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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8 11:29:57

국사(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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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전(失傳)되어 현재는 존재하지 않음.
번외: 현대 역사서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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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전문3. 기타

1. 개요

삼국사기에 의하면 진흥왕 6년(545년) 이사부가 편찬을 건의해 진흥왕이 거칠부 등에게 명하여 펼쳐낸 역사책이다.

당시는 중국에서 들여온 불경을 읽으려면 한문 해독능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역사시대 내내, 특히 고대 승려는 지식인 계층으로 대우받았다. 거칠부는 어릴 때부터 승려였고 당시 신라에서 손꼽히는 한문 능력을 익혔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신라와 고구려 이곳저곳을 유람하면서 명사들과 교류해 학식과 경험, 인맥을 쌓은 인물이었다. 때문에 거칠부가 전국 각지의 문사(文士)들을 널리 모아 역사책을 편찬하는 일을 맡은 것으로 보인다.

2. 전문

六年 秋七月 伊飡異斯夫奏曰 國史者 記君臣之善惡 示褒貶於萬代 不有修撰 後代何觀 王深然之 命大阿飡居柒夫等 廣集文士 俾之修撰
6년(서기 545) 가을 7월, 이찬 이사부가 아뢰어 말하였다.
“나라의 역사는 임금과 신하의 선악을 기록하여 좋은 것 나쁜 것을 먼 후손에게까지 보이는 것입니다. 역사를 편찬하지 않으면 후손들이 무엇을 보겠습니까?”
임금이 진심으로 그렇다고 여겨 대아찬 거칠부(居柒夫) 등에게 명하여 문사들을 널리 모아 역사를 편찬하게 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4 신라본기 제3 진흥왕(卷4 新羅本記 第3 眞興王)

3. 기타

삼국유사에도 《국사(國史)》 고려본기(高麗本紀)에서 인용한 글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대 신라 뿐 아니라 주변국 역사도 기록한 내용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여튼 고려시대 후반 원간섭기까지는 국사의 원본이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후 실전되어 현존하지 않는다. 물론 구삼국사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다.

보통 국사라고 표현하지만 사실 이 책의 정확한 이름은 알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위의 삼국사기 전문에서도 볼 수 있듯 '국사'라는 언급은 책의 이름이 아니라 '나라의 역사'라는 뜻으로 쓰일 수도 있다. 때문에 정말 제목이 국사일 수도 있지만 하나의 단어로서 언급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