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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리가 엠버서더 | ||
이름 | <colbgcolor=#ffffff,#191919> 구티 Guti | |
본명 | 호세 마리아 구티에레스 에르난데스 José María Gutiérrez Hernández | |
출생 | 1976년 10월 31일 ([age(1976-10-31)]세) | |
스페인 토레혼데아르도스 | ||
국적 |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82cm / 체중 76kg | |
직업 | 축구 선수 (공격형 미드필더[1] / 은퇴) | |
소속 | 선수 | 레알 마드리드 CF (1995~2010) 베식타스 JK (2010~2011) |
감독 | 레알 마드리드 CF (2013~2018 / 유스 코치) 베식타스 JK (2018~2019 / 코치) UD 알메리아 (2019~2020) | |
국가대표 | 13경기 3골 (스페인 / 1999~2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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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페인의 前 축구 선수. 라울 곤살레스와 함께 레알 마드리드의 상징같은 존재로 여겨져온 선수이다.2. 클럽 경력
2.1. 레알 마드리드 CF
레알 마드리드 유스 출신이며 커리어의 대부분을 마드리드에서 보낸, 라울과 함께 레알 마드리드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였다.[2]본래 유스 시절에는 공격수였지만 이후 미드필더로 전향, 중원에 배치 되었다.[3] 1995년부터 2010년까지 레알 마드리드에서 542경기 77골을 기록한 공격형 미드필더로, 특히 레알 마드리드의 라 리가 5000호 골과 유럽 클럽 대항전 500호 골을 모두 득점한 것은 커리어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하다.
특기는 유려하면서도 기상천외한 킬 패스였는데, 이게 잘 되는 날에는 정말 잘 됐는데 안 되는 날에는 말 그대로 말아먹는 경우가 많았다. 비단 킬 패스뿐만 아니라 구티의 플레이 자체가 기복이 유달리 심했다는 평가가 많은데 기복에 관해서는 후술. 때문에 구티의 그날이라는 용어가 생겼으며, 이날은 구티의 플레이가 흥하는 날을 일컫는다. 대체로 축덕들의 평가는 '구티의 그날 > 지단의 그날 > 지단 > 구티'였다.
15년 동안 선발과 로테이션을 오가며 레알 마드리드를 지키던 구티였고, 2007-2008 시즌에는 리그 어시스트 왕에 등극할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며, 2010년도에도 준수한 활약을 해주었으나, 주제 무리뉴 감독이 레알 마드리드에 부임하자 라울과 함께 다른 팀으로 이적했다. 구티는 터키 리그의 베식타슈행을 결정했다.
이때 팬들이 아쉬워했는데 구티, 라울처럼 마드리드를 대표하던 선수들은 레전드로서 그 클럽에서 은퇴했어야 한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무리뉴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 때문에 무리뉴를 까기도 한다.
하지만 최고의 승부사로서 확실히 노쇠해진 구티와 라울을 선발로 쓰기에는 주제 무리뉴 감독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옵션이었을 테고, 은퇴가 아닌 현역 생활의 연장을 희망한 것은 라울과 구티였다. 누군가를 욕할 상황이라기보단 이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무리뉴 감독은 라울과 구티가 남아주길 바랐지, 나가길 원하지는 않았다. 이과인, 벤제마를 제외하면 중앙 공격수가 없었기 때문이다.[4]
사실 무리뉴 때문에 나갔다기보단 회장인 페레즈의 방침 자체가 아무리 올드비에 공헌이 많더라도 폼이 떨어진 선수는(+화려한 스타성으로 유니폼 많이 팔지 못하는 선수) 남겨두지 않는다는 철칙을 고수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2.2. 베식타스 JK
베식타슈 이적에는 자신의 전성기 시절 레알의 수장이었던 베른트 슈스터 감독이 영향을 미친 듯하다.베식타슈 JK로 이적한 구티는 첫 시즌에 뛰어난 활약[5]을 보여주었지만, 그 다음 시즌 슈스터 감독이 경질되고 카를루스 카르발랼 신임 감독이 부임한 뒤에 팀의 전력 외 자원으로 분류되었고, 재계약 없이 FA 신분이 되자 은퇴를 선언하였다.
