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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1-16 01:25:15

귀문신투

1. 개요2. 행적3. 무공4. 기타

1. 개요

'신투'라 불려도 귀문신투는 결코 다른 자가 소유한 재물을 훔친 적은 없었다. 다만 상대가 더 이상 소유할 수 없는 물건을 집어가는 일에는 전혀 주저한 적이 없을 뿐이었다. 그로 인해 남들이 귀문을 넘나드는 신투라고 하지 않던가?
- 『지존록』에서 풍현이 실전적인 무적대금나(無敵大擒拿)의 구결를 처음 접한 뒤 귀문신투와 어울리지 않음에 살짝 의문을 느낀다.
'"적으로 생각하면 진정 싸울 만한 가치가 있는 자였고, 함께 술잔을 기울이면 두주불사로 마셔도 기꺼운 상대였지요. 그만한 인물을 다시 보기 힘들 것입니다."
- 쌍마(雙魔)와 풍현의 대화 중에서 발췌.
풍종호의 무협소설 『지존록(至尊錄)』에서 50여 년 전, 일기(一奇), 쌍마(雙魔), 삼괴(三怪), 사신(四神)으로 분류되던 천하십대고수(天下十大高手) 중 사신의 한 명이 귀문신투(鬼門神偸)이다. 그것도 말석(末席)으로 꼽혀서 십대고수로 언급되다가도 누군가 새로운 사람을 꼽으면 바로 빠지는 이름이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귀문신투는 자기 대신 언급된 자가 마음에 들면 놔두었으며, 마음에 안 들면 쫓아가서 바지를 벗겨버렸다고 한다.

2. 행적

귀문신투는 본래 대과를 보려는 유생이었다. 빌어먹을 관리 놈에게 호되게 당한 적이 있는 그는 대과에 급제하여 그런 놈들을 날려버릴 목적으로 암자에까지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한다. 산속 암자인지라 소일거리로 다른 일을 할 것은 없어서 그는 암자에 굴러다니는 책이란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는다. 그중에 왕창 뜯겨 나가고 찌꺼기만 남아 먹물 닦는 뭉치가 된 음마비천록(陰魔飛天錄)의 사본을 얻으면서 무예에 입문한다. 한 번 빠져들자 결과는 생각도 않고 휘말려 들어갔는데도 그는 글공부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나라가 부패해 대과의 장원이 재물로 결정되어 진다고 하자 글공부의 의미가 없어진 그는 기념품으로 그 빌어먹을 관리 놈과 자식놈의 머리통을 들고 돌아온다. 고민 끝에 본격적으로 무림에 출사하여 이곳저곳 유람을 하다가 2년 만에 고향에 다시 들른다.

귀문신투가 2년 전 벌인 일이 귀신이 탐관을 벌한 것이라는 소문으로 둔갑하여 있었고, 심지어 사당까지 있었다. 그 고장의 새로운 탐관은 사사건건(事事件件) 방해가 되는 그 소문을 없애기 위해 사당을 불태우려 하는 중이었다. 이참에 귀문신투는 그 새로운 탐관과 그에게 빌 불어 패악을 떠는 불의(不義)한 다섯의 목을 한낮에 잘라 불타는 자신의 사당 안으로 던져 넣는다. 이때 그가 펼친 미완의 음부귀장신법(陰府歸藏身法)은 이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경지에 이르러, 그는 이때부터 귀문을 넘나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제멋대로 20여 년을 천하를 떠돌며 지내는 동안, 어떤 근심도 거리낌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귀문신투는 제자를 얻는다. 그래서 제자가 자신보다 뛰어난 인물이 되도록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이 터득한 것을 능가하는 절기를 찾아다닌다. 그러다 마침내 제세칠성(濟世七聖)의 유적 안으로 들어간다. 그는 일월주천로(日月周天路)의 최상층에서 밑으로 내려와 진정한 일월주천로에 도달하나, 결국 탈출하지 못하고 연구만 거듭하다 자신만의 석실을 남기며 찾아올지도 모를 후대와의 인연을 안배한다.

그리하여 50여 년 뒤에 무영문(無影門)의 혈채를 갚고자 시조의 절기를 찾아 칠성의 유적에 들어온 풍현이 그 인연에 닿는다. 그는 잡언(雜言), 무경요람(武經要覽), 신투묘해(神偸妙解), 귀문보전을 얻으면서 진정한 무영문의 절기를 잇게 된다.

3. 무공


4. 기타

사실 『지존록』에 그렇지 않은 사람이 오히려 더 적은 편인데, 그중에서도 귀문신투는 아직 주목할만한 점이 두 가지 있다.

[1] 풍현이 지존환(至尊環)을 통해 얻은 절기 중에서 귀문신투의 절기로 제압할 수 없는 것들을 돌아보고자 할 때 강력한 충격을 받으며 회상하는 것을 방해받는다. 당시의 풍현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2] 일단 패왕문과 함께 고대의 전승을 있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