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자 / 호 | 무현(武顯) / 장산(長山) |
본관 | 개성 고씨[1] |
출생 | 1845년 |
경상도 상주목 산남면 신전리 (현 경상북도 문경시 산양면 신전리)[2] | |
사망 | 1915년 8월 23일 |
경상북도 문경군 | |
묘소 | 경상북도 문경시 영순면 왕태리 이산마을 |
상훈 | 건국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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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92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독립유공자 고유훈은 그의 아들이다.
2. 생애
1845년 경상도 상주목 산남면 신전리(현 경상북도 문경시 산양면 신전리)에서 개성 고씨 신전파 8대 종손인 아버지 고일원(高一源)과 어머니 풍산 류씨(豊山 柳氏) 류순조(柳舜祚)[3]의 딸 사이의 5남 1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그는 1907년 7월 정미 7조약의 체결로 일제의 국권침탈이 더욱 심화되어가자, 같은 달 5일 당시 충청북도 제천군에서 재차 의병을 일으킨 이강년의 의병진에 입대하였다. 좌종사(坐從事)에 임명된 그는 경상북도 문경군과 문경새재, 충청북도 연풍군 수안보(水安堡)[4]를 비롯해 제천군, 청풍군, 강원도 영월군 등지를 전전하면서 일본군과 싸워 큰 전공을 세웠다.
그러다가 1908년 6월 4일 충청북도 청풍군 북면 성내리(현 제천시 금성면 성내리) 까치성[5] 전투에서 일본군과의 격전 중에 이강년 의병대장이 중상을 입어 결국 체포되고 의진이 무너지자, 그는 산 속으로 피신하여 훗날을 기약하고 동지들간에 연락을 취하며 복수의 뜻을 세웠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못하자 결국 이를 한탄하고 은둔했다.
이후 1915년 8월 23일 사망하였다.
199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