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피에를루이지 콜리나 Pierluigi Collina | |
출생 | 1960년 2월 13일 ([age(1960-02-13)]세) | |
에밀리아로마냐 볼로냐 | ||
국적 | [[이탈리아|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188cm, 74kg | |
직업 | 축구 심판(은퇴) | |
심판경력 | 국내 | 세리에 C (1988~1991) 세리에 A, 세리에 B (1991~2005) |
국제 | FIFA (1995~2005) FIFA 심판위원장 UEFA 심판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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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7년 때 모습. |
IFFHS에서 공식적으로 지난 25년동안 최고의 심판으로 발표한 바 있다. #
일반적으로 심판이 판정을 잘 하면 심판의 이름 따위는 신경 쓸 겨를이 없는 반면 심판이 오심이나 편파판정을 남발하면 심판을 욕하기 위해 심판 이름에 주목하기 때문에, 심판이 유명하다는 것은 안 좋은 의미로 유명한 경우가 많지만 이 심판은 최고의 심판이라는 좋은 의미로 유명한 것이 특징이다.
한국에서는 외계인 심판이라는 별명이 있는데, 싹 밀어버린 대머리[1]에 인상적인 이목구비를 지닌 외모 때문이다.
2017년 1월 22일, FIFA 심판위원장에 선임되었다고 한다. #
2. 약력
1960년 볼로냐 출신으로 어린시절에는 동네 축구 팀에서 중앙수비수로 뛰었으나 1977년부터 정식으로 심판 코스를 밟아 심판이 된다. 명문 볼로냐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2]한 걸로 미루어보아 공부도 꽤 잘한 듯. 은퇴하고 나서 재정고문으로 활동한 적도 있다.이후 대학을 다니면서 동네 축구대회 심판만 보다가 1988년에 세리에 C1과 C2심판[3]으로 승격했고, 1991년에는 세리에 B와 세리에 A 심판으로 다시 승격했다. 당시 이탈리아 심판치고는 이례적으로 빨리 올라간 편.
1995년부터는 국제대회 심판인 자격이 주어졌으며, 1996년에는 올림픽 결승전 심판을, 1999년에는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심판을 맡았다. 그리고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는 심판계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월드컵 결승전 심판을 직접 맡았으며[4][5], 이후 UEFA컵 결승전 등 중요한 경기를 자주 맡았다.
이탈리아 심판의 정년은 45세로, 콜리나는 2006년 2월에 정년을 채웠다. 이 때 심판정년이 50세인 프리미어 리그등 다른 국가에서 매의 눈으로 노리고 있었으나 이탈리아 축구협회의 배려로 특별히 정년이 1년 연장됐다. 그러나 AC 밀란의 협찬사인 오펠 광고(아래유튜브 영상이 있다)에 출연해 판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논란이 일자 결국 옷을 벗었다. "규칙 준수는 심판에게 절대적이며 나도 그랬어야 했다"는 게 그의 소감이었다. 참고로 그냥 광고에 나온 것뿐 딱히 규정을 어긴 것도 아니어서 이탈리아 심판 협회에서는 사퇴를 만류했는데도 그냥 은퇴를 했다.
은퇴 이후 J리그등에서 데려가려고 했지만, 그냥 개인사업과 해설자로 활동을 하다가 아래 항목의 불미스런 사건을 계기로 다시 축구계로 복귀를 하게 된다.
3. 칼초폴리와 그 이후
칼초폴리 당시 유벤투스 FC의 전 단장이었던 루치아노 모지가 UEFA 심판배정 부위원장 파올로 베르가모와의 통화에서 콜리나와 로베르토 로세티(Roberto Rosetti)[6] 두 심판에 대해 "너무 객관적이다. 방해되니까 손 좀 보라" 라는 불만을 표출하는 내용이 있었다. 덕분에 이 둘은 후폭풍을 전혀 맞지 않았고, 나머지 심판들 상당수가 연루된 탓에 난리가 난 이탈리아 축구계는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콜리나에게 심판들을 관리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후 이탈리아 심판고문역과 더불어 UEFA 심판위원장을 역임했고, 2017년 1월 22일부터 FIFA 심판위원장에 선임되었다.이후로도 고문과 위원장 역할에 충실하면서 직접 피치 위에서 심판으로 뛰고 있지는 않지만, 자선경기같은 이벤트 경기에서는 종종 휘슬을 물기도 한다. 아이티 지진돕기 지네딘 지단·호나우두 자선경기 및 2010 유니세프 자선경기의 심판으로도 참가한 바 있다.
