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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인물의 차남에 대한 내용은 마우리치오 포체티노 문서, 1996년생 축구 선수에 대한 내용은 토마스 포체티노 문서
참고하십시오.관련 문서: 토트넘 홋스퍼 FC/포체티노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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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52033> 이름 | <colbgcolor=#FFF,#191919>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Mauricio Pochettino | |
본명 | 마우리시오 로베르토 포체티노 트로세로 Mauricio Roberto Pochettino Trossero[1] | |
출생 | 1972년 3월 2일 ([age(1972-03-02)]세) | |
산타페주 제네랄로페즈현 머피지구 | ||
국적 | [[아르헨티나| ]][[틀:국기| ]][[틀:국기| ]] |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82cm | |
직업 | 축구 선수 (센터백 / 은퇴) 축구 감독 | |
경력 | <colbgcolor=#c52023> 선수 | CA 뉴웰스 올드 보이스 (1989~1994) RCD 에스파뇰 (1994~2000) 파리 생제르맹 FC (2001~2003) FC 지롱댕 드 보르도 (2003~2004) RCD 에스파뇰 (2004~2006) |
감독 | RCD 에스파뇰 (2009~2012) 사우스햄튼 FC (2013~2014) 토트넘 홋스퍼 FC (2014~2019) 파리 생제르맹 FC (2021~2022) 첼시 FC (2023~2024) 미국 대표팀 (2024~) | |
국가대표 | 20경기 2골 (아르헨티나 / 1999~2002) | |
가족 | 장남 세바스티아노 포체티노 차남 마우리치오 포체티노 |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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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르헨티나 국적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 현재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이다. 애칭은 포치.2. 선수 경력
아르헨티나 1부 리그 구단 뉴웰스에서 데뷔해 여러 곳을 거쳤지만 무엇보다도 RCD 에스파뇰에서 304경기를 뛴 구단의 레전드[2]이자 파리 생제르맹에서도 활약했던 이름난 수비수였다.
국가대표팀 경력은 1991 월드 유스 챔피언십에서 대한민국과 북한의 U-20 코리아(남북 단일팀)[3]와의 경기에서 U-20 아르헨티나 대표로 출전했으며, U-20 코리아에게 0-1로 패하는 이변을 당했다. A대표팀으로는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의 지도 하에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20경기 가량 소화한 것이 전부다. 하지만 국가대표팀의 주전 수비수로 출전했던 2002 한일 월드컵은 본인의 축구 커리어에서 최악의 기억으로 남아 있을 듯하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모라토리움의 경제 위기 상태였기 때문에, 선수들에게 포상금은 고사하고 '우린 그깟 공놀이에 쓸 돈 없음' 하고 선수단에게 비행기표도 끊어 주지 않았다. 그러자 가브리엘 바티스투타를 중심으로 한 아르헨티나의 축구 스타들은 "모든 것이 무너져도, 우리에겐 축구가 있다"라는 간지폭풍 발언을 하며 스타 플레이어들이 자비로 경비를 부담하며 대회에 참가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가 배정된 조는 아르헨티나의 영원한 숙적 잉글랜드, 아르헨티나와 툭하면 만나는 나이지리아, 그리고 스웨덴이 포진된, 대회 최악의 죽음의 조였다. 당시 포체티노는 3-3-3-1 포메이션의 오른쪽 센터백으로 나왔으며, 당시 로베르토 아얄라가 주전에서 밀려나고 디에고 플라센테[4]와 함께, 중앙을 지휘하는 왈테르 사무엘의 파트너로 나왔다.
나이지리아전에서 바티의 골로 1-0 신승을 거둔 후 삿포로에서 맞이한 대망의 잉글랜드전. 그러나 마이클 오언의 할리우드 액션을 포체티노가 밀친 것으로 판단한 피에를루이지 콜리나 주심의 페널티킥을 선언했고, 잉글랜드의 아이콘 데이비드 베컴이 키커로 나서서 PK를 성공시킨다. 그리고 이 골은 결승골이 되어, 아르헨티나는 영원한 숙적 잉글랜드에 0-1로 패하고 말았다.[5]
이 통한의 패배가 빌미가 되어, 아르헨티나는 미야기에서 열린 3차전인 스웨덴전을 반드시 이겨야 했지만 1-1 무승부 탈락당하게 되어 결국 1승 1무 1패 조 3위 월드컵 18위로 충격적인 32강 조별리그에서 탈락의 수모를 당하고 말았다. 아무리 외부 사정이 나빴다고 한들, 아르헨티나는 바티스투타, 베론, 크레스포, 사무엘, 사네티, 아얄라 등이 포진한 최강급 전력이었다. 그리고 포치 본인이 잘못한 게 분명 아니건만,[6] 포체티노는 패배의 빌미를 제공한 역적으로 찍혀 현역 선수 생활을 마감할 때까지 두 번 다시 국가대표팀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31세의 나이에 강제로 국대 은퇴를 당한 셈이다.[7] 재미있는 건 훗날 포체티노가 당시 맞상대이자 숙적의 나라인 잉글랜드에서 프로축구 클럽 감독을 지냈다는 것.
