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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고토 히로키([ruby(後藤浩輝, ruby=ごとう ひろき)], Hiroki Goto) |
국적 | 일본 |
출생 | 1974년 3월 19일, 가나가와현 사가미하라시 |
사망 | 2015년 2월 27일 (40세) |
신체 | 157cm, 50kg, B형 |
소속 | 일본중앙경마회 |
이토 마사노리(미호) → 프리(미호) | |
데뷔 | 1992년 |
성적 및 상세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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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전 경마 기수.2. 생애
2.1. 목 부상과의 싸움
2012년 5월 6일 NHK 마일 컵에서 시게루 스다치에 기승하였으나, 이와타 야스나리가 기승했던 마운트 셔스터가 안쪽으로 급격히 사행한 영향으로 낙마. 현장에서 경추 염좌 진단을 받았으나, 다음날 정밀검사 후 경추 골절 및 경수부전 손상 진단을 받았다.4개월 후인 9월 8일에 나카야마 경마장에서 복귀하였으나 복귀 당일 3경주에서 마장 입장 중 낙마, 당일 기승은 계속하였으나 17일에 목이 크게 부어올라 병원행. 두개골과 제 1, 2 경추골절을 진단받아 입원했다. 골절 후 열흘이 넘게 방치한 탓인지 재활까지 전치 1년이라는 큰 부상이었으나, 그는 재활과 병행하여 경마 방송에서 게스트 해설을 하거나, 경마 언론에서 칼럼을 작성하는 등의 활동을 계속하며 복귀 의지를 불태웠다.[1]
2013년 10월 5일, 1년 20여 일 만에 복귀하였고, 10월 14일 마일 챔피언십 남부배에서 에스포와르 시티를 타고 우승, 복귀 후 첫 중상 제패를 이뤄내었다. 복귀후 단 두 달 동안 23승을 기록하며 그의 기승 실력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14년 4월 27일, 도쿄 경마장 제 10경주에서 정글 하야테에 기승하던 중 최종 직선에서 이와타 야스나리가 기승한 리라 코사쥬의 외곽 사행에 휘말려 낙마. 또 다시 경추 골절의 중상을 입고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3번째 목 부상인 이때부터 그는 은퇴를 생각하기 시작했으나, 팬들의 성원과 자신의 의지로 재활을 계속해 7개월 만인 11월 22일에 복귀, 이틀 후인 11월 24일 도쿄 경마장 5경기에서 카보스짱에 기승하여 복귀 후 첫 승. 승리 후의 위닝 런에서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2.2. 충격적인 사망
2015년 1월 31일, 3살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로 신마전에 참가한 키타산 블랙에 기승하여 우승한 것을 포함해 2월 첫 주까지 11승을 하는 등 좋은 출발을 보였으나, 2월 21일 다이아몬드 스테이크스에서 기승했던 릭산 스텔스가 앞의 말과 접촉하며 전도 낙마, 경추 염좌의 부상을 입고 릭산 스텔스는 우측 상완골 분쇄골절로 예후불량 처분을 받는다. 이튿날인 2월 22일 목의 고통을 참아가며 2승을 추가하고 재활병원에서 다시 재활을 시작하였다.2015년 2월 26일, 본인의 페이스북에 엔카 가수의 콘서트에 다녀온 것 등을 웃는 얼굴의 사진과 함께 업로드하며 잇따른 부상에 걱정하는 팬들을 안심시켰으나, 다음날인 2월 27일 자택에서 목을 매어 숨진 상태로 부인에게 발견되었다. 향년 40세.
이 갑작스러운 죽음은 경마 팬 뿐만이 아니라 지방경마를 포함한 일본의 경마계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고, JRA 소속의 타케 유타카, 에비나 마사요시, 후쿠나가 유이치 등이 코멘트를 보낸 것 외에도 NAR 소속의 안도 요이치[2] 등도 애도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동년 4월 5일, 나카야마 경마장에 헌화대가 설치되었고, 최종 레이스 종료 후에 패독에서 메모리얼 세레모니를 개최하였다.
그의 죽음으로 비어버린 다이와 레전드의 고삐를 이어받은 미우라 코세이 기수는 골 통과 후 왼쪽 허리에 달아둔 상장을 잡는 추모의 세레머니를 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3. 주요 기승마
3.1. G1/Jpn1 우승마
- 굵게 표시된 경기는 GI/JpnI 경주.
- 골드 티아라 - 유니콘 스테이크스(1999), 시리우스 스테이크스(1999), 카키츠바타 기념(2000), 프로키온 스테이크스(2000), 마일 챔피언십 남부배(2000)
- 어드마이어 코진 - 도쿄스포츠배 3세 스테이크스(1998), 아사히배 3세 스테이크스(1998), 도쿄신문배(2002), 한큐배(2002), 야스다 기념(2002)
- 마이네르 레코드 - 니가타 2세 스테이크스(2004), 아사히배 퓨처리티 스테이크스(2004)
- 아론다이트 - 재팬 컵 더트(2006)
- 쇼와 모던 - 더비 경 챌린지 트로피(2010), 야스다 기념(2010)
- 에린 코트 - 우준 빈마(오크스)(2011)
- 에스포와르 시티 - 마일 챔피언십 남부배(2013), JBC 스프린트(2013)
4. 여담
- 굉장히 유쾌한 사람이었고 재활 과정에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며 많은 팬들에게 용기를 주기도 했던 사람인데, 이런 사람도 아마 4번째 낙마[3] 후에는 정말 힘들었는지 이런 안타까운 결말을 맞았다.
- 4번째 부상 2주 전에 키타산 블랙의 신마전에 기승하여 우승했는데, 이로 인해 키타산 블랙의 마주와 조교사, 기승했던 기수들은 고토 히로키 역시 키타산 블랙의 팀 일원으로 인정하고 있다.
- 유쾌한 성격과는 대조적으로 어렸을 적에 아버지에게 살해 직전까지 가는 심각한 가정폭력을 당했고, 이런 불우한 가정사 탓인지 가까운 사람들은 그의 정서가 굉장히 불안정했다고 언급했다. 이런 정서불안 문제 탓인지 이혼 경력도 있으며, 1999년 8월 19일 미호 트레이닝 센터 내의 기수 기숙사에서 1년 후배인 요시다 유타카 기수를 목도로 두들겨패서 4개월 기승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
- 그를 두 번이나 낙마시킨 이와타 야스나리는 평소 거만한 성품 탓에 안티가 많았는데, 고토 히로키의 죽음 이후 경마 팬들에게 어마어마한 비난을 감수해야 했고, 유투브에도 '살인 기승 이와타' 등의 원색적인 비난 영상들이 많이 올라오기도 했다. 피해 당사자인 고토 히로키는 경기 중의 사고일 뿐이라고 그를 감싸주었고, 그를 좋게 보고 있는 선배 기수들 역시 고의는 아니라고 하였지만, 여전히 이와타는 실력은 있으나 인성은 개차반인 기수의 대표 격으로 팬들에게 찍혀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