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천주교 서울대교구 보좌 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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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색 배경은 교구의 현직 교구장 주교, 녹색 배경은 교구의 현직 보좌 주교. |
{{{#000000 천주교 서울대교구 보좌 주교 김옥균 바오로 金玉均 | Bishop Paul Kim Ok-kyun, D.D.}}} | ||
<colbgcolor=#eee8aa><colcolor=#1f2023> 출생 | 1925년 12월 9일 | |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 ||
국적 | 대한민국 | |
사망 | 2010년 3월 1일 (향년 84세) |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 성모병원 | ||
장례미사 | 2010년 3월 3일 | |
안장지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용인공원묘원 | |
명의주교 | 지르바 명의 주교 | |
재임기간 |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 1985년 4월 25일 ~ 2001년 12월 12일 |
LUCEM IN HANC TERRAM (이 땅에 빛을)# |
1. 개요
김옥균 주교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봉직했던 한국 가톨릭 성직자이다.2. 생애
김 바오로 주교는 1925년 아버지 김병희 비리버와 어머니 방 아가다 사이에서 2남 3녀 가운데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아버지가 공소회장이어서 그의 집은 이 마을의 공소였고, 동네 신자들이 모여 미사와 공소 예식을 드리는 성당이었다.김 주교는 어린 시절 미사가 시작되면 맨 앞자리에서 뚫어지게 미사의 광경을 지켜보았고 미사가 끝나면 제의 대신 혼자 담요를 덮어쓰고 밥상 앞에서 미사 드리는 모습을 흉내내곤 하였다고 한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미사 복사를 시작했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상당히 먼 거리를 걸어서 새벽미사에 임했다. 특히 몹시 추운 겨울에는 깨진 사기조각에 불씨를 담아 손을 녹이며 어머니와 함께 열심히 복사생활을 하였다.
그는 1942년 서울 신학교에 입학을 하자마자 태평양전쟁이 터져 함경남도 덕원(베네딕토회 수도원이 있던 덕원자치수도원)에서 신학교 생활을 시작하다. 그 후 덕원신학교와 용산예수성심신학교(소신학교), 혜화동에 있는 성신대학(대신학교)을 거쳤다. 1950년 4월 성신대학 철학과를 수료하던 해에 6.25 전쟁이 발발하여 부산으로 피난갔다가 군에 입대한다.
그 후 개성과 평양을 거쳐 평양 근처 만경대에서 군생활을 하던 중 1.4후퇴를 맞아 대구로 가서 군복무를 마쳤다. 그리고 프랑스 유학을 가며, 릴(Lille) 신학교를 1954년에 졸업, 사제서품을 받게 되었다.
1985년 3월 25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하여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되었으며, 4월 25일 주교로 성성되었다. 2001년까지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및 총대리를 역임하였다.
2010년 3월 1일 지병으로 사망하였다. 사망 직후 장기기증을 위한 안구 적출 수술이 진행되었으며, 3월 3일 정진석 추기경 주례로 장례미사가 봉헌되었고, 2009년 사망한 김수환 추기경의 묘소 옆자리에 안장되었다. 또한, 묘소 옆에는 2021년 4월에 사망한 정진석 추기경의 묘소가 조성되었다.
3. 기타
-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및 총대리로만 16년간 봉직하면서, 교구의 행정을 체계화하고 재정을 탄탄한 기반 위에 올려놓아 서울대교구에 많은 본당을 신설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 수원교구 양지본당 출신이다.# 출처: 가톨릭신문