여담으로 다른 사람도 아니고, 데이비드 베컴이 이 오심이 없었으면 되려 자기들이 아르헨티나에 패했을 거라고 2006 독일 월드컵 32강 조별 리그 기간에 말했다. 다름 아니고 아르헨티나 vs 세르비아-몬테네그로 경기를 베컴도 직관했었는데, 그 경기 소감을 이렇게 말한 것이었다.[8]
2.1. 플레이 스타일
2010년대에 들어와서는 감독으로 더 유명하지만, 선수 시절에는 센터백으로 활동하면서 1990년대와 2000년대 아르헨티나의 준주전급 수비수 중 한 명이었다.수비수로서 포체티노는 경기장 내에서의 판단력이 매우 뛰어났다. 경기장 안에서 경기 내용을 잘 읽은 것으로 유명했는데,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위치를 잡은 후 적시에 공만 빼내는 깔끔한 태클과 인터셉트를 시도했다. 깔끔하게 수비를 펼침에도 팀의 위기 상황에서는 후방에서의 클리어링을 통해 실점 위기에서 구해냈다. 포체티노는 경기장 내에서의 프로의식도 뛰어나고 리더십도 좋아서, 후방에서 팀원들을 독려하거나 콜 플레이를 하면서 수비진을 조율했다. 뛰어난 위치 선정과 하체 근력에서 나오는 점프력을 바탕에 둔 세트피스 장악력이 상당히 좋았었던 것은 덤. 공격 상황에서는 근육질의 다리에서 뿌려주는 중장거리 롱 패스를 통한 빠른 템포의 공격 전개를 시도했다.
다만, 포체티노의 최대 약점으로 꼽히는 것은 바로 그의 느린 속도와 둔한 움직임. 속도가 빠르지 않다 보니, 본인의 경기를 읽는 능력과 판단을 이용한 수비력으로 이를 만회했지만, 속도가 중요시되는 역습 상황에서의 배후 공간 커버력은 상당히 부족했다. 잔부상도 종종 발생했었고 기복도 있었다 보니, 안정감이 좋았다고 보기에는 힘들다. 폼이 안 좋은 날에는 장점인 수비가 투박해지고 단점인 속도는 여전히 느리다 보니, 위험 상황에 노출될 때도 생겼다. 또한, 공을 전방으로 전개하는 능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공을 다루는 데 있어 여타 센터백들에 비해서는 투박하였다. 이 때문에, 라인을 올리고 빌드업을 통해 공격을 풀어가는 팀보다는 라인을 다소 내린 상태에서 역습을 전개하는 전술에 잘 맞았다.
3. 지도자 경력
자세한 내용은 마우리시오 포체티노/지도자 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3.1. 감독 스타일
자세한 내용은 마우리시오 포체티노/감독 스타일 문서 참고하십시오.4. 기록
4.1. 선수
4.1.1. 대회 기록
- CA 뉴웰스 올드 보이스 (1989~1994)
-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1991, 1992 C[9]
- 파리 생제르맹 FC (2001~2003)
- UEFA 인터토토컵: 2001
4.2. 감독
4.2.1. 대회 기록
- 파리 생제르맹 FC (2021~2022)
4.2.2. 개인 수상
- FIFA 올해의 감독 3위: 2019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감독: 2013년 10월, 2015년 9월, 2016년 2월, 2017년 4월
- 런던 풋볼 어워즈 올해의 감독: 2018-19
5. 포체티노에 대한 언사
그를 토트넘에서 경질시킨 것에 대해 후회했다. 나의 잘못이 크다.
