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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7 02:29:41

곤고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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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고구미의 상징인 오사카 시텐노지

金剛組(こんごうぐみ, 금강조)
Kongo Gumi Co.,Ltd.
홈페이지

1. 개요2. 역사3. 기타

1. 개요

일본건축 기업. 무려 6세기부터 이어져 온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다.[1][2]

2005년 파산 위기 이후로는 오사카의 유수 건설업체인 다카마쓰 건설 산하로 편입되어 있다.

2. 역사

578년에 비다쓰 덴노백제로부터 여러 장인[3]들을 대거 받아들였고 쇼토쿠 태자시텐노지를 건축하게 하여 593년에 완성한다. 이후 이들은 607년에 호류지를 지었는데, 참여한 목수 중 백제인 류증광이 금강중광(金剛重光: 곤고 시게미츠)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남아 대대손손 시텐노지의 증축과 유지보수를 담당한 것이 곤고구미의 시작이다. 이후 곤고 성을 가진 장인을 중심으로 한 가족기업으로 활동하여, 14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일본의 유명한 목조 건축물들을 건설하고 유지보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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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만인 다보탑

오사카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는 쇼만인(아이젠도)[4]다보탑 역시 1595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으로 곤고구미가 다시 세운 것이다.

에도시대까지 곤고구미는 시텐노지의 유지보수를 전담해 왔기 때문에 시텐노지로부터 매년 정해진 돈을 받아 회사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1868년, 메이지 유신 직후에 내려진 "신불 분리령" 때문에 시텐노지는 소유한 사원의 토지를 모두 잃었고, 곤고구미도 고정수입을 잃어 휘청거렸다.

1932년에는 경영이란 개념이 약한, 오로지 장인정신만 있던 한 후손이 조상에게 사과하고 선조들의 무덤에서 자살하여 결국 아내가 회사의 경영을 이었다. 게다가 곧 닥친 태평양 전쟁 기간 동안 국가신토의 신사 등과 관련된 일만 들어오고, 사찰 관련된 일이 끊어져 재정이 어려워진 탓에 곤고구미는 군사용 나무 상자를 제조하는 등 막일을 하며 간신히 회사의 명맥을 유지하였다.

1955년에는 주식회사로 변모하여 이후로 많은 사찰과 고건축의 유지 보수를 담당하며 새로운 사찰 등 목조건축물을 계속 신축하였다. 고건축을 다루는 노하우와 기술에 있어서는 독보적인 기업으로 평가받았다. 한편으로는 본진이나 다름없는 시텐노지가 태평양 전쟁 후 철근 콘크리트 건축으로 재건하는 과정에서 목조 기술밖에 없는 곤고구미가 배제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목조 일변도에서 벗어나 철근 콘크리트에 의한 사원 건축에 나서게 되었고, 1980년대에는 사업 확장을 위해 분양 아파트 등 일반 건축에도 손을 댄다.

"곤고구미가 흔들리면 일본이 흔들린다." 할 정도로 상당히 건실한 기업으로 평가받았지만, 1980년대 거품경제 시절에 빚내서 투자한 땅이 잘못되어 휘청거리더니 결국 2005년에 파산의 위기를 맞았다. 기사 결국 오사카 대형 건설업체인 다카마쓰건설에 인수되었고, 사업을 현재의 법인에 넘기고 옛 곤고구미 법인은 파산하여 청산되었다. 이후 빌딩 등 현대건축 사업부터는 전면철수하고 전통적인 목조 건물, 그중에서도 신사와 사찰의 수리, 건축을 전문으로 하는 다카마쓰 그룹의 자회사로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한편으로 2007년에는 아이치현 기반의 전통 사원건축 전문업체인 나카무라샤시(中村社寺)를 인수하여 자회사로 두고 있다. 나카무라샤시 또한 서기 970년에 사원 보수 업자로 시작해 1980년대 일반 건축에 손댔다가 파산에 몰린 곤고구미와 비슷한 역사를 거쳐온 기업이다.

2013년 10월 28일, 39대 동량(棟梁)이었던 콘고 토시타카(金剛 利隆, 향년 89세)이 후계를 남기지 못하고 사망함에 따라 1000년 이상 이어져 내려온 곤고구미 동량의 혈통은 끊어졌다. 이후는 상담역이였던 우에마츠 죠이치를 중심으로 한 이사회가 회사를 이끌어가는 모양.

책 '일본 뒷골목 엿보기'의 저자 홍하상이 인터뷰 한 것과는 다른 내용이 조금 있다. 책이 나온 연도가 1997년인데, 당시 73세였던 콘고 토시타카와의 인터뷰 중에서 그의 장남이 입사 15년간 여러 부서를 전전하며 근무했고, 당시에는 부장으로 일하고 있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여담으로, 그의 말에 따르면 아버지(37대 동량) 대에 한 번 망했으며 아버지의 할복자살 이후 어머니인 콘고 요시에(金剛 よしえ)가 38대 동량이 되어 가업을 겨우 이끌다 그에게 물려줬다고 한다.

아사히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2006년 파산 당시 사장이었던 토시타카의 외아들이 책임을 지기 위해 스스로 집을 나가버렸기 때문에 후계자가 없는 상황에 빠진 것이다. 즉 위에 있는 곤고구미 동량에 관한 기술은 양쪽 다 맞는 말이다. 같은 기사에 따르면 이전에도 가문이 단절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소동에 대해서 관계자들은 의외로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혈통이 아니라 1400여 년간 발전시켜온 기술이 중요하기에, 언젠가 나타날 최고의 장인을 맞이할 날까지 곤고구미 40대 동량의 자리를 봉인해 놓겠다 한다.#

3. 기타



[1] 사업의 연속성을 기준으로 할 경우.[2] 과거 두번째로 오래된 기업이라고 기재되어 있던 이케노보 화도회(池坊華道会)는 꽃꽃이 명인 가문과 관련된 비영리 단체로 (요컨대 이 단체를 기업으로 인정한다면 종교 수도회같은 것까지 기업으로 취급해야 한다) 게다가 그 연혁이 증명되지 않는다. 연혁이 공인된 곳으로는 기네스 세계 기록에서 가장 오래된 가족 사업(Oldest family business)으로 등재한 온천여관 게이운칸(慶雲館, 705년 창업)이 있다.[3] 대표적으로 전주 류씨 가문의 류중광.[4] 勝鬘院, 愛染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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