3. 국가 대표 경력
레알 마드리드에서 십수년이나 꾸준한 활약을 해준 점을 보아선 이보다 화려한 클럽 커리어는 없을듯 하지만, 정작 국가 대표로서 부름을 받는 일은 적었다. 어찌저찌 예선이나 친선경기급만 매년마다 두세번 출전하는 정도가 전부였고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FIFA 월드컵 큰무대 본선에 출전 기록이 없었던 점은 라이언 긱스나 조지 웨아 등과 비견될만한 초라한 기록이었다.2000년대 초반에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가자니 발레론의 입지가 더 컸고, 중앙 미드필더로 가자니 다비드 알벨다-루벤 바라하 더블 볼란치 듀오를 밀어낼 수 없었으며, 2000년대 후반 이들이 물러나자 상황이 나아지긴 커녕 스페인의 중원은 실력은 물론 소속팀 합까지 서로 갈고닦은 세 얼간이 트리오라는 거인이 장악하고 말았던게 큰 이유였다. 조국이던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의 벽이란 이렇게도 너무 높았던 것.
다만 그와 별개로 본인의 커리어 하이 시기 스페인 대표팀 감독이었던 루이스 아라고네스와 그리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도 한 몫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구티는 공개적인 인터뷰 자리에서 아라고네스를 두고 그 노인네라고 칭한 적이 있었고, 아라고네스 역시 공개적인 자리에서 구티보다 자기가 뽑은 선수들이 더 나은 선택일 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
4. 은퇴 후
2018년 5월 31일 지네딘 지단이 레알 마드리드 감독이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힌뒤 포체티노와 더불어 후임으로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었으나 본인 커리어 마지막 팀이었던 베식타스 JK 코치로 부임했다.2019년 라리가 2 UD 알메리아의 감독으로 부임했으며, 팀은 2020년 1월 현재 라리가 2 1위를 달리며 승격을 향해 순항 중이다. 그러나 시즌 중 부진하며 3위까지 떨어지자 경질당했다. 결국 알메리아는 시즌을 4위로 마쳤다.
5. 플레이 스타일
구티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평상시에도 뛰어나지만 컨디션이 좋은 날엔 상상 이상의 괴물같은 기량을 뽐낸다는 점이다. 기복이 있는 편이지만, 폼이 좋을 때의 구티는 흔히 구티의 그날로 불리며 엄청난 활약을 선보인다.구티가 번뜩이는 순간이나 활약한 경기를 보면 알겠지만, 국지적인 대치나 순간적인 상황에서 빠른 판단과 광범위한 시야, 창조성은 정말 무시무시했다. 이 점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이를 바탕으로 뿌려대는 창조적인 킬패스, 한 박자 빠른 스루패스가 구티의 주 무기였다. 경기장에 있던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패스 경로로 패스가 흘러들어가면 상대팀은 모두가 하나같이 슛이 빗나가기만을 기도하며 쳐다보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구티가 출전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하며 뒷공간을 올린 팀은 구티의 킬패스에 무기력하게 무너지기 일쑤였다. 그냥 응징당하면 모르겠는데 화려하게 응징당해서 굴욕도 두배. 구티의 그날이라는 별명은 반쯤은 조롱성이지만, 반은 감탄성이다. 괜히 축구팬들이 감탄하던 게 아니다. 구티를 응원하는 쪽은 제발 오늘이 그날이기를 빌었고 상대하는 쪽은 제발 오늘이 그날만은 아니기를 빌었다.