다니엘 레비
다니엘 레비
그가 토트넘에서 이룬 것들을 생각해 보고 얼마나 대단한 감독인지 다시 한 번 느꼈다. 그가 떠나게 되어 매우 슬프고 아쉽다.
레들리 킹
레들리 킹
나를 토트넘에 영입하고 핵심 선수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 하지만 2019년 11월 19일 경질 당해서 슬프고 아쉽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이지만 나는 아직까지 포체티노 감독님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다.
손흥민
손흥민
포체티노 감독은 내가 토트넘으로 이적을 결정한 이유 중 하나였다. 감독님과 만났을 때 감독님은 자신의 비전에 대해 설명했고 그때 감독님의 영어 실력이 그렇게 좋진 않았지만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감독님은 명확한 비전이 있었다.
벤 데이비스
벤 데이비스
6. 여담
- 젊은 시절 모습은 세바스찬 스탠을 닮은 모습이었는데, 정말 지금의 후덕한 모습이 연결되지 않을 정도로 슬림하고 잘생겼었다. 그런 본판 덕분에 중년살이 붙은 지금도 후덕한 체구에도 불구하고[10] 미남이다. 지천명을 넘긴 나이에 경이로울 정도로 굵고 빽빽한 모발도 이에 한몫 한다.[11]
- 아들 중 장남 세바스티아노 포체티노도 올랜도 블룸 닮은 미남인데 아버지를 따라 토트넘, 파리, 첼시를 거치며 1군 스포츠 사이언티스트로 일하고 있다.
- 차남 마우리치오 포체티노는 2017년 7월부터 토트넘 유소년 팀에서 뛰는 중. 외모는 리즈시절의 아버지를 빼다박은 수준으로 닮았다. 2019년 차남 마우리치오는 정식 프로계약을 맺었다. 평소처럼 포체티노가 옆에서 웃는 모습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역대급으로 환한 웃음이라 화제가 되었다.
- 아내 카리나 그리팔디에 대해서는 자신에게 가장 신랄한 비평가라고 말했다.
- 2002 한일 월드컵 얘기엔 아직도 정색하면서 싫어한다는 얘기가 있다. 물론 우리야 좋은 거지, 아르헨티나는 그때 32강 조별리그에서 자신과 연루된 문제 때문에 탈락했으니 싫어할만 하지만...마치 홍명보 앞에서 2014 브라질 월드컵을 얘기하는 것과 같다.
- 인터뷰 기술이 노련하지 못하다. 첼시의 에덴 아자르가 레스터 시티의 우승을 지지하고 여타 다른 축구 인사들까지 레스터 시티의 우승을 지지한데다 첼시와 비김으로써 토트넘의 우승 경쟁이 끝나고 나서 한 인터뷰에서 그런 축구 인사들의 모습에 불만을 표시했다. 경쟁팀들이 레스터 시티를 응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아직 젊은 감독이라서 그런지 굉장히 직설적인 화법을 보이며 좋은 감독이라면 겸비해야 할 인터뷰 스킬을 아직까지 보유하고 있진 못하고 있다.[12] 그런데 이게 선수들에게는 잘 먹히는 것 같다. 2016-17 시즌 시작하고 "저번 시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인터뷰에서 "3위로 떨어진 다음 선수들한테 이렇게 말했죠. 니들 다 죽여버리고 나도 죽어버리고 싶다고"라고 대답했다. # 선수들이 그 후 빵 터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젠 EPL 감독 경력이 길어지다보니 더 이상 위와 같은 직설적인 인터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웬만하면 상대팀을 존중해준다. 옛날 이야기라고 봐도 될듯. 그러나 2018-19, 아스날과의 경기 후 인터뷰에서 우리는 늘 시즌 판정이 좋지 않다고 언급했으나 이 날 경기는 토트넘이 심판의 오심 보상을 너무 많이 받았기 때문에[13] 팬들이 크게 비판하고 있다.
- 2015-16 시즌에 손흥민이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손흥민 자신도 분데스리가로 돌아가길 고려하고 있을 때, 여름에 이적설이 한창 불거지자[14] 한국말로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라고 했다고 하며 덕분에 손흥민은 도움이 많이 됐다고 한다.
