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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 신성 로마 제국 구성국들의 군대의 경우 프랑스 대혁명이 터진 1789년 당시의 세속 선제후국과 그 이상급 국가만 기재. ※ 라인 동맹 및 독일 연방, 북독일 연방 구성국들의 군대의 경우 왕국 이상급 국가만 기재. ※ 독일 제국 구성국들의 군대는 독립적인 전쟁성을 가진 경우만 기재. | }}}}}}}}} |
국가전쟁기 (1919년 ~ 1921년) | 국가전쟁기 (1921년 ~ 1933년) | 국가전쟁기 (1933년 ~ 1935년) |
1. 개요
국가방위군(Reichswehr)은 제1차 세계 대전의 패전으로 독일 제국이 무너지고 난 후 수립된 바이마르 공화국의 모병제를 시행하는 군대였다.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육군(Reichsheer)과 해군(Reichsmarine)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해 많은 제약들이 있었지만 이런 제약들이 오히려 독일군에 소수정예화를 돕기도 하였는데, 장교수의 제한은 뛰어난 장교들만 군에 있게 도와주었다. 그리고 이 장교들이 훗날 독일 국방군에서 엄청나게 활약하게 된다.
2. 역사
Universal compulsory military service shall be abolished in Germany.
The German Army may only be constituted and recruited by means of voluntary enlistment.
Die allgemeine Wehrpflicht wird in Deutschland abgeschafft.
Das deutsche Heer darf nur im Wege freiwilliger Verpflichtung aufgestellt und ergänzt werden.
독일에서는 보편적 의무 군 복무가 폐지되어야 한다.
독일군은 자발적인 입대를 통해서만 구성되고 모집될 수 있다.
베르사유 조약 제173조
The German Army may only be constituted and recruited by means of voluntary enlistment.
Die allgemeine Wehrpflicht wird in Deutschland abgeschafft.
Das deutsche Heer darf nur im Wege freiwilliger Verpflichtung aufgestellt und ergänzt werden.
독일에서는 보편적 의무 군 복무가 폐지되어야 한다.
독일군은 자발적인 입대를 통해서만 구성되고 모집될 수 있다.
베르사유 조약 제173조
위와 같이 베르사유 조약은 독일 제국군에게 많은 제약을 가했다. 게다가 탱크, 중기관총, 공군, 잠수함 등의 최신무기 보유는 불가능하였다. 독일 제국군 소속이었던 장교들은 소수만 국가방위군에 남았다.이후 바이마르 공화국이 제대로 들어서자, 방위군으로서의 역할을 시작하였다. 국가대통령이 국가방위대의 통수권자이자 총사령관이었다. 그리고 참모총장은 국가대통령(총사령관)이 임명하였다.
국가방위군은 한스 폰 젝트 장군의 주도로 미래에 있을 수 있는 재무장에 대비된 전문 직업군인 군대를 지향했다. 독일 국가방위군의 장교는 반드시 고등학교 교육 9년을 마치고 대학 입학 자격을 갖춘 인원만 받았다. 게다가 그 중에서도 여러 까다로운 교육을 통과해야 장교로 선발될 수 있었다. 특히 사단 이상 제대를 지휘할 참모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전문적인 교육과 시험들을 거쳐야 했다. 독일 제국군에서 건너온 전통들도 그대로 유지되었는데, 예시로 사관생도는 임관 이전에 장교지망자[1]라는 신분으로 15개월 동안 병사들과 같은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매우 엄격한 훈련과 통과하지 못하면 승진이나 임용에 차질이 생기는 각종 테스트들의 존재에도 장교에 지원하는 미래의 사관생도들은 부족하지 않았다. 베르사유 조약으로 군 규모가 수십분의 1로 감소하면서 월급과 복지가 사회에 비교해도 매력이 있는 수준으로 인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사관과 장기 복무 사병 또한 보편 징병제에서 소규모 모병제로 전환하면서 높은 급여와 생활여건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전문성을 배양하기 위해 이들은 부사관 계급으로의 승진 때마다 적성검사와 각종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또한 국가방위군의 부사관은 소대장의, 병사는 분대장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을 대비한 각종 훈련을 이수했다. 부사관으로 승진한 병사들은 봉급 인상과 복무 연장 뿐만 아니라 군인연금과 은퇴 후 공무원 경력을 보장받을 수 있었기에 부사관 지원률은 매우 높았다. 베르사유 조약은 독일군의 보편 징병과 장교 숫자만 제한했지 부사관 숫자는 제한하지 않았기에 1926년 중반까지 독일 국가방위군은 18,000명의 선임 부사관을 포함해서 일반 병사들과 하급 부사관의 비율이 거의 1:1인 상당히 기형적인 구조로 바뀐다.
후일, 나치 독일이 들어서고 1935년에 독일 국방군으로 바뀌었다. [2] 국가방위군에서 나치 국방군으로 변화하고 재무장이 선언되면서 엄격한 정치 중립성이 훼손되고 머릿수만 채우기 위해 급조한 장교들이 폭증하는 등의 열화는 있었다. 그래도 한스 폰 젝트와 국가방위군 장성들이 의도한 재무장에 대비한 전문 부사관과 직업장교의 군대라는 개념은 재무장 기간 동안 나름대로 유효했다. [3]
3. 역대 총사령관
대수 | 1 | 2 | 3 |
사진 | |||
이름 |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Friedrich Ebert | 파울 폰 힌덴부르크 Paul von hindenburg | 아돌프 히틀러 Adolf Hitler |
기간 | 1919년 ~ 1925년 | 1925년 ~ 1934년 | 1934년 ~ 1935년 |
직책 | 바이마르 공화국 대통령 | 나치 독일 퓌러 |
4. 역대 총참모장
- 소장 한스 폰 젝트
- 소장 빌헬름 하이에
- 소장 오토 하세
- 소장 베르너 폰 블롬베르크
- 중장 쿠르트 폰 하머슈타인에크보르트
- 소장 빌헬름 아담
- 포병대장 루트비히 베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