거기에 구티는 위에서 쓴 재능을 봐도 알겠지만 축구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좋아서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다. 모리엔테스가 부상을 당했을 때에는 공격수로도 뛰면서 득점력을 보여주었고, 정말 안되면 수비형 미드필더보다 더 낮은 위치에 나서서 경기를 한 적도 있었다.
수많은 대스타들이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 와서 가장 놀라움을 준 선수로 구티를 뽑는 경우가 많았다. 뤼트 판니스텔로이는 왜 스페인이 구티를 대표팀으로 안 뽑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고, 카카나 호나우두 같은 경우는 "구티는 천재다"라는 발언을 하는 등 대선수들도 그 재능을 인정했다.
이처럼 무서운 재능을 갖췄던 선수지만 구티는 자신의 명확한 보직을 차지하고 주전으로 나선 때가 별로 없었다. 이리저리 백업으로 오고갔을 뿐.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일단 구티는 수비형 미드필더에 가까운 위치로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피지컬이나 수비적인 능력은 꽤 아쉬운 수준이었다. 결국 클로드 마켈렐레에게 주전을 내줄 수밖에 없었고, 마켈렐레의 이적 후에도 그 역할을 해내지 못해 수비형 미드필더 주전을 차지하지 못한다.
패스 능력과 시야 및 창조성은 좋으니 차라리 딥 라잉 플레이 메이커 롤을 맡을 수도 있었겠지만, 구티가 이 부분에서 재능을 보여주었다면 진작 이런 방향으로 구티를 사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구티는 순간적인 판단이나 창조성은 좋아도 경기 전체를 조율하는 능력이 뛰어나지는 않았다. 순간적인 재치나 역습 상황이 아닌 안정적으로 볼을 돌리고 배급하는 능력이 좋진 않았다.
수비로는 안되겠지만 공격적인 재능이 있으니 공미로 올리는 시도도 몇 번 했지만, 구티는 탈압박 및 볼키핑 능력이 좋지 못했고, 이게 구티가 자신의 재능을 만개하며 대선수가 되지 못한 마지막 결정적 이유다. 상대가 충분한 압박 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구티가 볼을 온전히 다룰 수 없게 한다면 구티는 지워지기 일쑤였다. '지단이 있었기에 구티가 공미 주전을 차지하지 못했다' 라고 하기에는 구티는 레알에 1995년부터 2010년까지 있었고, 지단은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있었다. 하지만 구티는 지단이 없어도 명확한 공미 주전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6]
이처럼 다재다능하고, 순간적인 번뜩임과 재능은 분명 천재적이었지만 하나의 완성된 선수로서는 어떤 포지션에서든 중요한 한가지가 부족해 가진 재능을 다 만개시키지 못했고, 주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백업으로 이리저리 돌려진 선수가 구티다. 이건 어찌보면 본인 탓일 수도 있는데 스페인 국대 감독이었고 레알에서도 구티를 지도한 적이 있는 델보스케가 '저 놈이 라울만큼 연습했다면 시대를 이끌 축구 천재가 하나 탄생했을 텐데' 라고 한 적 있었다.[7]
하지만 구티의 상징성, 프랜차이즈 스타로서의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위치는 분명하다. 거기에 사실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선수이긴 하다. 구티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15년을 버틴 선수다. 레알 마드리드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걸 무시하고 봐도 2007-08 시즌 라리가 어시왕에 빛나는 선수가 구티인데 구티의 실력이 아주 하급이라는 건 어이없는 이야기이다. 아예 선수로서의 실력이 부족했다면 그 레알 마드리드에서 백업으로라도 뛸 수 있었을 리가 만무하다. 분명 구티는 훌륭한 선수였고, 번뜩이는 재능을 보여준 선수였다.[8]