4. 판정 및 스타일
반칙은 칼같이 잡아내지만 옐로우 카드와 레드 카드를 주는데 신중한 편이어서 심판이 경기를 지배했다는 말을 들은 적은 거의 없다.이탈리아 심판의 전체적인 특징이기도 한데, 페널티킥을 잘 주는 편이고 위험지역에서의 몸싸움에 은근히 관대했다. 실제로 판정을 보면 "이거 안 부나?" 싶은 것들이 꽤 있다. 대표적으로 1998 월드컵의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경기.
경기장에서의 카리스마도 대단하다, 강렬하고 매서운 눈빛, 수비수 출신다운 188㎝의 거대한 피지컬, 싹 밀어버린 스킨헤드가 합쳐져 실로 그 위압감이 대단했으며, 선수들과 신경전을 벌여도 쉽게 물러서지 않는 편이었기에 레드 카드를 주거나 페널티 킥을 줄 때, 항의하면서 대드는 선수들이 거의 없었다. 심지어 아래 영상에서도 볼 수 있듯, 오심을 한 경우조차 선수들이 따지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의 명성은 공짜가 아니라 피나는 노력의 결과인데, 사전에 미리 경기에 관한 모든 것을 파악을 하고 판정을 내리는데 참고했다고 한다. 선수들, 선수의 플레이 스타일, 선수들간의 관계, 두 팀간에 얽힌 역사, 팀의 전술, 코칭스타일, 선수들의 주발이 어느 발인지 등을 반드시 미리 파악하고 나서야 경기장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이런 노력 덕분에 선수들이 잘 쓰는 발과 플레이 스타일과 팀의 전술등을 참고하여 공을 지닌 선수가 크로스를 올릴지, 패스를 할지, 골을 노릴지 미리 판단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반칙을 잘 볼 수 있게끔 선수가 크로스를 노릴 것 같으면 미리 미드필드로 위치하고, 공을 가진 선수가 직접 골을 노릴 것 같으면 미리 골라인 근처에 위치해서 선수들을 지켜봤다고 한다. 이렇게 꼼꼼한 성격 덕에 다른 심판들보다 반칙을 더욱 쉽게 잡아낼 수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경기장에 들어서기 전에는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훈련은 물론이고 먹는 음식과 경기장까지 걸리는 시간까지 스스로 정한 규칙대로 움직이려고 노력을 했다고 한다.[7]
물론 콜리나도 실수를 할 때는 있었는데,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 VS 잉글랜드 전에서 마이클 오언의 다이빙을 잘못 보고 페널티 킥을 인정한 실수가 있었다.
2분 53초가 반칙 장면 |
사실 오언의 페널티 킥이 잘못 되었다면서 마우리시오 포체티노가 따지려…다가 말았고, 다른 아르헨티나 선수들도 항의를 하지 않았다. 오언의 연기가 워낙 좋기도 했지만, 모두가 "그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콜리나 심판이라면 제대로 봤겠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콜리나는 비디오 판독 도입 여론이 처음 거론된 초창기부터 적극적으로 지지를 표명한 심판이었다. 2009년 기사. 당시만 해도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며 심판의 위상이 격하될 것을 우려해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고 특히 제프 블라터 FIFA 회장과 미셸 플라티니 UEFA 회장이 모두 비디오 판독 도입에 반대 입장[8]이라 심판 입장에서 말하기 쉬운 입장이 아니었음에도 비디오 판독이 올바른 판정에 도움이 된다며 도입에 찬성을 표했다. VAR이 도입된 2016년 이후에도 항상 지지해 왔다. # 다만, 심판없이 비디오 판독만으로 판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대하는 편이며 비디오 판독을 심판이 활용해 올바른 판정을 내리는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2011년쯤 골라인 판독 기술 도입으로 부심을 없애는 것에 대해서는 명백한 반대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이 발언으로 콜리나 심판이 비디오 판독에 반대한다는 식으로 기사가 나온 적이 있는데 사실과 다르다. 실제 발언은 부심이 골라인만 보는게 아니라 프리킥, 코너킥, 기타 다양한 분야에서 심판에게 도움을 주는 반면에, 비디오 판독은 이걸 못하니 부심을 없애면 안된다는 식으로 발언이었다. 비디오 판독 자체에 반대한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골라인 판정 도입도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이다. #
