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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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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메시 Gil Meche | |
본명 | 길버트 앨런 메시 Gilbert Allen Meche |
출생 | 1978년 9월 8일 ([age(1978-09-08)]세) |
루이지애나 주 라파예트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아카디아나 고등학교 |
신체 | 190cm / 81kg |
포지션 | 선발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1996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22번, SEA) |
소속팀 | 시애틀 매리너스 (1999~2006) 캔자스시티 로열스 (2007~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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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前 야구 선수.2. 어린 시절
고교시절부터 주니어 미국 대표로 95년 주니어 월드 베이스볼 챔피언십에서 우승 멤버가 되었고, 같은 해 내셔널 아마추어 올스타 토너먼트에서 MVP를 받았을 정도로 알아주는 유망주였다. 그러나 다음 해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해 많은 경기에 출장할 수 없었고, 따라서 원래는 루이지애나 주립 대학에 진학할 예정이었으나, 96년 드래프트에서 시애틀 매리너스가 예상 외로 메시를 1라운드 픽을 하면서 MLB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3. 시애틀 매리너스
마이너에서의 수련을 거쳐 99년에 드디어 메이저에 데뷔한 메시는 그해 8승 4패를 거두며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듯 했으나, 이듬해에 부상이 닥쳐 두 번의 수술을 받으며 2년 넘는 세월을 허공에 날려보내게 된다.
긴 재활 끝에 2003년 다시 메이저 무대로 돌아온 메시는 그해 186.1이닝을 던지며 15승 13패 평균자책 4.59로 매우 성공적인 복귀시즌을 치렀고, 그해 스포팅 뉴스가 선정하는 AL 올해의 재기상도 수상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 그는 계속 지지부진한 상태가 되었고, 2006시즌이 끝난 후 시애틀의 단장 빌 버베이시는 FA가 된 그와의 재계약을 포기한다.
4. 캔자스시티 로열스
이런 상황에서 그를 데려간 사람이 캔자스시티의 단장 데이튼 무어. 무려 5년 $55M의 거액[1]을 안겨주었다. 결코 A급이라 볼 수 없는 성적을 거둬왔던 메시였기에 많은 사람들은 이 계약에 의문을 표했다. 메시의 영입에 대해 무어는 이렇게 말했다. "에이스의 향기가 난다." 한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된 유행어록인데, 물론 안 좋은 쪽으로였다.
하지만 메시는 이러한 의문에 성적으로 답했다. 계약 첫 2년간 그전까지 한번도 한 적이 없었던 3점대 방어율과 200이닝 달성에 성공, 2007년에는 올스타 출전까지 하면서 캔자스시티의 리더이자 에이스로 등극한다.[2] 잭 그레인키가 막 포텐을 터뜨리기 시작하면서 그와 훌륭한 원투펀치를 이루나 했지만...
안타깝게도 2009년 시즌 중반에 또다시 부상을 입고 만다. 6월 15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경기에서 132개의 공을 던진 후, 그는 어깨와 허리에 통증을 호소하였고, 그 이후 성적이 급전직하한다.[3] 그 경기 직전까지 4승 5패 평균자책점 3.31을 기록하던 메시는 이후 2승 5패 8.06을 거두는 데 그쳤고, 2010년에도 0승 5패 5.69를 기록하는데 그친다.
5. 은퇴
2010 시즌이 끝난 시점에서 메시에게는 아직 1년의 계약기간이 남아 있었고, 이 년도의 메시의 연봉은 $12M이었다. 팀은 어깨부상이 도진 그에게 불펜투수직을 제안했지만, 더 이상 재기가능성이 불투명하다고 판단한 메시는 은퇴를 택한다. 그리고 팀에 민폐를 끼치지 않겠다며 보상금 $6M을 지급하겠다는 데이튼 무어 단장의 제안마저 거절하고 $12M의 잔여연봉을 전액 포기했다.
이 대인배적 은퇴로 인해 메시는은퇴 후에도 계속 언급되는 선수가 되었다.
MLB 통산성적은 1,432.1이닝 84승 83패 평균자책점 4.49 1,050탈삼진.
여담으로 한글 표기가 리오넬 메시와 동일하기에 은퇴 기사가 나왔을때 사람들이 둘을 혼동하여 혼란을 일으킨 적도 있다.
보스턴 레드삭스에도 같은 사례가 있다. 라이언 뎀스터가 그 주인공으로 자신의 건강과 딸의 난치병을 이유로 13.5M의 연봉을 쿨하게 포기했다. 그의 말에 의히면 이미 돈은 벌대로 많이 벌어서 결정하는 데 별 고민거리도 안됐다고 한다.
6. 관련 문서
[1] 이는 당시 기준으로 로열스의 프랜차이즈 선수였던 마이크 스위니의 5년 $55M 계약과 동급인 프랜차이즈 사상 최대 액수였다.[2] 그리고 매리너스는 멸망했다. 길 메시를 비싼 돈 주고 안 잡은 게 문제가 아니라, 길 메시 대신 돈을 쓰고 데려온 다른 선발투수들이 모조리 바닥을 쳤다는 게 문제다. 2007년엔 제프 위버와 미구엘 바티스타를 FA로, 호라시오 라미레즈를 트레이드로, 2008년엔 카를로스 실바를 FA로, 에릭 베다드를 트레이드로 영입. 이들 다섯명에게 돈은 돈대로 유망주는 유망주대로 소비한 결과 이들이 시애틀에서 거둔 WAR는 다 합쳐서 0.3이다. 참고로 길 메시가 캔자스에서 올린 WAR는 10.3.[3] 이 때문에 캔자스시티의 트레이 힐만 감독은 혹사 비판에 직면하고 결국 감독직을 사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