6. 기록
6.1. 대회 기록
- 레알 마드리드 CF (1995~2010)
- 라리가: 1996-97, 2000-01, 2002-03, 2006-07, 2007-08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1997, 2001, 2003, 2008
- UEFA 챔피언스 리그: 1997-98, 1999-00, 2001-02
- UEFA 슈퍼컵: 2002
- 인터컨티넨탈컵: 1998, 2002
- 스페인 U-21 축구 국가대표팀
- UEFA U-21 챔피언십: 1998
- 스페인 U-18 축구 국가대표팀
- UEFA U-18 챔피언십: 1995
6.2. 개인 수상
7. 여담
축구선수 은퇴 후 골프선수가 될 거라고 했는데 레알 마드리드 유소년팀 코치에서 일하다가 현재는 감독을 맡고 있으며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이적 후 꾸준히 SNS로 자신의 현재 팀과 레알마드리드를 같이 챙겨주고 지금도 마드리드 선수들에 관련된 글을 올리는 등 클럽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보여주더니 결국 레알로 돌아왔다. 얌전해보이는 분위기와 달리 의외로 직설적이고 상당히 터프한 성격에 헤라르드 피케가 레알에 대한 도발을 하면 빠짐없이 맞대응한다. 비유하자면 선대 알바로 아르벨로아. 아르벨로아가 스페인 베스트11에 피케 대신 나초 페르난데스를 넣어 욕을 먹은 적 있는데 구티는 하비에르 사네티와 아르벨로아의 비교에 아르벨로아 편을 들어준 적이 있다.금발에 파란 눈, 작은 얼굴에 긴 다리를 가지고 있는 데다가 이쁘장하게 생겼다. 베식타슈로 이적한 후 잡지의 모델로 나올 만큼의 외모를 자랑한다. 이쁘장한 외모로 어린 여자 아이들과 아시아인 팬들에게 인기가 많았으며[9] 미남 주장단 계보가 이어지고있다.
예쁘장한 외모 때문에 경기장 내에서 타팀 팬들에게 '금발의 계집' 이라고 불리며 조롱당하기도 했고 실제 게이설도 많았다. 어린 나이에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나는 여성과 첫 결혼을 했던 것으로 루머가 시작되었는데[10] 이후 트랜스젠더와 사귀었으며 남자와 키스하는 사진이 찍히면서 정점을 찍었다. 후에 그 남자는 구티의 여동생이라고 밝혀졌다.
8. 구티에 대한 말, 말, 말
저놈이 라울만큼만 연습했더라도 시대를 이끌 천재를 볼 수 있었을텐데.
비센테 델보스케
비센테 델보스케
그의 패스를 보는 순간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세르히오 라모스, 09-10 시즌 데포르티보와의 2차전 이후
세르히오 라모스, 09-10 시즌 데포르티보와의 2차전 이후
그는 항상 수비수의 발이 닿지 않는 위치로 패스를 보낸다. 마라도나와 같은 왼발을 지니고 있다.
호베르투 카를로스
호베르투 카를로스
모두가 하고 싶어하는 유형의 축구이지만 다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구티는 천재입니다. 그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로 제가 뒤에 있다는 것을 알고 공을 건네주었습니다.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그걸 보여줘도 푹 빠져서 볼 거라고 장담합니다.
카림 벤제마
카림 벤제마
수비라인의 뒤쪽에 스루패스를 보내는 데 있어서는 구티가 넘버원이다. 경기 도중부터 피치에 서도 게임 흐름에 완벽히 적응해 날카로운 종패스를 보내니까 정말 대단하다. 유감스러운 것은 모처럼 그런 기술을 가지고 있는데도 좀처럼 도전하지 않는 점이다.
크리스티안 키부
크리스티안 키부
가장 인상 깊었다. 이름값 높은 많은 선수들과 뛰었지만, 경기장에서 가장 잘 맞았고, 인상적이었다.
베슬리 스네이더르, 함께 뛰어본 선수 중 최고는 누구냐는 질문에
베슬리 스네이더르, 함께 뛰어본 선수 중 최고는 누구냐는 질문에
9. 어록
"곤란한 질문이네. 그런데 그들 중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일원이 될 선수는 없는거 같아."
