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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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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공부가주.jpg

1. 개요2. 역사3. 제조법 및 특징4. 종류5. 공자 없는 공자의 술?6. 기타

1. 개요

공부가주(孔府家酒)는 공자의 고향 취푸시에서 공자의 제사용으로 공씨 가문이 빚던 술이다. 처음에는 당연히 지금의 증류주가 아닌 양조주였다. 이과두주와 함께 한국의 중식당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고량주이다.

2. 역사

지금의 증류주의 형태는 원나라 이후 증류기술이 들어오자 공자 가문에서 제사용으로 빚은 듯하다.[1] 청나라 때에 건륭제가 그 제사용 술을 마셔보고 마음에 들어했다는 기록으로 유명해졌다.

그 술 빚는 기술이 취푸의 여러 술도가로 퍼졌고, 1900년에 '홍수원소과', '의화순소과' 등과 같은 양조장이 만들어지면서 근대적 생산이 시작되었으며 1958년에 여러 양조공장들을 통합하면서 현재의 공부가주 공장이 만들어졌다. 뒤에 나오는 "우리 가문에 이런 술은 없다." 하는 일화가 나온 것도 지금의 공부가주를 제조하는 곳은 공자 가문과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2]

다만 회사 자체가 공자 가문과 관련이 완전히 없는것은 아니다. 애초에 공부가주 만드는 회사 자체가 향토기업인지라 100% 관련이 없을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자 가문 일원들이 공부가주 제조회사에서 일하는 경우는 많다. 즉, 공자가문과 관련이 없다는 말은 엄연히 얘기하자면 지분관계나 종가와 관련된 관계에 한정된 말이다. 취푸시 당국도 공부가주를 취푸 홍보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취푸에 가면 공부가주 광고판을 쉽게 볼 수 있다. 현재의 공부가주는 1986년 '곡부 공부가주 양조유한공사'에서 처음 출시하였다. 즉 그 전에 양조장은 있었지만 그곳에서 생산하던 술의 이름이 공부가주는 아니었다.

3. 제조법 및 특징

수수(고량), 밀, 보리, 완두, 옥수수, 입쌀, 찹쌀 등을 원료로 만들어진다. 재료들을 찐 후에 누룩을 섞어 발효 후 증류하는 곡주(穀酒)로서 투명한 색을 띤다. 그 후 3~10년간 항아리에서 숙성을 거친 후 완성된다고 한다.

항아리 모양 병에 담는데 달고 화사한 향이 난다. 알콜 함량 39% 정도이다.[3]

4. 종류

5. 공자 없는 공자의 술?

공자의 후손들은 역대 중국 왕조에서 대대로 성인의 후손으로 대접받았고 국가로부터 연성공이라는 작위를 받아 이를 세습했다. 쿵더청은 마지막 연성공이자 최초로 대성지성선사봉사관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국공내전 이후 중국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국부천대할 때 대성지성선사봉사관 쿵더청도 함께 대만으로 넘어갔다.

이후 대륙에서 공부(孔府, 공자 후손이 모여 살던 곳)의 대표들이 찾아와 공부가주를 전하면서 꼭 한 번 대륙에 찾아 주십사 부탁했을 때, 쿵더청이 "우리 가문에 이런 술은 없소!"라고 하며 내친 일화가 유명하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공부가주 상품이 공자 가문과 무관하게 생산된 탓도 있지만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한 반감도 크게 작용한다.

대륙을 차지한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새로 연성공을 임명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4] 문화대혁명홍위병들이 비공(批孔, 공자 비판)을 외치면서 단순히 곡부(曲阜)의 문묘도 모자라 아예 공자 집안의 가족묘인 공림을 공격, 쿵더청의 아버지 쿵링이와 선조들의 무덤을 파헤치고 온전한 시신들을 골라내어 나무에 줄줄이 매달아놓는 짓까지 자행해놓고 이제와서 공자의 이름을 들먹이는 처사라 당연히 반감이 대단했다.

그래서 쿵더청은 대만 망명 이후 한번도 곡부를 방문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죽은 뒤에도 곡부에 묻히지 않았다. 즉 공부가주가 '짝퉁'이거나 쿵더청이 공부가주를 알아보지 못해서 거절했다기보다는, '조상님들이 그런 모독을 당하였는데 내가 어찌 이 술을 인정할 수 있겠나? 정말 이 술을 전통 공부가주의 비법대로 만들었다고 해도 나는 인정 못한다.' 하는 항의에 가깝다.

6. 기타

중식당에 가서 술을 시킬 때, "저건 공부할 때 먹는 술이냐?"와 같은 질문이 간혹 나오기도 한다.

한편 공부가주가 아닌 공보가주라는 술도 수입되고 있는데, 이는 공부가주와 상관없는 별개의 술이다. 최근 공부가주를 수입하는 국내 상표권자가 법원에 공보가주 사용금지 가처분을 신청하여 인용되기도 했다.#

[1] 공자가 마시던 술은 아니다. 공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에는 증류 기술 자체가 없었다.[2] 물론 이런 이유도 있지만 공자의 77대 종손인 쿵더청이 문혁으로 공자의 유물들이 대부분 파괴된 것에 격분해서 중화인민공화국을 인정하지 않았던 탓이 더 크다.[3] 과거 중국에서 유학한 사람의 글을 보면 이때 공부가주에 '착향' 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고 한다. 즉 인공적으로 향을 첨가했다는 것이다. 현재는 '농향형'이라고 되어있다고 한다.[4] 대륙에는 공자의 직계 남성 후손이 남아 있지 않았다. 공자 집안의 방계 후손인 남종계 가문, 그리고 쿵더청의 누나 공덕무의 후손들은 대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