- 한국에선 교체티노로 까이고 있고 손흥민 차별하는 게 아니냐고 원망을 자주 들은 적 있지만[15] 포체티노는 사우스햄튼에 있을 때부터 손흥민을 영입하려고 시도했었다고 밝힐 만큼 손흥민을 굉장히 원했다. 아마 빠른 역습에 특화되어있는 손흥민의 스타일이 포체티노의 전술에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첫 시즌에는 손흥민 본인의 단점들이 폭발하면서 먹튀 시즌을 보냈지만 포체티노 밑에서 바로 다음 시즌부터 자신이 단점이라고 지적받는 부분들을 제대로 고쳐나가면서 다음 시즌엔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고 2017-18 시즌에도 꾸준히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아 감독과의 케미는 굉장히 잘 맞는 것으로 보인다. 포체티노도 케인이 너무 잘해서 손흥민에게 갈 스포트라이트가 줄어든다는 식으로 립서비스도 자주 해주는 걸 보면 꽤나 마음에 든 모양. 사미 히피아와 더불어 손흥민의 은사라고 할 수 있는 감독이다. 손흥민 선수와 관련된 국내 해축팬들의 원망과는 별개로, 손흥민 선수의 개인 팬이 아닌 토트넘이라는 팀의 팬들은 현재 포체티노 감독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2018-19 시즌에는 오히려 포체티노의 체력 관리가 손흥민에게 맞다면서 좋아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 선수들과 재계약 체결을 한 사진을 찍을 때마다 똑같은 옷에 똑같은 포즈와 표정을 짓는다. 포체티노의 말에 따르면 선수들과 사진을 찍을 때마다 선수들에게 질투심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 똑같은 모습으로 찍는다고 하는데 너무 똑같다는 것 때문에 복제티노라는 별명이 생겼을 정도. 최근 촬영 비하인드 스토리가 밝혀졌는데 책상 위까지만 찍힌 사진에서 포체티노의 상의는 정장 차림이고, 하의는 반바지에 운동화 차림이였다![16]
- 호주에서 자신에게 한국 소녀가 사인을 부탁했는데, 정작 그 한국 소녀는 손흥민이 누군지 몰랐다고 한다.[17] 그리고 이때까지 손흥민이 한국에서 데이비드 베컴 정도로 인기 있을 줄 알았던 포체티노는 그 이야기를 꼭 손흥민에게 알려줘야 겠다고 다짐을 했다고 한다. #[18][19]
- 선수 시절, 오심으로 인해[20] PK를 내줬던 기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VAR 도입을 크게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해리 케인의 논란의 PK가 나온 뒤에는 심판의 판정에 도움이 된다면 VAR이 필요할 것이다고 말하며 태도가 바뀐 모습을 보이고 있다.
- 2017년 당시 멸망직전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있었던 신태용 감독과 직접 대면한 적이 있다. 소속팀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는 손흥민이 국가대표에서는 부진하는 모습이 계속해서 반복되었기에 신태용이 직접 손흥민의 활용법을 배우기 위해 포체티노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손흥민에 대해 상담을 주고 받은 후 돌아온 신태용은 손흥민을 톱으로 올리고 반대쪽에 섀도 스트라이커에 적합한 이근호를 붙여 손흥민을 보조하는 투톱 포메이션을 만들어냈고 손흥민의 A매치 득점포를 다시 가동시키는 결과를 이끌어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진 후 포체티노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이 더더욱 좋아졌다.[21]
- 위 사진에서 보이듯 치아가 매우 작다.
- 마르셀로 비엘사의 제자라고한다. 실제로 비엘사처럼 전방압박과 점유율을 중시하는 점, 횡적인 패스보다는 종적인 패스가 많은 점, 선수들의 조직력을 중시하는 점, 그의 축구철학이 선수들에 녹아들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 등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이 있다.