아스와에서 인터뷰, 유소년팀 지도자인 구티가 지단을 위해 아틀레티코에서 선수를 데리고 올 수 있다면 누굴 데려오겠냐는 질문에
아스와에서 인터뷰, 유소년팀 지도자인 구티가 지단을 위해 아틀레티코에서 선수를 데리고 올 수 있다면 누굴 데려오겠냐는 질문에
레알에서 뛸 수 있으면 그걸로 만족하고 대표팀에는 그리 미련을 두지 않는다. 레알이 나의 전부다.
06-07시즌이 끝나고, 활약상이 좋아서 국가대표에 승선할 것 같다는 질문에
06-07시즌이 끝나고, 활약상이 좋아서 국가대표에 승선할 것 같다는 질문에
아니, 나중에 만날 것이다. 언젠가는 레알로 돌아오고 싶다. 회장을 원하진 않지만, 스포츠 디렉터는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유스팀 감독을 맡을 수도?
터키로 이적 간 이후의 인터뷰, 레알과의 영원한 작별이냐는 질문에
터키로 이적 간 이후의 인터뷰, 레알과의 영원한 작별이냐는 질문에
"팀의 주장이 페레스 회장에게 감독 경질을 요구한다는건 불가능한 일이다. 감독의 미래는 구단이 결정해야지, 선수들이 결정할 일이 아니다."
카시야스와 라모스가 페레스회장에게 무리뉴감독의 경질을 요구하자
카시야스와 라모스가 페레스회장에게 무리뉴감독의 경질을 요구하자
나는 2010년 전에 레알 마드리드를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에서 30분을 뛰는 것이 다른 팀에서 90분을 뛰는 것보다 낫다.
나의 심장은 언제나 마드리드에 있다.
[1]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도 꽤 뛰었다.[2] 참고로 라울은 레알 마드리드 유스 입단 전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유스에 입단했다. 이 유스팀이 임시 해체되면서 레알 마드리드 유스팀으로 입단했다.[3] 물론 전향 이후에도 공격수로 많이 뛰었다.[4] 실제로 베식타슈 이적이 확정된 후 구티는 인터뷰에서 "조세 무리뉴 감독이 이끄는 새로운 마드리드가 기대되지만, 나에게는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라는 말로 본인의 뜻으로 베식타슈행을 결정한 것을 드러냈다.[5] 출장한 모든 경기를 통틀어서 37경기 11골 14어시스트를 기록했다.[6] 여러모로 웨슬리 스네이더와 유사한 선수이다. 둘 다 빠른 순간 판단, 넓은 시야, 위협적인 패스 능력과 준수한 킥력이라는 재능을 갖추었지만 탈압박, 수비 가담, 느린 템포의 안정적 플레이메이킹 부재라는 단점이 있어 그 재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심지어 장점과 단점도 어느 정도 유사하다. 메수트 외질과도 약간 비슷한데 차라리 외질이 구티보다 상대적으로 우위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7] 델 보스케의 평가고, 레알 마드리드에서 뛴 선수이니만큼 노력을 아주 안한 선수는 아니다.[8] 그렇지만 시대를 대표할 선수까지는 성장하지 못했기에 상징성 그 이상의 존재가 되진 못했다.[9] 사실 구티처럼 이쁘기만 한 외모는 동양을 벗어나면 별로 인기가 없다. 동아시아가 유독 예쁜 남자를 좋아하는데, 이는 일본 특유의 BL문화와 남자아이돌 문화가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10] 외국에서는 조각같은 외모의 남자가 외모가 평범하거나 그 이하, 나이 차이가 많은 여자와 결혼하면 게이들의 위장결혼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전자의 경우에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나 요아힘 뢰프도 포함. 실제 마르키시오는 동성결혼을 지지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 물론 마르키시오는 동성애자가 아니고 오히려 로맨틱한 러브스토리를 가진 애처가로 유명하다.[11] 구티도 인터뷰 스킬이 많이 거친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