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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9-13 11:34:03

고자(고구려)

고구려의 유민
국적 <colbgcolor=white,#191919>고구려
성씨 고(高)
이름 자(慈)
지첩(智捷)
사망지 당 마미성(磨米城) 남쪽
묘지 당 낙주(洛州) 합궁현(合宮縣) 평락향(平樂鄕)
생몰연도 664년 ~ 697년 5월 23일(만 33세)

1. 개요2. 계보
2.1. 20대조 고밀(高密)2.2. 고조부 고전(高前)2.3. 증조부 고식(高式)2.4. 조부 고량(高量)2.5. 부 고질(高質)2.6. 본인2.7. 아들 고숭덕(高崇德)

1. 개요

고구려의 사성(賜姓)정책에 의한 왕족(王族) 출신 고구려 유민.

고구려가 망할 때 3살이었으며, 아버지 고질(高質)이 그와 다른 형제들을 데리고 당에 망명하였다. 이후 당의 이민족 장수로서 활약하다가 마지막에는 아버지와 함께 전사하였다.

현존 사서엔 등장하지 않으나 묘지명이 남아 있어 후세에 알려질 수 있었다.

2. 계보

묘지명에는, 고자(高慈) 본인의 20대조부터 본인, 본인의 아들까지 기록되어 있다. 고자는 고구려 출신이니 스스로를 '조선인(朝鮮人)'이라고 출신을 적었다. 이 조선은 당연히 이성계의 조선이 아닌 고조선을 의미하며 연남산 또한 자신의 출신을 '요동조선인(遼東朝鮮人)'으로 표현했다. 이성계의 조선 건국 전까지 '조선'은 고조선의 수도였던 평양과 주변 평안도 일대를 의미하는 지역명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또한 고자 가문이 통치했던 고구려의 백성을 '삼한인(三韓人)'으로 적었다.[1] 현대인들은 삼한이 한반도 중남부의 마진변한이란 걸 알고 있지만 이 마진변이 사라진 지 이미 수백년이 지난 삼국시대 후반부 당시에는 의미가 변형되어 고구려, 백제, 신라 셋을 삼한이라고 불렀기 때문.[2] 의미 변화에 대해서는 삼한 문서 참조.

고자의 조상은 주몽왕(朱蒙王)이 해동제이(海東諸夷)를 누르고 고려국(高麗國)을 건국했을 때 그를 호종했다고 한다.[3]

2.1. 20대조 고밀(高密)

작위 <colbgcolor=white,#191919>왕(王)후(侯)
식읍 3000호(戶)
성씨 ? → 고(高)
이름 밀(密)
생몰연도 ? ~ ?

고자의 20대조 고밀(高密) 이전엔 고자 가문은 귀족이었지만 성씨가 없었거나 고씨가 아닌 다른 성씨였을 것으로 보인다.

고자 묘지명엔 후한 말, 연모용(燕慕容)과 벌어진 전쟁에서 고구려의 패색이 짙어지는 와중, 혼자서 연군(燕軍)을 후퇴하게 만드니 당시 고구려의 임금이 밀에게 왕작을 하사하려 했다.[4]

하지만 세 번 사양하고 거부하니 임금은 대신 고씨를 주고 후작에 봉해준 뒤, 금문철권(金文鐵券)을 주었다.
'이제 영(令)하니, 고밀(高密)의 자손(子孫)은 대대(代代)로 봉후(封侯)될 것이다.

오두(烏頭)[5]가 하얘질 때까지, 압록(鴨綠)[6]이 마를 때까지 승습(承襲)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 고자 묘지명 중 발췌. 고밀이 받은 금문철권에 쓰인 글귀다.

이 고밀이란 자를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고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고노자는 봉상왕대의 인물인데 모용선비의 수장 모용외의 대대적인 침공에서 봉상왕을 구출한 뒤 모용선비를 두들겨 패고 다닌 기록이 있고 그 공로로 곡림(鵠林)을 식읍으로 하사받았기 때문. 당시 중국의 왕조는 서진으로 연대상으로도 후한에 가깝긴 하다.[7] 하지만 그외엔 다른 기록이 없어서 확실하진 않다.

2.2. 고조부 고전(高前)

관등 <colbgcolor=white,#191919>위두대형(位頭大兄)
품계 3품(品)
성씨 고(高)
이름 전(前)
생몰연도 ? ~ ?
3품 위두대형을 지냈다. 자손들도 마찬가지로 거의 위두대형을 지냈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특출난 인물이 아니라면 이 가문은 기본적으로 위두대형의 관등을 세습했던 것으로 보인다.

2.3. 증조부 고식(高式)

관등 <colbgcolor=white,#191919>막리지(莫離支)
품계 2품(品)
성씨 고(高)
이름 식(式)[8]
생몰연도 ? ~ ?
2품 막리지를 지냈던 고위층 인물이었다. 묘지명엔 혼자서 국가와 정치를 관리했다는 것을 보아 강력한 권세를 누렸던 듯 하다.