- 우승 항목에도 나와있다시피 명장의 잠재력을 갖춘 훌륭한 감독이지만 토트넘에 있는 동안 들어올린 우승 트로피는 전혀 없었다. 소속팀인 토트넘이 정규 리그나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하긴 힘든 전력이기 때문. 그러나 토트넘에서 나온 후 휴식기를 가지다가 2020-21 시즌 도중 리그앙 절대 최강자 파리 생제르맹 FC의 감독으로 부임하였고 2021년 1월 14일, 자신의 3번째 경기인 트로페 데 샹피옹에서 승리하며서 생에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 포체티노의 파리 생제르망에서의 첫 훈련 TMI (출처 : 르 파리지앵)
- 케일러 나바스는 5분 지각
- 디 마리아는 새로 뽑은 롤스로이스 차량을 타고 옴
- 불어에 능숙한 포체티노의 아들 세바스티아노 포체티노가 훈련에 동참함
- 구단주를 포함한 구단 관계자들은 포체티노에 만족하는 듯 보임
- 포체티노는 높은 강도의 훈련을 진행했으며, 선수들이 상당히 힘들어할 수준의 피지컬 훈련을 했음
- 선수들이 훈련 도중 웃고 떠들자, 포체티노는 "웃지 마! 훈련 해!"라고 소리침
- 2021-22 시즌 리그앙 6R 리옹전에서 리오넬 메시를 일찍 교체시키며 불만 가득한 메시가 포체티노의 악수를 거절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날 경기 후 포체티노는 인터뷰를 통해 메시와 대화를 가졌으며 괜찮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감독 위 선수가 있어서는 안된다며 메시에 대한 비난이 많았으며 실제로 메시 교체 후 음바페를 측면에 배치하여 공격과 수비 모두 살아났고, 이카르디의 역전골로 2-1 승리를 거뒀기에 포체티노의 결정이 옳았다는 말이 많았다.[22]
- 최근 인터뷰를 통해 전 소속팀인 토트넘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토트넘에서 경질 직후에는 토트넘의 경기를 보는 것이 힘들었으며, 마치 클럽이 집이라고 했을때, 집을 떠나는거와 같은 느낌에서 헤어나오는게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제는 토트넘 경기를 볼 때 항상 웃으면서 응원하는 마음으로 보며, 토트넘을 사랑하고, 집과 같은 편안함을 느끼기에 모든 사람들이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고 얘기했다. 정작 이후에 최대 라이벌 중 하나인 첼시 FC에 부임하게 된 것이 아이러니.[23]
- KBS 스포츠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손흥민을 응원하러 2022년 카타르 월드컵 H조 3차전 대한민국 VS 포르투갈 경기를 보러간다고한다. 토트넘 감독하면서 손흥민에 대한 응원은 아직 간직하고있다.
- 레몬이 나쁜 기운을 흡수한다는 괴상한 유사과학을 믿고 있다. 토트넘 시절부터 사무실에 레몬 박스를 두고 10일마다 새 레몬으로 바꾼다는데 이는 원래 있던 레몬이 나쁜 기운에 오염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첼시 부임 이후에도 사무실에 또 레몬을 갖다놓고 이 레몬 관련 이야기를 또 꺼냈다.[24]
7. 둘러보기
[1] 성인 포체티노는 이탈리아에서 쓰는 성씨이며 포케티노라고 한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스페인어권 국가에서는 외국어 또는 차용어 이름도 스페인어식으로 읽기 때문에 스페인어 표기법을 적용한다.[2] 이 기간 동안 코파 델 레이에서 2번 우승했다.[3] 지역예선에서 대한민국이 우승, 북한이 준우승하여 코리아(남북 단일팀) 기록은 대한민국이 계승한다.[4] 바이에른 뮌헨, 셀타 비고 등에서 활약한 중앙 수비수다.[5] 이 판정은 축구사에 길이 남을 명심판으로 칭송받는 피에를루이지 콜리나 주심의 유일하면서도 치명적인 오심으로 평가된다.[6] 심지어 PK 골을 넣은 베컴이 대회 끝나고 한참 후에 한 인터뷰에서 시뮬레이션이었음을 인정한 바 있다. 재밌는건 바로 전 월드컵인 1998 프랑스 월드컵 16강전에서는 베컴이 신경전을 주고받던 디에고 시메오네의 할리우드 액션에 걸려 퇴장당한 적이 있다. 아마도 쌤쌤이라는걸 얘기하고 싶어서 인정한 말인 듯. 거슬러 올라가면 마라도나의 신의 손 사건도 있다.[7] 이 때 아르헨티나는 전 경기 다 일본에서 치르고 떨어졌다. 당시 일본에 베컴 광풍이 불면서, 제3국에서 하는 경기임에도 매스컴과 대중의 관심은 잉글랜드에 집중되고 뭔가 잉글랜드의 홈그라운드 삘이 나는 분위기가 현지에서 조성되고 있었다. 