5. 심판위원장 임명 후
심판 위원장이 된 후로부터 추가 시간 시스템에 변화를 가했는데, 기존에는 정규시간에 발생한 시간 지연을 적당히 반영하여 추가시간으로 적용했다면, 콜리나 위원장은 정규시간 내에 선수의 부상, 선수 교체, 긴 골 셀레브레이션 등으로 시간 지연이 발생할 경우 이를 철저하게 계산하여 추가시간에 반영할 것을 지시했다. 축구의 경우 농구나 핸드볼같은 타 종목과 달리 경기가 멈추는 상황이 발생해도 시계는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르는데, 이로 인해서 전후반 각각 45분에 비해 실제 플레이 시간이 크게 줄어드는 상황이 익숙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추가시간이 존재하지만 추가시간도 중단된 시간을 온전히 반영하는 것은 아니었고, 따라서 침대축구처럼 고의적으로 시간을 지연시키는 행위가 빈번히 일어나곤 했다. 따라서 축구에서 시계를 멈출 수 없는 대신, 플레이가 중단된 시간을 정확히 체크해 그만큼 그대로 추가시간으로 넘기도록 한 것. 그야말로 축구 전략의 템포를 앞당기기 위해 침대축구를 말살하려는 시스템을 채용하면서 다시금 주목 받고 있다. 그는 개편하면서 보통 세레모니는 평균 1분 30초 내외로 걸리는데, 이를 세번 하게 되면 대강 5분을 잃는 것으로 판단되어 그만큼의 기회를 잃는다고 주장했다.콜리나 위원장의 결정은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에서 그 영향을 드러냈는데, 경기 중단 상황이 비교적 적은 전반이라면 모를까 후반전 추가시간은 아무리 짧아도 4분은 주어지고 6분~8분 정도의 추가시간을 밥먹듯이 볼 수 있다. 심지어 부상 선수, 골 세리머니가 많은 경기에선 추가시간이 10분대를 넘어가는 진기한 장면도 볼 수 있었는데, 조별리그 B조 첫 경기였던 잉글랜드와 이란의 경기는 이것이 제대로 드러나서 전후반 모두 10분이 넘는 추가시간이 주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월드컵이 종료되고 리그가 재개됐는데, 긴 추가시간에 익숙해진 팬들이 어색함을 느낄 정도다.
6. 기타
- 주제 무리뉴 감독이 칭찬한 유일한 심판이다. 2005년 당시 첼시 FC와 FC 바르셀로나의 챔피언스 리그 16강 1차전에서 일어난 일로, 디디에 드록바가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옐로 카드 2장을 받고 퇴장(후반 9분)당하면서 첼시의 1-2 역전패로 끝났는데, 당시 심판이던 스웨덴인 안데르스 프리스크(Anders Frisk)가 오심을 저질렀다는 것으로[9] 이에 분노한 무리뉴 감독이 2차전 심판은 콜리나가 맡아야 한다고 하면서 나왔다.런던에서의 심판은 세계 최고의 심판인 콜리나가 맡아야 한다. 인성으로나 실력으로나 완벽한 심판이다.#모든 선수들과 감독들은 콜리나가 최고의 심판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잘못된 판정으로) 경기에 영향을 주지 않는 심판이기 때문이다.#
UEFA는 무리뉴의 심판을 교체해 달라는 요청에 헛소리 말라고 했고, 2차전에서 첼시는 바르셀로나를 4-2로 이기고 8강에 올라간다. 2005년이면 무리뉴의 독설이 한창 물이 올랐을 때인데 이런 칭찬을 들은건 대단한 거다.
실제로 2차전에서 콜리나가 주심을 맡게 되었는데, 76분 데이미언 더프의 코너킥을 존 테리가 머리로 받아 넣으면서 합산스코어 5-4가 되어 첼시가 8강에 진출하였으나 사실 이는 콜리나 주심의 명백한 오심이었다. 더프의 발을 떠난 공이 테리에게 날아올 때 첼시의 카르발류가 바르셀로나의 수문장이었던 빅토르 발데스를 뒤에서 껴안으며 붙잡고 있었고, 이로 인해 발데스는 제대로 점프도 한번 해 보지 못하고 골을 헌납하였기 때문이다. 콜리나 본인도 경기 후 영상을 보고서는 "내가 완전히 잘못 본 것이다. 그 장면을 제대로 보았더라면 골로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양심고백을 하기도 했다. # 만약 4-4로 끝났으면 원정골을 2골 넣은 바르셀로나가 8강에 진출했을 상황이었기 때문에 경기가 끝난 후 호나우지뉴가 격분하며 콜리나에게 항의를 해 보았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발롱도르 수상을 주관하는 프랑스의 축구 잡지인 ‘프랑스 풋볼’에서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여파로 발롱도르 시상식을 취소한 대신 축구계 올타임 레전드 드림팀을 발표했다.[10] 동시에 올타임 베스트 심판도 발표했는데 1위는 물론 콜리나였다. 프랑스 풋볼은 "심판에 있어서 처음으로 떠오르는건 그의 이름이다. 1977년 데뷔때부터 은퇴한 2005년까지 콜리나는 축구의 역사를 썼다."고 논평했다.