2.4. 조부 고량(高量)

관등 <colbgcolor=white,#191919>위두대형 겸 대상(位頭大兄 兼 大相)
직위 책성도독(栅城都督)
성씨 고(高)
이름 양(量)
생몰연도 ? ~ ?
3품 위두대형 겸 대상 관등을 가졌으며 책성도독을 지낸 고량은 고자의 할아버지다. 도독을 고구려 관직으로 치환하면 책성욕살에 해당한다.[9]

2.5. 부 고질(高質)

고구려의 배신자
국적 <colbgcolor=white,#191919>고구려 →
성씨 고(高)
이름 질(質)
성문(性文)
사망지 당 마미성(磨米城)
생몰연도 ? ~ 697년
고질의 고구려 관직
관등 <colbgcolor=white,#191919>위두대형(位頭大兄)
직위 대장군(大將軍)
고질의 당 관직
작위 <colbgcolor=white,#191919>유성현 개국자(柳城縣 開國子)
유성현 개국공(柳城縣 開國公)
직위 명위장군(明威將軍) 행우위위익부 좌랑장(行右威衛翊府 左郎將)
운휘장군(雲麾將軍) 행좌위위익부 중랑장(行左威衛翊府 中郎將)
좌위위장군(左威衛將軍)
오교위위(五校威衛)
여하도 토격대사(濾河道 討擊大使)

고질은 고구려에서 3품 위두대형 겸 대장군을 역임했다. 이전에는 이름이 문(文) 혹은 성문으로 알려졌으나 고질 본인의 묘지명이 발굴되며 자가 성문이고 본명은 질이라는 게 밝혀졌다. 이후 고구려가 망할 것을 예상하고 형제와 아들들을 데리고 당에 항복한다.

그 대가로 고질은 자작에서 공작까지 봉해지고 수많은 직위를 얻으며 승승장구한다. 이진충의 난을 시작으로 일어난 거란족 반란의 진압에 참여했는데 결국 아들 고자와 함께 697년 요동의 마미성(麻米城)에서 고립된 채 군사와 화살이 다 떨어질 정도로 싸우다 포로로 잡혀 죽는다.

2.6. 본인

밀의 당 관직
훈위 <colbgcolor=white,#191919>상주국(上主國)
직위 우무위장상(右武衛長上)
유격장군의구장상(遊擊將軍依舊長上)
영원장군의구장상(寧遠將軍依舊長上)
정원장군(庭遠將軍)
장무장군(壯武將軍) 행좌표도위익부랑장(行左豹韜衛翊府郎將)
좌금오위대장군(左金吾衛大將軍) 유주도독(幽州都督)
좌옥옥검위장군(左玉玉鈐衛將軍)[10]

아버지의 투항 덕분에 어린 나이부터 관직에 올랐으며 무관(武官)이 되어 수 많은 전장을 돌아다니다가 마미성 전투에서 패배, 적에게 항복하지 않고 아버지와 같이 죽었다. 결혼하여 자식을 두었으므로 가족이 있었지만 묘지명엔 아무 기록이 없다.

사실 고자 묘지명은 본인에 대한 기록이 전체 내용 중 절반 밖에 안된다. 다른 절반은 위의 조상에 대한 설명만 늘어 놓았다. 아마 젊어서 사망해 특기할 만한 내용이 별로 없었기 때문일 듯.

2.7. 아들 고숭덕(高崇德)

고숭덕은 고자의 아들로 아버지가 죽자 조정은 그 예우로 고숭덕에게 고자의 관직 좌표도위익부낭장(左豹韜衛翊府郞將)을 물려 주었다. 고자가 죽었을 때 고숭덕은 소학(小學)을 다니고 있었는데 매우 슬퍼했다고 한다.


[1] 타 고구려 유민들의 묘지명 중에는 출자를 요동삼한인(遼東三韓人)으로 표기한 것들도 있다.[2] 대한제국, 대한민국의 '한'도 한반도 중남부의 삼한이 아니라 한민족의 영역 전체를 의미하는 변형된 의미의 한에서 유래한 것이다.[3] 묘지명 원문 기록. 고구려가 고려로 표기된 건 이제는 흔히 알려져 있다시피 고구려 중기부터 몇 가지 바리에이션을 가지고 있던 국호가 공식적으로 고려로 고정되었기 때문.[4] 그런데 저 사건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선비족 모용부는 삼국시대(중국)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전연이 건국된 건 오호십육국시대인 337년으로 후한 멸망으로부터 한참 뒤다. 아마 고구려가 전연에 의해 수도도 함락당하며 거의 멸망할 뻔 했던 고국원왕 대의 사건을 가리키는 것 같다.[5] 까마귀의 머리.[6] 압록강을 의미.[7] 고노자의 생년을 240년 정도로 가정하면 고자와 420년 차이, 세대 당 평균 21세로 어느 정도 말이 된다.[8] 글자의 판독에 따라 무(武)로 해석되기도 한다.[9] 이후 고구려 멸망 때 책성욕살로는 이타인(李他仁)이란 인물이 등장한다. 지방장관직의 경우 기록상 세습이 잦았다는 것에 비추어볼 때 고자 가문이 중앙정부로 스카웃되면서 책성 일대의 담당이 이타인 가문으로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10] 사후 추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