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자 | 상보(商甫) |
본관 | 개성 고씨[1] |
출생 | 1870년 10월 19일 |
경상도 상주목 산남면 신전리 (현 경상북도 문경시 산양면 신전리)[2] | |
사망 | 1941년 11월 2일 |
경상북도 문경군 | |
묘소 | 경상북도 문경시 산양면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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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고유훈은 1870년 10월 19일 경상도 상주목 산남면 신전리(현 경상북도 문경시 산양면 신전리)에서 독립유공자인 아버지 고윤환과 어머니 의령 남씨 남호정(南鎬正)의 딸 사이의 1남 3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3]그는 1907년 7월 충북 제천에서 이강년 의병장이 의병을 일으키자 김상태(金尙台)·이만원(李萬源)·윤기영(尹基榮)·백남규(白南圭) 등과 함께 합세하여 이강년을 대장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좌종사부(坐從事部)에 소속되었다. 이후 이강년과 함께 단양, 제천, 연풍, 강릉, 청풍, 문경, 예천, 영주, 안동 등지에서 일본군과 맞섰지만 1908년 6월 4일 이강년이 체포된 뒤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지자 김상태를 찾아가 재차 의병을 일으킬 것을 도모하고 이승재(李承宰)·유시연·노병대·이기하·이명재 등 여러 의병장들과 함께 의병을 취합하여 수차례에 걸쳐 일본군과 교전했다. 그러나 1912년 김상태마저 일본군에게 체포된 뒤 스스로 단식하여 목숨을 끊자, 그는 고향에 칩거해 세상과 인연을 끊었고 1941년 11월 2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고유훈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