- 스포츠계에 헌신한 공로로 헐 대학(Hull University-잉글랜드)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분데스리가 최고의 심판으로 불린 마르쿠스 메르크(Markus Merk)와 콜리나 중 누가 최고의 심판이냐는 설문조사에서 이긴 바 있다. #
- 팬이 준 선물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이 무엇이냐 물었을 때, 헤어 드라이기라고 답했다.
3세대 오펠 벡트라 광고에도 출연한 적이 있었으며 표정이 없을 땐 굉장한 카리스마를 자랑하지만, 막상 미소를 짓거나 웃을 땐 갓난아기 같은 얼굴로 변하는 반전 매력의 소유자.
- 콜리나가 심판을 본 경기에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전적은 바닥을 기었다. 거의 징크스 수준.[13] 물론 이때의 독일 대표팀이 암흑기였다는점도 감안해야 하지만.
- 이탈리아의 한 유튜브 채널에서 토크쇼를 진행했었는데 비론 모레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콜리나도 심판이기 이전에 이탈리아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데비론 모레노? ...일단 이야기 할 것은 뉴욕에 코카인을 가져간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하지? ... 월드컵이 끝나고 이탈리아 방송에 나와서 판정에 대한 대가를 치렀다. 긍정적인 점이 딱 하나있는데 모레노 덕분에 내가 한일 월드컵 결승전 주심을 맡았다는 것이다.
콜리나는 이탈리아인이기 때문에, 당시 이탈리아가 결승에 올라갔더라면 결승전의 심판이 될 수 없었다. 이런 인터뷰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당시 판정은 양팀 모두가 불만을 가질 수 있었는데 콜리나나 이탈리아인들이 보기에는 심판이 한국편으로 느껴졌다는 것이다.
7. 수상 내역
-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최우수 심판.
- 세리에 A 올해의 심판상 7회 수상. - 역대 최다 수상.
- IFFHS 올해의 세계 베스트 심판상 6회 수상 - 역대 최다 수상.
- 이탈리아 공화국 명예 공로 훈장(3등급).
-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14] 심판으로 첫번째 입성했다.
[1] 잘 보면 눈썹과 수염도 없다. 전신탈모증이 있기 때문이다.[2] 볼로냐 대학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이탈리아 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최고 명문대학 중 하나이다.[3] 세리에 C2는 2014년 리그 개편으로 세리에C로 통합[4] 그 밖에 8강전 한국 VS 스페인의 경기에서 경기 감독관으로서 참관한 적이 있다고 한다.[5] 그리고 심판상을 받았다.[6] 포항 스틸러스의 2009 클럽월드컵 4강전 주심. 190cm의 거구에 카리스마를 보유하고 있었다. 남아공 월드컵 결승전 주심으로 유력했으나 오프사이드 오심을 저지르고 아웃당했다.[7] 이상의 내용은 그의 자서전인 'The Rules of the Game'에 나와있다.[8] 결국 축구에서 VAR을 도입한 건 블래터와 플라티니가 회장에서 물러난 2016년 클럽 월드컵 이후부터였다. 단, 블래터는 2012년 이후에 골 라인 판독까지는 찬성한 바 있다.[9] 이 때문에 프리스크는 첼시팬에게 자신은 물론 가족들까지 '살해해 버리겠다'는 협박을 들었고, 결국 이 일을 계기로 심판직을 사퇴하고 만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웬만한 심판들은 싸그리 다 욕먹는 이 바닥에서 프리스크 주심은 '최고의 No.2 심판'(No.1은 당연히 이 문서 주인공) 소리를 들어도 이상할 게 없는 명심판이었다는 것.[10] 써드 팀 까지 발표했는데 퍼스트 팀은 GK 레프 야신, DR 카푸, DC 프란츠 베켄바워, DL 파올로 말디니, DM 차비 에르난데스, DM 로타어 마테우스, OM 디에고 마라도나, OM 펠레, RW 리오넬 메시, LW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CF 호나우두 였다.[11] 정발명 월드사커 위닝일레븐 7. 국내 표지엔 없다.[12] 2002년 월드컵 일본 vs 터키 경기에서 주심을 맡아 일본에서 인지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13] 마침 이탈리아가 독일의 천적으로 유명한데, 콜리나가 이탈리아 국적이라는게 재밌는 점이다.[14] Hall of Fame del Calcio Italiano. 2011년부터 만들어진 이탈리아 명예의 전당. 이탈리아축구협회(FIGC)가 정식으로 후원하는 단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