데 예전부터 이래왔으니 선형에 문제가 있어보인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나 예산. 대전광역시, 계룡시, 논산시, 청주 오송을 비롯한 충북지역, 광주광역시를 비롯한 호남지역. 그 어디도 이 구간 직선화 공사를 위한 '돈'을 낼 마음이 없거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여튼 대전에서 서울방향 KTX 확보를 위해 선형 개선 예산을 투입하지 않는 이상, 개태사 드리프트 개량은 우선순위도 낮고 쉽지 않다는 것이 명료하다. 사실상 개량작업을 했더라면 2004년 KTX 도입 전에 끝냈어야 했다는 평이 나온다. 하지만 당시 한국 재정 상 개태사 드리프트를 먼저 직선화했다면 사실상 호남고속신선 부설은 나가리되는 상황이었다. 애초에 호남고속철도 사업 검토 당시 호남선 직선화 vs 호남고속신선을 두고 택1하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2016년 8월에 가수원역~논산역 구간의 직선화 및 고속화 사업이 결정되었으며, 2021년 4월 22일 발표된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초안에도 반영됐다.

3.1.1. 폐역 수순

2022년 8월, 해당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가 통과되어 2027년 까지 7,779억원을 전액 국비로 투입하여 선형을 개량하는 사업이 확정되었다.# 호남선 항목에 나오듯 해당 예타에서 개태사역이 폐역된다고 명시된 만큼 본 역은 시한부 신세가 됐다.

3.2. 개태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개태사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통일 기념으로 지은 절이다. # #

천혜의 관문이라 지정학적으로도 중요한 지점으로, 위성 지도로 보면 이러한 점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금강 이북 지역에서 금강을 건너 남쪽 평야지대로 진출할 때는 금강 본류, 현 공주시 소학동 인근, 그리고 개태사를 제외하면 논산 평야로 진출할 수 있는 진출로가 전무하다. 논산시 서쪽은 칠갑산을 위시한 차령산맥이 바다와 맞닿는 부분까지 뻗어있고, 동쪽은 말할 것도 없다. 금강 본류는 대규모 육군을 동원해서 따라 내려가기 어렵고, 공주시 소학동은 바로 금강과 맞닿아 있어 도강하다가 적에 요격당하기 쉬우며 이 지점의 강폭은 상당한 것을 고려했을 때, 청주 쪽에서 내려와 대전 및 세종 인근의 금강 상류 지점에서 도강한 뒤[11] 평야지대로 수월하게 나올 수 있는(혹은 반대로 금강 이북지역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길목은 개태사 뿐인 것이다.

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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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래도 논산시에서 8경 중의 하나로 지정했지만 크게 유명하지 않다. 그나마 유명한 건 개태사 안에 있는 커다란 가마솥 정도다.[2] 2012년 2월 28일에 촬영된 개태사 급곡선 구간. 당시 현역이었던 새마을호 디젤동차가 보인다.(2013년 전량 퇴역)[3] 현재는 펜스가 설치되어 촬영시 위 영상과 같은 장면은 나올 수 없게 되었다.파일:개태사 드리프트.png[4] 종각 드리프트의 경우 약 140R, 북한의 협궤철도 백무선의 경우 최소곡선반경이 40R까지 가기도 한다.[5] 실제 제한속도는 85km/h[6] 사실 서울에서 대전조차장까지는 제때 도착하는 당시 호남선, 전라선 새마을호, 무궁화호, 통일호가 대전조차장부터 지연이 발생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게 바로 대전조차장역에서 경부선 열차 대피와 평면교차로 인해 시간소모가 6~10분으로 상당히 셌기 때문이다.[7] 호남선과 전라선을 이용하는 승객들은 익산 이남의 부족한 열차 편성과 복선전철화에 신경을 쓰였다.[8] 지금도 4번 국도 선형개량 및 우회도로 신설 등 계속된 추가 교통망 건설이 이어지고 있다.[9] 호남고속선 개통 직후 열차 배치 수정할 정도로 대전-서울 수요는 무시 못한다.[10] 호남권에선 천안아산분기를 통한 최단거리 신선을 원했으나, 오송분기로 인해 발생한 시간, 운임 손해에 굉장히 민감하다.[11] 이 때는 공주시 소학동과 달리 도강할 지점이 많고 강폭도 좁으므로 방어하기가 어렵다. 후백제을 방어 측 입장으로 보았을 때, 차라리 대전을 버리더라도 개태사만 잘 틀어막으면 기름진 논산평야 이남을 모두 손아귀에 틀어쥘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