경기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입장에서는 안좋은 일 투성이인 대회였을 것이다. 포체티노의 빈 자리는 가브리엘 에인세, 파브리시오 콜로치니 등의 젊은 후계자들이 채웠다.[8] 이에 덧붙여 데이비드 베컴은 "내가 마라도나였어도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손으로 골을 넣었다"라고 말했다. 이겨야만 하는 상대였고, 이기기 위해서는 뭐든 다 해야만 했다는 논지다. 저 때 마라도나의 첫번째 골은 오심으로 탄생한 월드컵 역사상 최악의 골이지만, 2번째 골은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골이라 불리는 68m 드리블 골로 아르헨티나를 승리로 이끌었다.[9] clausura(클라우수라)[10] 후덕한 외모 때문인지 국내에서는 ‘포동티노’, 혹은 갓동님을 기반으로 한 ‘포동’이라는 별명이 있다.[11] 탈모가 없어도 이 정도 나이면 최소 얇아지거나 숱이 줄어드는데, 그런 기색조차도 없다. 탈모가 굉장히 흔한 서양권에서는 더욱 이례적인 케이스다.[12] 다만, 해당 시즌 레스터 시티는 말 그대로 신데렐라 동화를 찍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그들의 경쟁팀인 토트넘은 상대적으로 관심에서 밀리거나 계모 취급을 받았던 게 사실이고, 토트넘 감독이나 선수, 팬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불공평하게 느낄 여지가 있는 분위기였다. 당시 레스터 시티의 감독이었던 라니에리 역시 포체티노와 만났을 때 그러한 사실을 인정하기도 했다.[13] 대니 로즈가 베른트 레노의 가슴팍에 킥을 날렸는데도 옐로 카드에 그치고 해리 케인을 비롯한 토트넘의 선수들이 오프사이드 라인을 넘어섰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무스타피의 반칙을 선언해 PK를 선언하고, 이후 오바메양의 PK 때, 베르통언이 킥을 차기 전부터 페널티 에이리어 안에 들어가 있었는데도 다시 차라는 지시를 하지 않았다.[14] 실제로 볼프스부르크와 링크가 강력하게 났었다.[15] 17-18 시즌 이전 한정. 18-19 시즌에는 오히려 역전되어 손흥민이 아시안 게임 및 아시안컵으로 혹사를 당하고 팀에 복귀했을 때 포체티노가 공격자원이 마땅치 않았기에 쉼없이 손흥민을 선발출전으로 내보내는 모습을 보이자 이번에는 국내 손빠들이 한 경기는 좀 쉬게 해달라는 원성을 낼 지경이 되기도 했다.[16] 사실 대한민국의 방송사에서도 스튜디오 중계를 할 때 이런 식으로 입고 중계를 하는 경우는 꽤 비일비재한 편이다. 어차피 상의만 화면상에 보이니 하의는 편하게 입고 오라는 식으로 중계진들에게 PD들도 권장하는 편인데, 방송사에서 메이킹 필름을 틀어주는 일이 종종 있을 때 이런 비하인드가 공개되기도 한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입고 방송국을 출입하는 것은 아니고, 적당히 편한 복장으로 온 다음 정장 상의만 따로 가져가는 식이다.[17] 사진까지 보여줬는데도 몰랐다고 한다.[18] 여담으로 링크에 나와 있는 책의 일부는 포체티노의 자서전이라고 한다.[19] 물론 포체티노의 손흥민이 한국에서 베컴급 인기를 자랑할 것이라는 생각은 사실이다. 저 소녀가 한국인이라면 엄청나게 특이한 경우다.[20] 다른 심판도 아니고 명심판으로 매우 유명한 피에를루이지 콜리나의 상당히 보기 힘든 오심이었다.[21] 이렇게 이근호-손흥민 조합이 케미가 좋아서 2018 월드컵 당시 기대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안타깝게도 이근호가 부상으로 낙마하여 월드컵에서는 해당 전술을 사용하지 못했다.[22] 경기만 보더라도 메시는 바르셀로나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수비가담을 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특별한 공격장면이 없었다. 바르셀로나에 있을 때는 메시가 중심이 되어 전술이 짜여있었지만, 이곳은 파리 생제르맹이고 결코 메시가 중심이 아니다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사건이였다.[23] 물론 부임 이후엔 포체티노도 만만찮게 욕을 먹었지만, 오히려 이 부임 사가가 처음 떴을 당시 영국 본토에서는 토트넘 구단에 대한 여론이 더 험악해졌다.[24]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첼시는 반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